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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와 교학사 교과서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인, 친일·독재미화 뉴라이트교과서 검정무효화 국민네트워크 회원들이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교학사 교과서 폐기와 서남수 교육부 장관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 교학사 교과서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인 "왜곡된 역사 교사서 폐기하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와 교학사 교과서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인, 친일·독재미화 뉴라이트교과서 검정무효화 국민네트워크 회원들이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교학사 교과서 폐기와 서남수 교육부 장관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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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이다. 얼마 전 교육부가 교학사 교과서의 역사왜곡 논란을 '물 타기'하기 위해 애먼 나머지 7종 교과서에 수정 명령을 내리더니, 아예 교학사 교과서의 '대변인'을 자처하고 나선 모양새다. 지난 7일, 교육부는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변경한 학교 20여 곳의 특별 조사에 나선다고 밝혔다.

생뚱맞은 특별 조사를 두고 교육부는 '일선 학교의 선택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교학사 교과서 채택 철회 움직임에 제동을 걸려는 것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문제의 교과서를 집필한 이른바 '뉴라이트' 대 학생, 교사, 학부모들 간의 대립에서, 이젠 정부가 저자들을 대놓고 편들면서 대리전 양상을 띠게 됐다. 정부와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반대하는 국민들의 싸움으로.

교학사 교과서로 채택이 결정된 학교가 '외압' 때문에 결정을 번복하게 됐다는 교육부의 인식은 차라리 코미디다. 재학생들이 대자보를 붙이고 동문과 학부모들이 채택을 철회하라는 시위를 한 것을 두고 '외압'이라고 보는 걸까. 아니면, 교과서 내용을 문제 삼은 학계와 시민단체들을, 그들 말마따나 '법률 자문'을 통해 처벌하겠다는 걸까.

그러나 한낱 해프닝으로 웃어넘겨서는 안 된다. 이는 교육부가 '미래를 염두에 둔 포석'이을 까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문에 죽고, 공문에 사는 일선 학교의 교사들에게 최고 상급 기관인 교육부의 '힘'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효과는 충분하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학년말이면 일선 학교는 어김없이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해야 한다. 교사들은 교과서 선정을 위한 교과협의회를 열어야 하고, 항목별 점수를 적어 합산해 3배수를 추천하고, 학교운영위원회의 자문과 심의를 거친 후 학교장은 그 중 한 권을 낙점한다. 해마다 있어왔던 절차다. 그렇다면 내년엔 어떨까.

교육부의 '몽니'에 자유로울 수 없는 일선 학교

이번에 느닷없이 특별 조사를 받게 될 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전국의 모든 학교들이 교육부의 압력에 '쫄게 될' 게 뻔하다. 비록 교육부가 몽니를 부리고 있다는 걸 모르진 않지만, 자유로울 수 있는 학교와 교사들은 사실상 없다. '울며 겨자 먹기'까지는 아니어도, 자칫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봐 주기' 추천이 횡행할 수도 있다.

일단 교과서 선정과 수업에 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교사들마저 '자기 검열'에 빠지게 되면, 더 이상 힘 있는 교육부의 '권고'를 막아낼 방법은 사라지게 된다. '가재는 게 편'일 수밖에 없을 터, 최종 결정권자인 학교장과 사립학교 이사장들은 태생적으로 교육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눈치껏 판단하게 돼 있다. 어떻든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그러하기에 이번 일은, 거칠게 말해서, 교학사 교과서가 향후 교과서로 살아남느냐, 사라지느냐의 문제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아리랑'조차 금지곡으로 지정한, 흡사 군대 같은 성격의 그런 학교가 아니라면, 단 한 곳도 채택되어서는 안 된다. 단 한 곳이라도 교과서로 사용된다면, 그건 교육부의 '승리'다. 여하튼 교과서로 살아남았다는 뜻이니까.

교학사는 전국의 고등학교에서 단 한 곳이라도 채택된다면 교과서를 기꺼이 공급하겠다며 호기롭게 말하지만, 현 상황을 놓고 볼 때 채택률 '0'이 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진다. 정부와 여당, 그리고 그들의 기관지로 전락한 보수언론에서 '마녀 사냥' 운운하며 어떻든 철회를 막아보려 하지만 역부족인 듯싶다.

하다하다 안 되니, 결국 전가의 보도처럼 또 종북 카드를 끄집어 들었다. 왜 안 나오나 했더니만, 정부와 여당, 그리고 보수언론에서 느닷없이 전교조를 문제 삼았다. 전국적인 교학사 교과서 거부 움직임이 확산된 건 모두 전교조 때문이라는 거다. 그들이 아무 것도 모르는 학생과 학부모들을 앞세워 철회 운동을 부추기고 있다는 식이다. 낡은 레코드판 같은 그들의 대응에 이젠 측은함마저 느껴진다.

전통의 교육 출판기업에 오명, 안타까울 따름

그들이 자초한 일이기는 하나, 교학사만 가엾게 됐다. 전통의 교육 출판기업이라는 명성은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됐다. 요즘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과거 '표준전과'와 '필승' 참고서 시리즈를 기억하는 기성세대조차도 교학사라고 하면 누구나 역사 왜곡 교과서를 떠올린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의 경우, 한국사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과목들 중 교학사 교과서가 선정된 교과는, 공교롭게도, 단 하나도 없다. 아무렴 한국사 교과서처럼 내용이 왜곡돼 있거나 질이 떨어져서는 아닐 것이다. 한국사 교과서의 불똥이 애꿎게 다른 과목 교과서로 튄 것이다. 한 동료교사가 이와 관련된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듣고 있던 주변의 다른 교사들도 맞장구를 쳤다.

"한국사 과목이 아니라도,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하기가 무척 꺼려져요. 한 아이가 제 교무실 책꽂이에 교학사의 참고서가 꽂혀있는 걸 보더니 이렇게 묻는데, 정말 난감하더라고요. '선생님, 설마 교학사 팬이에요?' 한마디로 교사를 조롱하고 있는 거죠. 교학사는 이런 일선 학교의 분위기를 모를까요?"

사족이자, 주제넘은 이야기지만, 교학사가 하루 빨리 이 어둡고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와 명문 출판기업으로 재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현 정부가 벌이고 있는 어이없는 역사 전쟁에 학교는 혼란에 빠졌고, 역사학계도 사분오열됐으며, 멀쩡한 기업들도 황폐해져버렸다. 이 갈등의 끝은 어디일지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태그:#교학사 교과서, #상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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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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