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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6일부터 11월 20일까지 부산 사상공단의 새시조립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했습니다. 취재를 목적으로 일을 한 건 아니지만, 노동일기를 정리하다 르포로 남기고 싶어 글을 적었습니다. 총 5회 분으로 올릴 예정입니다.... 기자말

H사의 거래처는 모두 학교다. 신축학교가 대부분이고 증축건물이나 기존 건물의 창틀교환 공사가 간혹 있다. 신축학교 창호공사는 교육청 입찰로 계약하는데, 입찰을 준비하는 봄은 한가하고, 낙찰을 받아 공사를 개시하면 그 이후부터는 바쁘다. 증개축 공사는 주로 주말이나 공휴일에 작업이 집중되지만 그건 현장 시공부서의 얘기다.

아무튼 대개 초여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새학기가 시작되는 봄방학 전까지 공사를 마쳐야 하는데, 준공검사와 A/S 기간을 감안하면 연말쯤이면 큰 공사는 마무리져야 하는 게 회사의 입장이다. 그러나 일정은 항상 어긋나게 마련이고 작업은 늦어지기 일쑤다. 계획은 항상 최선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변수를 제어하지 못한다.

H사는 매년 계절별 작업수요가 달라 상시 인원을 많이 고용할 수가 없다. 비수기에 정규직은 비용 그 자체이지만 성수기를 대비해 자를 수도 없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숙련도에 있다. 그런데 그 숙련도가 고도의 장인적 경지를 요하지 않고 그저 몇 개월 정도 손에 익히다 보면 습득되는 수준에 불과하다. 기술적 차이가 없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벽은 얇을 수밖에 없다. 정규직의 기본급은 이 사회의 근로자 평균임금에 훨씬 못 미치고 비정규직의 일당은 최저임금보다는 높다.

그러니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종이 한 장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대기업처럼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사실상 관리자 노릇을 하며 명령과 복종의 위계를 강제하지도 않는다. 다만 숙련도의 차이에 따라 작업의 지시와 실행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정규직이 필요 없느냐면 꼭 그렇지도 않다. 도면을 해석하는 안목과 작업의 속도라는 측면에서 분명 알바들과는 차이가 난다. 따라서 여하히 정규직과 알바 간의 균형을 맞추느냐가 경영진의 과제일 것이다.

보름이 지났을 무렵 중년 남자가 알바로 왔다. 손놀림이 어색하고 몸가짐이 서툴러 그 역시 이 계통의 밥을 먹지 않았구나, 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와는 작업공정이 달라 며칠이 지나도록 얘기를 나누지 못했다. 그저 성이 '박'이라는 것만 알아 어쩌다 부를 일이 있을 때 박씨, 하고 말을 건넬 정도였다. 하루는 그와 같이 일하게 되었다. 공장장이 KS 심사를 앞두고 창고 청소를 그와 나에게 지시한 것이다.

마침 그라인딩 작업(톱날 등으로 쇠를 갈아서 매끈하게 만드는 것)이 끝난 후라 쇳가루가 수북했고 포장지가 널려 있었다. 그와 나는 이백 평 정도 되는 창고를 반으로 나누어 청소했다. 대빗자루로 바닥의 가루와 먼지를 쓸어 한 무더기씩 모아놓고는 쓰레기통을 가져와 담았다. 청소가 마무리 될 무렵 그가 빗자루를 손에 쥔 채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처음엔 모른 척하다가 그의 앞에 있는 쓰레기 더미를 내가 치우러 갔다. 옆에 가자 그는 흠칫 놀랐다. 내가 다가온 줄도 몰랐던 모양이다. "무슨 일 있어요?"하고 물었다. 대답을 하지 않고 침묵을 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실은 내가 재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이 공장보다 스무 배쯤 큰 공장의 사장이었어요. 그때 나는 공장을 깨끗이 하라며 직원들을 많이 다그쳤죠. 어떤 때는 퇴근하는 직원들을 다시 불러 청소해놓고 가라고 한 적도 있으니까요. 지금 내가 이렇게 빗자루 들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도 못하고……."

그의 눈에 고여 있는 물기가 창고의 틈새로 파고드는 저녁 노을에 얼핏 반짝였다. 그는 다음날부터 출근하지 않았다.

꽃이 피지 않는 화단의 총각 노동자들

조립이 완성된 완제품이다.
▲ 새시 조립창 조립이 완성된 완제품이다.
ⓒ 황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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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잔업에 빠지지 않던 장대식(23, 가명)씨는 전날 다섯시 반에 퇴근을 하더니 다음날은 귀고리를 하고 출근을 했다. 대식이는 중늙은이가 태반인 이 공장에서 유일한 이십대다. 알바지만 정규직을 목표로 잔업을 다 채우는 삼인방 중의 한 명이다. 군 제대를 하고 복학을 하지 않고 바로 공장으로 왔단다.

"그래도 학교 다니는 게 좋지 않아?" 내가 물었다. "공부에 취미가 없는데다, 제가 다니는 학교, 나와봤자 그게 그거예요. 차라리 돈 버는 게 나아요"라고 씩씩하게 대답한다.

웬 귀고리? 하자 이런 고백이 돌아온다.

"실은 어제 소개팅이 있어 일찍 갔어요. 공장 다니는 티 안내려고 목욕도 하고 미장원에 가서 염색도 하고 귀고리도 했죠."
"잘 됐어?"
"그냥 친구 사이로 지내기로 했어요."

발랄하고 상쾌하다. 감정노동에 시달려도 깔끔하게 옷 입는 서비스 업종을 선호하는 요즘 젊은 세대답지 않게 대식이는 현실적이다. 손에 기름 묻히고 먼지 날리는 공장이지만 벌이는 훨씬 낫단다.

"지난 달 170만 원 벌었어요. 제가 어디서 이만큼 벌겠어요."

물론 대식이 같은 마음을 가지는 또래들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대개 사흘을 못 넘긴다. 그에게 장래 계획이나 꿈이 뭐냐니까 "꿈보다는 그냥 취미를 즐기며 살고 싶어요"한다. 그의 취미는 야구이다. 사회인 야구 동아리에서 주말마다 경기를 즐기지만 요즘은 공장이 바빠 못가고 있단다. 봄에 일이 한가하면 그때 맘껏 즐겨야죠. 장비를 갖추려면 돈도 모아야 한단다.

유일한 이십 대인 대식이 말고 공장에는 총각이 두 명 더 있다. 둘 다 삼십 대이니 노총각이라고 해야겠지만 차이가 크다. 김성식(31, 가명)씨는 서른하나라서 요즘 기준으로 노총각 딱지를 붙이기 애매한 나이고, 윤호철(39, 가명)씨는 서른아홉이라서 노총각 중에서도 상노총각이다.

둘 다 공고 삼학년 실습 때 이 공장에 왔다가 눌러 붙어 산업체 근무로 군대까지 대체 복무했다. 근무 연한만 치면 각각 13년, 20년이 되니 나이에 비하면 경력이 꽤 된다. 그런데 이 두 총각들이 결혼할 생각을 못하고 있다. 봄에 한가할 때 선도 보고 소개도 받고 하지 않냐니까, "요즘 세상에 이런 조그만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에 시집 올 여자 있습니까"하며 지레 포기하는 눈치다.

그들은 공장 안에서는 정규직이라는 상위 계급에 속해 있지만, 사회에서는 소규모 공장노동자라는 하위계급으로 스스로 자리매김한다. 자존감이란 영양소가 결핍된 내면의 밭에선 꽃이 피지 않는다. 꽃이 피지 않으니 열매의 희망도 없다. 이들은 사무실 위층에 마련된 숙소에서 지내고 있다. 예전에 일했던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해 만들었던 간이숙소란다.

고향이 통영과 합천인 이 두 총각들은 하루 열다섯 시간의 노동을 한다.

"일 있을 때 열심히 일해 돈이나 벌죠. 봄이 되면 장가갈 준비도 하고요."

윤호철씨가 물기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잔업이 없는 날엔 그저 텔레비전을 보며 멍 때리거나 아니면 포르노를 봐요. 제 스마트폰에 삼천 개가 저장돼 있어요. 시간이 나며 무엇을 하며 지내느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이다. 문득 공단 곳곳에 붙어 있던 야한 술집 광고가 떠올랐다.

'화끈합니다, 시간제 놀아줍니다!'

이들에게는 쾌락도 시간제로 매겨져 있고, 욕망은 배출에 한정돼 있다. 공단은 꽃이 피지 않는 화단이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공장 곳곳에 골판지를 깔고 누워서 쪽잠을 잔다
▲ 점심시간 낮잠 점심시간이 되면 공장 곳곳에 골판지를 깔고 누워서 쪽잠을 잔다
ⓒ 황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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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저렇게 한 달이 지나갔다. 애초에 한 달을 예정하고 온 건 아니지만 3주 정도 지나자 나에게 다른 일거리가 생겼다. 그래도 한 달은 채우고 싶어 일 주일 연기한 후 본연의 업으로 돌아갔다. 이제 몸이 적응이 돼 휴일잔업도 할만하다싶으니 떠나야 했다.

한달하고 나흘을 더 일했지만 중간에 이틀을 빠졌다. 첫 출근하고 두번째 맞이하는 토요일, 알람이 울리자 몸이 정신에게 극렬히 저항했다.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그날 출근을 포기했다. 쉬고 나니 한결 나았다.

두번째는 수요일 결근을 했다. 그동안 시간이 맞지 않아 미뤄놨던 관공서, 은행, 그밖에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일을 처리해야 했다. 이왕 할 바에야 잔업이 없는 수요일을 택했다. 이렇게 한 달에 두 번 빠지고 평일 하루 10시간씩 일을 하니 총 수입이 168만 원이 되었다.

공장을 그만 둔 다음날 느긋하게 샤워를 하면서 몸을 살펴보니 상처가 남아 있다. 양 팔목의 시퍼런 멍은 희미해져 있었지만 정강이의 긁히고 찍힌 자국은 선명히 남아 있다. 세어보니 모두 열다섯 군데다. 그밖에 피스 작업을 하다가 알루미늄 파편이 눈에 박힌 적도 있었다. 눈이 따끔한 순간 뭔가 박혔다는 느낌이 들었다.

옆에 있던 정성현씨가 눈을 비비지 말라며 햇빛이 잘 드는 양지로 나를 데려갔다. 벽에 기대게 한 다음 눈동자를 천천히 상하좌우로 굴리라고 했다. 이물감을 느끼며 눈동자를 굴리고 있는데 잠깐, 하면서 옆에 있던 포장용 골판지를 찢어 뾰족하게 만든 다음 파편을 걷어냈다. 병원에 가지 않고 해결한 것에 나는 안도를 했다.

그러나 그예 훈장 하나를 달고 말았으니, 퇴사를 나흘 앞두고 알루미늄 자재를 운반하는 호차를 끌다가 나도 모르게 악! 소리를 내고 말았다. 오른쪽 발이 끼인 것이다. 호차는 몇 사람이 같이 미는데 그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자신의 발을 항상 의식해야 한다. 발이 끼는 사고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초보자가 오면 항상 주의를 준다.

나도 처음엔 조심을 하다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방심을 하고 만 것이다. 퇴사하고도 한 달이 지난 지금,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공장 생활의 기억이 흐릿해질 때마다 시커멓게 죽어 있는 오른발 중지 발톱을 내려다본다. 추억으로 미화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전하자. 상처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말고 그들의 아픔을 전하자. 그러나 상처는 스스로의 아픔만을 기억할 뿐이다.

완성된 창틀은 크기와 형상이 제각각이어서 사람이 직접 싣는다.
▲ 상차 작업 완성된 창틀은 크기와 형상이 제각각이어서 사람이 직접 싣는다.
ⓒ 황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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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공단의 아침 풍경이 떠오를 때가 있다. 밤샘 작업을 하고 퇴근하는 노동자들과 주간 근무를 위해 출근하는 노동자들. 나는 그들의 얼굴에서 희망이나 보람 같은 것을 찾을 순 없었다. 육체노동이 천시되고 배척의 대상이 되는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육체노동이 없는 세상이 있을 수 있는가. 노동 없는 육체가 노동하는 육체 위에 군림할 때 결국엔 모두의 육체가 무너지는 것 아닌가.

알베르 카뮈는 "노동하지 않는 삶은 부패하고, 영혼 없는 노동은 삶을 질식시킨다"고 했다. 부패한 삶과 질식되고 있는 삶이 우리 사회의 양 극단에서 점점 무게를 더해가고 있다. 균형을 잡아주던 중간층이 엷어지는 가운데 실업은 늘어나고 일자리의 질은 떨어지고 있다. 실업 아니면 우울한 노동, 이 둘 사이에 해법은 있는 것인가.

알바는 뿌리가 없다. 오늘 하루 일하고 내일 안 나오면 그만이다. 책임감이 없다지만 역으로 책임감을 지닐 이유도 별로 없다. 책임진들 돌아오는 열매가 없기 때문이다. 열매가 없으니 씨를 뿌리고 뿌리내려야 할 꿈을 꾸지 않는다. 그래서 알바들은 부유한다. 뿌리를 못 내려서 부유하는 건지 부유해서 뿌리를 못 내리는 건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부유하는 알바들에게 머물고 정착할 곳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정규직은 이기적이고 자본가는 탐욕적이다. 정규직이든 자본가든 갖추고 가진 자가 먼저 나누지 않는 한 이들의 부유는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부유의 질량이 임계점에 도달하는 순간 우리 사회의 가치분배는 어떤 식으로든 재편될 것이다. 훨씬 더 과격하고 극렬하게.


태그:#PERD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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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디고』, 『마지막 항해』, 『책사냥』, 『사라진 그림자』(장편소설), 르포 『신발산업의 젊은사자들』 등 출간. 2019년 해양문학상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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