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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나쁘고, 자연은 좋고, 사람들은 천차만별!' 90년대 중반 뭘 좀 공부한답시고 MIT에 체류한 적이 있었다. 두 학기를 마치고 귀국했는데, "미국이 어떤 나라냐"는 질문을 주변사람들로부터 꽤 받았다. 그때, 미국을 정부, 자연, 국민 이렇게 셋으로 나눠 앞에서처럼 대답해 줬다.

90년대 중반이라면 거의 20년 전이니, 미국에 대한 정보가 지금처럼 많지는 않았던 시기이다. 묻기는 쉬울지 몰라도, 한 나라를 말 몇 마디로 규정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물론 요즘 한국처럼 '안녕'이라는 딱 두 글자로 많은 걸 함축,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좀 특수한 상황이다.

사실, 정부는 나쁘고, 자연은 좋고, 사람은 천차만별이라는 말은 말도 아니다. 인류사를 보면, 모름지기 정부는 대체로 나빴다. 정도 차이만 있었을 뿐이다. 자연은 어디 좋지 않은 데가 있으랴. 바다며, 들, 산에는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사람이 가지각색인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좋은 한국 사람보다 나쁜 미국 사람이 수두룩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미국의 '오리지널' 모습은 아무래도 서부보다는 동부에서 더 눈에 띄기 마련이다. 미국이 태동한 북동부가 특히 그렇다. 미국 북동부의 심장인 보스턴에는 세계 최고 대학이라는 하버드와 MIT가 있다. 엄밀히 말하면, 소재지가 보스턴이 아니고 보스턴의 한강이랄 수 있는 찰스 강 건너의 케임브릿지 시에 있다. 교육대국 미국을 실감나게 볼 수 있는 현장이다.

이민 없는 미국은 상상할 수 없다. 미국은 가장 덜 정형화되고, 덜 고착화된 나라 가운데 하나이며, 지금도 물렁물렁 변하는 중이다. 이러니 미국을 딱히 뭐라고 결정적으로 말하기가 쉽지 않다. 이민자들 가운데는 정말 미국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미국은 또 전쟁 혹은 군사대국이다. 2차 대전 이래 주요 지구촌 분쟁에 미국이 끼어들지 않은 경우가 열에 하나나 될까? 특히 미국 동부에는 독립전쟁부터 남북전쟁까지 전쟁터들이 널려 있다. 이방인의 눈에는 이들이 너무도 잘 보존돼 있다.

미국은 상대적이긴 하지만, 2013년 겨울 한국의 시각으로 보면, '종북주의자'들이 설치는 나라이다. 정부나 권력에 대한 감시가 체질화 된 사람들이 득실득실 하다는 말이다. 얘기가 살짝 비켜나가는 것 같지만, 동성애 같은 가치는 진보 진영이라는 채널을 통해 주로 사회로 분출 된다.

그러니 보수 중의 왕 보수, 딕 체이니 미국 전 부통령의 딸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큰 화제가 될 수 밖에 없다. 이 밖에 빈곤층을 위한 '푸드 스탬프'food stamp)랄지, 대학 입학 사정에서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 같은 '종북주의적' 철학과 연관된 제도나 관례가 적지 않다.

그러나 뭐라 해도 나 같은 '천방지축 제멋대로'에게 미국의 매력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이다. 옷을 어떻게 입든, 무얼 먹든, 무슨 말을 하든 사회 혹은 남들에게 노골적인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속으로야 욕할지 모르지만, 대놓고 면박을 주는 일은 없다. 더구나 인민재판 하듯, 여론몰이를 하며 몰아세우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래서 미국이 얄밉다.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을, 저 사람들이 갖고 있으니 심히 기분이 나쁜 것이다.
하버드 스퀘어
 하버드 스퀘어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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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한 하버드 스퀘어. 사실상 하버드 대학 정문 역할을 하는 곳으로, 하버드의 유명세 때문에 널리 알려졌다. 아들과 아들 친구는 대학생인데, 뭐랄까 하버드란 이름 세 글자에 약간 기가 죽는 듯 했다. (위) MIT 쪽에서 본 찰스 강에서 MIT 학생들이 요트 수업을 받고 있다. 나도 저기서 한 학기 동안 중국 출신 여학생 등과 짝을 이뤄, 요트 타기를 배웠다. (아래 왼쪽) 보스턴 일대에는 벽돌로 된 고풍스런 건물이 아주 많다. 하버드 대학의 기숙사로 짐작되는 건물이다. (아래 오른쪽)

정해성씨
 정해성씨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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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이 극히 드문 메인 주 뱅골에서 만난 정해성씨. (왼쪽) 한국의 정정이 극도로 불안하던 1976년, KBS에서 카메라맨을 하다가 미국으로 '튀었는데', 현지 CBS 프랜차이즈 방송국에서 27년 동안 카메라맨으로 일하면서 지역 사회에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됐다고 했다. 스스로는 성공한 이민이라고 하지만, 한해도 쉬지 않고 한국의 노모를 찾는 등 모국에 대한 정이 남다른 사람이었다.

이민 초기 체중이 48kg 가량이었는데, 솜 공장에서 500kg짜리 수레를 날라야 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체중이 3배 가량 더 나갔던 동료 백인 여성은 당시 한 손으로 리어카를 움직였는데, 단구의 정씨는 철봉 매달리듯 리어카를 조작하곤 했다고 털어놨다. 백인 일색인 사회에서 '희귀동물'처럼 보호를 받아, 의외로 이민 생활이 순조로웠다고 했다. 퇴직 후 근무하던 방송국을 찾은 정씨가 전 동료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    

게티스버그
 게티스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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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이 낳은 영웅,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이 이뤄진 곳에 기념비와 그의 흉상이 서 있다. 수 없이 전쟁을 치렀고, 치르고 있고, 아마도 치를 나라인 미국은 전쟁의 명운을 갖고 있는 나라인지도 모른다. 링컨은 미국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임에 틀림 없지만, 그에 대해서는 잘못 알려진 점들도 많다.

자유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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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비용을 줄이기 위해 값이 싼 달걀을 한 자리에서 10개 안팎씩 먹곤 했다. 잼을 바르면 소금에 찍어 먹을 때보다 덜 질린다. 무엇을 먹든, 어떤 옷을 입든 대체로 신경 쓰지 않는 게 우리 사회와 미국 사회가 다른 점 중의 하나이다. 펜실베이니아의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 공장. 이 오토바이를 타고 북미대륙을 한번 더 달리고 싶다. 미국은 제한속도가 시속 120km(75마일)인 고속도로에서도 대부분 오토바이 통행을 허용한다.

아캐디아 국립공원
 아캐디아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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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주에 있는 아캐디아 국립공원. 미국 북동부에는 국립공원이 드문데 그 가운데 하나이다. 아름다운 풍경은 지친 여행자에게 힘이 되곤 한다.

덧붙이는 글 | sejongsee.net(세종시 닷넷)에도 실렸습니다. sejongsee.net은 세종시와 관련한 정보를 담은 커뮤니티 포털입니다.



태그:#종북, #미국, #인민재판, #아메리카,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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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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