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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날 주전부리 가운데 하나인 인절미. 곱게 썰어진 떡에서 한석봉과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겨울날 주전부리 가운데 하나인 인절미. 곱게 썰어진 떡에서 한석봉과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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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한석봉' 시리즈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오랜 기간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한석봉이 어머니를 만나서 나누는 얘기를 익살스럽게 표현한 내용이었다. '칼질이 서툰 어머니' 편에서는 한석봉이 글을 쓰고 어머니가 구구단을 외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밖에도 겁 많은 어머니, 피곤한 어머니, 미리 썰어놓은 떡과 바꿔치기 한 어머니 등 내용이 부지기수였다.

월출산 자락, 전라남도 영암이 생각났다. 영암에 있는 구림마을이 한석봉과 그의 어머니에 얽힌 일화가 전해져 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개성에서 태어난 한석봉이 스승을 따라 영암으로 내려와 구림마을의 죽림정사에 머물면서 글씨를 배우고 글쓰기와 떡 썰기 시합을 했다는 것이다.

한석봉의 어머니가 떡 장사를 한 곳은 구림마을에서 가까운 독천시장이었다고 한다. 구림마을에 있는 '육우당(六友堂)'의 현판을 한석봉이 쓴 것으로 확인되면서 일화는 기정사실이 됐다. 그 시장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 14일이다.

영암 구림마을에 있는 육우당 현판. 한호 석봉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영암 구림마을에 있는 육우당 현판. 한호 석봉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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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독천오일장 풍경. 튀김집 앞 난장의 모습이다.
 영암 독천오일장 풍경. 튀김집 앞 난장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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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앞으로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다. 망월교와 독천교 밑을 지나 영산강과 만나는 망월천이다. 망월교를 건너면 바로 독천장이 펼쳐진다. 장터가 농민회의 집회로 부산하다. 장터임을 알리는 아치형 표지판을 뒤로 하고 장터에 들어선다. 고소한 튀김 냄새가 허기진 배를 자극한다. 닭 한 마리를 통째로 튀겨 낸 모습이 눈길을 끈다.

할아버지들이 벌써 튀김집 난장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다. 오가는 술잔에 진한 정이 묻어난다. 추위 때문일까. 난장의 할머니들은 납작 움츠려 있다. 여기저기 모닥불도 보인다. 의류전과 신발전은 겨울용 옷과 신발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채소전은 뒤늦은 김장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독천장은 독천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서 있다. 독천은 행정구역상 '읍'도, '면'도 아니다. 우리나라 행정구역 단위 가운데 가장 작은 '리'에 속한다.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학산'은 몰라도 '독천'은 안다. 최근까지만 해도 전남 서부권의 교통요지였기 때문이다. 목포에서 해남이나 순천을 가려면 반드시 거쳐가던 곳이었다.

사람의 왕래가 빈번하고 상권이 일찍 발달한 것도 이런 연유다. 영암군에 있는 장터 중에서도 가장 먼저 들어선 것도 독천장이다. 전라도 사투리로 '물건이 허천나게 많다'고 해서 '허천장'이란 별칭도 얻었다. 1964년에 문을 열었다.

영암 독천오일장 풍경. 한 상인이 트럭에서 배추를 내리고 있다.
 영암 독천오일장 풍경. 한 상인이 트럭에서 배추를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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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독천오일장 약초전 풍경. 다문화가정 주부에게 특별한 정을 느꼈던 할머니다.
 영암 독천오일장 약초전 풍경. 다문화가정 주부에게 특별한 정을 느꼈던 할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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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에는 배추와 무, 양파, 당근, 생강 등 김장용 남새들이 많이 나와 있다. 눈길 가는 곳마다 배추가 있고 무가 펼쳐져 있다. 모두 단단하고 속이 꽉 차 있다. 튼실해 보인다. 트럭에서 배추를 내리던 한 할머니가 행인의 소매를 붙잡고 배추를 사라고 권한다.

"방금 밭에서 뽑아 갖고 온 것이여. 얼매나 무거운지 들기도 힘들당께. 한나에 1000원씩이여. 1000원씩."

저만치서 들려오는 확성기의 소리가 크다. 귀가 따가울 정도다. 장터 한가운데에 들어선 대형 할인점의 호객행위다. 개점 일을 기념해 소형 승용차까지 경품으로 내걸었다. 상인들의 볼멘소리도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대형마트 땜시 못해 먹겄네. 장이 다 죽어 불었어. 장날만이라도 문을 닫으믄 좋겄는디. 어떻게 할 수 없을까?"

몇 걸음 옆으로 옮기니 연노랑이 자줏빛과 조화를 이뤄 눈길을 끈다. 고구마 말랭이다. 호박고구마와 자색고구마를 쪄서 반쯤 말린 것이다. 장터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하나씩 집어 입에 넣고 있다. 호기심이 발동해 나도 하나 집었더니 쫄깃쫄깃한 게 별미다.

독천오일장 약초전 풍경. 약초전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다.
 독천오일장 약초전 풍경. 약초전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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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색 고구마 말랭이. 자줏빛 도는 고구마가 장터의 시선을 한곳으로 붙잡고 있다.
 자색 고구마 말랭이. 자줏빛 도는 고구마가 장터의 시선을 한곳으로 붙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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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주부들도 장터를 돌아다니고 있다. 요즘 농촌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다문화가정 주부다. 그녀들의 발길이 약초전에 머문다. 싱싱한 수삼 서너 뿌리를 들었다 놓았다를 되풀이한다. 외국인 주부들도 인삼의 명성은 익히 들은 모양이었다. 약초전을 지키던 할머니가 먼저 말을 건다.

"어디서 왔어?"
"필리핀."
"그려. 먼 디까지 와서 고생하구먼. 이 통통한 놈 세 뿌리에 2만 원인디. 그냥 만 원에 가져 가."

할머니의 얼굴에 '짠하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이번에는 어물전으로 향한다. 독천장의 터줏대감 격이다. 가재, 김, 굴이 포진해 있다. 팔짝팔짝 뛰던 민물새우도 햇볕을 받아 빛을 발하고 있다. 붕어도 파닥거린다. 생기 넘쳐난다.

어물전을 주름잡고 있는 고기는 망둥어다. 숭어와 함께 뛰어 부화뇌동한다는 고기다. 가까운 해남, 강진, 장흥의 갯가에서 갓 잡아온 것들이다. 망둥어가 어찌나 많던지 멍석 위에 펼쳐져 있다. 팔뚝만 한 것이 한 마리에 1000원 꼴이다. 몸을 축 늘어뜨린 것은 덤이다.

"아니 어째 이렇게 비싸졌다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지 싸더니만…."
"모르는 소리 말어. 가락동 시장으로 다 올라가 불었어. 일본 방사능 땜에 서울사람들이 이것만 찾는다고."

영암 독천오일장의 어물전 풍경. 독천장을 이끌어가고 있는 곳이다.
 영암 독천오일장의 어물전 풍경. 독천장을 이끌어가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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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둥어와 꽃게. 영암 독천오일장 어물전의 주된 어종이다.
 망둥어와 꽃게. 영암 독천오일장 어물전의 주된 어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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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천장의 어물전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탄 때가 있었다. 낙지 덕분이었다. 장터에서 가까운 미암면 일대 갯벌에서 낙지가 많이 잡혔다. 여기서 잡힌 낙지는 언제나 최고로 평가 받았다. 갯벌낙지의 대명사였다. 달보드레한 그 세발낙지를 찾아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금호방조제가 건설되고 갯벌이 호수로 바뀌면서 낙지가 잡히지 않았다. 영암 뻘낙지의 명성도 시나브로 사라졌다.

"지금은 낙지하믄 무안하고 신안 것을 쳐준디. 옛날에는 영암낙지를 따라오지 못했제. 그때는 각설이패들이 춤을 추고 씨름 대회도 열리고 했어. 볼거리도 참 많았제. 그때에 비하믄 지금은 장도 아녀. 이것은 장도…."

어물전을 지키던 최씨 할머니의 얘기였다. 할머니는 스무 살 때부터 보따리 장사를 하다가 독천장에 눌러앉았다고 했다. 당시를 회상하던 할머니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지금은 영암낙지의 맛을 볼 수 없다. 그래도 장터 주변 낙지골목의 명성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갈비탕에다 신안이나 무안에서 잡은 낙지 한 마리를 넣고 끓인 '갈낙탕'의 맛이 으뜸이어서다. 시원한 국물 맛이 '밥도둑'에 다름 아니다.

영암 갈낙탕. 낙지와 갈비가 어우러져 진한 국물 맛을 자랑한다.
 영암 갈낙탕. 낙지와 갈비가 어우러져 진한 국물 맛을 자랑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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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독천장, #독천오일장, #육우당, #갈낙탕, #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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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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