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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2500년 전 공자가 <논어>에 적은 문구입니다. 2013년 대한민국도 '배우고 익히는' 열기가 뜨겁습니다. 청년들은 취업을 위해, 아이들은 보다 나은 성적을 위해, 직장에선 살아남기 위해 공부하고 또 공부합니다. 하지만 즐거움이 보이지 않습니다. 중요한 걸 놓쳐서입니다. 함께 모여 '즐거운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이들 사례를 통해 공부가 왜 익힐수록 즐거운지 살펴봅니다. - 기자말 

아이들이 후원자에게 부친 '비밀 편지'를 볼 수 있다. 아이들의 표정에서 진심이 엿보인다.
▲ 컴패션에 가면 아이들이 후원자에게 부친 '비밀 편지'를 볼 수 있다. 아이들의 표정에서 진심이 엿보인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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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어린이날이 언제인지 아세요?"
"5월 5일 아닌가요?"

이지영(35)씨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간다 음식, 아이티 축제, 부르키나파소의 전통의상에 대해서도 물어왔다. 물론 이씨의 질문에 어느 것도 답하지 못했다. 책에선 도저히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이지영씨는 현재 국제어린이양육기구 '컴패션(Compassion)'에서 7년째 번역 봉사를 하고 있다. 그의 상식이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지난 21일, 서울 용산구 한남대로에 있는 '한국 컴패션'을 찾았다. 이날은 특히 40여 명의 사람들이 첫 번째 번역 봉사를 위해 모인 자리였다. 2시간의 오리엔테이션 후 이들이  걸어 온 이야기, 컴패션이 꿈꾸는 세상 '함께 아파하는 마음'을 들어봤다.

알랑가 몰라? '비밀 편지'의 짜릿함

어색한 시작이었다. '번역 봉사'라는 거창한 뜻으로 모인 자리였지만,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럴 것이 10대 학생부터 50대 주부, 직장인까지 다들 처음 보는 사이였다. 하지만 컴패션 영상이 소개되고, 익숙한 얼굴의 연예인이 나와 "여러분과 컴패션이 하는 일, 잘 알고 계시죠?"라고 살갑게 말하자 이내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공통의 관심사가 이들을 하나로 엮은 것이다.

그런데 주말 저녁 이들을 서울 한남동까지 오게 한 특별한 사연은 따로 있었다. 바로 '비밀 편지'였다. 마치 몰래 훔쳐본 친구의 고백 편지를 떠오르게 하는 그것은, 사람들 표정에 묘한 설렘까지 일게 했다. 경험해 본 사람은 다 아는 그런 짜릿함이었다.

컴패션 번역 메이트 담당자 김희곤씨가 새내기 번역 메이트에게 편지의 비밀을 설명해 주고 있다.
▲ '비밀 편지'의 비밀은... 컴패션 번역 메이트 담당자 김희곤씨가 새내기 번역 메이트에게 편지의 비밀을 설명해 주고 있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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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국제어린이양육기구 컴패션이 주관하는 1:1 후원 프로그램에 손을 보태기 위해 왔다. 현재 컴패션은 제 3세계 26개국 130만 명 어린이를 직접 후원하는 형태로 돕고 있다. 이 과정에서 '비밀 편지'는 후원자와 결연아이를 연결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이날 모인 사람들도 하나같이 '비밀 편지'를 번역하기 위해 자리한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다른 곳에도 있었다. '비밀 편지'의 양이 엄청났다. 매주 한국컴패션에 도착하는 후원아동의 편지는 1만 통에 육박한다. 이 중 번역이 필요한 약 50%의 편지를 '번역 메이트'로 불리는 2400여 명의 봉사자가 일주일에 3통 이상 번역한다. 아이들이 보낸 편지와 번역 메이트 수만 따져도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매일 세계 여행 다닙니다. 그것도 오지만 찾아서요"

그 중 이지영씨의 활동은 단연 독보적이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라 밝힌 이씨는 매주 25통 정도의 편지를 번역해 냈다. 한 달로 따지면 100통. 올 해만 1210통을 번역했다. 비결을 물었다. 그는 수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처음엔 그냥 영어만 한글로 바꾸면 된다 생각했어요. '나 정도면 충분하겠지'하는 마음도 들었고. 금세 교만임을 깨달았습니다. 컴패션 번역 메이트 봉사활동은 단순한 번역이 아니더라고요. 아이들이 갖고 있는 생각과 후원자를 향한 고마움을 전달하는 일이에요."

7년째 컴패션에서 번역 메이트 활동 중인 이지영씨는 "아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벅차오른다"고 했다. 그의 진심어린 따뜻함이 보인다.
▲ 아이들이 꿈꾸는 세상 7년째 컴패션에서 번역 메이트 활동 중인 이지영씨는 "아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벅차오른다"고 했다. 그의 진심어린 따뜻함이 보인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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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사실은 이지영씨가 밝힌 컴패션 번역 메이트의 매력은 영어 실력 향상도, 봉사활동 점수도 아니었다. '비밀편지가 이끄는 세계여행'이었다.

"아이들은 일상을 편지에 담아요. 잠비아, 우간다, 방글라데시, 케냐, 부르키나파소, 에티오피아, 르완다, 도미니카. 혼자선 엄두도 낼 수 없는 곳을 아이들과 매일 함께 걷는 기분입니다. 편지를 손에 쥐면 오늘은 어떤 추억이 쌓일까 하는 설렘도 있고요."

'가장 기억남는 편지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얼마 전 번역한 '반쪽짜리 케이크'를 언급했다.

"우간다 소년의 편지였는데, 생일에 후원자님이 보내주신 선물금으로 반 쪽짜리 케이크를 사서 친구와 나눠 먹었다는 내용이었어요. 상상해 보세요. 온전한 케이크도 아닌 반 쪽짜리 케이크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아이.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가슴 벅차더라고요."

이지영씨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10년 아이티 대지진 이후, 아이티 소년 위슬레이(11)를 후원하기로 결심했다. 이 부분에서 미혼인 이씨는 서슴없이 "아들을 보여주겠다"며 사진을 꺼냈다. 남다른 애정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피부도, 언어도, 사는 곳도 다르다. 하지만 이지영씨는 아이티 소년 위슬레이를 아들이라 부른다. 그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1:1 결연을 맺었다. 벌써 3년이 지났다.
▲ 싱글 이지영씨의 아들? 피부도, 언어도, 사는 곳도 다르다. 하지만 이지영씨는 아이티 소년 위슬레이를 아들이라 부른다. 그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1:1 결연을 맺었다. 벌써 3년이 지났다.
ⓒ 한국 컴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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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함께 아파하는 마음, 누구나 할 수 있다"

이날 컴패션에서 만난 40여 명의 새내기 번역 메이트들은 노소의 구분이 없었다. 정말 다양했다. 그 순간 의문이 들었다. '영문 편지 번역,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친구들에겐 다소 무리가 아닐까?' 컴패션 메이트 담당자 김희곤씨는 말을 보탰다.

"평범한 직장인부터 심지어, 60대 어머니까지 다양해요. 이 의미,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기대만큼 어렵지도 않고요. 그저 영어에 대한 작은 관심과 컴패션이 추구하는 '함께 아파하는 마음'에 대한 공감만 있으면 돼요."

그는 2400명의 컴패션 번역메이트가 이를 증명한다고 했다. 실제로 번역메이트 중 반 이상이 학생이었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컴패션의 나눔,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다시 한 번 강조됐다. 끝으로 인터뷰 내내 따뜻한 미소 보인 이지영씨에게 "어떻게 하면 겨울이 따뜻해지냐"고 물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컴패션과 함께 '비밀 편지' 나누면 된다"고 했다. 그의 겨울이 7년째 따뜻한 이유다.


태그:#컴패션, #번역, #봉사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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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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