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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독일을 찾았습니다. 왜 독일이냐구요? 우선 우리와 독일은 비슷한점이 많습니다. 2차 대전후 분단국가였고, '라인강'과 '한강'의 기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뤘던 것도 그렇습니다. 게다가 나라 크기도 비슷하고, 천연자원이 별로 없이 인적자원에 의존하고 수출국가라는 점까지. 하지만 최근 10년사이 한국과 독일은 전혀 달리 가고 있습니다. 한국은 비정규직을 포함한 노사갈등은 여전하고, 계층간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면서 국민들의 사회경제적 민주화 요구가 거셉니다. 독일은 세계 경제위기속에서 지속적인 성장과 복지국가를 유지해가고 있습니다. 독일모델을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때 '유럽의 병자'였던 독일이 어떻게 '유럽의 강자'으로 부활했을까요. <오마이뉴스>는 궁금했습니다. 10여일동안 독일 곳곳을 다녔습니다. 거대 자동차회사 노동자부터 기업인, 교수, 일반시민 등 다양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을 해봤습니다. [편집자말]
독일 볼프스부르크시에 있는 폴크스바겐 공장과 자동차 테마파크인 아우토슈타트. 4개의 붉은 굴뚝은 이 공장의 초창기때부터 세워져 폴크스바겐의 상징처럼 돼 있다. 4개 중에 아직도 2개는 사용되고 있다.
 독일 볼프스부르크시에 있는 폴크스바겐 공장과 자동차 테마파크인 아우토슈타트. 4개의 붉은 굴뚝은 이 공장의 초창기때부터 세워져 폴크스바겐의 상징처럼 돼 있다. 4개 중에 아직도 2개는 사용되고 있다.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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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웃음을 지어보인다. 은빛 머리카락과 콧수염 사이로 엷은 미소가 엿보인다. 그와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면서 물었다. "행복하시냐"고 말이다. 멀리 지구 반대편서 날아온 동양계 기자의 뜬금없는 물음이었다.

올해 나이 56세의 얀 뮐러 에카르트(Jan Mueler Eckhardt)씨. 그는 정말 옆집 동네 아저씨같은 푸근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그는 "한국 언론은 처음 만난다"고 했다. 하지만 마치 옛 고향친구라도 만난것 처럼 매우 편하게 우리를 대했다. 그가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하하하, 행복하고 말구요"라고.

뮐러씨는 곧바로 함께 있던 후배동료에게 시선을 돌렸다. 카이씨도 기자가 물어보기도 전에 곧장 "야(ja, 독일어로 '네'라는 의미), 야, 야"라며 큰 소리로 말했다. 그는 "물론이죠. 이곳에서 일하는게 정말 즐거워요"라고 덧붙였다.

그들과 공장 안 아스팔트 위를 걸었다. 눈앞에 거대한 빨간색 4개의 기둥이 서 있었다. 독일 중북부의 볼프스부르크시(市). 이곳엔 세계적인 자동차회사 폴크스바겐(Volkswagen)이 있다. 폴크스바겐은 가장 싼 제품부터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 강력한 제품까지 만들어낸다. 종류도 오토바이에서 대형 트럭까지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자동차 장르를 아우르는 유일한 기업이다. 게다가 아우디, 포르쉐 등 브랜드 면면을 보면 하나같이 탄탄하고 경쟁력도 높다.

27년째 자동차를 만들어온 뮐러씨... "행복하냐고?"

폴크스바겐에서 각각 27년과 15년넘게 일하고 있는 얀뮐러 에카르트씨(왼쪽)와 카이 로질리우스씨. 그들은 "일에 만족하고 있으며, 정년(65)까지 일하고 싶다"고 했다.
 폴크스바겐에서 각각 27년과 15년넘게 일하고 있는 얀뮐러 에카르트씨(왼쪽)와 카이 로질리우스씨. 그들은 "일에 만족하고 있으며, 정년(65)까지 일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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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크스바겐의 국제홍보를 맡은 산타크루즈 이사는 "오는 2018년까지 자동차 판매부터 수익에 이르기까지 세계 1위의 자동차 회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와 함께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일하기 좋은 자동차 회사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말하고 싶은 핵심이었다.

가장 일하기 좋은 자동차 회사. 거대 장치산업의 특성상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그들은 오래동안 철저하게 준비를 해왔다. 산타크루즈 이사는 "훌륭한 제품을 위해선 그것을 만드는 종업원이 행복해야 한다"며 "이것은 상식"이라고 했다. 물론 이는 폴크스바겐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기자가 독일서 만난 대부분의 고용주나 노동자, 지식인 등의 생각이 그랬다.

독일 전문가 김택환 교수(경기대)는 "독일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는 나라"라며 "사회적 시장경제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위기를 극복할수 있었던 힘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실제 독일은 이미 오래 전부터 법적으로 노동자의 경영 참가를 보장하고 있다. 1920년 바이마르공화국 시절에 제정된 노동자협의회법을 통해서다. 이 법은 1933년 나치 시절에 사라졌다가 2차대전 이후 노동자 경영참여에 관한 각종 법률의 모태가 됐다.

이후 1972년 사민당의 브란트 정부는 노사관계의 획기적인 법률을 통과시킨다. 노사간 회사의 주요 결정을 공동으로 하도록 아예 법으로 명시해 놓은 것이다. 이른바 노사 '공동결정법(Mitbestimmungsgesetz)'이다.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의 크리스토퍼 폴만 소장은 "노사공동결정권 도입으로 독일이 얻은 가장 중요한 변화는 '평화'와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적대적 노사 관계가 아닌 협력적 파트너십이 형성되면서 노사 갈등도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세계 유일의 노동자 경영참가 보장하는 독일이 얻은 것... '평화와 경쟁력'

볼프스부르크 공장 입구 통로 벽에 걸린 폴크스바겐의 옛 사진. 폴크스바겐의 상징인 국민차 '비틀'이 공장내 철로 위에 조립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모습.
 볼프스부르크 공장 입구 통로 벽에 걸린 폴크스바겐의 옛 사진. 폴크스바겐의 상징인 국민차 '비틀'이 공장내 철로 위에 조립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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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폴크스바겐의 공장 안. 뮐러씨는 이곳서 27년째 일하고 있다. 현재는 품질검사부에 있다. 폴크스바겐의 7세대 골프(GOLF)의 최종 품질을 책임지고 있다. 기자가 '한국에서도 신형 골프에 대한 인기가 높다'고 말하자, 그가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그리고 "독일에서도 골프를 인도받으려면 두세 달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뮐러씨 처럼 이곳에서 20년넘게 자리를 지켜온 노동자를 보기란 어렵지 않다. 그는 "아직 9년 더 일해야 한다"면서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독일은 법으로 정년이 65세로 돼 있다. 게다가 최근에 정년을 2년 더 연장하는 법까지 통과됐다. 그에게 '정년이 늘면 더 좋지 않은가'라고 물었더니, 오히려 시큰둥하다.

한국은 올해 들어 60세를 정년으로 하는 법이 통과됐다고 하자, 뮐러씨는 오히려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그는 "60세가 정년이라니… 우리보다 더 좋지 않나"라고 되묻는다. 그에게 한국 대부분 기업에서 60세 정년을 채우기란 힘들다고 하자,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었다. 그의 말이다.

"우리도 과거에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공장 가동 중단될 위기도 있었고….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하지만 인위적으로 사람을 해고하는 것은 없었어요. 회사나 우리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살길을 찾아 나선 것이죠."

그의 말대로 폴크스바겐도 위기는 있었다. 첫 번째 위기는 1990년대에 찾아왔다. 1992년 순이익이 1억4700만 마르크에 그치면서 전년보다 무려 87%나 줄었다. 1993년에는 19억4000만 마르크 적자로 돌아섰다. 1993년 자동차 판매량은 1980년대 수준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국민기업"... 수만 명 해고위기서 노사간 극적 대타협

폴크스바겐은 스스로 '국민기업'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들의 회사를 소개하는 책자의 첫장에도 '국민기업(people's company)'라고 씌여있다.
 폴크스바겐은 스스로 '국민기업'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들의 회사를 소개하는 책자의 첫장에도 '국민기업(people's company)'라고 씌여있다.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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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스부르크 공장의 노동자평의회 대변인을 맡고 있는 조그르 괴테씨는 "동독과의 통일후 경기거품이 빠지고, 멕시코쪽 공장의 잘못된 경영 등으로 미국시장의 판매가 부진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일본 업체의 유럽 진출도 영향을 받아서 볼프르부르크 공장의 자동차 생산도 영향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1993년 당시 폴크스바겐의 독일내 종업원 수는 10만3000명으로 최대 수준이었다. 하지만 공장들이 잇따라 적자에 허덕이자 회사는 3만 명에 가까운 인원감축 계획을 내놨다. 뮐러씨는 "당시 공장 분위기가 정말 좋지 않았다"며 "회사와 종업원이 함께 살아남기 위해 많은 토론과 설득이 진행됐었다"고 회고했다.

4주 동안 노사는 치열한 협상을 이어갔다. 이들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주당 36시간 노동을 주4일 28.8시간 노동으로 줄였다. 노동시간이 줄어든 만큼 노동자들은 자신의 소득 감소를 감내했다. 그렇다고 매달 받는 소득이 크게 줄지는 않았다. 휴가비와 연말특별상여금 등을 월급으로 나눠 지급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2년 동안 고용을 보장했고, 각종 휴식이나 휴가 등의 혜택도 줄이지 않았다.

괴테씨는 "회사가 당초 (구조조정으로) 계획했던 인건비의 약 20%(16억 마르크)를 절약할수 있었다"면서 "종업원들은 노동시간이 줄면서 소득이 줄긴했지만 고용이 보장되면서 노사간 신뢰가 형성됐다"고 평가했다. 결국 회사는 극적으로 회생했다. 1996년에 노사는 노동시간을 다시 주당 36시간 늘리는 데 합의했다.

폴크스바겐 노사의 대타협은 이어진 2000년대 경제위기에서도 그대로 힘을 발휘했다. 2003년에 순이익 전년대비 61% 줄었고, 세계시장에서도 판매량이 하락했다. 노사는 다시 머리를 맞댔다. 1999년 폴크스바겐의 노동이사인 피터 하르츠(Peter Hartz)의 제안으로 나온 '아우토 5000'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2001년부터 시행에 들어간 이 프로젝트는 실업난에 시달린 독일 경제에 놀라운 사건으로 평가받았다.

'아우토 5000' 프로젝트가 남긴 것

폴크스바겐의 볼프스부르크 공장 입구. 하루 3교대제로 오후 근무조 노동자들이 지하통로를 통해 공장으로 출근하고 있는 모습.
 폴크스바겐의 볼프스부르크 공장 입구. 하루 3교대제로 오후 근무조 노동자들이 지하통로를 통해 공장으로 출근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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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토 5000'은 폴크스바겐이 새로 만든 회사다. 이곳 종업원은 2년 이상 장기 실업자나 청년 실업자들이었다. 이들은 일자리를 얻는 대신 폴크스바겐 평균 노동자의 임금보다 10~15% 적게 받았다. 대신 노동시간도 주당 28.8시간에서 42시간까지 탄력적으로 적용받았다. 이제 아우토 5000 프로젝트가 적용된 볼프스부르크 공장은 폴크스바겐에선 핵심 기지가 됐다.

독일 금속노조 하노버지부의 우에 스토프레젠 대변인은 기자와 만나 폴크스바겐의 노사대타협에 높은 점수를 줬다. 우에 대변인은 "회사의 혁신과 노조의 고용안정성, 두 마리의 토끼를 어떻게 잡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라며 "당시 프로젝트를 통해 일자리를 얻은 이들은 현재 정규직으로 계속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시 볼프스부르크 공장안. 뮐러씨와 로질리우스씨는 현재 오전반 근무다. 3교대로 운영되는 이곳에서 그들은 오후 2시 30분이면 일이 끝난다. 뮐러씨는 퇴근 후에 주로 오토바이를 타거나 가족들과 지낸다고 했다. 그의 자녀 3명 중 2명도 같은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자녀들에게) 우리 회사가 어떠한 곳인지를 알려줬다"며 "그들은 스스로 이곳서 일하겠다고 했고, 나 역시 적극적으로 찬성했다"고 말했다. 그의 입가엔 웃음이 가득했다.

옆에 있던 로질리우스씨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는 "나중에 내 아이들도 커서 이곳에서 일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15년 차인 그는 골프 조립라인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이전에 통신회사에서 인턴으로 2년 동안 일한 후 일자리를 잃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1998년에 이른바 시간제 노동자로 이곳에 발을 디뎠다. 그는 "파견직 2년 후 정식 직원이 됐다"면서 "이곳에선  교육의 기회도 많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혹시 '회사를 옮길 계획은 없느냐'고 묻자, 곧장 웃으면서 답한다. "이곳만큼 안정되고 일하기 좋은 곳은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 정년까지 열심히 일하고 싶은데…"라고 말이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공장 안은 어느새 오후 근무를 위한 노동자들로 다시 채워져 있었다. 이제 폴크스바겐은 수차례의 위기를 겪으며 세계 최대의 자동차 회사를 꿈꾸고 있다. 가장 일하기 좋은 공장에서 행복한 사람들이 만드는 제품. 그들은 그렇게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태그:#폴크스바겐, #골프, #볼프스부르크, #아우토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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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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