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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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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으로 법정에 선 '고문경찰' 차동영 경감은 송우석 변호사에게 빨갱이를 잡는 것은 애국이라고 말한다. 군부독재정권의 앞잡이가 된 차 경감을 향해, 송우석 변호사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는 말을 토해낸다. 차 경감은 "닥쳐, 빨갱이 새끼야!"라고 외칠 뿐이다.

최근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변호인>에서 가장 눈에 띄는 '1분'이다. 송강호·곽도원 두 배우의 열연이 빛나는 명장면으로, 무엇보다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송변'이 읊조린 헌법 1조 2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헌법 1조 1항)와 함께, 1948년 제헌헌법 이후 헌법의 가장 윗자리를 지켜왔다.

군사독재정권 시대에 송변이 외친 이 헌법 조항이 지금도 호소력을 갖는 것은 민주화 이후에도 헌법 1조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인식 탓이 크다.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 특별검사 임명을 통해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자는 국민의 목소리에 박근혜 정부가 외면하면서, 국민의 분노는 커지고 있다.

대통령의 '입'인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원칙대로 하는 것에 손가락질하고 불통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랑스런 불통"이라고 말해, 국정기조에 변화가 없을 것임을 예고했다. 박근혜 정부의 독선적인 정치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헌법 1조를 외치는 영화 <변호인>은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헌법위반' 국정원·군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 헌법 수호자의 입장은?

헌법은 공무원과 국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고 있다. 헌법 5조 2항은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 7조 2항은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정보원·국군사이버사령부·국가보훈처 등은 지난 대선에 개입해,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은 최소 121만 건, 최대 2200만  건의 정치 관련 트위터 글을 생산·전파시켰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이와 관련한 수사를 축소·은폐했다.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또한 지난 19일 국방부 조사본부는 국군사이버사령부가 2010년 1월부터 2013년 10월까지 모두 1만5000여 건의 정치 관련 글을 게시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100건은 특정 정당과 정치인을 옹호하고 비판한 내용이었다. 특히,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비판한 글도 발견됐다.

지난 대선에서 여러 국가기관이 한 일은 명백한 헌법 위반·헌정 유린이다. 헌법 66조 2항에 따라 헌법 수호 책무를 지니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것의 진상을 규명하러 나서야 한다는 게 헌법과 국민의 목소리다. 하지만 헌법 수호자인 박근혜 대통령과 집권 여당은 물타기, 꼬리 자르기 등을 통해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을 축소·은폐하려는 모습을 보여왔다.

원세훈 전 원장·김용판 전 청장에 선거법을 적용하는 문제를 두고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대립했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지난 9월 혼외아들 논란으로 옷을 벗었다. 이후 청와대 조오영 행정관이 채 전 총장의 혼외아들로 지목된 어린이를 뒷조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청와대 윗선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또한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수사 초기부터 외압이 심각해 수사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폭로한 윤석열 전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특별수사팀장은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군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 사건 역시 축소·무마 논란에 휩싸였다. 백낙종 조사본부장은 "대남선전선동 대응과 정책홍보 과정에 군의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행위를 확인했으며, 사이버사령부 산하 530심리전단 이아무개 단장(3급 군무원)이 '정치적 표현도 주저마라'는 등 과도한 지시를 내린 사실은 확인했다"면서도 "대선 개입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상명하복의 조직인 군에서 3급 군무원이 사령관에게 보고 없이 모든 일을 꾸몄다는 발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수사결과 발표에서 지난해 국군사이버사령관이었던 연제욱 청와대 국방비서관의 이름이 빠진 것은 청와대의 뜻이 반영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가기관 대선 개입을 축소·무마하려는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두고 "헌법불복세력"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선 1주년을 맞은 19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관권·부정선거 1년, 민주주의 회복 국민대회'에 참가한 한 가족이 '박근혜 댓통령 직위해제'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대선 1주년... "지난 대선은 관권부정선거" 대선 1주년을 맞은 19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관권·부정선거 1년, 민주주의 회복 국민대회'에 참가한 한 가족이 '박근혜 댓통령 직위해제'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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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 신격화에 5·16쿠데타 미화 움직임도

박근혜 정부 들어, 5·16쿠데타를 미화하려는 시도 역시 헌법 정신과 충돌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헌법 전문에는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4·19 혁명을 총칼로 짓밟은 5·16 쿠데타와 그로부터 탄생한 박정희 정권을 미화하는 것은 헌법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07년 대선 경선에서 5·16 쿠데타를 구국의 결단으로 평가한 탓에, 지난 대선에서 역풍이 불었다.

대선 때 호되게 당했음에도 새누리당 인사들의 인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새누리당 소속 김관용 경상북도지사는 지난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서 5·16 쿠데타를 구국의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심학봉 새누리당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을 "아버지 대통령 각하"라고 칭송했다. 지난 11월 박정희 대통령 탄생 96주년 탄신제에서 남유진 구미시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반신반인으로 하늘이 내렸다란 말밖에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심지어는 쿠데타의 필요성을 주장한 이도 있다. 하봉규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 11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미 반세기 전 정치부패와 민생파탄에 빠진 조국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군사쿠데타를 어쩔 수 없이 선택하였고, 이후 조국 근대화의 위업을 달성했던 자랑스러운 국군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고 썼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 부산선거대책본부에서 활동한 바 있다.

역사전쟁을 촉발시킨 교학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논란에서 5·16 쿠데타를 바라보는 박근혜 정부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이 교과서는 5·16 쿠데타를 합리화하는 데 지면을 할애했다. 야권과 시민단체가 이 교과서의 5·16 쿠데타 미화 부분을 수정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교육부와 이 책의 저자들은 이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교과서는 "김일성이 1960년 8월 남북 연방제를 제안하는 등 은밀한 적화를 기도했다 (중략) 장면 정부는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장면 정부가) 혼란을 자초한 상황에서 박정희를 중심으로 일부 군인들이 쿠데타를 단행했다"고 서술했다. 쿠데타 직후, 윤보선 대통령, 육사 생도, 미국도 정권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또한 한일 국교정상화와 베트남 파병을 두고 경제 건설에 큰 힘이 됐다고 강조했다.

반면, 교육부는 미래엔 교과서의 '이승만 독재와 4·19 혁명' 단원 제목을 바꾸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유기홍 의원이 "(박근혜 정부는) 우리 아이들에게 헌법정신에 위배된 교과서를 제도권에 들여놓기 위해 멀쩡한 다른 교과서를 속죄양으로 삼고 국회와 시민단체 의견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운영과정에서 헌법 수호자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2004년 한나라당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의 지지를 호소하자 "헌법과 법률의 수호자로서 자질과 자격을 상실했다"면서 노 대통령을 탄핵했다. 당시 한나라당이 쏘았던 화살은 부메랑이 되어 박근혜 정부를 향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태그:#헌법과 싸우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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