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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옴에도 불구하고 가와우라의 콜레지오관으로

아마쿠사섬 지도
 아마쿠사섬 지도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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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는 예보가 틀리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창밖으로 비가 내린다. 답사에 차질이 좀 있을 것 같다. 아침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내려갔더니 일본 측 간사인 이시하라 사무국장이 나에게 다가온다. 오늘 비바람이 심해 토미오카(富岡)에서 모기(茂木)로 가는 여객선이 뜨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가사키로 가는 다른 방법을 강구하고 있으니 크게 걱정은 말라고 한다. 답사 외에 교통편까지 문제가 되니 조금 걱정이 된다.

식사를 마치고 모든 준비를 끝내고 나오니 일본 측에서도 우리와 동수인 8명이 동행하러 나왔다. 전체적인 길 안내는 아마쿠사시 문화과 학예원인 나카야마 게이(中山 圭)가 맡고, 진행은 이시하라가 맡기로 했다. 우리는 아마쿠사섬을 관통하는 266번 지방도를 따라 가와우라(河浦)로 향한다. 그곳에 콜레오지오관과 사기츠 천주당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바닷가에 있다. 그러므로 산을 넘고 넘어 바닷가로 가는 것이다.

야마시다 관장이 즉석에서 인쇄를 해 보인다.
 야마시다 관장이 즉석에서 인쇄를 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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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9시 30분이 넘어서야 가와우라의 콜레지오관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미야시다(宮下憲一) 관장이 안내를 위해 우릴 기다리고 있다. 콜레지오관은 남만문화의 유입과 천주교의 수용 과정을 실물을 통해 보여주는 박물관이다. 이곳에는 서양 사람들이 타고 온 남만선, 덴쇼 유럽파견 사절단이 입었던 의상, 구텐베르크 인쇄기, 구텐베르크 인쇄기를 통해 인쇄했던 책자, 서양의 고대 악기 등 문화교류를 보여주는 유물이 다량 전시되어 있다.

이들은 대부분 당시 사용하던 것이 아니고 복제품이다. 오히려 실물로는 성모자상을 표현한 동패(銅牌)라든지 의식용 촛대가 있다. 그리고 고우치우라 성터에서 발견된 토기편이 있다. 전체적으로 유물이 아주 많지 않은 편이지만 1591년부터 7년간 활동했던 콜레지오의 역사를 알기에는 충분하다. 야마시다 관장이 구텐베르크 인쇄기에 특징과 사용방법을 자세히 보여준다. 우선 인쇄기의 활자가 동판형식으로 만들어졌다. 활판에 잉크를 묻혀 찍어내는 방식이다. 그러면서 인쇄과정을 잠시 시연해 보인다.

서양의 기타
 서양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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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나온 책은 모두 29종이었다. 종교와 신학에 관한 책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솝 우화의 일본어 번역도 나왔다고 한다. 당시 이 인쇄기로 300~500부의 책을 생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아마쿠사에는 1500부 씩이나 발간했다고 한다. 그리고 기타, 하프 같은 현악기, 플루트, 리코더 같은 관악기, 피아노, 오르간 같은 건반악기도 전시되어 있다. 그 옆에는 취리히에서 발간된 악보집도 보인다. 이를 통해 우리는 아마쿠사 콜레지오관이 종교와 복음뿐 아니라 문학과 음악 등 인문학까지 전해주었음을 알 수 있다.   

천주교 신앙의 못자리였던 사키츠 천주당

바닷가에 자리 잡은 사기츠 천주당
 바닷가에 자리 잡은 사기츠 천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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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콜레지오 옛터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날씨 탓, 시간 탓을 하며 사기츠 천주당으로 향한다. 가와우라에서 사기츠로 가는 길은 바닷가를 따라 나 있다. 중간에 터널을 두 개 지나고 다리를 건너야 한다. 사기츠 천주당이 있는 사기츠 마을은 어촌이다. 우리는 먼저 포구 건너 전망장소로 가 천주당을 멀리서 살펴본다. 산자락을 따라 바닷가에 좁게 형성된 마을 한가운데 천주당이 있다.

여기서 다시 다리를 건너 천주당으로 향한다. 마을길은 차가 겨우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다. 우리는 천주당 입구에 차를 세우고 걸어 들어간다. 저쪽에 회색의 고딕식 건물이 나타난다. 입구에서 우리는 사기츠 천주당 유래기를 읽어본다.

사기츠 교회는 1569년 2월 23일 알메이다 신부에 의해 처음 세워졌다. 1638년 아마쿠사에 금교령이 내려지면서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카쿠레 키리시탄이 생겨났고, 이후 240년 동안 침묵의 교회가 되었다. 1873년 천주교 금지령 폐지에 의해 1880년 본느(Bonne) 신부가 사기츠를 찾으면서 천주교가 부활할 수 있었다.

사기츠 천주당 내부
 사기츠 천주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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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페리에(Ferriee) 신부가 교회당을 다시 지었고, 1893년 가르니에(Garnier) 신부가 오에와 사기츠 교회의 주임신부로 부임한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1928년 할르부(Hallevut: 1864-1945) 신부가 사기츠 교회 주임신부로 부임했고, 6년의 노력 끝에 1934년 11월 고딕식 건축으로 완공하기에 이른다. 유래기 옆에는 할르부 신부를 추모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우리는 이제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신자들을 위한 의자가 있고, 그 앞으로 제대와 설교대가 있다. 그리고 한 가운데 벽면에 예수가 모셔져 있다.

시골의 소박한 천주당이다. 좌우의 고딕식 창문에 색을 넣어 스테인드글라스 흉내를 냈다. 이곳에는 현재 228명의 신자가 등록되어 있다. 남자가 96명 여자가 132명으로 여자가 더 많다. 우리가 방문한 날이 마침 월요일 오전이어서 사제나 신자는 만날 수 없다.

나는 사제관과 신도회관을 한 바퀴 둘러본다. 사제관 위에는 바닷가 마을답게 커다란 해오라기가 한 마리가 우아하게 서 있다. 혹시 할르부 신부의  환생은 아닐까? 이곳은 조그만 교회지만 사료관도 있다. 금교시대 사용하던 십자가, 항아리, 묵주 등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문이 걸려 보지는 못했다. 

나가사키와 아마쿠사의 성당을 소개하는 엽서
 나가사키와 아마쿠사의 성당을 소개하는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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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면서 우리는 갤러리 카페 나자렛에 들러 우편엽서를 몇 개 얻는다. 한 종은 나가사키와 이곳 사기츠의 교회 건축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만들기 위한 홍보용 엽서다. 다른 두 종은 어촌 마을에 있는 사기츠 성당의 모습이다. 하나는 안개가 자욱한 사기츠 성당 앞으로 어선의 행렬이 보인다. 다른 하나는 정박한 배 앞으로 사기츠 천주당이 고즈넉하게 서 있고, 그 뒤로 봄의 신록이 피어오르고 있다. 그런 이유로 사기츠 천주당이 보이는 바다는 일본의 멋진 풍경 100선에 들어간다.

오에 천주당은 또 어떻고

오에 천주당
 오에 천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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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츠 천주당을 보고 우리는 다시 바닷길을 따라 오에 천주당으로 향한다. 그런데 이 길에는 터널이 더 많다. 오에 천주당은 바닷가를 따라 이어진 389번 지방도에서 내륙으로 조금 들어간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언덕을 돌아 주차장에 차를 세운 우리는 흰색과 회색이 조화를 이룬 성당을 향해 올라간다. 건축은 로마네스크 양식이고, 주보성인은 말씀의 성모다. 그래서 계단의 한쪽에는 루르드 성지를 모방해 동굴의 성모를 모셔 놓았다.

오에 천주당은 언덕 높은 곳에 있어 전망이 아주 좋은 편이다. 성당 앞으로 멀리 바다가 보이고 안쪽으로 좁은 골짜기를 따라 농토가 펼쳐진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그렇게 여유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제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려고 한다. 그런데 문이 걸려 있다. 할 수 없이 창문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본다. 사기츠 천주당처럼 소박한 편이다. 천정에 십자가 등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이 색다른 편이다.

가르니에 신부상
 가르니에 신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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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천주당은 1880년 처음 생겨났다. 1932년 5월 가르니에 신부의 의뢰로 도편수 데츠가와 요스케(鐵川与助)가 짓기 시작했다. 그는 서양의 양식에 일본의 기후와 전통을 결합시켜 일본 근대 교회건축의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 이 성당은 1933년 3월 25일 하느님께 봉헌되었다. 성당 옆에는 가르니에 신부를 존경하고 추모하는 동상이 서 있다. 안경을 쓰고 수염을 기른 노년의 모습이다. 가르니에 신부는 1892년 오에 천주당에 부임해 죽기 1년 전인 1941년까지 봉직한 진정한 아마쿠사인이고 오에인이었다.

나는 성당을 한 바퀴 돌면서 부속건물을 살펴본다. 이곳 역시 꽃과 나무를 잘 가꾸어 놓았다. 그런데 사제관, 신도회관에서 인기척을 전혀 느낄 수 없다. 미사가 목금토요일 저녁과 일요일 아침에만 있기 때문이다. 오에 천주교회 신도수는 321명으로 아마쿠사에서는 가장 많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생업에 바빠 평일 낮에는 모두 일터에 나가 있는 모양이다. 이곳에도 역시 남자 신도(128명)에 비해 여성 신도(193명)가 압도적으로 많다.      

오에의 로사리오관에서 만난 유물들

로사리오관
 로사리오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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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을 떠나려는데 이곳에 사는 주민이 찾아와 일한문화교류연구회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조금 더 일찍 만났으면 해설을 부탁하는 건데 아쉽다. 우리는 오에 천주당을 떠나며 다시 한 번 더 주변을 돌아본다. 날씨마저 회색빛이어서 교회건물이 쓸쓸해 보인다. 우리는 차를 타고 조금 더 아래에 있는 로사리오관으로 향한다. 로사리오관은 잠복 그리스도인의 삶과 문화를 보여주는 전시관이다.

로사리오관에서 우리는 3D안경을 쓰고 아마쿠사 가톨릭의 역사를 소개하는 비디오를 10분여쯤 본다. 사실 콜레지오관과 두 군데 천주당을 보고나서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알아선지 꽤나 재미있다. 그리고 나서 로사리오관의 전시물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오에무라의 옛날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는데, 신사 입구에 있는 도리이가 보인다. 이곳 아마쿠사의 선교사와 천주교 흔적을 찾아 여행했던 젊은 작가들의 모습도 인형 형태로 재현해 놓았다.

염불 종이를 태우던 항아리
 염불 종이를 태우던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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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천주교 탄압과 관련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다락에 만든 미사공간에서 가족이 함께 기도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러 번 본 마리아 관음상이 이곳에도 있다. 그 외에 불교로 위장한 천주교 조각품도 보인다. 또 염불 종이를 태우던 항아리도 눈에 띈다. 이들 모두가 잠복 키리스탄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사용했던 것이다. 그들이 마음 졸이며 지켰던 신앙의 대상이 이제는 박물관에서 그 빛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태그:#콜레지오관, #구텐베르크 인쇄기, #사기츠 천주당, #오에 천주당, #로사리오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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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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