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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금계천에서 캠핑을 했을 때의 모습.
▲ 금계천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금계천에서 캠핑을 했을 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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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일째 : 2013년 8월 16일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을 출발한 필자는 홍천을 거쳐 횡성군으로 방향을 잡았다. 당시 여행일지를 찾아보니 낮 12시에 출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전날 야간주행의 여파로 너무 밤늦게 잠이 든 게 원인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아직 몸상태가 장거리 자전거 여행에 적합할 정도로 달아오른(?) 것도 아니었으니 삭신이 다 쑤실 정도였다. 그래서 필자는 묘한 신음 소리를 내기까지 했다.

'아~ 정말 적응 안 되네. 몇 년을 달렸어도 여행 첫날이랑 그 다음날은 죽음이란 말이야! 오늘은 기필코 해 떨어지기 전에 텐트 치고 자야지. 오늘 저녁은 두부 송송 썰어서 김치찌개 해먹어야겠다. 푸하핫! 오늘은 캠핑 특별식이다!'

# '사흘 갈 길 하루에 갔다, 열흘 앓아눕는다'

'사흘 갈 길 하루에 갔다, 열흘 앓아눕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한마디로 과유불급이라는 소리다. 그렇다. 이 속담은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여행자들이 깊게 새겨 들여야 하는 격언일 것이다. 그건 자전거 여행이든 도보 여행이든 마찬가지다. 자신의 체력, 장비의 한계 등을 고려하지 않고 "진격! 진격"만 외치다가는 큰 코 다치게 된다. 여행을 통해 하나라도 배워가야지 여행이 '중노동'으로 변질된다면 곤란해진다.

스스로에게 적합한 일일 적정 주행거리를 설정하고 그것에 맞춰 이동을 한다면 보다 더 즐겁고 재밌는 여행이 될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일일 적정 이동거리는 자전거 여행일 때는 50~60km, 도보 여행일 때는 20~25km이다. 둘 다 취사와 캠핑장비로 완전무장한 상태를 가정한 것이다.

자전거 여행일 때는 자전거에 주렁주렁 매달 수 있어서 상황이 좀 낫다. 하지만 도보 여행일 때는 거의 20kg에 육박하는 무거운 배낭을 온전히 자신의 신체만으로 버텨야 한다. 그래서 장거리 도보 여행을 떠날 때는 5~6일을 이동했으면 하루 정도는 휴식을 취하는 식으로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좀 더 여유롭게 여행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위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들은 객관성보다는 주관성에 기울어져 있다. 필자의 경험과 아웃도어 선배들의 의견들을 한 데 모아서 정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자신의 체력이 좋으면 하루에 100km 이상을 주행할 수도 있고, '천리행군' 빰칠 정도로 수십 킬로를 이동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고유의 특색이 중노동으로 변질되지 않으면서도 지속적으로 이동을 할 수 있는 타협책이 바로 일일 적정 이동거리라는 것이다.

홍천군 북방면에서 홍천 읍내를 향해 갈 때 이용했던 잿골터널. 보행자의 편의를 위해 한쪽에 보행자 통행로가 있다. 방음벽까지 갖춘 보행자 통로가 인상적이어서 한 컷 찍어 봤다.
▲ 잿골터널 홍천군 북방면에서 홍천 읍내를 향해 갈 때 이용했던 잿골터널. 보행자의 편의를 위해 한쪽에 보행자 통행로가 있다. 방음벽까지 갖춘 보행자 통로가 인상적이어서 한 컷 찍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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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리어 '뻥튀기'의 유혹

전에 어떤 유명 여행 블로그를 눈팅하면서 혀를 찬 적이 있었다. 4개월 동안 무려 1800km의 거리를 도보로 이동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 여름인 6월에서 9월 사이에 그랬다는 것이다. 억지로 하면 할 수도 있을 듯싶지만 그래도 필자의 머릿속에서는 물음표가 떠나지 않았다.

'이 분은 장맛비가 오고 태풍이 불어도 트레킹을 하셨나? 한 여름에는 제대로 아웃도어를 할 수 있는 날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이 신규 진입을 하는 여행판. 더 정확히는 여행작가판에서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자신의 스펙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하려고 무진 애를 쓸 수밖에 없다. 그건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마찬가지다. 한 곳이라도 여행지를 더 다니려고 발품을 팔고, 글감을 뽑아내려고 에피소드 찾는 데 혈안이 된다.

그런 와중에 유혹도 생긴다. 커리어를 '뻥튀기'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아웃도어 스펙을 조작하는 것이다. 500km짜리 도보여행을 했는데 거기에 한 300km를 더 붙여서 800km 정도로 늘려 잡는 것이다. 딱히 검증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500이 고무줄처럼 800으로 늘어난다고 해도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500보다는 800이, 5000보다는 8000이 더 장사가 잘 되는 법이다. 5000을 뛴 것보다는 8000을 뛰었다고 하면 방송이나 언론에서 더 주목을 받지 않겠는가? 카메라는 조금이라도 더 드라마틱한 그림을 요구하는 법이니까!

강원도 홍천군을 흐르고 있는 홍천강. 이 강은 북한강의 지류이다. 앞쪽에는 강이 흐르고 뒤로는 산이 있는 곳에 들어선 아파트가 눈에 띄어서 한 번 찍어보았다. 그러고보면 이곳도 강변아파트다.
▲ 홍천강 강원도 홍천군을 흐르고 있는 홍천강. 이 강은 북한강의 지류이다. 앞쪽에는 강이 흐르고 뒤로는 산이 있는 곳에 들어선 아파트가 눈에 띄어서 한 번 찍어보았다. 그러고보면 이곳도 강변아파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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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맥락으로 원웨이(편도) 티켓만으로 세상을 누볐다는 이야기도 필자는 물음표를 붙인다. 이런 식으로.

'여비나 생활비는 그렇다 쳐도, 비자 받을 때도 공짜로 받을 수 있나?'

누군가는 필자에게 이렇게 질책을 하실 수도 있겠다.

"너는 그렇게 잘났냐? 넌 네가 주장하는 커리어가 딱 일치하냐? GPS로 다 찍어봤어?"

솔직히 할 말이 없다. GPS로 다 찍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필자의 GPS는 싸구려라서 그런지 기록이 고무줄로 나온다. 간간이 종잡을 수 없을 때가 있다.

아웃도어 여행을 하는 필자가 왜 이런 제살 깎아먹기(?) 식의 발언을 하고 있는가. 커리어 '뻥튀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필자가 왜 이런 동업자 정신에 반하는 짓을 하고 있는가. 이런 주문을 드리고 싶어서다.

'걸러서 보세요. 너무 액면 그대로 믿지 마시고! 아웃도어도 따라쟁이 식으로 하지 마시고 주체적으로 하자고요!'

# '날벼락 치는데 이 와중에 잠 자는 사람이...'  

오후 4시경. 엄청난 소나기가 쏟아졌다. 맞으면 쓰라린 굵은 빗줄기가 천둥, 번개와 함께 쏟아지고 있었다. 다행히 필자는 게릴라성 집중호우를 예감했다. 그래서 홍천군청 앞에 있는 팔각정에 몸을 숨겼다. 바람에 휘날리는 빗줄기가 얼굴을 세게 때려댔지만  그 와중에도 필자는 큰 대(大)자로 뻗어서 잤다. 팔각정에는 급작스럽게 내린 폭우를 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개의치 않고 그냥 잤다. 왜? 피곤하니까!

"날벼락 치는데, 이 와중에도 잠을 자는 사람이 있네."
"그러게요. 대자로 뻗었네요. 낮술 먹었나?"

잠결에 들리는 소리였다. 이런 비판에 반론(?)을 하고 싶었으나 필자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팔각정은 텅 비어 있었다.

'낮술은커녕 끼니도 제대로 못 챙겨 먹었다!'

우리나라 여름 날씨는 변덕이 심하다. 언제 어디서 게릴라성 집중 호우와 마주칠지 모른다. 그렇게 집중호우를 국도 주행 중에 만난다면? 아주 큰 낭패다. 몸을 숨길 수 없는 곳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홍천 군청에 있는 팔각정에서 소나기를 피한 후 찍은 사진.
▲ 홍천군 군청 홍천 군청에 있는 팔각정에서 소나기를 피한 후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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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충남 홍성을 여행하고 있었을 때다. 김좌진 장군 기념관 부근에서 큰 소나기를 만났다. 당시 기념관 앞에서는 부스를 차려놓고 무슨 기념행사 같은 것을 하고 있었는데, 필자는 잠시 몸을 피할 생각으로 부스 안으로 쏙 들어가 있었다. 갑작스런 폭우로 행사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진행요원도 아니면서 자리를 잡고 있기에 '거시기'했지만 관계자들은 별 신경을 쓰지도 않는 듯 싶었다.

오히려 한 자리라도 채워준  모습이 기특했는지 잔치국수와 떡을 건네주기까지 했다. 그렇게 국수와 떡을 먹었다. 또 거기서도 한숨을 잤다. 피곤했으니까. 하지만 비는 그치지 않았다. 그렇게 김좌진 장군 기념관 앞에서 두어 시간을 대기해야만 했다.

이렇듯 여름 여행은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양이 적은 비는 그냥 그렇게 맞을 수도 있지만 온 몸이 싹 다 젖는 폭우는 맞아서는 안 된다. 비를 맞고 주행을 하면 에너지 소모가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 119에 SOS를 요청하다!

주위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하지만 난 야영지를 찾지 못했고 계속 페달을 밟아야 했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이미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오늘은 기필코 해 떨어지기 전에 텐트 치고 자겠다고? 캠핑 특별식으로 김치찌개를 해 먹겠다고? 이래가지고?'

아침에 한 다짐들은 이미 물 건너 간 상태였다. 소나기 때문에 시간을 너무 지체한 탓에 또 일정이 어그러진 것이다. 한우로 유명한 횡성에 왔으니, 고기로 배를 채울 수 있다는 생각에 콧노래를 불렀건만! 그저 탄식만 뿜어져 나올 뿐이었다.

"죄송하지만 근처에 텐트 칠 만한 곳이 있을까요?"

횡성군 공근면에 도착한 후 이리저리 헤매다 소방서를 찾아들어간 것이다. 소방서에는 야간근무를 하시는 분들이 계셨다. 그 분들은 필자를 보고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다. 필자를 불청객으로 봤던 거 같다. 하지만 119는 119였다.  

"음… 아, 맞다. 거기 가시면 되겠네요. 여기서 한 3km 정도 위쪽으로 올라가면 캠핑할 때가 있을 거예요."
"사람이 많은 곳인가요?"
"아니요. 너무 사람이 안 와서 탈이죠. 가면 깜깜해서 무서울지도 모르는데…."
"괜찮습니다. 저는 차라리 한적한 곳이 좋더라고요."
"근데 문제가 있어요. 거기 가려면 좀 헤매실 수 있을 텐데요…."

문제가 있긴 있었다. 그곳은 동네 주민 분들만 아는 곳이었다. 그래서 길 찾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더군다나 불빛 하나 없는 곳이라 방향잡기가 난감했다.

"이거 보면서 하면 되겠네. 와보세요. 여기 모니터 좀 보세요."

119분들 덕택에 하룻밤 느긋하게 야영을 할 수 있었다. 사진은 횡성군 공근면을 흐르는 금계천이다. 금계천은 대관대천과 합수되어 섬강을 이룬다. 섬강은 원주를 휘돌아 나가다 경기도 여주에서 남한강에 합수된다.
▲ 금계천 119분들 덕택에 하룻밤 느긋하게 야영을 할 수 있었다. 사진은 횡성군 공근면을 흐르는 금계천이다. 금계천은 대관대천과 합수되어 섬강을 이룬다. 섬강은 원주를 휘돌아 나가다 경기도 여주에서 남한강에 합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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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119는 119였다. 고맙게도 지도 보기를 통해 필자가 가야하는 곳을 일일이 찍어주었던 것이다.

"여기 보세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마을이 나오는데, 그 마을은 그냥 지나치시고 앞으로 쭈욱~ 직진하시다보면 그곳이 나올 겁니다."

그냥 말만 들었으면 한참을 헤맸을지 모르지만 위성지도를 보면서 설명을 들으니 훨씬 이해가 빨랐다. 119가 응급환자만 이송하는 것이 아니었다. 필자 같은 난관에 봉착한 여행자도 '응급구조'를 한 것이다. 정말 감사했다.

염치불구하고 커피까지 한 잔 마신 후에 소방서에서 빠져 나와 목적지로 향했다. 지도를 숙지해서 그랬는지 어렵지 않게 그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위는 불빛 하나 없는 그런 곳이었다. 은밀함을 즐기는 연인들이 이용하기 딱 좋은 장소였던 것이다. 앞에는 강물이 흐르고 주위는 산들로 둘러싸여 있고….

어쨌든 그렇게 여행의 이틀째가 마무리됐다. 텐트를 치고 김치찌개를 떠올리며 콘플레이크로 늦은 저녁을 때웠다. 내리 4끼를 행동식으로 해결한 것이다. 그러다 병나지! 한 두 끼도 아니고. 그러다 진짜 병이 났다.

병이 난 이야기는 다음편에….

덧붙이는 글 | 제 다음 블로그에도 게재를 합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태그:#중부내륙자전거여행, #홍천, #횡성,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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