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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공사가 한창인 홍파동. 포클레인 삽날과 집들이 대조를 이룬다.
▲ 부서진 동네 철거공사가 한창인 홍파동. 포클레인 삽날과 집들이 대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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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서울 도심의 한복판 아름다운 골목길이 몇몇 개발론자들의 이익을 위하여 흔적조차 남지 않고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서울 경희궁 근처 어느 상가에 내걸린 펼침막의 문구다. 이곳은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서대문(돈의문)이 위치했던 지역이다. 지난 가을 이 동네에서 장사를 하던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고 어디론가 떠났다. 이 지역이 돈의문뉴타운 지구이기 때문이다.

서울 도심의 노른자 땅, 돈의문뉴타운 지구

돈의문뉴타운 위치도
 돈의문뉴타운 위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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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뉴타운 재개발사업은 2002년 10월 시범뉴타운 3개 구역이 지정되면서 시작됐다. 돈의문뉴타운 지구는 2003년 11월 18일 2차 뉴타운 사업으로 결정됐다.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과 5호선 서대문역을 끼고 있는 돈의문뉴타운 지구는 서울 도심에 위치한 노른자 땅이다.

1·2·3지구로 분할되어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는 돈의문뉴타운 지구의 면적은 9만8545㎡(약 3만 평)이다. 15∼23층 아파트 23개동이 건설될 계획인 돈의문뉴타운 지구에는 총 2484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임대아파트 496가구, 조합원·일반분양 1988가구가 입주할 계획이다.

사진 오른쪽에 흙이 보이는 부분이 철거공사 중인 돈의문뉴타운 지구. 멀리 북악산과 청와대가 보인다.
▲ 돈의문뉴타운 지구와 인왕산 자락 사진 오른쪽에 흙이 보이는 부분이 철거공사 중인 돈의문뉴타운 지구. 멀리 북악산과 청와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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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경기가 침체된 상황임에도 돈의문뉴타운 지구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서대문역과 독립문역을 끼고 있는 더블역세권 단지인데다, 강북삼성병원과 적십자병원이 바로 옆에 있다. 단지 위쪽으로 한양도성이 있고 경희궁이 지척이다. 서울 도심인 광화문과 서울시청도 가깝다. 걸어서 20분 이내에 갈 수 있다. 이런 위치 덕분에 돈의문뉴타운 지구에 건설될 아파트 분양가는 평당 2200만∼2300만 원을 호가한다.

돌다리 윗 동네와 아랫 동네, 그리고 그 주변

종로구 교북동과 교남동은 돈의문뉴타운 지구에 포함된 동네다. 교북동과 교남동이라는 동명은 서대문 독립공원이 있는 무악재에서 흘러내린 만초천에 놓여 있던 돌다리(석교)에서 유래한다. 교북동, 교남동은 돌다리 윗 동네와 아랫 동네라는 뜻이다. 의주로 한가운데 있었던 만초천 돌다리는 고산자 김정호가 그린 <대동지지>(1864)와 <수선전도>에도 등장할 정도로 유서 깊다.

오른쪽 붉은 기와 지붕이 홍난파 가옥, 왼쪽이 돈의문뉴타운 지구이다. 멀리 인왕산이 보인다.
▲ 홍파동에서 본 인왕산 오른쪽 붉은 기와 지붕이 홍난파 가옥, 왼쪽이 돈의문뉴타운 지구이다. 멀리 인왕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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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남동, 교북동과 함께 돈의문뉴타운 지구에 포함된 홍파동과 송월동은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방침에 따라 만들어진 동이다. 홍파동은 홍문동, 어수정동, 천변동 등이 통합된 동이다. 예전 기상대가 있었던 송월동은 송정동과 월암동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조선시대 이곳에는 천변동, 어수우물골, 워령바위골, 파발골, 홍문골 등의 자연마을이 있었다. 개천깨 또는 천변동이라 불렸던 마을은 돌다리가 있던 만초천 주변의 천변동네였다. 어수우물골은 우물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워령바위골에는 워령바위가 있었고, 파발골은 파발마가 드나들던 역참이 있던 동네다. 홍문골에는 나라에서 효자와 열녀에게 내렸던 붉은 문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돈의문(서대문)밖 오래된 동네가 있었던 돈의문뉴타운 지구 주변에는 유서 깊은 문화유적이 많다. 한양 내사산 가운데 하나인 인왕산 줄기가 남으로 뻗어 내린 이곳에는 한양도성이 인접해 있다. 홍파동에는 난파 홍영후(1898∼1941)가 1934년 재혼하여 세상을 뜨기까지 7년 가량 살았던 집이 있다. 홍파동 2번지에 위치한 홍난파 가옥은 구한말 항일정론을 펼쳤던 <대한매일신보> 사장 어네스트 베델(裵說, 1872∼1909)이 살았던 집터이기도 하다.

난파 홍영후 흉상과 홍난파 가옥. 홍난파는 1934년부터 7년가량 이곳에서 살았다.
▲ 홍난파 가옥 난파 홍영후 흉상과 홍난파 가옥. 홍난파는 1934년부터 7년가량 이곳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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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난파 가옥 옆에는 구세군영천교회가 있다. 이곳은 율곡 이이의 사당인 문성묘가 있던 자리다. 문성묘는 원래 황해도 벽성군에 있었으나 8·15 해방 직후 후손이 신주를 모시고 내려와 이곳에 사당을 짓고 신주를 봉안하였다. 그 뒤 구세군학교가 건립되면서 사당은 철거되고 지금은 표지석만 남아 있다.

구세군영천교회를 지나면 종로구 행촌동이다. 행촌동은 권율 장군이 살았던 동네다. 권율 장군 집터에는 오래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행촌동이라는 동명은 이 은행나무에서 유래했다. 권율 장군 집터 은행나무 옆에는 '딜쿠샤(DILKUSHA)'라는 이름의 낡고 오래된 이층집이 있다.

행촌동에 위치한 딜쿠샤. 힌두어로 이상향(행복한 마음)을 뜻하는 딜쿠샤는 앨버트 테일러가 1923년에 지었다.
▲ 행촌동 딜쿠샤 행촌동에 위치한 딜쿠샤. 힌두어로 이상향(행복한 마음)을 뜻하는 딜쿠샤는 앨버트 테일러가 1923년에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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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쿠샤는 힌두어로 이상향(행복한 마음)이라는 뜻이다. 이 집은 앨버트 테일러(Albert Wilder Taylor, 1875∼1948)가 1923년 지었다. 광산업과 무역업에 종사했던 앨버트 테일러는 AP통신의 통신원으로 활동하면서 3·1운동을 세계에 알린 인물이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1941년 앨버트 테일러 가족을 추방하자 이 집은 오랫동안 폐가로 방치되었다. 오랜 시간 이 집의 내력은 베일에 가려 있었다. 딜쿠샤에 대한 내력이 밝혀진 것은 2006년 2월이다. 앨버트 테일러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가 한국을 방문하면서 잊힌 이 집의 내력이 세상에 알려졌다.

법망은 인간의 탐욕을 가두지 못하고

돈의문뉴타운 지구에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면 한양도성(사적 제10호)의 경관이 위협받게 된다. 서울시는 오세훈 시장이 재임할 때부터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등재를 추진해 왔다. 2011년 예비 타당성 조사를 시작으로 2012년에는 전담부서인 한양도성도감을 설치하였다. 관련 연구소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도 구성하여 운영중이다.

지난해 12월에는 한양도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서울시는 올해 10월 25∼30일을 한양도성 주간을 선포하고 순성놀이, 달빛기행 등 시민들이 참여하는 다채로운 행사를 개최하였다.

포클레인을 동원하여 철거공사가 한창이다. 멀리 홍난파 가옥이 보인다.
▲ 철거공사 포클레인을 동원하여 철거공사가 한창이다. 멀리 홍난파 가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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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2016∼17년 한양도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활동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등재기준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진정성(Authenticity)' '완전성(Integrity)'이다. 세 가지의 등재기준에 기초한 세부 내용에는 '경관의 탁월한 사례'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 등의 항목이 있다. 이런 기준에 비춰 볼 때, 돈의문뉴타운 지구에 건설될 아파트 단지는 인왕산 자락의 한양도성을 에워싸는 불편한 존재이다.

문화재보호법과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한양도성을 보호하기 위한 건축행위 규제범위는 20∼50m 이내로 국한된다. 사정이 이러하니 한양도성과 인접한 지역의 사유지에 대한 공공적인 관리는 불가능하다. 결국 돈의문뉴타운 지구와 같은 노른자위 땅이 옛 정취를 간직한 동네로 남아 있기란 애당초 어려웠다는 이야기다. 어찌 이익을 좇는 인간의 탐욕을 법망과 제도로 가둘 수 있을까!

종로구 교북동, 60년 전통의 대성집

올봄부터 돈의문뉴타운 지구에 살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해 지금은 93%의 주민들이 이주했다. 대로변 상가들과 몇몇 부동산 사무실을 제외하면 이곳에 살던 주민들은 모두 이사를 간 셈이다. 시공사인 GS건설이 수백억 원의 이주비를 지급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지난 11월, 사람들이 떠나간 돈의문뉴타운 지구를 찾았다. 인적 없는 골목길에는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 마당에도 쓰레기가 수북했고, 골목 어귀에 버려진 포장마차는 더 없이 쓸쓸했다.

도가니탕이 주메뉴인 대성집. 해방 전부터 이 동네에서 장사를 해왔다고.
▲ 60년 원조 도가니탕 대성집 도가니탕이 주메뉴인 대성집. 해방 전부터 이 동네에서 장사를 해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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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문뉴타운 1지구인 교북동에는 지금도 영업 중인 60년 전통의 대성집이 있다. 한옥에 '슬라브' 지붕을 얹은 대성집의 주메뉴는 도가니탕. 안으로 들어서자 우려낸 도가니탕 국물만큼이나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대성집은 해방 전 이곳에서 문을 열었다고 한다. '60년 원조'라는 간판보다 더 오랜 시간 영업해 왔다. 처음 장사를 시작한 할머니는 오래 전 세상을 떠났고, 현재의 주인이 물려받아 30년 넘게 장사하고 있단다. 손님들 대부분은 10년 이상 된 단골들이라고. 이런 인연 때문에 대성집은 올 겨울에도 변함없이 이곳에서 손님을 맞고 있다.
 
오랜 시간 대성집은 이곳 주민들과 허기진 시절을 이겨왔다. 그러나 지난 11월 철거공사가 시작되면서 대성집의 운명은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이런 사정 때문이었을까. 어느덧 12월 중순이 된 지금, 대성집 앞 골목길이 한없이 쓸쓸하고 적막하게 느껴진다.

멀리 보이는 아파트들이 파괴된 동네의 미래 모습이다.
▲ 철거 공사가 한창인 돈의문뉴타운 지구 멀리 보이는 아파트들이 파괴된 동네의 미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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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돈의문뉴타운, #한양도성, #세계문화유산, #홍난파 가옥, #교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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