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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기... 수많은 부모들의 관심사입니다.
 독서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기... 수많은 부모들의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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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아이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나는 것은 거의 모든 부모님들의 꿈입니다. 부모님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받는 질문이 아이의 독서에 관한 질문입니다. 솔직히 아이의 책 읽기에 관해서 나는 벙어리 냉가슴을 앓았습니다. 아이들이 책을 안 읽고 다른 것을 좋아했거든요. 심지어 아이 엄마는 "당신은 독서 전문가이면서 아이들의 독서는 신경 쓰지 않는 거냐?"고 따져 물었을 정도입니다.

아무리 부모라고 하더라도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은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좋아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지금은 다행히 아이들이 책을 무척 좋아합니다. 자기 전에 한 사람이 다섯 권씩 가져와서 읽어달라고 하는 통에 아이 엄마는 즐거운 비명을 내지릅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책을 좋아할지는 몰랐거든요. 책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것 중 하나일 뿐입니다. 굳이 책을 사랑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책보다 장난감이 좋은 게 사실이니까요. 이 사실을 존중하면서 '책 읽기'를 자연스럽게 접근시켰습니다.

내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아이들이 책과의 첫인상을 망치는 일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운이 좋았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개입한 것은 거의 없습니다. 아이 엄마의 노력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내가 한 일이란 '기다리는 것'뿐이었습니다. 아이 엄마한테 잔소리 들으면서도 때를 기다리며 개입하지 않은 게 일이라면 일이었습니다.

아이 책 취향은 걱정하면서 정작 함께 읽지 않는 부모

아이의 독서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님들께는 영화 <타짜>에 나오는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마라"는 대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기 위해서 노력했던 부모님들 중에는 성공보다 실패했다는 분들이 더 많았습니다. 안 좋은 경우는 아이가 책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거부반응을 보이는 건 그나마 행복한 경우입니다. 부모가 아이의 반응을 알 수 있으니까요.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의 요구에 순종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숨깁니다. 부모는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줄 알고 만족합니다. 아이의 속마음은 대입 시험이 끝나고 나서 드러납니다. 책 읽기 싫어하는 청년으로 자라난 것이지요. 아이들의 독서를 고민하는 부모님들께 내가 자주 하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아이가 읽는 책을 함께 즐겨 읽으시나요?"

이 질문을 받은 부모님들은 급소를 찔린 것 같은 표정을 보이곤 합니다. 부모님은 아이의 독서습관과 책 읽기 취향을 걱정하면서, 정작 아이가 읽는 책에는 관심을 두고 함께 읽는 걸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느냐 좋아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가 바로 여기에 달려 있는데도 말이죠. 아이가 책을 좋아하기를 바라려면 부모는 책 읽기를 즐거워 해야 합니다.

공자가 말했다. "어떤 것을 깨닫는 것은 그것을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것은 즐거워하는 것만 못하다."(<논어> 6-18)

어느 정도 해야 '즐거웠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우리는 이른바 '액션 읽기'를 많이 했습니다. 책을 거의 행위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면서 아이들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콧구멍을 후비면>(애플비)이라는 책을 읽을 때는 과장된 몸짓으로 아이들에게 큰 동작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너덜너덜해지도록 읽었습니다.

<엄마가 화났다>(책읽는곰)를 읽을 때는 엄마 입에서 불이 나오는 장면에서 불길에 휩싸이는 모습을 연출하려고 둘째 민서를 마구 들었다가 휘감았습니다. 민서는 이렇게 읽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민서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좋습니다.

공자가 주역을 읽을 때 끈이 세 번이나 떨어진 '위편삼절(韋編三絶)'은 아이들과 그림책 읽을 때 매번 일어나는 일이어야 합니다. 나는 아이들이 예전에 함께 읽었던 책을 가져와서 읽어달라고 할 때 쾌감을 느낍니다. 아빠와 읽었던 시간이 재미있었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거든요. 이런 게 바로 '즐거움'이 아닐까 합니다.

마르셀 모스는 모든 물건에 사람의 영혼(hau)이 담겨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물건의 영혼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아이의 손길이 닿는 것을 사랑해주면 아이들을 사랑해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읽는 책, 자신의 장난감 등을 부모님이 사랑해주면 자신이 사랑을 받는다는 걸 느낍니다. 아이 하나만을 사랑하는 부모의 자세는 '외로운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것을 책에 적용하면 책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라날 수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책 읽어도 조심해야 할 것

책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라나게 하는 또 다른 방법은 '책을 읽지 않을 때'에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시경>의 시를 다 외운다 해도 그에게 정사를 맡겨 통달하지 못하고 사방에 사신으로 나가 혼자 응대하지 못한다면 비록 훌륭하다 칭송받은들 어디에 쓰겠는가?"(<논어>, 13-5)

부모님이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여러 번 읽고 즐겨 읽으면 책의 범위를 '일상 생활'까지 넓힐 수 있습니다. <칫솔맨, 도와줘요!>(책읽는곰)를 여러 번 읽으면 아이가 칫솔질을 하지 않으려고 할 때 칫솔맨과 치약맨 이야기를 하면서 충치 벌레들을 혼내주자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와 책을 읽는 부모가 가장 피해야 할 것은 '책을 읽을 때만 책을 읽는 것'입니다. 책을 읽지 않을 때 책 이야기를 이끌어내면 아이의 독서 세계는 책을 읽지 않는 일상의 세계까지 넓어집니다. 부모가 책의 이야기를 일상으로 확장해서 이야기하면 아이 역시 일상 생활 속에서 책 읽었던 내용을 끄집어내려고 노력합니다. 독서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자신이 읽는 책 속에 갇히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독서를 하는 목표입니다.

부모님들에게 아이 책 읽는 방법 등에 관해서 질문을 받을 때 나는 부모님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봅니다. 거의 모든 질문을 던질 때 상당수의 부모님들이 비슷한 표정을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번 아래의 말이 자신에게 해당하는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1. 책을 좀 읽었으면 좋겠는데 조바심이 나요.
2. 누가 속 시원하게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3. 아이에게 책 읽어주는 게 좋지만 힘이 드네요.
4. 누가 내 아이에게 맞는 믿을 만한 독서 목록을 제공해주면 좋겠어요.
5. 아이가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어요.
6. 그림책도 읽고, 자연관찰책도 읽고, 학습만화도 읽고, 아동문학도 읽고 골고루 다양하게 읽었으면 좋겠어요.
7. 내 아이가 책 읽는 태도와 습관이 마음에 안 들어요.
8. 아이가 책을 제대로 읽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위에 열거한 말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아이와 부모의 동상이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육과 책에 대한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결국 부모 자신이 걱정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면서 그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빠 힘내세요>라는 노래 가사가 이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죠.

딩동댕! 초인종 소리에 얼른 문을 열었더니,
그토록 기다리던 아빠가 문 앞에 서 계셨죠.
너무나 반가워 웃으며 '아빠' 하고 불렀는데,
어쩐지 오늘 아빠의 얼굴이 우울해 보이네요.
- 동요 <아빠! 힘내세요> 일부

세상에 걱정 없는 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부모의 걱정을 덜어주려고 신(神)은 아기를 보내주셨는데, 아기 때문에 부모가 더 걱정한다면 얼마나 슬프고 어처구니없는 일일까요? 부모가 아이 앞에서 걱정을 할 때 잃어버리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모님들, 여유를 가지세요

차라리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을 고민하는 건 어떨까요? 뭐 즐거운 일 없을까, 함께 즐길 만한 것이 없을까 생각하다 보면 아이가 바로 이 방면의 전문가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맹자>가 말하는 '즐거움'은 '아이와 함께' '가족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즐거움입니다.

제선왕이 맹자를 설궁에서 만났다. 왕이 말했다. "현명한 사람도 이러한 즐거움이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있습니다. 현명한 사람이 그런 즐거움을 얻지 못하면, 그 임금을 비난할 것입니다. 그런 즐거움을 얻지 못한다고 그 임금을 비난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백성의 부모가 되어, 백성들과 즐거움을 함께 하지 않는 것도 잘못입니다. 백성의 즐거움을 즐거워하면, 백성도 그(왕)의 즐거움을 즐거워합니다. 백성의 근심을 근심하면, 그(왕)의 근심을 근심합니다. 천하와 더불어 즐거워하고, 천하와 더불어 근심하면, 그러한데도 왕다운 왕이 되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맹자>, 2-4)

그러니까 부모의 걱정을 아이가 걱정하게 하는 게 아니라, 부모가 아이의 걱정을 함께 걱정하고, 아이의 즐거움을 함께 즐거워하는 것에서부터 행복이 시작됩니다. 이렇게 해야만 아이들에게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노력을 많이 하는 것은 바깥에서 얻어 온 걱정과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아이들 앞에 가져오지 않는 것입니다.

아이들과 병원 놀이를 하거나 목욕을 할 때는 온전히 거기에만 집중합니다. 이기적인 말이지만, 그렇게 해야만 내가 온전히 힘을 받을 수 있거든요. 아이와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뭘까요?

자하가 물었다. "'방긋 웃는 사랑스러운 입술 반짝반짝 아름다운 눈매, 흰 바탕에 수놓은 듯!' 이 <시경>의 노래는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 다음이라는 뜻이다."(<논어> 3-8 일부)

이제 아이 앞에서 왜 리셋(reset)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 분명해졌죠? 나는 칭찬놀이를 집중적으로 하면서 부모님들이 아이에 대한 시선 자체를 바꾸는 일을 해왔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내는 데 상당히 효과가 있죠. 아이들이 한 말이나 손짓, 그리고 표정 하나하나가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부모의 여유로운 눈빛'이 필수적입니다. 걱정할수록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놓치죠.

아이와 완전히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는 심정으로 이제까지 보지 않았던 것을 보려고 해보세요. 시도를 하는 순간 이미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부모의 감았던 눈을 뜨는 게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덧붙이는 글 | 블로그와 페이스북에도 올렸습니다.



태그:#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동양철학으로 육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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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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