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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남 언론노조 위원장(왼쪽)이 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앞에서 '언론장악 중단' '해직언론인 복직' '공정보도 보장' '공영방송 독립보장' 등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 언론노조 농성 "언론장악 중단! 해직언론인 복직!" 강성남 언론노조 위원장(왼쪽)이 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앞에서 '언론장악 중단' '해직언론인 복직' '공정보도 보장' '공영방송 독립보장' 등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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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최저기온이 2도로 떨어지고 미세먼지 농도가 196㎍/㎥(평상시55㎍/㎥)까지 치솟은 5일 오전, 그는 아스팔트 바닥 위에 앉아있었다. '공정방송 보장'과 '해직언론인 복직'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농성에 돌입한 지 열흘 째다. 원래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작했지만 지난 2일 청와대와 가까운 광화문 프레스센터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쌀쌀하고 먼지 많은 날씨보다 그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정부를 향한 일말의 기대가 무너지면서 찾아온 상실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언론정상화'를 약속해왔지만, 현재까지 이뤄진 건 하나도 없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우리를 이용했다, 사기당한 기분"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가 무기한 농성에 나선 이유다. 그는 강성남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이다.

"여당 위원, '청와대서 아무 말 없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30일, 당시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방송·통신인들과 만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심도있게 논의할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여 실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공영방송 이사회가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균형있게 반영하고, 사장 선출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박 대통령의 유일한 언론 관련 공약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 불거진 문제점 중 하나는 '언론장악'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대선캠프에서 활동하거나 친이계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방송사 사장으로 임명되면서 '낙하산' 파문이 일었고, 정부·여당 추천이 다수인 이사회 구조가 정권 편향적인 뉴스를 만들어 낸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언론장악 불만이 쌓이자 결국 2012년에는 언론사 총파업이 장기간 지속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30일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서울 상암동 중소기업 DMC타워에서 열린 '100만 정보·방송·통신인과 함께하는 초청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30일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서울 상암동 중소기업 DMC타워에서 열린 '100만 정보·방송·통신인과 함께하는 초청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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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방안이 거론된 것도 이때부터다. "그때 야당은 물론 박 대통령이 속한 새누리당에서도 방송 독립성을 위해 사장 선임 제도와 이사회 구성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강 위원장은 설명했다.

"우리나라 공영방송은 정권의 홍보도구 역할을 너무 오랫동안 해왔다. 사장 추천이나 임명이 매번 정권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홍보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이뤄졌다. 특히 MB정권 언론계 인사들은 공영방송을 국정 홍보도구로 인식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권력자를 공영방송으로부터 절연시키는 방법을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게 지배구조 개선안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4월, 국회에서 방송공정성특별위원회가 꾸려졌다. 정부조직법 개정을 위한 여야 협상의 과정에서 탄생한 '6개월 한시 기구'이지만, 방송사 지배구조 개선안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목이 집중됐다.

핵심 의제는 '사장선임 특별다수제'와 '여야 추천 이사 몫 조정'. 이사회 재적 과반이 아니라 3분의 2의 동의로 공영방송 사장을 선임하는 것과, 정부·여당 추천이 다수인 이사회 비율을 조정하는 내용이다. 강 위원장은 "여당의 많은 의원들도 두 가지 안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했다"며 "정치와 언론은 절연관계여야 한다고 말한 의원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방송공정성특위는 활동기한이 2개월 더 연장됐는데도 불구하고 사실상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마지막 전체회의였던 지난달 28일, 사장선임 특별다수제와 여야 추천 이사 몫 조정은 새누리당 특위 위원들의 반대로 불발됐다. 강 위원장은 "청와대 때문에 무산된 것"이라고 봤다.

"한 여당 위원이 그랬어요. '청와대에서 아무런 얘기가 없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요. 저쪽(청와대)에서 말이 없다는 걸 '하지 말라'는 뜻으로 판단하는 거예요. 오로지 사인이 없기 때문에."

그는 "다른 공약도 다 파기하는 걸로 봤을 때, 애초부터 할 마음에 없었다"며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 진정성 없는 공약을 남발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해직언론인 문제 얘기하자'던 박근혜 정부, 지금은?

박근혜 정부가 언론인들과의 약속을 저버린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박 대통령이 당선인이었던 지난 2월 14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언론노조와 만나 해직언론인 복직 문제를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은 "공정한 보도를 위한 일임에도 그간 발생한 (해직) 문제들은 매우 불행한 일이며 하루빨리 해소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무창구를 정해 해고·징계자 문제를 두고 논의를 진행키로 합의했다. 그 이후로는 어떻게 됐을까.

"적어도 박근혜 정부에 들어 해직언론인 문제는 해결될 줄 알았는데, 결국 언론노조는 박근혜 정부에게 사기당하고 이용당한 거나 다름없다"
 "적어도 박근혜 정부에 들어 해직언론인 문제는 해결될 줄 알았는데, 결국 언론노조는 박근혜 정부에게 사기당하고 이용당한 거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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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직언론인 복직 논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인수위 시절에 대통합위에서 실무관계자가 찾아왔다. '해고자복직 문제를 얘기해봐야 되지 않겠냐'고 했다. 우리야 당연히 그런 제안이 좋았다. 당시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 때인데, 곧바로 대통합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정부 출범하고 나서는 별 진전 없이 시간만 끌었다. 바쁜가보다 싶었다. 정부조직이 개편되고 나니까 대통합위 실무진이 또 찾아왔다. 내가 언론노조 위원장을 맡기 시작한 때였다. 실무진은 '해직언론인 문제를 이슈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양쪽은 언론노조와 정부 역할을 구분해 자세히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서 한광옥 위원장이랑 해직언론인들이 7월 30일에 만난 거다.  

그리고는 여태 아무 소식이 없다. 한번은 <국민일보> 기자가 황당하다면서 나한테 해준 말이 있다. 한광옥 위원장이 자기 회사랑 인터뷰하면서 '언론노조가 찾아와 하도 (해직언론인들을) 봐달라고 해서 봐준 거다'라고 말했다는 거다(<국민일보>는 지난 9월 14일 한 위원장 인터뷰 기사를 보도했다. 당시 기사에는 이러한 발언 내용이 없다. 한 위원장의 보좌관은 6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그쪽(언론노조)에서 만나자는 제안이 있어서 해직언론인들을 만났다"며 "누가 먼저 만나자고 한 건 중요치 않다"고 말했다 - 기자 주). 정부는 결국 자기 조직 역할을 돋보이게 하려고 해직기자를 이용했다."

강 위원장은 "적어도 박근혜 정부에 들어 해직언론인 문제는 해결될 줄 알았는데, 결국 언론노조는 박근혜 정부에게 사기당하고 이용당한 거나 다름없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정부는 내년 종편 재승인 심사를 엄격하게 한다고 말은 하는데, 그것마저도 말과 다르게 정치적 판단에 따라 진행할까봐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시청자들이 JTBC <9시뉴스>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가 거리로 나서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망가진" 공영방송 뉴스 보도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3월 4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방송장악을 할 생각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고 말했지만, 이상하게도 요즘 KBS·MBC 저녁뉴스에서는 현 정권과 무관치 않은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사건 보도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다. 반면, 대통령 동정 소식은 끊이지 않는다. 지난 국정감사 때는 KBS가 거의 하루에 한 번 꼴로 박 대통령 관련 보도를 한 것으로 드러나 '땡박뉴스'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사회적 약자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 불의·부패와 관련된 사안이 9시 뉴스에 나오는 게 정말 중요하다. 그게 바로 '정상'적인 언론보도다."
 "사회적 약자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 불의·부패와 관련된 사안이 9시 뉴스에 나오는 게 정말 중요하다. 그게 바로 '정상'적인 언론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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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서울신문>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언론보도의 흐름을 지켜본 강 위원장은 "전두환 정권 이후로 대통령 동정보도가 많이 줄어들어 뉴스 뒤편에 잠깐 나오는 수준이었고,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는 오히려 동정보다는 대통령이 이슈를 만들어 내 뉴스에 자주 등장했던 기억"이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은 동정 보도가 적었는지 스스로 라디오에 출연했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유독 '일방통행'식의 동정 보도가 많은데, 그만큼 민주적 수준이 낮아진 게 아닌가 싶다"며 "지금 정권이 MB 정권 때보다 더 언론장악 문제가 심각하다 느낀다"고 말했다.

또한 최근 언론계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는 JTBC <9시뉴스>(손석희 앵커 진행)를 언급하며 "JTBC가 특별히 잘하기 보다는 정상적인 보도를 하니까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것"이라며 "언론 소비자들이 여전히 '공정한' 뉴스보도를 원한다는 걸 명확히 알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언론노조가 무기한 농성을 통해 박근혜 정부에 요구하는 것 역시 '언론정상화'라고 강조했다.

"공영방송 저녁 메인뉴스에서 사회적 이슈 보도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 언론정상화라고 생각한다. 대통령 동정뉴스가 많이 나온다? 기분은 나쁘지만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보도 말미에 깔아주면 된다. 사회적 약자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 불의·부패와 관련된 사안이 9시 뉴스에 나오는 게 정말 중요하다. 그게 바로 '정상'적인 언론보도다."


태그:#강성남, #언론노조, #박근혜, #공정방송, #대선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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