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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가을에 닭장 지붕위에서 늙어가던 호박
 올가을에 닭장 지붕위에서 늙어가던 호박
ⓒ 강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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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63년생 베이비붐 세대로, 되돌아 보건대 격동의 세월을 겪고 살았다. 1970년대 초등학교 앞에서 연탄불 피워놓고 설탕을 국자에 녹여 설탕뽑기 장사하던 할아버지 옆에 옹기종기 앉아서 설탕을 녹이던 추억이 있다.

1970년 진주로 유학하여 자취생활을 하며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어머니께서 한 달에 10만원을 부쳐주시면 4만 원 월세내고, 한 달 연탄값 2만 몇천 원 들고, 4만 원으로 학용품과 도시락 반찬으로 달걀과 오뎅을 살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나마 그것도 가세가 기울어 어머니가 부쳐주던 돈이 끊겨서 월세도 못내고 도시락 반찬은 늘 김치를 식용유에 볶아 넣어가던 시간이었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영양실조 때문인지 눈앞이 어지럽고 머리가 멍하니 핑그르 돌았다.

  시골집 아궁이에 불을 지펴 은박지에 산 군고구마를 굽는다
 시골집 아궁이에 불을 지펴 은박지에 산 군고구마를 굽는다
ⓒ 강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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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시절 어느날 방과 후에 자취집에 왔더니 집주인 아주머니께서 "학생 전라도에 빨갱이들이 나타나서 지금 국군이 출두했다"는 소리를 들고 전쟁이 나면 어떡하지 두려움에 떨던 그때였다.

1982년에 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했다. 노동에 의존하던 당시 농촌의 열악한 생활을 벗어나고 싶어 할머니의 만류도 뿌리치고 서울로 상경하여 1980년대를 보냈다. 그후에 도시의 문화에 이질감을 느껴 23살 나이에 선교원에 들어가서 무의탁 노인들을 돌보면서 외국 수녀들과 함께 2년 동안 생활했다. 그리고 결혼하여 아이들을 출산하고 자식 키우는 보람으로 살아왔다.

  한여름시골집 텃밭에서 귀촌의 행복을 느낀다.
 한여름시골집 텃밭에서 귀촌의 행복을 느낀다.
ⓒ 강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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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의 도시생활 끝에 귀촌을 결심하고 이 길이 내가 살길이라 생각하고 고향같은 농촌으로 돌아왔다. 농촌에서 아이들과 나의 제2의 인생을 살기위해 치열하게 사는 동안
다행히 지인의 소개로 인근 농업기관에서 사무보조요원으로 컴퓨터 업무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을 얻었다. 농촌에서 텃밭농사 지어 먹거리를 자족자급해서 살아서 그런지 생활비가 도시에서보다 훨씬 적게 들어간다. 지금 내가 다니는 사무실은 올해 2년 만기계약을 끝으로 완료가 된다.

다행히 노동법이 개선되어 180일 이상 고용보험내는 직장에 다니면 3달은 생계비를 받을 수 있다. 한겨울 동안 3달은 다달이 생활비가 나올 것이고, 김장 충분하고, 쌀 사고 겨울은 거뜬히 날 수 있다.

시골집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가마솥에 물이 끓어 오르면서 김이난다
 시골집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가마솥에 물이 끓어 오르면서 김이난다
ⓒ 강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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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아파트 생활만 하다가 귀촌 후에 기름난방인 시골집이 너무 추웠다. 기름 한 드럼 30만 원으로 한 달을 지내면 15도로 실내온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구들방을 만들어 아궁이에 나무로 불을 지피고 살았는데 외풍이 얼마나 센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추웠다.

귀촌 첫 해에는 작은 아이가 손에 동상이 걸려서 퉁퉁 부어서 벌겋게 달아 있는 것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 아직 기초수급자에 속하지도 않고 남한테 돈빌리러 가지 않고 살아 왔을 정도로 경제적인 면에선 꼼꼼히 챙기는 편이라, 검소한 생활의 실천이 조금은 불편한 생활이 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는 본인 명의로 집과 토지 그리고 중형차가 있으면 차상위 계층이라도 기초수급대상에서  제외된다. 아직 정부 돈 공짜로 타먹은 적이 없는 것이 다행스런 일인지 모르나 어쨌든 남한테 돈 빌리고 살기 싫어서 검소하게 살고 있다. 그래도 나는 겨울에 감기한번 안 걸리고 용케 잘 견딘다.

   겨울에 불지피는 아궁이 옆에서 강아지랑 노는 아이
 겨울에 불지피는 아궁이 옆에서 강아지랑 노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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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전쟁 이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들이 삶에 몸부림이 밴 상처를 고스란히 견디어 낸 이야기들을 보면 마음이 뭉클하다. 흔히 베이비붐 세대는 자기 부모를 마지막으로 돌보고 자식들에게 처음으로 버림받는 세대라고 종종 말한다. 아이들이 점점 자라고 있는데 정말 노후를 위해 부지런히 살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베이비붐 세대에 나도 속한다.

다행히도 올해는 귀농·귀촌 상담사일을 하며 베이비붐 세대 예비 귀농·귀촌인들을 만나면서 애틋한 연민의 정도 느꼈다. 부모들을 보내고 자식들을 위해 뒷바라지 하고 남은 종자돈으로 고향같은 농촌을 찾는 그들. 안정적으로 농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나름대로 맞춤식 심층 귀농 상담도하고 함께 귀농지도 적극 찾아나서는 시간도 가졌다.

   눈내린 시골집에 염소 한마리가 감나무아래 서있다.
 눈내린 시골집에 염소 한마리가 감나무아래 서있다.
ⓒ 강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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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 3개월 동안은 아무 근심걱정 없이 삶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시골집앞 텃밭에 하얗게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나에게 삶의 찬가를 불러주고 싶다. 너는 삶의 폭풍 속에서 정말 치열한 삶을 견디며 여기까지 왔노라고.

올해는 다행히도 연탄보일러를 놓아서 하루에 연탄 8장이면 제법 따뜻한 겨울이 될 것같다. 조금은 따뜻한 집에서 돼지감자도 썰어 말리고 늙은 호박을 잡아 집안에서 주렁주렁 걸어 말리고 있다. 집 안에 들어서면 훈훈한 공기와 향긋한 호박 냄새가 참 좋다.

한겨울의 혹한 추위를 느껴본 사람은 비록 아침저녁으로 연탄불을 갈아주는 수고로움을 치르더라도 연탄 한 장에 500원 짜리 8장, 4000원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안다.

 한겨울에 늙은호박을 톱질하여 토끼들에게 준다
 한겨울에 늙은호박을 톱질하여 토끼들에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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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저녁 따뜻한 이불 속에서 잠들기 위해 3시간 동안 아궁이 앞에 앉아서 불을 지피며 하늘 높이 날아가는 새떼들의 처절한 울음소리를 들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시린 겨울하늘 높이 질서를 지키며 남쪽으로 날아가는 그들도 삶의 질서를 따른다는 것을.

밖의 온도가 낮을수록 아궁이 앞의 활활 타오르는 불이 더 따스하게 느껴지는 것은 체감온도 차이다. 시골집 마당 한귀퉁이에서 반쪽자리 지붕 아래서 벽돌 몇 장 의지하고 오손도손 살아가는 살아가는 토끼, 닭 가족들도 있다. 암탉품에서 깨어난 병아리는 평생 그 어미만 따라 다니는 모습을 보면 '닭대가리'라고 말하지 않을것이다. 강아지들이 아침 햇살 양지바른 쪽에 모여 앉아서 햇살을 쬐는 모습을 보면 사람만큼 편하게 사는 생명체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집에 오리가 낳아준오리알을 아궁이 숯불에 구워먹는다.
 우리집에 오리가 낳아준오리알을 아궁이 숯불에 구워먹는다.
ⓒ 강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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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좋은 농촌에서 텃밭에 채소 길러먹고 인근에 일자리 하나 얻어서 생활비 벌어 더 이상 욕심을 내지 않고 살고 싶다. 언제부터인가 고등학교에 들어간 딸아이가 엄마의 귀촌 영향인지 타샤 튜더처럼 살고 싶다고 한다.

행복의 척도는 물질에만 있는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함께 할 때 마음이 비워지고 욕심이 사라져 편안해짐을 알게되었다. 올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봄이 오면 작은 일자리 하나 마련 했으면 그만이겠다.


태그:#베이비붐세대의 먹고사니즘, #행복의 기준, #게약직, #나의 청소년시절, #자연인으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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