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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금하게 리모델링공사를 마쳤다고 한다. 중국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깨끗하고 아름답다. 아기자기한 것은 일본과 흡사하다.
▲ 대만공항 깔금하게 리모델링공사를 마쳤다고 한다. 중국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깨끗하고 아름답다. 아기자기한 것은 일본과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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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6일부터 29일까지 대만 출장이 잡혔다. 대만은 처음. 내게 가깝고도 먼 나라는 일본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출장이 결정되자 1992년 우리나라가 대만과 단교를 해버린 사건이 떠올랐다. 그래도 꿋꿋이 싱가포르, 홍콩과 함께 아시아의 강소국임을 자부하는 대만,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한 나라였다.

출장을 가기 직전 읽었던 책이 있다. 11월 23일자 기사 <원전 사고는 원전 개수와 비례... 그렇다면 한국은?>에도 소개했던 김익중 교수의 저서, <한국탈핵>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김익중 교수가 모니터링한 나라들 중엔 이 사고를 계기로 이른바 '탈핵'을 결정한 나라들이 있다.

독일,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 등이 그 나라들인데, 이어서 탈핵을 선언한 것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탈핵을 결심한 나라로 대만을 소개하고 있다. 김 교수의 설명을 더하면, 대만은 탈핵을 직접적으로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신규로 원전을 짓지 않기로 결정했고 또, 기존에 있는 원전을 사용하지만 정해진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사실상 탈핵국가로 본 것이다.

그래서 출장을 가는 김에 대만전력공사(아래, 타이파워)를 찾아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 담당자를 만나 인터뷰를 하기로 결심했다. 일도 보고 인터뷰도 해보는 것. 도랑치고 가재잡기다. 과정이 쉽지 않았다. 출장 업무에 필요한 것들을 하면서 알아보려니 녹록하지 않았던 것이다. 안 그래도 바쁜 우리 회사 중국 담당 직원의 눈치를 봐가면서 통역을 부탁했다.

대만 출장을 가기 전에 일단, 타이파워의 담당자를 찾는 게 일이었다. 처음엔 호 과장이라는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대만전력 홍보과로 연락하라고 했다. 25일 내가 <한국탈핵>에 대해 쓴 기사를 요약해서 보내주고, 질문지를 작성해 타이파워로 보내 담당자와 통화를 시도했다. 질문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가동 중인 핵발전소의 개수와 핵폐기물 현황, 그리고 재생에너지와 관련한 질문 등이었다. 이메일로 답변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허탈했다. 담당자 왈, '이메일로 답변을 했으니 인터뷰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귀국하는 날 일찌감치 타이파워로 가서 부딪혀 보기로 했다.

대만은 우리나라의 경상도만 한 크기라고 한다. 섬 전체의 모양을 보니 위아래로 길쭉하다. 수도 타이페이(台北)는 북단에 위치해 있고, 타오위안(桃園)공항은 그 보다 중북부에 위치해 있다. 내 출장의 본 목적지는 주로 남단으로 핑동(屛東)과 카오슝이란 지역인데, 우리나라로 치자면 남해와 부산쯤이 된다.

대만공항에서 중남부의 주오잉까지 가는 내내 송전탑이 이어져 있다. 북단과 남단에 위치한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력을 보내는 송전선로로 생각된다.
▲ 대만을 종단하는 송전탑 행렬 대만공항에서 중남부의 주오잉까지 가는 내내 송전탑이 이어져 있다. 북단과 남단에 위치한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력을 보내는 송전선로로 생각된다.
ⓒ 정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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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파워가 위치한 곳은 수도 타이페이다. 섬 전체를 종단하는 고속철이 있어서 교통은 편리한 편이다. 29일 타오위안 공항을 지나 타이페이 기차역에서 내린 나와 중국어를 하는 직원은 택시를 타고 타이파워로 돌진했다. 담당직원 정아무개씨는 자신을 타이파워에서 12년째 근무하고 있으며, 나이는 삼십대 후반의 엔지니어라고만 했다(한참의 실랑이 끝에 사진촬영, 대화녹음 등을 하지 않기로 하고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타이빼이 한가운데 삼십층짜리 황색 건물이 위용을 자랑한다.
▲ 대만전력공사입구 타이빼이 한가운데 삼십층짜리 황색 건물이 위용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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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인터뷰 내용이다.

- 현재 핵발전소는 몇 기가 가동 중인지.
"현재 발전소 3곳이 운영 중이며, 각각 2기씩 가동 중이다. 발전방식은 비등형 4기, 가압형 2기이다. 위치는 섬의 최북단에 4기가 최남단에 2기가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최북단에 2기가 건설 중에 있다."

- 신규원전을 포기하고 기존에 사용 중인 핵발전소의 수명연장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대만정부가 2년 전 발표한 에너지 정책은 합리적인 방법으로 국제적인 수준의 탄소배출 저감을 달성한다는 전제하에, 핵안전, 핵감축, 그린에너지를 통한 탄소저감 환경을 조성하여 점차적으로 비핵화를 이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제를 다시 설명하자면, 첫째, 전기가 끊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 둘째, 핵발전을 하지 않고서도 탄소감축조약에 위배되지 않아야 한다. 셋째, 전기세가 인상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 대만도 지진에서 자유롭지 않은 국가로 알고 있다. 그리고 원전 6기는 국가 규모로 볼 때 원전 밀집도가 높다고 생각된다. 사고 위험에 대해 고려하고 있는지.

"후쿠시마 사고 직전 안전검사를 마쳤다. 원전의 수명은 40년인데(김익중 교수가 주장하는 원전수명 30년과는 십 년이나 차이가 난다), 추가로 20년을 더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는 물론, 원전의 기계설비를 검토한 것이었다. 대만의 지진연구소는 76년부터 진앙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원전에 영향을 미칠 만큼의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관리할 것이다."

정씨는 덧붙이는 설명에서, 미국의 경우 핵발전소의 80퍼센트를 수명연장 해도 좋다고 하는, 국제기구인 NRC의 비준을 받았다고 한다. NRC는 미국원자력규제위원회다.

- 핵발전으로 국가 전체 필요전력의 몇 퍼센트를 감당하고 있는지.
"2012년 기준 대만 총 발전량은 221.7TWh인데 이중 원자력 발전량은 18.4%를 차지한다. 화력발전이 73.4퍼센트를 감당하고 있다."

- 핵발전을 중단할 경우 부족한 전력은 어떻게 감당할 예정인지.
"현재 화력발전소를 리뉴얼하거나 새로 확충해서 사용하는 방안으로 나날이 증가하는 전기수요량을 메우고 있다. 앞으로 발전량 부족이 현실화된다면, 대만에너지정책(탄소배출저감) 전제에 따라 공장리뉴얼(license renewal), 민영발전소 개방 등의 방법으로 필요 전기수요를 충당할 계획이다."

가지고 간 책과 질문지 등을 펴놓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엔지니어 정씨가 잠깐 자리를 비운 틈에 찍었다. 시간이 없다던 정씨는 펜으로 써가며 친절하게 설명한다.
▲ 인터뷰현장 가지고 간 책과 질문지 등을 펴놓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엔지니어 정씨가 잠깐 자리를 비운 틈에 찍었다. 시간이 없다던 정씨는 펜으로 써가며 친절하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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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재생에너지 비율은 얼마나 되는가.
"풍력, 태양광 에너지 발전이 약 0.77퍼센트, 수력발전이 약 2.6퍼센트로 총 3.4퍼센트 정도다. 2030년까지 수력, 풍역, 태양광, 조력, 지열 등의 재생에너지 비율을 9.5퍼센트로 늘릴 계획을 가지고 있다."

김익중 교수는 태양광 발전을 권장하는 가장 대표적인 정책적 수단이 바로 발전차액지원제도(FIT)라고 한다. 이 제도에 대해 물었더니 대만에는 이 제도가 있다고 한다.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나라는 이명박 정권 때 폐지되었다는 말을 못했다. 창피해서.

- 현재 전기료는 얼만가.
"2012년 2.72NTD/kWh, 2013년 3.15NTD/kWh(10월 조정 이후)다."

3.15NTD는 원화로 100원 정도이니 우리나라 주택용 전기료 기본요금이 410원/kWh임을 감안하면, 전기료가 우리나라보다 매우 싼 것으로 생각된다.

- 현재 원전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국가에서 어떤 혜택이나 이익을 주고 있는지.
"타이파워는 '전력발전협조기금'을 마련, 핵발전소 건설 예정지와 이미 운영 중인 지역과 그 인근의 시, 군, 구에 지급하여 다음의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1. 원전 지역주민, 그리고 공공시설의 탄소저감과 에너지 절약대책 마련자금, 생활비, 건강보험료, 취학아동 급식비, 주민의료보험료, 고학생학비 보조금 등 복지관련 2. 원전 주변지역의 공공건설 계획, 건설, 임대, 보수와 운영 3. 원전 주변지역의 전력개발, 발전시설의 건설과 지방복지증진관련."

- 공무원으로서 핵발전소에 대한 개인적으로 또는 타이파워의 직원으로서 가지고 있는 생각은?

"대만은 에너지 자원의 98%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에너지 자원의 부족은 국가적 안전을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다. 핵발전을 포기하면 당장 신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로 전력부족을 메울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핵발전을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원은 액화천연가스와 석탄발전이 유력하다.

이들은 고비용이고, 탄소배출량도 핵발전보다 훨씬 많다. 따라서 이들의 비중이 커지면 대만기업의 생산원가 증가로 이어져 세계시장에서의 대만제품 경쟁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즉각적으로 핵발전을 포기한 일본과 독일의 선례를 보더라도 대만은 바로 핵발전을 중단하는 것이 적합지 않다고 본다."

WHO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발표에 따르면, 방사능에 의한 사망자는 0명이다. 더군다나 방사능은 자연상태에서도 존재한다. 정씨는 우리가 먹는 바나나, 자주 타는 비행기, 병원의 X선 등을 예로 든다.

미국국립과학아카데미와 IAEA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는 피폭량과 암은 정비례하며 아무리 적은 양의 방사능도 암 발생 확률을 증가시킨다는 연구결과를 내 놓았다고 한다.
▲ 방사선에 의한 피폭량과 암 발생의 관계 미국국립과학아카데미와 IAEA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는 피폭량과 암은 정비례하며 아무리 적은 양의 방사능도 암 발생 확률을 증가시킨다는 연구결과를 내 놓았다고 한다.
ⓒ 미국국립과학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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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중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원전사고(5급이상)는 우리나라 남한 크기의 땅을 고농도로 오염시킬 수 있다고 한다. 또 김 교수는 국립과학아카데미와 IAEA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의 보고서를 예로 들면서 두 기관은 방사능 피폭량과 암발생은 비례한다는 선형무역치모델이 옳다고 소개하고 있다. 즉, 방사능 피폭량에 관계없이 피폭당하는 순간부터 신체는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 신규원전 포기와 수명연장 포기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어떤지.
"현재 대만 북단에 롱먼 핵발전소(2개 기)기 건설 중이다. 대만 국회는 이 발전소 건설을 중지할지 여부를 국민투표를 통해서 결정하려고 입안 중이다. 국민투표가 실시되면 투표권을 가진 국민들이 롱먼핵발전소의 존폐여부에 대해 견해를 밝힘은 물론, 미래의 생활환경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 대만의 핵폐기물 처리현황이 궁금하다.
"핵발전 운영으로 생기는 폐기물은 하급폐기물과 주요폐기물로 구분된다. 고급폐기물은 SPENT FUEL을 말하는데(김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고준위핵폐기물에 해당함), 현재 각 발전소의 FUEL POOL에 저장 중이다. 앞으로, 제 1, 2 발전소의 SPENT FUEL은 발전소 내에서 각각 건식저장(DRY STORAGE)될 예정이다."

또한 대만은 SPENT FUEL의 최종처리를 위해, 2055년까지 중요핵발전폐기물(고준위핵폐기물)의 최종처리장을 완성할 계획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는 요청에, 정씨는 바로 설명한다. 2017년까지 전국의 지역을 조사해서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지역을 목록화 할 것이며, 2038년까지는 적합한 지역을 선정할 것이라고 한다. 동시에 국제협조를 통한 재처리 혹은 최종처리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하급핵발전폐기물(중저준위핵폐기물)은 SPENT FUEL을 제외한 나머지 폐기물을 말하는데, 현재 각 발전소에서 생산된 폐기물은 대부분이 발전소 폐료창고에 저장되어 있고 소량이 타이동현에 있는 란위 섬에 저장되어 있다. 현재 하급핵발전폐기물의 최종폐기장으로는 타이동현의 달인과 금문현의 우구 두 곳이 거론되고 있는데 두 후보지에서 법률에 의거하여 소재지 주민들이 유치에 대한 찬반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제한된 시간만 짧게 하기로 한 인터뷰는 약 한 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자신을 밝히기 꺼려하던 엔지니어 정아무개씨는 내가 명함을 건네자, "사업하시는 분이네요?" 한다. '일이나 잘 하지 뭐 하러 예까지 왔느냐'는 표정이 역력했다.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는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다소 풀리는 듯 싶더니 나중에는 경직된 표정도 풀어버렸다. 나와 같은 일반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원전에 대한 진지한 걱정에 대해 오히려 자신의 해박한 지식(?)으로 위로하기까지 했다.

인터뷰 중 전체적으로 느낀 것은 대만의 '타이파워'도 결국은 원전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원전은 손쉽게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깨끗하고 안전한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폐기물도 연구해서 잘 버리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짓고 있는 발전소를 국민투표에 부쳐 폐기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점, 그리고 핵폐기물을 처리하는 과정 또한 공개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점,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10퍼센트 가까이 늘이려고 하고 있으며, 발전차액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점 등에서 대만의 핵발전은 그래도 미래를 염려하는 수준은 된다는 판단이 섰다.

정씨에게 한국으로 돌아가면 책, <한국탈핵>을 한 권 보낼 테니 읽어보겠냐는 질문에 번역해서라도 꼭 읽어보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 대만에도 원전에 반대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 책 금방 번역되서 여기서도 출판되겠는데요. 하하" 한다. 대만도 원전밀집도가 우리만큼 상당한 편이니 책을 읽고 나서도 정씨가 웃을 수 있을까.


태그:#한국탈핵, #김익중, #엔지니어 정씨, #대만전력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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