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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26일 오후 6시]

철도 민영화 의혹을 사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GPA) 개정 의정서 비준을 박근혜 대통령이 이미 지난 15일 재가한 것이 뒤늦게 드러났다. 이에 대해 국회는 까맣게 모르고 있어, '밀실 비준' 논란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GPA 개정 의정서가 처리될 경우 세계무역협정 가입 국가는 국내 철도 산업·정부조달사업에 국내 기업과 똑같은 조건에서 참여할 수 있어, '철도 민영화' 수순 밟기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이어지고 있다.

야권은 GPA 개정 의정서에 대해, 헌법과 통상절차법에 따라 국회 비준을 거쳐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이 같은 목소리를 묵살했다.

지난 4일 프랑스를 방문한 박 대통령은 "WTO 정부조달 협정 개정 의정서가 비준되면 도시 철도 등 한국의 공공조달 시장이 개방될 것"이라고 밝히며 GPA 개정안 처리를 공론화 한 바 있다. 바로 다음 날인 5일, 정부는 GPA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해버렸다. 이를 뒤늦게 안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3일 "GPA는 철도 민영화를 허용하기 때문에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운다"며 "국회 비준 동의가 필요함에도 슬그머니 넘어갔다, 국회를 무력화 시키겠다는 의도"라고 힐난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여기서 더 나아가 15일 GPA 개정 의정서 비준을 재가했다. 모든 것은 '박근혜 대통령' 뜻대로 진행된 셈이다.

"통상조약 기습처리, 명백한 법 위반"

프랑스를 방문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오전 프랑스기업연합회(MEDEF)에서 열린 한-프 경제인 간담회에 참석, 프랑스어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프랑스를 방문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오전 프랑스기업연합회(MEDEF)에서 열린 한-프 경제인 간담회에 참석, 프랑스어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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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의 재가 사실이 알려진 26일, 민주당과 정의당 의원들은 강력히 반발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이하 산통위) 야당 간사인 오영식 민주당 의원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입법사항에 준하는 통상조약을 국민 대표 기관인 국회에 보고도 않고 기습처리한 건 불법행위"라며 "박 대통령의 재가 처리 역시 법 위반에 해당되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보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오 의원은 "정부가 국회의 권한과 권능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독선적이고 오만하게 국정을 끌고가는 것의 연장선으로 정부를 견제하지 않으면 국민들에게 적지 않은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금이라도 국회 비준 절차를 밟도록 해야 한다"며 "만약 정부가 강행 방침을 고수하면 연관 상임위인 산통위·외교통일위원회·국토교통위원회 등이 공동 대응할 수 있다, 의사 진행이 제대로 되겠냐"고 말했다.

정의당 KTX민영화저지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박원석 의원 역시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박 대통령이 헌법과 통상절차법에 명시된 국회 비준 동의권을 무시하고 GPA 개정 의정서 비준을 재가했다"며 "지난 4일 박 대통령 발언 이후 열흘 만에 밀실에서 속전속결로 대통령 재가까지 이뤄진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 의원은 "박 대통령은 국회가 비준동의안 국회 제출을 요구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한 채 비준을 재가하기까지 했다"며 "만일 박 대통령이 국회를 무시하고 '비준 수락서 기탁' 등의 추가적인 비준 절차를 진행할 경우 철도를 지키고자 하는 국민의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박 대통령은 지난 2008년 밀실에서 검역주권을 포기하며 자행한 한미 쇠고기 협상이 100만 시민들의 촛불집회의 도화선이 됐던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야권은 통상조약의 비준동의권을 명시한 헌법 60조 1항(국회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 통상절차법 제 13조 3항(국회는 서명된 조약이 통상조약에 해당한다고 판단할 경우 정부에 비준 동의안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을 들어 GPA 개정 의정서에 대한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요구는 묵살됐고, 야권은 '쇠고기 협상 촛불'까지 언급하며 국회에 비준동의안 제출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

박 대통령의 GPA 개정 의정서 '재가', 국회는 까맣게 몰라

KTX 민영화 반대 3차 범국민대회가 노동자, 시민단체, 정당인 등 4000여 명(경찰 추산 2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10월 26일 3시 서울역에서 열렸다. 노동자·학생 연대그룹, 전국학생행진, 학생변혁모임이 합동 공연을 벌이고 있다.
 KTX 민영화 반대 3차 범국민대회가 노동자, 시민단체, 정당인 등 4000여 명(경찰 추산 2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10월 26일 3시 서울역에서 열렸다. 노동자·학생 연대그룹, 전국학생행진, 학생변혁모임이 합동 공연을 벌이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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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정부의 다음 대응이 주목되고 있다. 일단, 다음 달 3일 열리는 WTO 각료회의 이전에 정부가 개정 의정서를 기탁(조약을 체결한 장소가 속하는 나라의 외무부에 비준서를 맡기는 일)할지 여부가 핵심이다. 정부가 기탁서를 제출할 경우, 공공 철도 시장 개방이 가시화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박원석 의원실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근 시일 내에 비준 수락서 기탁 요청 공문을 외교부에 보낼 예정이다. 산통부와 외교부 조약과에서 공문을 발송하면, 외교부는 비준 수락서를 WTO 사무국에 기탁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이 같은 수순을 따르면, 내년 상반기에는 GPA 개정 의정서가 발효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정부는 국회 반발을 의식해 기탁 시점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발효를 기정사실화한 채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이다.

오 의원은 비준안 통과의 후폭풍에 대해 "정부가 철도 민영화를 통해 철도 산업을 시장에 공개 입찰한다면, 외국 자본이 우리 철도 산업에 끼어들 길이 열린다"며 "KTX부터 경전철까지 툭하면 멈춰 고장철이 돼버린 현실에서 외국 진출과 자본에 의한 장악은 불보듯 뻔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대통령 재가는) 대한민국 철도주권을 내어주는 매국적인 행위로 역사적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지난 15일 이미 GPA 개정 의정서가 재가 된 줄 몰랐던 국회는 이날 오전까지도 '비준안 국회 제출'을 부르짖기도 했다.

이날 김동철 민주당 의원은 산통위 전체회의에서 "조약체결권은 정부에 있지만 비준동의는 국회에 있고 그 조약이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아야 되느냐의 여부에 대한 판단권은 국회에 있다"며 "정부가 국회의 어떤 의견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진행한 것은 절차적으로도 통상절차법 위반한 것"이라고 조목조목 짚었다.

이어 김 의원은 "정부조달협정은 WTO 협정의 부속서다. 정부조달협정을 처음 제정했을 때는 국회의 동의를 받았다"며 "처음 체결할 때 받은 것을 개정하면서도 동의를 받지 않겠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는 이야기인가"라고 반문했다.

회의에서 오영식 의원이 산통위 위원장에게 "위원장이 비준안 제출 요구를 할 것을 공식 제안한다"고 말하자, 강창일 위원장은 "여야 간사가 논의해달라"는 발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재가는 진행됐고, 정부는 국회에 이 같은 사실을 통보조차 하지 않았다. 국회가 '허공'을 향해 얘기한 셈이다.

정부는 '국회 비준'이 불필요하다며 맞서고 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산통위 회의에서 "(국회 비준을 거쳐야 하는 건) 입법사항이어야 하고 재정적 부담이 발생할 경우"라며 "이런 점을 고려해서 법제처에서도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되는 조약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고 말했다.


태그:#철도민영화, #GPA, #WTO, #박근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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