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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내란음모사건'의 제보자 이아무개씨가 국정원에 넘긴 소위 RO(혁명조직, Revolution Organization)모임을  녹취한 녹음기가 최초에 봉인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예상된다. 이씨는 지난 5월 12일 합정동 마리스타수도회에서 진행된 모임을 녹취한 녹음기를 다음날인 13일 새벽 국정원 직원 문아무개씨를 만나 손목시계 카메라와 함께 넘겼지만 봉인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25일 오전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내란음모사건 8차 공판에서 변호인단은 제보자 이씨에게 5월 12일 합정동 모임의 성격과 국정원 제보과정을 집중 추궁했다. 변호인단은 당시 모임이 이씨가 주장하는 것과 달리 내란음모 자리가 아니라 반전평화를 모색하는 모임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이번 사건의 결정적 단서라고 할 수 있는 녹취록의 증거 효력 문제를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이씨가 국정원 수사관 문씨에게 녹음기와 손목시계를 위장한 소형카메라를 전달하면서 녹음내용과 봉인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12일 자정이 넘어 13일 새벽에 합정동 모임이 끝나자 수원 집으로 향했고, 집근처에서 새벽 3시께 국정원 수사관 문씨를 만났다. 이씨는 이 자리에서 수사관 문씨에게 녹음기와 카메라를 건넸다.

이씨는 "수사관에게 녹음기를 건네주면서 무슨 말을 했나?"라는 변호인단 질문에 "들어보시란 얘기를 했다, 자세히는 기억 안 난다"고 말했다. 이어 "녹음기를 건네주기 전에 내용을 들어본 적이 있나?"는 질문에는 "듣지 않았다, 늦은 시간이고 많이 피곤해서 많은 얘기를 안했다"고 대답했다. 또 녹음기와 카메라의 봉인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새벽 3시에 길거리에서 가능하겠나, 바로 건네주고 들어보라는 말만하고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이어 "다음날 점심에 국정원 수사관 문씨를 다시 만나 녹음 내용과 해시값(Hash Value, 복사된 디지털 증거의 동일성을 입증할 수치) 확인했다"고 진술했다. 이씨의 증언대로라면 당시 현장을 녹취한 녹음기와 카메라가 내용이 확인되지 않고, 봉인하지 않은 상태로 국정원에 넘겨진 것이다. 그동안 녹취록의 증거 채택을 거부해온 변호인단은 이런 정황을 통해 증거 조작 가능성을 더욱 강하게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제보자 "녹취파일 들으면서 하자"... 변호인단 "수십 번 들었다며?"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 7명에 대한 6차 공판이 열린 지난 21일 오후 경기도 수원 영통구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 수감 중인 가족들이 모여 검찰이 프락치 공작을 펼치고 있다며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이날 6차 공판은 'RO 비밀모임'의 제보자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 내란음모 구속자 가족 "내란음모 조작이다"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 7명에 대한 6차 공판이 열린 지난 21일 오후 경기도 수원 영통구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 수감 중인 가족들이 모여 검찰이 프락치 공작을 펼치고 있다며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이날 6차 공판은 'RO 비밀모임'의 제보자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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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공판에서는 또 5월 12일 합정동 모임 성격을 놓고 변호인단과 제보자 이씨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변호인단은 그동안 공개된 모임 녹취록을 바탕으로 당시 상황과 참가자 발언의 성격을 집요하게 물었고, 제보자 이씨는 일부 질문에 "기억나지 않는다, 녹취파일을 들으면서 하자"고 맞섰다. 녹취파일은 재판부가 정식 증거로 채택하기 전까지 공개되지 않는다.

변호인단이 예비검속에 대한 통합진보당 당원들의 불안감을 제기했을 때와, 분반토론 내용을 집중 추궁했을 때 이씨가 다소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변호인단이 보도연맹 사건 등 과거 예비검속 사례를 제시하며 "종북으로 몰리는 통합진보당 인사들의 경우 예비검속에 불안감을 가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묻자, 이씨는 "저는 불안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진보당 당원들이 예비검속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를 대비해야 한다는 자리 아니었나?"라는 변호인단 질문에 이씨는 "자꾸 당원이라고 하는데 당원 아니다, 예비검속만 피하면 되지 왜 폭탄제조, 총 제조 그런 이야기를 동시에 했는지…, 녹음파일 들으면서 구체적으로 확인하자"고 말했다.  

이씨는 녹취록에 등장하는 참석자들의 발언을 변호인단이 일일이 확인하자 "자꾸 물어보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까 말했듯이 녹음파일을 들으면서 하자"며 "(5월 12일) 12시 이후부터는 집중력이 안 좋아서 잘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변호인단은 "12일 모임 녹취록을 수십 번 들었다고 하는데 왜 잘 기억을 하지 못하나?"라고 반문했다.

이씨는 이날 증언에서 12일 모임과 관련해 "당시 회합을 주도했던 사람들의 정세 인식은 일반 조직원들과 매우 달랐고, 조직원들은 3월 달에 지침을 듣고 세포 결의대회를 한 후 모였기 때문에 매뉴얼 지침이 하달되면 '그대로 하겠다', '명령만 주십시오'하는 자리였다"고 강조했다.

"RO중앙위원회, 20년 운동권 생활하며 경험한 체계"

이씨는 RO의 조직체계와 5월 10일 곤지암 모임, 5월 12일 합정동 모임의 참석자들이 RO 조직원이라는 진술이 구체적 증거가 아닌 본인의 추측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변호인단이 "국정원 조서에서 RO 체계를 진술하면서 총책을 중심으로 중앙위원회가 있고 그 아래에 경기 동부, 서부, 남부, 북부 권역이 있다고 진술한 사실이 있느냐"고 질문하자 이씨는 "문서로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20년 운동권 생활과 10년 넘게 RO 조직 생활을 통해서 경험했던 체계"라고 답변했다.

이어 그는 "2011년 왕재산 간첩 사건이 터졌을 때 피고인 홍순석이 '왕재산은 중앙위가 없는 허술한 조직'이라고 했다"며 "왕재산하고 다르지만 '우리는 있을 수 있겠구나' 하고 추측했다"고 답했다. 또 '국정원 조사에서는 RO에 청년팀, 노동팀이 없다가 검찰 조서에서 추가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내 생각을 말씀 드린 것으로 (조직 체계를) 문서로 전달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5월 12일 모임의 참석자가 RO 조직원이라는 진술에 대해서도 "5월 10일 곤지암 수련원에서 윤아무개씨에게 '수원의 누구, 누구는 왜 안 왔냐'고 물었더니 '20년 이상 운동한 사람들만 모이는 자리'라고 답했다"며 "이런 이유로 5월 10일과 5월 12일 모임이 알오 조직원들이 참석한 자리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윤씨와의 대화는 녹음이 안 됐다"고 덧붙였다.

이어 '참석자 130여 명 중에는 40대 이하도 있었는데 어떻게 20년 이상 운동한 사람들만이 모임인 자리인가'라는 변호인의 질문에 이씨는 "피고인 홍순석씨가 '그날 모인 사람들이 오랜 조직생활을 했다'고 말했다"고 답했다.

이석기 의원이 합정동 모임에서 했다는 '혁명의 준비기, 혁명의 결정적 시기'라는 발언에 대해서도 이씨는 "이 의원이 현재를 전쟁 시기로 규정하고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한다는 취지로 말을 했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썼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공판에도 변호인 반대신문과 검찰 재주신문, 재판부 보충신문이 계속될 예정이다.


태그:#내란음모, #이석기, #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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