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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을 시작으로 추운 입시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아직도 젖을 찾는 아이를 둔 엄마인지라 '수능'하면 내 아이들의 입시보다는 내가 겪었던 떨리던 그 날의 추억이 먼저 떠오른다. 수능을 시작으로 길게는 2월까지 대학 진학이라는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수많은 학생들과 부모들이 초조한 겨울을 보내야 한다. 20년 전 그 해 겨울은 참 추웠지만 그만큼 다가올 봄의 기대로 설레기도 했었다.

다섯 살에 시작되는 입시전쟁

유치원 가고 싶어
▲ 심심해 유치원 가고 싶어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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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입시의 계절이 올해를 시작으로 내게도 다시 시작되었다. 이제 겨우 첫째 까꿍이가 다섯 살인데 무슨 말이냐 하겠지만, 대학 입시만큼 치열한 유치원 입학 추첨의 계절을 겪어본 부모들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까꿍이를 다섯 살까지 집에 데리고 있어 몇 년 늦게 추첨 전쟁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유치원 전단계인 어린이집부터 보내는 집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린이집도 등원 가능한 곳을 찾아 이웃 동네까지 기웃거리고, 평판이 좋은 어린이집이나 보육비가 저렴한 국·공립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선 태어나자마자 등원대기신청을 해놓아야 두 돌 전후로 자리가 난다고 한다.

이렇게 어렵게 들어간 어린이집이 유치원 과정까지 가능한 곳이면 걱정 없이 취학 전까지 아이를 보낼 수 있지만, 4세까지만 가능한 가정형 어린이집의 수가 더 많아 아이가 5세가 되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유치원을 찾아 추운 겨울 발을 굴러야 한다.

이런 걱정을 늘어놓고 있자니 "돈이 없어 그렇지 애들 보낼 '비싼' 유치원은 얼마든 있다"고 이웃 엄마가 한숨 섞인 말을 내쉰다. 나라에서 보육비 지원을 받아도 일반 사립유치원의 경우 보육비와 통원버스, 간식비, 특기비 등등을 합하면 최소 30만 원에서 많게는 70~80만 원까지 가정에서 월 보육비를 더 부담해야 한다고 한다.

턱없이 부족한 국·공립어린이집과 병설유치원

국공립 유치원도 짓는다 하시지 않았던가요?
▲ 박대통령님 쫌! 국공립 유치원도 짓는다 하시지 않았던가요?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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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민에 많은 이들이 부모들이 욕심을 줄이고 국·공립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보내면 되지 않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지원받는 보육비에 한 달 10만 원 정도만 추가 부담하면 되는 7세까지 등원이 가능한 국·공립 어린이집의 수요는 턱없이 부족하다. 병설유치원의 경우 모든 초등학교에 다 있는 것도 아니며 있다 하더라도 6~7세반을 합해도 50명 안팎의 정원이라 경쟁이 아주 치열하다.

국·공립 어린이집, 병설유치원, 사립유치원, 놀이학교, 유아체능단, 영어유치원 등 5~7세를 위한 보육기관이 많아 보이지만 등원 가능한 자리를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의 기관이 11월에 모집 요강을 내고 원서 접수를 받아 12월에 추첨을 통해 원생을 선발한다. 선착순 제도의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추첨 제도로 바뀌었는데 작년엔 중복 추첨을 방지하기 위해 한날 한시에 인근 유치원들이 함께 추첨시간을 잡아 더 문제가 됐었다. 여기에 등원을 희망하는 아이를 반드시 동반해 함께 추첨을 해야 한다는 조건도 달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엄마들은 11월이 되면 일정표까지 짜서 여러 기관으로 발품을 팔며 입학설명회를 듣고 정보를 수집한다. 추첨에서 될 확률보다 안 될 확률이 더 높기 때문에 정식 보육기관으로 인가를 받지 않아 사립 유치원보다 더 비싼 보육료를 내야 하는(대신에 양육수당을 받을 수 있는) 놀이학교와 유아체능단, 영어유치원까지 목록에  넣고 알아본다고 한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선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이라는 3박자가 갖춰져야 한다더니, 유치원은 여기에 '타고난 추첨운'까지 더 추가해야 할 듯싶다.

유치원 다니면 이럴 기회도 있나요?
▲ 공연도 보고 싶어요 유치원 다니면 이럴 기회도 있나요?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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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첨에서 떨어질 경우 등원 대기 신청이 가능한 여러 유치원에 대기신청을 해놓고 다른 보육기관을 알아보며 초조한 마음으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며 보내는 겨울은 대학 입시생의 겨울만큼이나 추운 계절이다.

이렇게 겨우겨우 입학이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고 나면 가계부를 열심히 들여다보며 빠듯한 생활비로 우리집 재무설계 재정비에 들어가야 한다. 대부분의 집들이 아이가 다섯 살이 되면 유치원에 보낸다. 만 3년 동안 일반적인 사립유치원 보육료로 필요한 비용을 계산해보면 최소 1500만 원이 든다. 보내기도 어렵고 돈도 꽤 많이 드는 유치원이다. 이만하면 대학등록금에 버금가는 유치원 등록금이다. 적당한 유치원 자리가 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월 70만 원이나 드는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친구가 농담처럼 하소연을 한다.

"대학생들은 반값등록금 투쟁이라도 하고, 학자금 대출도 받고, 알바라도 하는데 유치원생들은 해달라는 것만 많아."

"얘들아, 누나 여섯 살 언니 되면 유치원에 가... 좋겠지?"

5살, 3살, 1살 아이들을 집에서 기르고 있는 우리집은 작은 유치원 같다. 막내가 기어 다니며 누나, 형과 함께 어울려 놀기 시작하자 제법 셋만의 놀이터가 만들어졌다. 셋을 한꺼번에 돌보는 일은 여전히 힘이 들지만 셋이 노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자 세끼 밥만 잘 챙겨주면 아이들의 웃음이 (동시에 울음도) 넘치는 '즐거운 나의 집'이 되고 있다.

내년 봄, 막내가 돌을 지나면 아장아장 걷게 될 것이고, 셋 데리고 집 근처 공원으로 나들이 다니기도 수월해질 것 같다. 추첨에서 빛을 발하는 '신의 손'에 기대지 않고 유치원 추첨 전쟁에서 과감히 탈출해 취학 전까지 그냥 셋이서 빈둥빈둥 놀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지는 요즘이다.

이것도 교육이다
▲ 복작복작 삼남매 이것도 교육이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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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첫째 까꿍이는 틈만 나면 벼룩시장에서 거저 얻어온 낡은 유치원 가방을 둘러메고 집안 곳곳을 누비며 내게 묻고 동생들에게 선포한다.

"엄마, 나 여섯 살 되면 유치원 가지?"
"얘들아, 누나 여섯 살 언니 되면 유치원에 가. 좋겠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마랑 떨어지는 게 싫어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학교도 가지 않겠다 했던 아이가 어딘가에 갈 날만은 손꼽아 기다린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유치원에 가면 친구들이 있잖아. 그리고 글자도 배우고 공부도 하고 싶어."

유치원 대신 논으로 밭으로
▲ 농부 산들이 유치원 대신 논으로 밭으로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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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꼬물꼬물 핏덩이 아기가 어느새 이렇게 자라 친구랑 놀고 싶고 뭔가 배우고 싶은 어린이가 되고 있다니! 엄마도 좋지만 친구도 좋은, 어쩌면 친구가 더 좋은 어린이가 되고 있다니! 살짝 감격스럽지만, 아침마다 부지런을 떨며 등원 준비를 시키고 시간 맞춰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올 생각을 하니 생각만으로도 피곤해진다. 아이가 셋이다 보니 셋 모두 차려 입혀 데리고 나가려면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살아도 30분은 걸리는 게 다반사다.

내 몸 하나 편하자고 또래 집단이 필요한 시기의 아이를 집안에만, 동생들에게만 있게 할 수는 없는 일. 나도 일정표를 짜서 유치원 설명회 투어를 다녀야만 하는 것인가! 추첨에서 '신의 손'을 내려달라 9일 기도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 취학 전엔 무조건 마음껏 노는 게 최고라 생각했는데 막상 어딘가에 보내야 한다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각 기관들의 커리큘럼을 살펴보게 되고 따지고 있었다.

이왕이면 내 아이에게 보다 좋은 유치원에 다니게 하고 싶어 고민인 엄마들에게 한 선배 엄마가 조언을 해주었다.

"지금 내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이 제일 좋은 곳이에요. 그렇게 믿고 보내세요."

최고의 교육장소 외갓집
▲ 지금 다니는 유치원 산청 최고의 교육장소 외갓집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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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배우는 노동의 신성함
▲ 지금 다니는 유치원 산청 직접 배우는 노동의 신성함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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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으로 만들어보자, 공동육아 협동조합

커리큘럼, 환경 모두 중요하지만, 사실 그런 것들은 부모들에게 중요하지 아이들에겐 그저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냥 집에서 제일 가까운 곳으로, 이왕이면 보육료가 저렴한 곳에 접수를 하고 추첨이 되기를 기다리자니 뭔가 허전하다. 어떻게 한다? 따지고 들자니 한도 끝도 없고, 그냥 아무데나 보내자니 뉴스에서 접했던 일부 보육기관 문제점들이 전체의 문제인 것처럼 다가오고.

아! 그렇지, '공동육아'가 있었지! 작년에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대기 신청을 하고 가족 면접까지 보았던 일이 떠올랐다. 셋째 출산이 임박하고 등하원 거리와 이사 문제로 포기했던 공동육아 어린이집이라면 아이도 나도 만족하고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로 이사 온 동네에 '부모협동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있는지 당장 조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강동구 지역엔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한 군데도 없었다.

렛츠쿱!
▲ 협동조합 만들자 렛츠쿱!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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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담하는 내게 남편이 마침 우리가 사는 '강일동'을 중심으로 몇몇 엄마들이 모여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만들기 위해 모임 중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미 진행 중인 모임이지만 아직 시작인 단계라 다행히 우리 가족도 '강동구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위한 준비모임'에 들어갈 수 있었다.

결혼 전에 우연히 접한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호감이 있었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면서 취학 전에 어딘가에 보내야 한다면 내 유년시절과 가장 흡사한 형태인 저 곳에 내 아이들을 보내야지 했었다. 이제 겨우 엄마들이 마음을 모아 시작인 단계인지라 언제 개원이 가능할지 미지수이지만 준비하는 과정 자체만으로도 우리 가족 모두에게 값진 재산이 될 거 같아 시간과 힘, 마음 모두를 쏟기로 결정했다.

목표는 내년 3월 개원이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촉박해 아무래도 빨라야 내년 하반기에나 개원이 가능 할 것 같다. 까꿍이가 여섯 살이 되어도 유치원에 못갈 확률이 높지만 함께하는 엄마들과 친구들과 동네 놀이터와 숲에서 놀면서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만들어나가기로 했다. 취학 전엔 인위적인 교육보다는 그냥 자연에서 마음대로 놀게 하고 싶다는 오래된 육아관, 교육관을 지키며 아이들의 유년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

다시금 펴는 20살의 꿈
▲ 협동조합의 꿈 다시금 펴는 20살의 꿈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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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또래집단을 향한 까꿍이의 열망이 조금 안쓰럽지만 당분간은 집에서 개구지고 든든한 남동생들과 끈끈한 남매애를 다지기를 바란다.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세 아이들이 서로 엉켜 뒹굴며 '찐하게' 놀 수 있을까? 학교에만 가도, 아니 유치원에만 가도 집에서 얼굴 볼 수 있는 시간이 확 줄어들테니.

세 아이가 함께 보낸 유년의 시간이 훗날 세 아이를 이어주는 아주 진한 추억의 줄이 되리라 믿으며 그 어떤 유치원 입학설명회에도 가지 않고, 길고 복잡하고 공이 많이 들지만 분명 의미 있는 시간이 될 부모협동조합 형태의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겠다.

내년 하반기에는 이뤄질까?
▲ 공동육아의 꿈 내년 하반기에는 이뤄질까?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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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명의 엄마, 아빠들과 아홉 명의 아이들이 함께 모여 준비 중인 '공동육아 어린이집' 준비 이야기는 다음 육아일기에서 자세히 이어나가기로 하겠다.


태그:#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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