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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으로 일찍이 귀농한 농사경력 20년의 J선배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아랫목에 콩단지를 묻어서 직접 농사지은 콩으로 청국장을 빚는다. 그 오묘한 냄새의 보약같은 것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인연으로 알게 된 것을 상기시키며 이맘때쯤에는 콩타작 하듯이 수시로 전화기가 울린단다. 누구는 주고 안 줄 수 없어서 속 편하게 선착순으로 정해진 크기만큼 나눔을 한다. 그러다 보니 아차 해서 때를 놓치기라도 하면 일년을 기다려야 한다. 크게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라서 주변 사람들과 나눔할 만큼만 짓는다는 콩이 올해는 없다.

칠갑산 가요의 노랫말처럼 배적삼(여름에 입는 삼베로 만든 홑저고리)이 흠뻑 젖는 한여름에 콩을 심고 김매기를 하는 고된 농사다. 그는 호미 한 자루로 하는 김매기의 고충을 해마다 무용담처럼 늘어놓으면서도 제초제는 물론이고 검은 비닐도 씌우지 않았다. 그러다가 농사일이 늘어나면서 최근에야 겨우 타협한 것이 통풍이 되는 '부직포'를 까는 거였다. 검은 비닐보다 몇 배나 값이 비싸지만 생태농사를 근본으로 하는 선배에게는 쉽지 않는 결정이었음을 이해한다.

콩농사는 풀과 해충과의 긴 싸움을 해야 하는 농사다. 통풍이 안되는 검은비닐 대신 통풍이 되는 부직포를 덮은 콩밭
 콩농사는 풀과 해충과의 긴 싸움을 해야 하는 농사다. 통풍이 안되는 검은비닐 대신 통풍이 되는 부직포를 덮은 콩밭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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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의 작부체계 무시했더니...

그런데 올해는 콩 작황이 좋지 않다고 한다. 콩 농사의 고수가 웬일일까? 올해는 태풍도 없고 날씨가 좋아 모든 농사가 풍년이라고 푸념을 하는 때에 말이다. 이유를 물으니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다. 농사에는 작부체계라고 하는 재배방식이 있다. 씨앗을 언제 뿌려서 열매를 수확하기까지의 과정에서 해줘야 하는 할 일들에 대한 계획표 같은 것이다.
                   
그런데 몇 년간 수수농사에 재미를 느낀 나머지 욕심인지 실수인지 콩밭에 수수를 심었단다. 수수는 아주 잘 여물고 작황이 좋았지만, 키가 큰 수수가 햇볕을 막아버려 콩들이 제대로 여물지 못한 것이다. 상심한 마음에 그나마 남아있던 콩마저도 제때 거두지 않았더니 들짐승과 날짐승들에게 '보시'까지 해줘서 거둘 것이 없다며 허탈해 한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콩의 뿌리에는 공기 중의 질소를 모아서 저장을 할 수 있는 창고 같은 혹이 달린 박테리아가 있다. 질소는 모든 작물이 성장하는데 꼭 필요한 양분으로 콩은 스스로 질소를 수집하는 능력으로 크기도 하며, 척박한 땅을 거름지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콩농사에는 일부러 거름을 안 주기도 하며 거름진 땅은 피하는 것이 콩농사다. 그래도 너무 척박한 땅이라면 거름을 조금 넣는 것이 좋다.

콩뿌리에는 콩알보다 작은 둥근 뿌리혹박테리아가 있다. 공기중의 질소를 모아두는 창고와 같으며 콩은 스스로 양분을 공급한다.
 콩뿌리에는 콩알보다 작은 둥근 뿌리혹박테리아가 있다. 공기중의 질소를 모아두는 창고와 같으며 콩은 스스로 양분을 공급한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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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영양분을 만들어내는 콩이라지만...

뿌리혹박테리아를 통해서 질소양분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콩이지만, 광합성으로 만들어지는 양분(포도당)은 햇볕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광합성은 식물의 뿌리를 통해 흡수한 물과 잎을 통해서 흡수한 이산화탄소가 햇볕을 받아서 포도당이라는 양분을 만들어 낸다. 포도당은 다시 나눠지고 결합하는 화학반응을 통해 식물이 원하는 녹말, 섬유소, 단백질 등의 양분으로 만들어지고 잎과 줄기, 뿌리, 열매, 꽃 등을 키우는 중요한 영양소다.

옛날부터 논두렁과 밭두렁에 콩을 심는 이유는 자투리땅이라도 놀리지 않으려는 부지런함과 두둑을 콩뿌리가 붙잡아서 무너지지 않게 하고, 천적을 불러들여 병충해를 방지하려는 목적 등으로 콩을 심었다. 그리고 논두렁의 벼는 콩과 키가 비슷해서 서로 광합성을 방해하지 않았던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콩을 심을 때에는 주변에 키 큰 작물은 피하고 자연환경으로 인해 그늘이 생기는지 꼭 확인해 볼 일이다.

10년간 냉동고에 보관했던 콩을 혹시나 해서 뿌려만 놓았는데 열매를 맺었다.
 10년간 냉동고에 보관했던 콩을 혹시나 해서 뿌려만 놓았는데 열매를 맺었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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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선배에게 받은 서리태와 메주콩을 냉동실에 넣어둔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파종 시기가 한 달 정도 늦은 8월초순경에 종자로 쓸 수 있을지 실험삼아 텃밭 끝자락에 버리듯이 한 줌을 흩뿌렸다. 그 콩들이 꼬투리에 딱딱한 콩알을 채웠고 수확을 앞두고 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올 해 콩농사를 망친 선배를 찾아뵐 때 건네고 위로를 해야겠다.


태그:#콩, #서리태, #청국장, #뿌리혹박테리아, #부직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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