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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처음으로 가진 시정연설을 마친 뒤 여당 의원들의 수행을 받으며 국회 본청을 나서고 있다.
▲ 국회 떠나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처음으로 가진 시정연설을 마친 뒤 여당 의원들의 수행을 받으며 국회 본청을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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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야당이 제기하는 여러 문제들을 포함해 무엇이든 국회에서 여야가 충분히 논의해 합의점을 찾는다면 존중하고 받아들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 한 마디에, 국정 난맥상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다시 국회로 넘어왔다. 박 대통령이 18일 시정연설에서 국가기관 대선 개입에 대한 특검과 국정원 개혁 특위 수용 여부를 '여야 합의'로 결정하라고 넘긴 결과다. 박 대통령의 '명확한 입장'만을 바라왔던 민주당으로서는 "미지근한 물" 같은 답변이었다.

일단 민주당은 여야 협상의 주체인 새누리당을 압박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박 대통령 연설에) 진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새누리당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특검에 대해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특검을 실시한 전례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제 3자적' 위치에서 쟁점에 대한 결정을 국회에 떠넘기고 새누리당은 특검 수용 불가 입장을 견지하는 모양새다. 다만, 새누리당은 이날 오후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개최해 국정원 개혁 특위는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검 불가 기류를 감지한 민주당은  "(새누리당이 모르쇠로 일관할 경우)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기극이다, 용납하지 않겠다"며 엄포를 놨다. 국정 파탄의 책임은 모두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있다고도 했다. 이에 따라 시정연설 이후에도 특검에 대한 새누리당의 태도 변화가 없을 시 정국 파행은 불가피해 보인다.

박근혜 '입'만 바라보던 민주당 "희망의 빛 보지 못했다"

18일 박근혜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 직후 민주당 의원들이 국회본청 앞 계단에서 '민주파괴! 민생파탄! 약속파기! 규탄대회'를 하고 있다.
▲ 민주당 "민생공략 이행하라" 18일 박근혜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 직후 민주당 의원들이 국회본청 앞 계단에서 '민주파괴! 민생파탄! 약속파기! 규탄대회'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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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은 이날 국회 시정연설에서 "정부는 여야 어느 한 쪽의 의견에 따라 움직일 수 없다, 국회에서 여야 간 합의해준다면 국민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특검과 특위 수용에 대해 조금은 진전된 태도를 보인 것으로 평가되지만, 큰 맥락에서 박 대통령 본인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국가기관 대선 개입에 대해 "정부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사안들에 대해 빠른 시일 내에 국민 앞에 진상을 명확하게 밝히고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는 대로 책임을 물을 일이 있다면 반드시 응분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원 개혁에 대해서도 "국가정보기관 개혁방안도 국회에 곧 제출할 예정인 만큼, 국회에서 심도 있게 논의하고 검토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기존 입장을 그대로 되풀이 한 것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입'만을 바라봐왔다. 김한길 대표는 "박 대통령이 대답도 없는데 자꾸 말씀 드리는 게 모욕적이긴 하지만 꼬인 정국을 풀어야 한다"며 특검·특위 수용을 재차 강조했다. 하루 전인 17일 민주당 의원 92명은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박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특검'과 '특위' 수용 및 책임자 처벌을 밝혀달라"며 "온 나라의 눈이 집중될 시정연설에서 민주주의 수호 의지를 확고히 천명해 달라, 대통령의 결단만이 겨울 추위를 넘어 새 봄을 열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입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국정 난맥상을 풀 유일한 방법으로 박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요구해왔던 민주당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한길 대표는 "오늘 시정연설에서 희망의 빛을 보지 못했다, 말씀은 많았지만 정답은 없었다"며 "미지근한 물로는 밥을 지을 수 없다"고 혹평을 내렸다.

그러면서도 김 대표는 여지를 열어뒀다. 김 대표는 "박 대통령이 여야가 합의점을 찾는다면 존중하고 받아들일 거라고 한 점에 주목한다"며 "지난 대선 관련 의혹 일체를 특검에,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 개혁을 특위에 맡기자는 민주당의 제안에 대통령이 응답한 것이라면, 진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새누리당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병헌 원내대표 역시 "대통령이 감당해야 할 책임을 국회로 떠넘긴 게 아니냐는 의구심만 남겼다"면서도 "많은 부분을 국회 협상에 일임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언급이 진정성 있는 건지는 여야 협상을 통해 조속히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원내지도부 핵심 관계자는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박 대통령이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는대로 책임을 물을 일이 있다면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재차 밝힌 것은 사실상 가이드 라인을 이미 정해둔 거 아니겠냐"며 "이 같은 전제 조건 없이 여야 합의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면 상황이 달랐겠지만, 특검이나 특위를 새누리당이 수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그는 "그래도 민주당이 할 수 있는 부분은 박 대통령이 언급한 '여야 합의'를 고리로 새누리당을 계속해서 압박해 나가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특검과 특위를 관철하기 위한 협상에 총력전을 펼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더불어 민주당은 오는 19일 국가기관 대선 개입 사건과 관련, 황교안 법무부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 및 남재준 국가정보원장·박승춘 국가보훈처장에 대한 해임 촉구 결의안을 제출할 방침이다. 국가기관 대선 개입 사건 '책임자 처벌'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인 것이다.

3선 이상의 민주당 다선 의원들 24명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황교안 장관과 남재준 국정원장은 반드시 해임해야 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이 부여한 책임을 계속 외면한다면 더 큰 불행이 기다리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변화 없는 새누리 "특검·특위 한다고 민주당 무능 감춰지지 않아"

박근혜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이 있었던 1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황우여 대표와 최경환 원내대표가 머리를 맞댄 채 무언가를 논의하고 있다.
▲ 머리 맞댄 황우여-최경환 박근혜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이 있었던 1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황우여 대표와 최경환 원내대표가 머리를 맞댄 채 무언가를 논의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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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새누리당은 이날 오후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국회 정상화를 전제로 '국정원 개혁 특위'를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정리했지만 '특검 불가' 입장은 고수했다.

유일호 새누리당 대변인은 "국회 정상화를 전제로 국정원 개혁 특위를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정리했다"며 "특위 형식과 내용을 포함한 전반적인 내용은 원내대표가 전권을 갖고 야당과의 협상에 임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특검에 대해서는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며 군사 재판에 관여할 수 없다는 점, 또 다른 정쟁의 소지가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앞서도 이 같은 기류는 감지됐다.

홍지만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무조건 특검이나 특위를 외치는 것은 민주당 수권능력에 대한 근본적 회의만 불러 일으킨다"며 "특검이나 특위를 한다고 해서, 국가기관의 수장들의 해임안을 건의한다고 해서 민주당 무능이 국민에게 감추어지는 것이 아님을 민주당은 유념하길 바란다"고 비난했다.

그는 "지난해 국정원 여직원을 미행하고 민주당에 제보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전직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는 '민주당이 지급한 대포폰을 사용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면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은) 새누리당이 대선개입을 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대선개입을 하기 위해 꾸며낸 매관매직 시나리오임이 드러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상황이 이러함에도 민주당은 지금까지도 대통령에게 특검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연말 국정을 파행으로 이끌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으며 국가기관장들의 공백을 빌미로 정치흥정을 시도하고 있다"며 "오늘은 황교안 법무장관과 남재준 국정원장,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의 해임안을 제출하겠다고 하니 적반하장도 유분수"라고 주장했다.   

특검 논의 여부에 대해서도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특검을 실시한 전례가 없다"며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새누리당이 특검 불가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정국 파행은 불가피 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야당 협조 없이는 각종 법안과 예산안 처리도 힘든 상황이다.

김관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일관되게 요구한 것은 특검과 특위"라며 "오늘 박근혜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언급한 최근 야당이 제안한 현안이 특검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연히 특위뿐 아니라 특검도 동시에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그:#박근혜 시정연설, #특검, #국정원 개혁 특위, #민주당, #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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