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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들 사이에서 커야 했던 대추나무는 열악한 조건에서도 잘 자라줬다
▲ 대추나무 집들 사이에서 커야 했던 대추나무는 열악한 조건에서도 잘 자라줬다
ⓒ 이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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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담벼락 한편에는 대추나무가 있다. 우리가 이사 오기 전부터 자라고 있었으니, 적어도 20년은 됐음직하다.

매년 추석 즈음에 어머니는 시장에서 대추를 사 오는 대신에 집 대추나무에서 따서 차례 상에 올린다. 열매가 실하게 열리면서 맛도 서울에서 자란 대추 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처음 이사 왔을 때 거름을 듬뿍 주면서 잘 돌봤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이 어머니의 말씀이다.

하지만 대추나무 입장에서 우리 집과 주변은 성장에 그리 좋은 조건은 아니다. 10여 년 전 정화조 공사하면서 나무 주변 조그마한 틈만 남겨두고 시멘트로 발라버려서 따로 물을 주지도 않고, 주변에 잡동사니만 잔뜩 쌓아 두고 있는 상태다. 담벼락이 바로 붙어 있어서 햇볕을 받으려면 무조건 위로 올라가야 하는 것도 어려운 조건이다.

그럼에도 매년 적지 않은 열매를 맺어 준다. 어머니는 40리터 봉지 수북이 딴 대추를 따로 살고 있는 자식들에게 골고루 나눠주고도 남아 겨우내 밥에 넣어서도 먹고, 차로로 끊여 먹는다. 그렇게 잘자란 대추나무는 우리 집에게는 매우 고마운 존재다. 그러나 대추나무는 정작 이웃 간 갈등을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대추나무 잎들이다. 대추나무 잎들이 뭐가 문제가 될 수 있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서울 사람들에게, 특히 자신의 나무가 아닌 나뭇잎은 그저 자신의 공간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쓰레기에 불과하게 인식될 수도 있다. 바로 옆집은 나뭇잎 낙하 방지를 위한 파라솔까지 설치해 둔 상태다. 그럼에도 비바람이 치면 대추나무 잎들은 옆쪽 연립 주택 쪽으로 쌓이게 된다.

대추나뭇잎으로 이웃 간 갈등을 막기 위해, 어머니는 대추나무의 잎을 털어 냈다.
▲ 삭발(?)된 대추나무 대추나뭇잎으로 이웃 간 갈등을 막기 위해, 어머니는 대추나무의 잎을 털어 냈다.
ⓒ 이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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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직한 가지도 옆집 쪽으로 뻗고 있어서 더더욱 많은 양이 쌓이게 되는데, 그때마다 옆집의 잔소리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나 보다. 매번 되풀이 되는 항의에 어머니는 적지 않게 언짢으셨다. 급기야 지난 10월 초에는 옆집으로 넘어간 대추나무의 가지를 자르려 했다. 담을 타고 올라가야 하고, 대추나무에 가시도 있어 내가 올라가서 가지를 정리했다.

말이 가지치기가 어른 팔뚝만한 두께의 가지를 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내가 작업을 하는 동안 어머니는 아래쪽에서 두 손을 합장한 채 "대추나무님 죄송합니다"를 연실 읊조리고 계신다. 어머니는 멀쩡히 살아 있는 나무의 굵은 가지를 베어 내는 것이 어찌됐든 미안한 마음이셨다.

내가 지난 10월 초 <오마이뉴스>와 환경운동연합과 함께 4대강 자전거 도로 현장 조사를 벌이다 경천대 부근 급경사에서 팔이 부러져 왔을 때, 어머니는 "함부로 대추나무 가지를 잘라서 벌어진 일"이라며, 대추나무를 자르라 시켰던 당신을 책망하신다.

우리 집 대추나무는 다른 나무들과 달리 겨울이 되기도 전에 나뭇잎이 별로 없는 상태다. 며칠 전 내가 외출한 사이 어머니는 대추나무의 잎들을 털어 내셨다. 대추나무 잎을 빨리 처리해 이웃 간의 분쟁의 소지를 줄이려는 생각이셨다.

더 깊숙한 것은 살아 있는 생명을 함부로 베어내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또한 팔 다친 아들이 또 어찌될 까 불안한 마음에 당신이 직접 일을 벌이신 것이다. 그날 밤, 어머니 팔과 등에 잔뜩 파스를 붙여드리면서 어머니의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러그에도 올립니다.



태그:#대추나무,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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