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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까지 선거에서의 가장 큰 전략인 '갈라치기'와 '중도층 다가서기'를 설명해 드렸습니다. 충분하지는 않을지라도 대략적인 큰 줄기로서 두 가지 전략을 설명했습니다. 미진한 것은 또 추후에 더 설명해 드릴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 '이슈'와 '이슈파이팅' 설명을 해 드립니다. 그런데 독자 여러분께 양해를 구할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예시로 든 사례들은 '옳다 또는 그르다'를 떠나서 독자 여러분께서 이해하기 쉬운 사례를 든 것입니다. 정책 혹은 공약의 가치 판단이 아니라는 점, 꼭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권자는 '옳다 또는 그르다'로 판단하지 않고 '좋다 또는 싫다'로 판단한다는 선거판의 명언이 여기서도 적용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잘 숙지하셔서 예비후보자(정치인)에게는 영감을, 착한 시민(유권자)에게는 선택의 기준을 제공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 기자 말

시간을 좀 거슬러서 2006년 5월로 가보겠습니다. 5·31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고 동시에 이 지방선거의 결과가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향후 정치 진로에 대단히 중요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이렇게 굉장히 예민한 시기에 저를 포함해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종로구 모 빌딩에서 고건 전 총리를 만났습니다. 당시 고건 전 총리는 민주당도, 열린우리당도 손을 들어주지 않는, 대단히 어정쩡한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고건 전 총리의 위상은 대단했습니다.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늘 지지도 1위를 달렸으며 야권의 잠재후보 '이명박-박근혜'를 항상 압도적인 차이로 이기고 있었습니다. 노무현을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고건은 지지하는 사람이 많았던 분위기에서 고건 전 총리가 정치 스타트를 잘만 끊으면 향후 대권까지도 거머쥘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고건 전 총리의 행보는 항상 언론의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저의 목적은 고건 전 총리가 당시 전북도지사 후보였던 민주당 정균환 후보의 손을 잡으라는 충고를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열린우리당은 스스로 망하든 문을 닫든 할테니까 일단 민주당의 정균환을 지지함으로써 민주당을 점령하고 향후 열린우리당의 잔당파를 몽땅 흡수하라는 조언을 주려고 했던 것이죠(이제 생각하니 열린우리당 친구들에게 좀 미안한 생각도 드네요).

그런데 고건은 열린우리당이 머지않아 문을 닫을 것이라는 전망에 동의는 하면서도 막상 민주당을 지자하자니 자신을 지지하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눈에 밟힌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제의를 거절했지요.

그런데 사실 우리의 이 제의를 거절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좀 건방지게 굴었거든요. 방에 들어가자마자 으레 정치인들이 그러하듯이 고건 전 총리는 자신의 저서 '행정도 예술이다'를 꺼내더니 '고건 드림'이라는 사인까지 곁들여 건네주었습니다.

"행정도 예술이라… 그런데 총리님, 행정은 정치가 아니죠?"

자리에 앉자마자 제기한 저의 이 질문에 고건 전 총리는 무척이나 치욕적으로 들린 모양이었습니다. 얼굴이 벌개졌습니다. 한참 아들 뻘 되는 젊은 사람이(아아… 저는 그때 쌩쌩한(?) 30대 후반이었습니다) 처음 만나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정치와 행정은 다르니 행정의 경력을 가지고 정치를 논하지 말라!'라는 꼴이 되었으니까요. 언론에서 '행정의 달인'이라는 대단한 별명을 붙여주는 사람에게 젊은 정치컨설턴트의 그 다음 이야기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겠다는 생각을 지금도 합니다.

며칠 뒤, 5월 20일에 박근혜 테러사건이 일어나고 "대전은요?" 발언으로 열린우리당은 완전히 망했습니다. 정치는 '타이밍'이고 역사에는 '만약'이란 있을 수 없지만, 그래도 만약에 고건 전 총리가 전북도지사 후보 정균환의 손을 들어주고 힘을 보탰더라면 향후의 정치질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대한민국 역사는 바뀌었을까요?

하지만 고건 전 총리는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렸습니다. 전형적인 관료이지만 처세에 능했던, 행정의 달인이자 처세의 달인이었던(그는 1987년 5월부터 7월까지 전두환 정권의 제 46대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습니다. 기억들 하시나요? 87년 5월부터 7월까지가 어떤 시기였는지?) 고건 전 총리는 기회를 보다가 뚫지 못하고 낙마하고 말았습니다.

고건 낙마 직전의 이슈 파이팅

비록 낙마를 했지만 고건 전 총리진영에서 구상했던 '한일해저터널'은 이슈파이팅과 관련해서는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 고건의 '한일해저터널' 비록 낙마를 했지만 고건 전 총리진영에서 구상했던 '한일해저터널'은 이슈파이팅과 관련해서는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 최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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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지루한 몇 차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만, 결코 유의미한 만남이 아니었습니다. 유심히 그의 행보와 언행을 눈여겨 본 뒤, 2006년 11월, 마지막 만남을 한 뒤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고건 전 총리는 대권에 도전하지 못하며, 설사 도전한다 하더라도 대통령은 못 된다는 결론을 내렸지요. 문제는 그렇게 마지막을 결정하고 나서 소위 '고건 진영'의 이슈파이팅이라며 '한일해저터널'는 언론보도가 떴습니다.

'한일해저터널?'

소위 이명박 후보의 '한반도 대운하'와 박근혜 후보의 '열차페리' 공약을 의식한 대규모 개발프로젝트라는 점, 그리고 충분히 선거에 있어서는 '이슈 파이팅' 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오보였습니다. 자문그룹 워크숍에서 해저터널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검토해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을 뿐이라는 겁니다.

푸틴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이야길 한다고 합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남북한과 아시아 그리고 유럽으로 연결되는 유라시아 대륙을 단일경제권으로 발전시키자는 구상입니다. 이미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아태지역 에너지 자원공급을 위한 가스관 건설 등을 위해 390조 원을 투자하는 '극동발전전략 2025'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동북아 지역에서 양국간 협력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과연 빠지려고 할까요? 한일해저터널 이야기가 다시 거론되지 않을까 생각이 되네요.

어찌 되었든 고건 전 총리 진영의 이런 보도가 나온 지 열흘이 안 된 2007년 1월 16일, 고건 전 총리는 '대통령 선거 불출마를 결정하면서'라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공식적으로 대선 불출마를 결정합니다. 고건 전 총리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제 예상은 맞았지만 저는 왜 한일해저터널이 선거에 있어서 제대로 된 이슈파이팅이 된다고 생각 했을까요?

이슈의 세 가지 조건

수많은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름이 신문 부고란에 나오는 것만 빼고는 욕을 먹더라도 언론에 거론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욕을 먹더라도 거론이 된다? 일반인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지만 정치인 입장에서는 절박한 것이죠. 욕을 먹는 것이 잊혀지는 것 보다 낫다는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되지도 않는 이슈를 내세우는 경우도 있는데 어떤 것은 아주 훌륭한 이슈이지만 또 어떤 것들은 금방 사그라지고 마는 형편없는 이슈입니다. 이슈라는 것은 세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1. 이슈는 대중(언론)의 큰 관심사이어야 한다.
2. 이슈는 찬성과 반대로 분명히 나뉘어져야 한다.
3. 이슈는 선거에 분명히 영향을 미쳐야만 한다.

물론 이에 대해서 이견을 내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그런 분들은 댓글에 분명한 이견을 펼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뜬금없는 홍어니(저는 서울사람입니다.) 종북좌빨이니(지겹지요) 하는 이야기 말고 건강하고도 치열한 논쟁이 필요합니다).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제 주장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찬찬히 뜯어봅시다.

1. 이슈는 대중(언론)의 큰 관심사이어야 한다.

이 이야기는 굳이 설명할 필요 없는 명제겠지요. 이슈는 대중의 큰 관심사이어야 불이 붙습니다. 일부 이해관계자나 관심분야에 국한되는 이슈는 금방 사그라지고 말 것입니다. 예를 들어 노무현 후보의 '수도이전론'의 경우 수도를 충청도로 이전한다는 발표를 할 때, 충청도 지역에 사는 사람들, 충청도에 부모님이나 친인척이 사는 사람들, 또는 충청도에 땅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 지대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4대강 사업으로 변질되어 진행될 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선거 당시에는 이명박 후보의 이슈파이팅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 이명박 후보의 '한반도 대운하' 4대강 사업으로 변질되어 진행될 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선거 당시에는 이명박 후보의 이슈파이팅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 최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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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후보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은 어떤가요? 위키백과에 의하면 '한반도 대운하(韓半島大運河, Grand Korean Waterway)는 경부운하-경인운하-호남운하-금강운하-북한운하'로 이루어져 있고, 계획의 핵심인 경부운하는 낙동강과 남한강을 가로막는 소백산맥의 조령을 뚫어서 인천에서 부산까지 이어지는 내륙운송 수로를 4년 만에 건설하겠다는 계획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 규모와 발상에 놀라는 한편, 도대체 어느 지역을 지나는지? 혹시 내가 사는 지역을 지나는 것은 아닌지? 땅값이 오르지나 않을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해외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일본의 경우 고이즈미 총리가 내세운 우정국(우리나라로 치면 우체국)을 민영화 시켜야 하겠다는 주장은 일본인들 전체를 흥분시켰습니다. 당시 고이즈미 입장에서는 방대한 공무원 조직의 슬림화를 위해서는 구조개혁이 필수 불가결하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했고, 이의 외적 표현이 바로 '우정민영화법안'이었지요. 정권의 운명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본 정가를 뜨겁게 달구었던 우정국민영화 관련 여섯 개 법안이 결국 2005년 8월 8일 참의원 총회에서 부결되었습니다.

그러자 고이즈미는 기다렸다는 듯이 중의원 해산을 선언했고 총선을 치르게 되었는데, 여기서 고이즈미는 압승을 거두게 됩니다. 대중의 관심이 큰 우정국(일본의 이 우체국은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큰 규모입니다)을 민영화 한다는 것이 사람들의 큰 관심을 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일본의 우정국(우리나라로 치면 우체국)의 자산 규모는 300조 엔으로 세계 최대의 금융기관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우정국은 우편·저축·생명보험 같은 사업을 통합적으로 운영해왔다.
▲ 고이즈미 후보의 '우정 민영화' 일본의 우정국(우리나라로 치면 우체국)의 자산 규모는 300조 엔으로 세계 최대의 금융기관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우정국은 우편·저축·생명보험 같은 사업을 통합적으로 운영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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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분명히 큰 이슈라고 내세웠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7년 박근혜 후보가 내세운 '열차페리'였습니다. 열차페리는 육상에서는 화물을 열차 혹은 트럭으로 운송을 하고, 해상에서는 따로 환적(換積)할 필요 없이 그 열차와 트럭을 그대로 배에 실어 열차페리(배)에 화물을 수송하는 방식입니다. 박근혜 후보 측은 "2002년쯤부터 물류혁신은 제 2의 경영합리화이자 비용절감의 마지막 보고로 인식하고 정책을 구체화시켜왔다"라고 밝혔지만 국민들의 관심은 없었습니다. 그저 물류관계자나 해양업무 관계자에게나 관심이 있었던 것이죠. 매우 큰 이슈였지만 실패한 것이라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그 외에 다른 여러 가지 사례를 찾아보아도 사람들의 큰 관심을 가진 주제가 이슈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굳이 괄호를 쳐 가면서 '언론'이라고 거명을 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언론에서 거론하지 않는 이슈는 묻히거나 혹은 최소한 중요도가 떨어져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상대방 후보가 이슈를 발표할 때, 반대편 후보자 역시 맞받아치면서 오히려 상대방 이슈를 파묻히게 하는 '언론 퍼블리시티 전략'을 구사하기도 합니다. 이는 모두 대중의 관심사가 '언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한다는 반증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슈는 대중과 언론의 관심이 큰 것을 주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죠.

2. 이슈는 찬성과 반대로 분명히 나뉘어져야 한다.

이 부분은 좀 조심스럽습니다. 왜냐면 "의도적인 분쟁을 조장하냐?"라는 생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틀린 생각입니다. 다원화 된 2013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이슈에는 명암이 있을 수밖에 없고 자연스레 찬성과 반대가 따르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 반대가 크냐 작냐의 차이일 뿐이죠. 거꾸로 생각해서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요. 누구나 다 찬성할 수 있는 말, 누구나 좋다고 동의를 보낼만한 이슈는 찬반으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던 강금실 후보는 "교육은 미래다"라고 외쳤으며 대통령 선거에 나선 정동영 후보의 경우 "가족행복"을 내세웠지요. 누구나 다 동의를 하고 찬성을 하는 구호이자 이슈였습니다. 교육이 국가경쟁력을 낳고 한국이 도약을 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은 다들 찬성하는 이야깁니다. 가족이 행복해야지 그럼 불행합니까? 당연하지요. 사람들의 반응은 그래! 그런데 그게 뭐? 하는 반응이었지요.

1992년에 대통령으로 나선 정주영 후보의 경우 "반값 아파트"를 내세웠습니다. 정주영 후보의 지나온 이력과 그의 추진력을 보면 어쩌면 가능할 것 같기도 했던 이 이슈는 크게 보도는 되었지만 반대하는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작았습니다. 아파트 가격이 반값으로 공급이 되면 좋기야 하지만 과연 그것이 가능하겠느냐? 라는 것에 집중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공약은 후에 홍준표 의원(현 경남도지사)에 의해 반복됩니다. 여전히 찬반으로 갑론을박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이명박 서울시장 후보의 '청계천'개발은 시장 상인들의 격렬한 반발이 뒤따랐고, 노무현 후보의 '수도이전' 공약의 경우 이회창 후보의 날선 반박과 이명박 시장의 "탱크라도 동원해서 막고 싶은 심정"이라는 격렬한 반발이 있었습니다.

반대가 있는 이슈는 필연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논쟁이 부딪히고 옳고 그름을 따지고, 좋고 나쁨을 논하게 되면 언론도 가세하게 되지요. 자연스레 먼저 제기한 쪽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면서 이슈는 커집니다. 그래서 이슈의 조건 두 번째가 바로 '이슈는 찬성과 반대로 분명히 나뉘어져야 한다'라는 말이 되는 것이죠.

3. 이슈는 선거에 분명히 영향을 미쳐야만 한다.

이런 과정, 대중(언론)의 관심사가 크고 또 거기에 찬반이 분명한 주제를 가지고 선거에 임한다면 그 이슈는 필연적으로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적어도 제 기억으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만약 이런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이슈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캠프의 언론퍼블리시티 능력의 문제라든지, 그 외의 문제(예를 들어 상대방이 더 강력한 이슈파이팅으로 후보자의 이슈를 덮어버리는 경우 등)로 인한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 이슈가 선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때는 어떻게 될까요? 바로 선거의 전체 판세가 그 이슈를 내세운 A후보냐, 그렇지 않느냐 즉, A VS Not A냐로 귀결이 된다는 것이죠. 보통 선거가 A후보, B후보, C후보, D후보 … 이런 식으로 진행되다가 한 사람씩 그만 두거나 당선권에서 멀어집니다. 결국 A후보냐 B후보냐의 대결이 되거나 A후보냐, A후보가 아니냐로 정리가 됩니다. 이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이렇게 됩니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어떤 선거든 통상적으로 이러한 과정을 겪게 된다.
▲ 통상적인 선거의 과정 물론 예외는 있지만, 어떤 선거든 통상적으로 이러한 과정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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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인 이슈를 내세워 선거를 치르게 될 때, 여러 후보자가 난립을 하다가 결국은 한 사람씩 낙마 혹은 당선권에서 멀어지게 되면서 A냐 B냐 혹은 A냐 A가 아니냐의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겁니다.

수평적 정권교체의 기치를 내세운 1997년 선거에서는 김대중이냐 이회창이냐의 선거가 진행되었으며 여기서 'DJP연합'이라는 중도층 다가서기가 힘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2002년 선거에서는 이회창이냐 이회창이 아니냐의 선거에서 갈라치기 전략을 주도했던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홍준표 지사의 '진주의료원 폐원'

여기서 잠깐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홍준표 경남 도지사의 '진주의료원 폐원'이 선거에서는 대단히 유용하게 사용되는 이슈파이팅이라는 겁니다. 물론 홍 지사는 지난 보궐선거에서는 이를 들고 나오지 않았지만 내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또 다시 이 문제가 불거질 것이고, 홍지사는 이를 유용한 이슈 파이팅으로 활용할 것입니다.

한번 톺아볼까요?

1. 이슈는 대중(언론)의 큰 관심사이어야 한다.
홍준표 도지사의 진주의료원 폐업은 단순히 지방 소도시의 공공의료원의 폐업이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공공의료에 대한 문제로 번졌습니다. 당연히 대중은 물론 언론이 대서특필을 통해 큰 관심사를 보였습니다. 진주의료원은 졸지에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공공의료원'이 되었습니다.

2. 이슈는 찬성과 반대로 분명히 나뉘어져야 한다.
홍준표 도지사는 진주의료원에 대해 적자(赤字)와 부채 누적으로 진주의료원의 회생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전임 도지사들이 진주의료원이 골칫덩어리인 것을 알고도 '폭탄 돌리기'를 했고 담당 직원들은 강성노조 눈치 보고 '좋은 게 좋다'고 넘어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찬성과 반대의 논란을 각오하고 자신의 소신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것이죠.

3. 이슈는 선거에 분명히 영향을 미쳐야만 한다.
홍준표 지사는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성을 가지고 진주의료원 폐원을 결정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가 생각하는 진정성이고요, 대다수 경남도민이 생각하는 것과 일치할까요?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만, 분명히 다음 지방선거에 홍준표 지사가 출마한다면 이 문제는 분명히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결과는 다음 선거 결과가 말을 해 주겠지요.

이슈의 3요소가 매우 중요한 이유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한 번 그림으로 총 정리해 보겠습니다.

수도이전론은 이슈가 되면서 대중의 관심사, 찬반의 대립,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3요소를 충족했습니다.
▲ 노무현 후보의 '수도이전론' 수도이전론은 이슈가 되면서 대중의 관심사, 찬반의 대립,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3요소를 충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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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선거에서 수도 이전이라는 어마어마한 공약이 나왔을 때, 얼마나 관심이 컸으며 반대가 격렬했는지 여러분께서는 다 기억하실 겁니다. 선거는 이렇게 먼저 이슈를 제기하고 선점함으로써(이거 대단히 중요합니다. 나중에 다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프레임을 짜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 기억을 하지 못하지만 2006년 9월 11일, 자민당 스스로도 예측하지 못하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 44회 일본 중의원 총선거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은 296명을 당선시켜 61.7%의 의석 확보율을 기록했다는 것이죠. 연립 파트너 공명당이 얻은 31석을 합치면 327석으로 개헌저지선 320석을 훌쩍 넘는 절대적 압승으로 '대통령형 총리'의 출현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완전한 전략의 승리라 할 수 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반도 대운하가 4대강 사업으로 변질되어 진행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고도의 전략으로 임했던 이명박 캠프는 이 원칙에 따라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물론 이 전략만 가지고 승리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죠.

독자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만약 고건 전 총리가 낙마하지 않고 이 이슈를 끌고 갔다고 했을 때,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는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그 이후의 대한민국의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덧붙이는 글 | 뱀발 - 스크롤이 너무 길어서 독자여러분께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중간에 끊어야 하는데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이슈의 조건은 겨우 첫 번째 이야기일 뿐이라는 겁니다. 다음 이야기는 이슈화의 조건, 아젠다와 슬로건 이야기로 정리할까 합니다. 이슈의 조건은 이렇게 세 가지이지만 이슈가 확산되고 더 풍성하게 되는 또 다른 세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 거론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이어지는 대략적인 연재 내용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7. 이슈화의 조건, 아젠다와 슬로건, 이슈의 셈범
8. 밴드웨건 전략과 언더독 전략
9. 언론퍼블리시티 전략과 구전홍보 전략
10. 온라인 전략
11. 이미지 정치와 이미지 전략
12. 네거티브 전략과 포지티브 전략
13. 선거란 무엇인가?
14. 유권자는 누구인가?
15. 연설(설득)은 어떻게 할 것인가?
16. 홍보물은 어떻게 만들까?
17. 성공하는 캠페인 전략
18. 필승 비결 10계명
19. 이것만은 꼭 지켜라! 5가지 기본자세
20. 2014 제 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전망

어떤 주제는 한 번에 끝날 수도 있지만, 어떤 주제는 2~3회에 걸쳐 연재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나열할 것 보다 훨씬 많아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순서도 바뀔 수 있겠네요.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태그:#이슈와 이슈파이팅, #고건, #홍준표, #노무현 ,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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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한, 1969년 서울 산(産), 2000년부터 방송에 관심 있어 주변을 맴돌다 2005년 우연히 얻어 걸린 라디오 전화인터뷰부터 시사평론 방송시작, 2014년부터는 경제 Agenda에 집중, 시사경제평론을 하면서 몇몇 경제채널 출연하고 있음, 어떻게 하면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지 종일 고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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