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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 7명에 대한 첫 공판일인 12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이 의원이 재판을 마치고 호송차량에 올라타고 있다.
▲ 호송차 타고 법원 떠나는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 7명에 대한 첫 공판일인 12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이 의원이 재판을 마치고 호송차량에 올라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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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재판'이 시작됐다. 12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 110호 법정에서 드디어 '내란음모사건' 첫 번째 공판이 열렸다. 법정에 출석한 검사 8명과 변호인 13명은 상대방의 주장을 모두 부정하며 날선 공방을 벌였다.

검찰은 형법상 내란 음모죄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피고인 7명이 '비밀 지하조직 RO'의 핵심세력이며 이들이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 등을 누린 채 헌법체제를 전복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헌정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범죄"라며 재판부에 "우리의 안전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엄중한 처벌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변호인단(대표 변호사 김칠준, 법무법인 다산)은 검찰의 주장을 '근거없음'으로 일축하며 공소사실을 기각해야 한다고 맞섰다. 또 재판이 계속 진행되더라도 "모든 피고인에게, 모든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은 국가정보원이 불법 대선 개입 의혹을 덮기 위해 조작했고, 피고인들의 생각은 '처벌'이 아닌 '토론'의 대상이라고도 밝혔다. 양쪽은 이날 재판부의 요구에 따라 프리젠테이션(PT) 형식으로 모두진술을 진행했다.

[검찰] "이석기 등 RO 조직해 남한 사회주의 혁명 목표, 체제 전복 시도"

33년 만의 내란음모 사건 첫 공판이 끝난 12일 오후 경기도 수원지방법원에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을 태운 것으로 추정되는 차량이 떠나자 당원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33년 만의 내란음모 사건 첫 공판이 끝난 12일 오후 경기도 수원지방법원에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을 태운 것으로 추정되는 차량이 떠나자 당원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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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는 과거 (이석기 의원이 가담했던)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과 마찬가지로 자주·민주·통일을 3대 목표로 결정, 폭력에 의해 대한민국 기본질서를 파괴하기로 하고 사상 무장을 철저히 해왔다.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삼아 총책 이석기 중심의 엄격한 지휘체계를 구축하는 등 남한 사회주의혁명 목표로 각 분야에서 세력을 확대해 온 비밀 지하 조직이다."

정재욱 부부장검사(대검 공안부 연구관실장)가 말했다. 그는 이날 재판에 출석한 검사 8명 가운데 첫 번째로 나와 피고인 7명의 내란 음모·선동 및 이적 동조 혐의를 설명했다. 공안수사전문가인 그는 국정원에서 이 사건을 넘겨받은 후부터 사건을 전담해왔다. 팀장인 최태원 수원지검 공안부 부장검사 등 전담팀 대부분은 '공안통'으로 알려졌다.

이날 검찰은 이석기 의원 등이 2003년 8월경 지하조직 'RO'를 결성, 내란을 음모·선동했고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인 북한에 동조했다는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1시간 10여 분 동안 PT를 진행했다. 수십 장짜리 PT에는 검찰이 RO 비밀 회합으로 주장해 온 5월 12일 합정동 모임뿐 아니라 혐의와 관련된 추가 자료들이 담겨 있었다.

정 검사는 RO가 체계를 갖춘 조직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그 총책이 이석기 의원이며 이상호 전 경기진보연대 고문은 경기남부권역 지휘원, 홍순석 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은 경기서부권역 지휘원, 한동근 진보당 수원시 위원장은 경기남부권역 조직원, 조양원 사회동향연구소 대표는 재정부문 담당, 김홍열 진보당 경기도당 위원장은 경기북부권역 지휘원, 김근래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은 경기동부권역 지휘원이라고 보고 있다.

검찰의 표현을 빌리면, 평상시에는 '남한 혁명 역량'을 보존·강화해오던 RO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 중순이다. 당시 이석기 의원은 '전쟁 대비 3대 지침'을 내려 '일촉즉발'의 정세이므로 ▲ 연대 조직을 조기 조성 ▲ 대중 동원, 2008년 광우병 사태(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 때처럼 선전전 ▲ 미군기지 등 주요 시설 정보 수집 등 지침을 하달했다고 한다. 검찰은 이때 '세포단위'로 결의대회를 열라는 지시도 있었고, 홍순석 부위원장이 그에 따라 4월 5일 결의대회를 개최, 북한 영화 <월미도>를 상영했다고 밝혔다.

"RO 지난 3월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여... 피고인들 이적표현물도 소지"

문제의 '합정동 회합'은 4일 전부터 조직원 소집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검찰은 5월 10일 1차로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에서 10분간 비밀 회합이 있었고, 12일 합정동의 한 수도원에서 4시간 동안 회합이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또 이석기 의원이 이 자리에서 제국주의에 맞서 무장봉기에 대항한 김일성의 '한 자루 권총 사상' 등을 강조했고, 조양원 대표가 '기존 정당과 선거로는 이길 수 없다, 싸워서 이기는 방식으로 적을 무너뜨려야 한다'며 선거와 의회주의를 부정하는 내용의 문건을 작성했다고 했다.

검찰은 RO가 학술모임·이념서클 등으로 사상성이 투철한 자를 포섭한 다음 민주열사 묵념 강령과 5대 의무를 알려주고, 지휘성원의 문답을 거쳐 결의를 발표하는 등 조직적으로 움직이면서 사상 강화에 힘썼다고 했다. 특히 지휘성원 문답을 보면 '우리의 수(首)는 누구인가-(조선노동당) 비서동지' 식이란 내용이었다며 "당의 충성심 등을 검증했다"고 설명했다.

뒤이어 김훈영 검사가 피고인들의 국보법 위반 혐의를 설명했다. 그는 "이석기 의원은 주소지(자택)에 문건형태 이적표현물 17건, 컴퓨터 파일로 173건을 소지하고 있었다, 의원실 컴퓨터에서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의 주요 노작집>, <경애하는 김일성 주석님이> 등 북 체제를 선전하는 파일 등을 찾았고, 이상호·홍순석·조양원·김근래도 이적표현물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 검사는 끝으로 "검찰은 그동안 합법 절차로 피고인들로부터 압수한 각종 자료 등을 증거로 RO는 북 대남혁명론에 입각한 비밀 조직임을 확인했다"고 했다. 현재 이석기 의원 등 피고인과 변호인단은 검찰과 국정원이 불법적으로 증거를 수집했다며 'RO 회합' 녹음·영상파일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현재까지 수사 과정의 적법성을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이때 수집한 자료들의 증거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관련 증인을 대거 신청했다. 이날도 디지털 압수물을 증거로 인정받고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담당 감정관 등 13명을 추가, 모두 97명의 증인을 신청했다. 여기에 변호인단 증인 15명까지 더하면 신청된 증인만 100명이 넘는다.

"국회의원과 정당 및 사회단체 간부들이 헌법 아래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권한과 권리를 만끽하며 헌법체제를 전복하려고 한, 헌정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범죄다."

김 검사는 "체제 전복 세력으로부터 우리의 안전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피고인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요구한다"며 PT를 마무리했다.

[변호인] "위법한 공소장·증거, 기각돼야... 전원, 전부 무죄"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 7명에 대한 내란음모사건의 변호를 맡은 김칠준, 심재환 변호사 등 변호인단이 12일 오후 경기도 수원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첫 공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 법정 나서는 이석기 의원 변호인단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 7명에 대한 내란음모사건의 변호를 맡은 김칠준, 심재환 변호사 등 변호인단이 12일 오후 경기도 수원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첫 공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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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단은 검찰의 선제공격을 강하게 맞받아쳤다. 이날 변호인단을 대표해 발표자로 나선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을 두고 거듭 "근거가 없다"고 강조하며 "공소사실은 기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설령 재판이 계속 되더라도 "모든 피고인을, 모든 공소사실을 무죄로 내려달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검찰보다 10분 정도 짧게 PT를 진행했지만 범죄 여부를 다투는 데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공소사실을 크게 ▲ RO가 내란 음모·선동 ▲ RO는 북과 연계 ▲ 5월 12일 강연에서 내란 음모·선동을 했다로 정리한 뒤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석기 의원 등은 줄곧 RO란 조직은 없고 '5월 합정동 회합'은 당원들이 모여 이 의원의 강연을 듣는 자리라고 주장해왔다. 이정희 대표도 같은 주장을 반복하며 "RO는 실체가 없고, 그 RO가 북한과 연계됐다는 증거는 제시되지 않은 채 오로지 북한의 대남혁명론만 공소장에 장황하게 나열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건에서 유일하게 진실 여부를 다퉈야 할 부분은 "5월 모임에서 내란 음모와 선동이 있었냐, 참가자들의 말이 내란 음모나 선동이 될 수 있는가"뿐이라고 강조하며 내란 음모죄 등의 구성요건을 언급했다. 형법상 내란 음모죄가 성립하려면 ▲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 모인 사람들이 ▲ 내란의 수단과 방법, 시기를 특정하고 ▲ 그 일을 실제로 일으킬 수 있으며 ▲ 당사자들이 폭동을 결의하거나 합의를 해야 한다.

"5월 강연의 목적은 정세 토론이었고, 결론도 남한 내 사회주의혁명 완수가 아니라 전쟁 위협에 반대하고 평화를 호소하자는 것이었다. 국헌 문란 목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 검사는 RO가 사상으로 무장, 위계질서가 있으며 정예화한 구성원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그 구성 시기와 구성원, 조직체계나 활동 내용 등이 확정 안 되고 실체가 없다. (내란을 일으킬) 수단도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고, '국가시설을 파괴하자'는 등 적극적인 선동도 없다.

국헌 문란의 위험성을 봐도, 검사가 내란을 일으킬 수 있는 사실로 언급한 것은 'RO는 국민여론을 조작할 수 있는 대중심리전 수행 역량을 충분히 갖출 수 있다'고 말한 것뿐이다. 언론기관을 넘어서 여론을 허위로 조작할 수 있다면 이것보다 더 허무맹랑한 얘기가 없다. 검사는 '강연에 적극 호응, 가세하여 통모했다'고도 주장했는데, 정세인식을 다룬 일회성 강연으로 내란을 통모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두 명이 통신시설 파괴 등을 언급하자 다른 참석자들이 황당하고 불가능하다는 반응도 보였다. 이 모든 것이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내란 음모, 내란 선동은 모두 무죄다."

"검찰 주장은 모두 근거 없어.... 내란 음모·선동, 국보법 위반 모두 무죄"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 7명에 대한 내란음모사건의 변호를 맡은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12일 오후 경기도 수원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첫 공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 법정 나서는 이정희 대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 7명에 대한 내란음모사건의 변호를 맡은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12일 오후 경기도 수원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첫 공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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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이석기 의원과 김홍열 위원장이 내란 선동 혐의를 받는 부분 역시 "두 사람의 발언 중에 내란을 결의하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고, 참석자들도 그걸 결의하고 모인 게 아니다"라며 "내란 선동 행위는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검찰이 이 의원을 RO 총책으로 지목했지만, 국정원이 법원에서 감청허가를 받은 내용에는 옛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인 B씨가 "총책으로 추정된다"고 나온다고 했다.

이정희 대표의 변론에 탈북자와 보수단체 회원들이 대부분이었던 방청석에서 어이없다는 투로 웃음소리가 나왔다. 이 대표는 아랑곳하지 않고 5월 모임 성격을 설명해나갔다. 그는 이날 모임이 4월 28일, 김홍열 위원장이 '한반도 정세를 두고 당원들과 의논할 필요가 있지 않겠냐'는 생각에 강연을 조직했고, 5월 12일 강연자로 나선 이석기 의원은 전쟁을 경고하고 평화를 강조했다고 변호했다.

하지만 <한국일보>가 '선전 수행'을 '성전 수행'으로, '준비 정도와 상관없이'는 '정규전과 상관없이'로 왜곡한 녹취록을 보도하는 바람에 잘못된 사실이 알려졌다고 덧붙였다. 그는 12일 재판에서 5월 모임 당시 이석기 의원의 발언과 당원들의 분반토론 내용 일부가 담긴 녹음파일을 법정에서 틀며 검찰과 국정원이 사건을 조작했다고 말했다.

'공소장 왜곡' 얘기도 나왔다. 이 대표는 '공소장 일본주의(공판기일 이전에 증거능력 없는 증거를 제출하는 식으로 법관에 선입견을 심어선 안 된다)' 원칙을 거론하며 검찰이 이 원칙을 어기고 위법하게 공소장을 작성했으니 그 내용은 기각돼야 한고 주장했다. 구체적 근거가 없는 RO 강령과 조직체계, 명칭 등을 공소장에 장황하게 기재했고, 불법 증거인 녹취록을 인용해 내란음모 관련 내용으로 공소장의 절반 가량을 채우는 등 이것만으로 법관의 예단을 충분히 심어줬다는 것이다.

변호인단이 또 하나 강조한 것은 위법하게 수집한 자료는 증거능력이 없다는 '독수독과론'이다. 검찰과 국정원은 제보자 A씨가 2011년 1월 25일~2012년 5월 18일 녹음, 임의로 제출한 파일 11개와 법원의 허가를 받은 뒤 A씨가 2012년 6월 21일~2013년 7월 29일 녹음한 33개 파일을 핵심 증거로 제출했다. 이정희 대표는 A씨는 제보자가 아니라 "수사기관의 도구"라며 "수사기관이 대화 상대방의 동의 없이 했으니 위법수집증거"라고 말했다.

그는 한 번 더 '전원, 전부 무죄'를 강조하며 "이 사건은 국정원이 주도한 대선 관권 선거를 덮기 위해 조작한 사건"이라고 재차 말했다. 이어 "이들의 생각은 사회적으로 토론되고, 더 나은 형식으로 다듬어져야 하는 사회적 토론의 대상"이라고 밝혔다.

오후 6시 반쯤 재판이 끝난 뒤 김칠준 대표 변호사는 "오늘 첫 공판에서 검찰의 공소사실이 얼마나 허술하고 근거가 없는지 낱낱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건은 결국 정권이 현 정세를 무마시키기 위해 조작한 사건임을 확신한다"고 했다.

'내란음모사건'의 두 번째 재판은 14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이날은 제보자 A씨로부터 녹음·영상파일을 건네받은 국정원 수사관 문아무개씨가 증인으로 출석한다.


태그:#이석기, #내란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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