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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이 지나니 어김없이 추위가 밀려온다. 거리의 가로수들은 무성했던 잎을 떨어뜨리며 겨울 채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으리라던
늙은 러시아 문호의 눈망울이 생각난다
맑은 바람결에 너는 짐짓
네 빛나는 눈썹 두어 개를 떨구기도 하고
누군가 깊게 사랑해 온 사람들을 위해
보도 위에 아름다운 연서를 쓰기도 한다
- 곽재구 시, '은행나무' 앞부분

'보도 위에 아름다운 연서'로 노란 은행나무잎만한 게 또 있을까. 막바지에 이른 가을의 끝자락, 도심을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과 차량들의 행렬 속에 노란 빛깔의 은행나무는 세상사의 고단함을 잠시 잊게 한다.

은행잎으로 만든 하트 은행잎으로 만든 하트. 누군가 은행잎과 단풍잎을 모아 하트를 만들었다.
▲ 은행잎으로 만든 하트 은행잎으로 만든 하트. 누군가 은행잎과 단풍잎을 모아 하트를 만들었다.
ⓒ 전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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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에 피붙이 하나 없이 외로운 나무

알고 보면 은행나무는 외로운 나무다. 여타의 나무들과 달리 은행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는 오직 은행나무 한 종뿐이다. 그래서 온 세상에 피붙이 하나 없는 외로운 나무가 은행나무다. 그러나 은행나무는 오랜 옛날 공룡이 살았던 시대부터 지상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대단한 생명력의 소유자다. 이런 질긴 생명력 때문에 은행나무는 '화석나무'라 불린다.

한자로 은행(銀杏)은 살구를 닮은 열매에서 흰 빛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은행나무의 영어 이름이 실버 어프리코트(Silver apricot)로 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은행나무잎이 오리발을 닮아 압각수(鴨脚樹)라고도 하고, 나무를 심으면 손자대에 이르러서야 열매를 얻을 수 있다 하여 공손수(公孫樹)라고도 부른다.

은행나무의 자생지는 중국 절강성의 양자강 하류 천목산이라고 알려진다. 중국에 서식하던 은행나무가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와 자라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불교나 유교가 전래되는 과정에 함께 들어와 서식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종로구 월암공원 은행나무 종로구 월암공원 은행나무. 홍난파 가옥 옆 월암공원에 외로이 서 있는 은행나무. 공원을 단장하고 옮겨 심은 지 몇 년 되지 않았다.
▲ 종로구 월암공원 은행나무 종로구 월암공원 은행나무. 홍난파 가옥 옆 월암공원에 외로이 서 있는 은행나무. 공원을 단장하고 옮겨 심은 지 몇 년 되지 않았다.
ⓒ 전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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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가 자라기에는 한반도만한 곳이 없다. 은행나무에는 '징코민'이라는 혈액순환 촉진 성분이 있는데 유독 우리나라 은행나무에 이 성분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징코민 성분을 추출해 의약품을 만드는 데 우리나라 은행나무만한 게 없다고.

은행나무가 살기에 최적지인 우리나라에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여럿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는 나무들 가운데 느티나무 다음으로 은행나무 개체수가 많다.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는 은행나무는 19그루다. 천연기념물말고도 노거수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은행나무는 무려 813그루에 달한다. 그 중 가장 오래된 나무가 바로 경기도 양평의 용문사 은행나무다. 천연기념물 30호로 지정된 용문사 은행나무는 높이가 42미터, 가슴 높이의 둘레가 14미터에 이르며 수령은 1100살이 넘는다.

성균관 은행나무가 수나무가 된 사연

공자는 은행나무가 있는 행단(杏壇) 아래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옛 사람들이 학문을 배우는 성균관이나 향교, 서원에 은행나무를 심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 문묘에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다. 성균관 은행나무는 중종 14년인 1519년 대사성(大司成)을 지낸 윤탁(尹倬)이 심었다고 전한다. 수령 500살을 헤아리는 성균관 은행나무는 두 그루이다. 서쪽 나무의 높이는 21m에 이르고, 가슴 높이 둘레는 7.3m이다. 동쪽 나무의 경우 전쟁 때 입은 상처로 줄기가 일곱 갈래로 갈라졌지만 우람하기는 서쪽 나무와 매한가지다.

성균관 은행나무 성균관 은행나무. 명륜당 앞마당 은행나무 두 그루 모두 수나무라 은행이 열리지 않는다.
▲ 성균관 은행나무 성균관 은행나무. 명륜당 앞마당 은행나무 두 그루 모두 수나무라 은행이 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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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은행나무 동쪽 은행나무. 전쟁 때 입은 상처로 줄기가 일곱 갈래로 갈라졌다.
▲ 동쪽 은행나무 동쪽 은행나무. 전쟁 때 입은 상처로 줄기가 일곱 갈래로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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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은행나무 서쪽 은행나무. 서쪽 나무의 높이는 21미터에 이르고, 가슴 높이 둘레는 7.3미터이다.
▲ 서쪽 은행나무 서쪽 은행나무. 서쪽 나무의 높이는 21미터에 이르고, 가슴 높이 둘레는 7.3미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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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천연기념물 59호로 지정된 성균관 문묘의 은행나무는 모두 수나무이다. 이곳 은행나무가 수나무인 사연은 전설이 되어 전한다.

원래 성균관 은행나무는 암나무였다. 매년 가을이면 성균관 은행나무는 많은 열매를 맺었다. 이웃에 사는 사람들이 은행을 줍기 위해 성균관 문묘를 드나들기 시작했다. 사람이 드나드니 시끌벅적하기 마련. 밖이 소란스러우니 명륜당 유생들이 학업에 열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참다못한 성균관 유생들은 은행나무에 은행이 열리지 않게 해 달라고 제사를 지냈다. 유생들의 제사 덕분이었을까. 신통하게도 어느 해부터인가 성균관 은행나무는 수나무로 변해 은행이 열리지 않기 시작했단다.

은행나무 아래에서 웨딩사진 촬영 은행나무 아래에서 웨딩사진 촬영. 결혼을 앞둔 예비 신혼부부가 웨딩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다.
▲ 은행나무 아래에서 웨딩사진 촬영 은행나무 아래에서 웨딩사진 촬영. 결혼을 앞둔 예비 신혼부부가 웨딩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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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의 기념사진 촬영 연인들의 기념사진 촬영. 웨딩사진 촬영을 하는 예비 신혼부부가 부러웠을까. 은행나무 한편에서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연인들의 기념사진 촬영 연인들의 기념사진 촬영. 웨딩사진 촬영을 하는 예비 신혼부부가 부러웠을까. 은행나무 한편에서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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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전 처마와 은행나무 대성전 처마와 은행나무. 노랗게 단풍든 은행나무와 대성전의 처마가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자태를 뽐낸다.
▲ 대성전 처마와 은행나무 대성전 처마와 은행나무. 노랗게 단풍든 은행나무와 대성전의 처마가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자태를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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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잎과 단풍잎 은행잎과 단풍잎. 은행잎과 단풍잎이 늦가을을 물들이고 있다.
▲ 은행잎과 단풍잎 은행잎과 단풍잎. 은행잎과 단풍잎이 늦가을을 물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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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돌담길에도 은행나무가 있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이름난 덕수궁 돌담길 은행나무들도 노랗게 물들었다. 지난 8일 오후 이화여고 앞 정동길에는 정동 일대의 유적지를 답사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던 중명전을 둘러보고 나온 한 무리의 탐방객들이 이화여고 건너편에서 안내자의 해설을 귀 기울여 듣고 있다. 1886년 이화학당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의 정문을 복원해 놓은 고풍스러운 대문 옆에 선 은행나무는 노란 잎을 연신 떨어뜨린다.

정동길 탐방객들 정동길 탐방객들. 은행나무 단풍이 한창인 정동일대를 답사하는 탐방객들의 모습.
▲ 정동길 탐방객들 정동길 탐방객들. 은행나무 단풍이 한창인 정동일대를 답사하는 탐방객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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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학당 정문 옆 은행나무 이화학당 정문 옆 은행나무. 은행나무가 노란 잎을 연신 떨어뜨리고 있다.
▲ 이화학당 정문 옆 은행나무 이화학당 정문 옆 은행나무. 은행나무가 노란 잎을 연신 떨어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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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고를 지나 정동교회에 이르면 조그마한 로터리가 있다. 그곳 덕수궁 궁장 아래엔 다섯 가족을 형상화한 조각 작품이 있다. 이 조각 작품의 이름은 장독대.

"장독대는 한국인으로 하여금 가정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특히 눈 덮인 장독대에서 나는 크고 작은 독들의 모습을 보며 겨울나기를 하는 가족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의 이 같은 설명과 달리 이 조각상을 보면 어느 대중가요의 노랫말처럼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이환권 작가의 조각 작품 장독대 이환권 작가의 조각 작품 장독대. 이 조각상을 보면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 이환권 작가의 조각 작품 장독대 이환권 작가의 조각 작품 장독대. 이 조각상을 보면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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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희망이 되어라

2013년 11월 8일 저녁 7시 덕수궁 대한문 앞. 이 땅의 모든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천주교 사제단 신부들이 집전하는 매일 미사가 215일째 열렸다. '사람아 희망이 되어라, 희망아 사람이 되어라'는 펼침막을 내건 이날 거리미사가 감당해야 할 몫은 참 많다.

쌍용자동차 투쟁 1632일
제주 강정 해군기지 반대 투쟁 8년째
밀양 송전탑 반대 9년째
코오롱 노동자투쟁 3182일
골든브릿지 노동자투쟁 564일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투쟁 2255일
3M 노동자투쟁 1629일

대한문 앞 매일미사 대한문 앞 매일미사 ‘사람아, 희망이 되어라’ 모습
▲ 대한문 앞 매일미사 대한문 앞 매일미사 ‘사람아, 희망이 되어라’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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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가 열리는 대한문 앞 은행나무 대한문 앞에도 서너 그루의 은행나무도 노랗게 단풍들었다.
▲ 매일미사가 열리는 대한문 앞 은행나무 대한문 앞에도 서너 그루의 은행나무도 노랗게 단풍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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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문 앞 인도에도 몇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다. 이 나무들은 지난 봄 서울 중구청이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농성 중이던 노동자들의 천막을 철거하고 조성해 놓은 화단 옆에 서 있다.

노랗게 잎을 물들이고 겨울 채비를 시작한 이곳 키 작은 은행나무들은 기억할 것이다. 2013년 봄, 여름, 가을로 이어지면 드러나고 있는 불법선거의 전모와 민주주의 퇴행을…. 그 기억과 함께 겨울의 맵찬 추위 속에서 희망의 나이테를 더할 것이다.

다시 이 땅 위에 불법으로 들어선다 해도
수천만 황인족의 얼굴 같은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희망 또한 불타는 형상으로 우리 가슴에 적힐 것이다
- 곽재구 시, '은행나무' 뒷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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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연대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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