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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한경대학교에 다닌 사람이라면 정말로 "이 여성 모르면 간첩"이다. 설마 한 사람 정도는 모를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은 접어두자. 오늘(7일) 내가 만난 정기연씨(56세)는 학생들의 전공서적을 20년 동안 구내서점에서 팔아온 여성이다. 교수, 직원, 학생 등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알 수밖에 없다.

정기연씨는 요즘 아침에 서점에 출근해서 한 잔의 커피를 마실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했다. 자신의 서점 공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했다. 자녀 셋을 홀로 대학졸업 시킨 원동력의 공간이다.
▲ 정기연 정기연씨는 요즘 아침에 서점에 출근해서 한 잔의 커피를 마실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했다. 자신의 서점 공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했다. 자녀 셋을 홀로 대학졸업 시킨 원동력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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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름다운 유산에 힘입어 살다.

20년 전, 남편과 함께 한경대학교 구내서점을 시작했다. 남편이 한경대학교 출신이어서 학교 내에 구내서점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이에 학교 측에 허락을 받아 서점을 냈다. 원래 건축업을 하던 남편은 해보지 않은 서점을 시작해 많은 고생했다고 했다.

남편은 2002년 암으로 별세 했다. 딸 2명과 아들 1명을 선물로 남겨두고 말이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이었던 당시의 자녀들을 그녀가 고스란히 홀로 책임져야 했다. 앞으로 살아 나갈 일이 막막했다고 당시를 추억했다. 남편과 그 당시를 떠올리던 그녀는 내 앞에서 눈물을 글썽였다. "자신도 모르게 그랬다며 미안하다"고 하는 그녀보다 오히려 내가 미안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남편이 대학교 구내서점이라는 터전을 남겨두고 갔기 때문이다. 서점 초창기에 겪어야할 궂은 일은 남편이 모두 감당하고 떠났다. 남편의 노고가 밑거름이 되어  홀로 세 자녀를 데리고도 거뜬히 삶을 지탱할 수 있었다. 가장으로서의 할 일을 제대로 만들어주고 떠난 남편이 그녀로선 정말 고맙다고 했다. 참 아름다운 유산이 아닐 수 없다.

정기연씨는 3년 전부터  그림과 사진에 푹 빠졌다. 막내 아들이 3년 전에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고, 그녀에겐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위의 작품은 26회 대한민국회화대전 한국화부문 입상작이며, 정기연씨의 작품이다.
▲ 송림 정기연씨는 3년 전부터 그림과 사진에 푹 빠졌다. 막내 아들이 3년 전에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고, 그녀에겐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위의 작품은 26회 대한민국회화대전 한국화부문 입상작이며, 정기연씨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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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내게 힘이 되었어요."

그녀에게 구내서점 역사는 2기로 구분된다. 1기는 전반 15년, 2기는 후반 5년으로. 무슨 말이냐고? 5년 전만 해도 옛날 학교 건물에서 구내서점을 했다. 자그마치 15년을 그 자리에서 했다. 그 땐 총학생회 등 학생회 사무실과 같은 건물을 사용했다.

그 시절엔 학생들이 복사기 등을 구비한 구내서점에 수시로 드나들었다고 했다. 학생들이 책을 사는 용무 외에 여러 가지 일로 서점을 출입했다. 옛 건물의 시절엔 학생들과 더 친밀하게 부대끼며 살았다고 했다. 가끔 음식도 같이 해먹고, 떡볶이도 나눠 먹었단다. 자신의 자녀와 비슷한 또래의 학생들이었으니 '엄마 마음'을 생긴 게다.

그렇게 정을 나눈 학생들은 지금도 그녀를 찾아오고, 그들의 결혼식 때 초청을 할 만큼 살갑게 지낸다. 가끔 학교에 찾아와서는 마치 친정을 찾듯 찾아와 인사를 하는 졸업생들을 보며 뿌듯하다고 했다. "얘들아, 우리 전에 만나던 멤버들 한 번 모이자"라고 그녀가 말해놓고 다들 바빠서 실천은 못했지만, 그런 말이 통하는 관계다.

그녀는 남편 없이 홀로 그 시절을 고군분투 했지만, 고생스럽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단지 자녀를 홀로 키워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고 했다. 그건 아마도 자녀 같은 학생들에게 책만 팔지 않고, 정을 나누며 살았기 때문이리라. 그 시절, 서점 고객(학생들)때문에 힘은 들었어도, 오히려 그들이 힘이 되었다고 했다.

위의  사진은 정기연씨가 찍은 작품이다. 그녀는 3년 전부터 안성에 있는 사진동호회에 나가면서 사진촬영에 푹 빠졌다. 조만간 사진작가에 도전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했다. 지난 시절, 홀로 자녀 셋을 키울 때는 도저히 꿈도 못꾸던 일이었다.
▲ 호수의 저녁노을 위의 사진은 정기연씨가 찍은 작품이다. 그녀는 3년 전부터 안성에 있는 사진동호회에 나가면서 사진촬영에 푹 빠졌다. 조만간 사진작가에 도전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했다. 지난 시절, 홀로 자녀 셋을 키울 때는 도저히 꿈도 못꾸던 일이었다.
ⓒ 정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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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건물, 새로운 인생.

5년 전 구내서점이 신축 학생회관 건물로 이사 왔다.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그 전 매장보다 더 깨끗하고 깔끔한 서점이라서가 아니다. 여기로 이사 오면서 그녀에겐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3년 전, 막내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취직했다. 이로서 자녀 3명을 홀로 모두 대학을 졸업시키고, 각각 직장 마련과 결혼을 시켰다. '우리 시대의 장한 어머니'는 다름 아닌 책을 팔아 할 일을 해냈다. 자녀양육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냈다.

그 후, 그녀에게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이제 무엇을 해볼까. 그 전부터 관심 가졌던 사진과 그림에 손을 대었다. 사진 동호회(안성 사진작가회)에 들어서 사진 촬영활동을 했다. 지금도 매주 수요일엔 하루 세 시간 정도 사진수업을 받는다.

카메라를 통해 보는 풀 한 포기, 돌 하나, 구름 한 점 등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인다고 했다. 그랬다. 그녀가 달라졌다. 그 전엔 자녀를 키워내느라 하늘을 한 번 올려다 볼 여유조차 없었지만, 이젠 가을 하늘에 떠가는 구름이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이젠 '엄마'가 아닌 '여성'으로서 다양한 꿈꿔

그녀는 요즘 하루 중 제일 좋은 시간이 아침 출근 시간이라고 했다. 아침에 서점에 출근해서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시노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녀는 "이 공간이 너무 좋아요"라고 했다.

왜 그렇지 않을까. 이 서점은 자신과 자신의 자녀의 삶을 지탱해준 원동력이요, 자식 같은 학생들로부터 젊음의 열기를 계속 느끼게 해주는 곳이요, 사랑하는 남편이 물려준 아름다운 유산이 아니었던가.

그녀가 서점을 하면서 힘이 된 사람은 그녀의 딸 임은미씨다. 임은미 씨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엄마와 함께 8년 동안 지금의 서점을 함께 운영해 왔다.  지금 정기연씨가 사진활동을 할 수 있는 여유 시간도 모두 딸이 함께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엄마가 사진활동을 하면서 얼굴이 환해졌어요. 그래서 정말 좋아요"라고 말하는 딸 임은미 씨가 고맙다.
▲ 딸과 함께 그녀가 서점을 하면서 힘이 된 사람은 그녀의 딸 임은미씨다. 임은미 씨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엄마와 함께 8년 동안 지금의 서점을 함께 운영해 왔다. 지금 정기연씨가 사진활동을 할 수 있는 여유 시간도 모두 딸이 함께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엄마가 사진활동을 하면서 얼굴이 환해졌어요. 그래서 정말 좋아요"라고 말하는 딸 임은미 씨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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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사진작가가 되어보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곧 그 꿈이 이뤄질 거 같다고 했다. 틈틈이 동양화도 그리고 있다. 옛날에 배웠던 서예의 기능을 되살렸다. 이 모든 것을 모아 개인전을 해볼 욕심까지 내어본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어느덧 그녀는 30대에 서점을 시작해서 5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다. 이젠 '엄마'가 아닌 '여성'으로서 자신을 발견하고 펼치려 하고 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태그:#한경대 구내서점, #정기연, #서점, # 사진,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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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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