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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에 개관한 완주군 삼례읍의 삼례문화예술촌은 100년 이상 된 농협 창고들을 개조하여 만든 역사와 현대를 어우르는 지역 문화예술의 중심공간이다. 예전부터 삼례는 호남 최대의 역참지이며 조선시대 삼남대로와 통영대로가 만나는 지점으로 역사 문화적으로 의미가 큰 곳이었다.
   
삼례문화예술촌, 농협 창고 개조
▲ 삼례문화예술촌 삼례문화예술촌, 농협 창고 개조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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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애물단지로 전락한 창고를 리모델링 하여 종합세미나실, 비쥬얼 미디어 아트미술관, 문화카페, 책공방 북아트센터, 디자인 뮤지엄, 김상림 목공소, 책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다. 또, 내부에 별도의 매표소와 안내 소, 주차장, 관람 및 야외 공연장 등을 마련했다.

이를 통하여 지역 주민의 생활환경 개선 및 도시 재생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고, 예술가들의 일자리 창출 및 공공미술의 스펙트럼 확장을 통한 지역 문화예술의 중심으로 자리매김, 젊음과 사색이 공존하는 열정적인 문화 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는 듯했다.

천천히 내부를 둘러보면서 커피를 한 잔하기도 하고, 책방을 살펴보고 나서 목공소에 가서 작업하는 모습도 지켜보았다. 디자인 뮤지엄에서는 현재의 디자인 추세를 보았고, 비쥬얼 미디어 아트미술관에서는 다양한 작가들의 전시작도 감상했다. 이런 시골에 미술관을 겸한 아트센터라! 대단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내 고향 영주의 많은 빈 창고들도 다시 보아야할 시점이 된 것 같다.
 
100년 된 농협 창고다
▲ 삼례문화예술촌 100년 된 농협 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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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삼례문화예술촌을 방문하는 순간, 예전에 갔던 일본 북해도 북쪽의 항구, 상업도시이자 이와이 슌지(岩井 俊二)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의 촬영지로 알려진 오타루(小樽)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 오타루는 1872년 건설된 상업항구로 북해도 개척의 가교역할을 했던 곳이다. 이후 1880년 삿포로까지 철도가 개통되어 급속히 발전하였으며, 지금도 러시아의 사할린, 연해주와의 교역이 성한 곳이다.

현재는 인구 13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지만, 겨울철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로 활기차다. 개척 초기인 메이지 말기에 지어진 서양식 건축물들이 잘 보존돼 있어 뛰어난 자연환경과 함께 관광지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오타루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를 끄는 곳은 운하를 중심으로 한 옛 건물들과 창고를 둘러보는 일이다. 항구도시에 상업도시로 출발한 오타루는 어민들이 해산물을 잡아서 들어오면 650M의 긴 운하를 중심으로 좌우로 펼쳐진 창고에 물고기를 저장하는 일부터 했다고 한다. 물론 러시아의 수출입으로 많은 농·공산품도 이곳 창고에 저장되었다.

현재도 상업·어업도시이기는 하지만 물류 보관상 창고의 쓸모가 거의 없어진 상황이라 창고를 개조하여 식당, 갤러리, 베이커리, 커피 숍, 선물 용품점 등으로 바꾸어 쓰고 있다. 또, 그 활용이 줄어든 운하도 일부는 복원하여 도로로 사용하고 있었다.

운하를 중심으로 역사적인 서양식 석조건물과 조각품들이 전개되어 있고, 63개의 가스등이 늘어져 있어 연인들이 즐겨 찾는 산책로가 되어 있다. 일본의 다른 지역인 요코하마나 북해도의 하코다테 등지에서도 창고를 개조하여 다양한 활용을 하는 곳을 보았지만, 오타루의 모습은 규모나 모양, 쓰임새 등에서 과히 장관이다.

운하를 중심으로 길게 조성되어 있던 창고를 대부분 개조하여 새로운 관광 명소에 상업지구로 만들었고, 관광객을 유인할 수 있도록 편한 동선(動線)으로 새롭게 구조를 개선한 것도 특이했다.

도시 전체를 마치 유럽의 어느 시골 마을과 일본의 소도시를 혼합하여 만든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꾸몄다. 곳곳에 지극히 일본적인 냄새가 나는 선술집, 아이스크림 가게, 카페테리아, 유리 공예점, 오르골(orgel, music box)전시장을 만들어 독특함을 더했다.
 
미술전시 중
▲ 삼례문화예술촌 미술전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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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곳의 창고와 운하가 그대로 있고, 현재도 어업과 상업을 주로 하는 항구도시였다면 얼마나 볼품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일본 최북단의 이름 없는 항구도시가 운하를 일부 메우고 주변의 창고를 개조하여 온갖 물품의 판매장으로 만든 작은 아이디어가 변화의 시작이었지만, 도시는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뀐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지방도시의 미래도 이런 식으로 변화가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구 10여만 정도의 작은 지방 도시가 전혀 활기도 없고, 새로운 성장 동력도 없이 그저 쥐죽은 듯 조용하게 유지되고 있다면 지역에 새로운 관광자원을 발견하여 만드는 것도 중요하고,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구 산업동력을 변화된 형태로 개조하는 것도 절실히 필요한 일임을 배운다.

단순히 지역민도 함께하지 못하는 관주도하의 축제 중심의 지역개발구상과 행사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지역민들에게 힘이 되고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새로운 성장 동력의 필요성을 운하를 메우고 창고를 개조한 오타루에서 배웠다.
  
목공소, 갤러리, 카페 등이 있다
▲ 삼례문화예술촌 목공소, 갤러리, 카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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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에 와인숙성창고, 테마파크를 만들고,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든 구도심에 영화세트장을 만들고, 산속에 연극 촌을 조성하고, 시골마을에 수십 개의 박물관, 갤러리를 유치하고, 계곡에 말 사육장과 공연장을 만들고, 허허벌판에 출판단지를 만들고, 도로 모퉁이에 공원과 대형할인매장을 만드는 등 다양한 고민과 새로운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이다.

우리도 이제는 지역을 살리기 위해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나비곤충축제를 구상하고, 고등어 한 마리 나오지 않는 산간에서 간고등어를 브랜드화 하고, 은어가 잡히지 않는 곳에서 은어축제를 열고, 한우가 별로 사육되지 않는 곳에서 한우 축제를 만들어 내는 지혜와 파격적인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삼례문화예술촌에서 지역문화의 미래와 꿈을 살펴본 우리들은 마지막 행선지인 충남 논산시 강경읍으로 이동했다. 호남과 충청도의 농산물과 해산물이 넘쳐났던 강경에는 예전부터 밥 굶는 일이 없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가난한 집도 새우젓과 쌀밥을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번창했었다. 언제나 항구 주변은 사람과 온갖 물산으로 흥성거렸다.

서해바다 뱃길을 통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장사꾼들로 시끌벅적했다. 하루 100여 척의 배가 강 위에 줄을 섰고, 2만∼3만 명의 상인이 침을 튀며 흥정하기 바빴다. 그래서 일찍이 금강 하류에 발달한 농업과 어업 및 항구도시로, 평양, 대구와 함께 한국 3대 시장의 하나로 꼽혀 왔던 곳이다.

갑문 인근은 1960년대 초까지도 뱃사람들을 상대하는 술집, 요릿집, 여관들로 흥성했던 곳이다. 사실 강경의 쇠락은 이미 1889년 군산이 개항장이 되고 1905년 경부선, 1912년 군산선, 1914년 호남선 철도가 개통됨에 따라 시작되었다. 그래도 외지인들이 보기에 아직도 강경은 살아있는 근대사 박물관으로 일제강점기의 지역경제, 건축사를 연구하는 이들의 발길을 붙든다.

해방 이후에 지은 일본식 건물
▲ 논산시 강경읍 해방 이후에 지은 일본식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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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강제병합 후 강경에는 근대적 행정·금융·교육기관을 비롯해 경찰 등 통치기구가 설치됐고, 일본인들의 유입에 따라 전통가옥들은 일본식 가옥들로 바뀌었으며, 전통 포구의 풍경은 근대적 상업포구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중앙리의 남일당한약방과 중앙초등학교 강당, 남교리의 옛 강경상업학교 관사, 염천리의 옛 부두노동조합 사무실, 서창리의 옛 한일은행 강경지점, 황산리의 강경화교학교, 북옥리의 북옥감리교회 등 등록문화재들이 많다.

현재의 산업은 젓갈가공염장업의 제조와 판매가 주이며, 강경젓갈시장이 유명하다. 일단, 일행은 너른 평야 위에 있어 멀리 익산, 군산지역은 물론 공주, 부여까지 한눈에 조망이 가능한 옥녀봉 공원에 올라 '침례교 최초 예배지'를 방문했다.

논산시 강경읍, 침례교 첫 예배지
▲ 논산시 강경읍 논산시 강경읍, 침례교 첫 예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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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예배지는 예전 초가 가옥 모습과 다르게 슬레이트 지붕에 덧 달아낸 모습이었으나, 당시 모습을 기억하는 침례교회 관계자의 고증과 회의를 거쳐 지난해 12월 복원사업에 착수해 현재 모습으로 올 7월 복원을 완료했다.

한국 침례교회의 역사는 지난 1889년 서울에 도착한 캐나다의 독립선교사인 말콤펜윅의 선교사업과 더불어 시작됐다. 엘라 씽 기념 선교회에서 1895년에 파울링 선교사 부부, 아만다 가데린양 등 선교사 3인을 제1진 한국 선교단으로 파송했다.

이때 인천에서 강경으로 배를 타고 오가며 포목장사를 하던 지병석씨가 1895년 전도되어 서울에서 침례를 받고 겨울철 금강의 결빙이 풀려 뱃길이 열리자 강경으로 내려와 1896년 2월 주일에 강경 북옥리 자택에서 파울링 선교사 부부, 아만다 가데린양, 부인 천성녀씨 등과 예배를 드리면서 한국침례교회의 첫 예배를 하게 되었다.

한옥교회
▲ 논산시 강경읍 한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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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아담한 초가집에 감동을 하고는 잠시 목례를 했다. 이런 전망 좋은 곳에  집에서 살거나 교회를 다녔으면 좋겠다. 옥녀봉에서 내려온 우리들은 한옥으로 깔끔하게 지어진 '구 강경성결교회'를 둘러본 다음,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으로 갔다.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 건물 중에 하나로 지난 2007년 등록문화재 제324호로 지정되었다. 

붉은 벽돌로 멋지게 지어진 이 건물은 1913년에 건축되었다. 입면의 비례가 적절하고 화강석으로 벽돌 벽면을 장식하여 세련된 모습이다. 4개의 그랜드(grand) 필라스터(pilaster)와 화강석을 이용해 독특한 형태를 이루는 주두(柱枓), 4개의 그랜드 필라스터를 엮어주는 엔태블러처(entablature) 등은 안전하고 굳건한 은행 건물의 이미지를 나타낸다.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이쁜 건축물이다.

은행건물
▲ 논산시 강경읍 은행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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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어 너무 보기 좋은 은행 안팎을 살펴본 다음, '구 강경노동조합'으로 갔다. 일제강점기 결성되었던 노동조합 건물로 1910년 중반 강경포구의 하역 작업 처리 업무를 담당하던 노동자들이 결성한 조직체로서, 일반적인 의미의 노동조합이라기보다는 하역 노동자들의 동업자 모임에 가까운 조직이었다.

한때 조합원이 2~3천 명에 달할 정도였으며, 조합원들은 하루에 200여 척의 하역 작업을 처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25년 10월 당시 조합장이자 객주였던 정흥섭이 5천 원의 사재를 출연하여 2층짜리 조합 사무실을 신축하였다.

노동조합 건물
▲ 논산시 강경읍 노동조합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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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멋지거나 이쁘지는 않았지만, 오래된 맛이 있는 이곳은 현재 가끔 새우젓 축제 안내소를 쓰이고 있다고 한다. 본래 2층의 일본 목조 건축 양식 건물이었으나 관리 소홀로 2층 부분이 무너져 내리면서 현재는 1층만 남아 있다. 정면 중앙부에 입구를 두고 돌출된 작은 지붕으로 포치를 구성하고 있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물로 강경 지역 근대 상권의 흥망성쇠를 엿볼 수 있는 상징적인 건물이다. 2007년 등록문화재 제323호로 지정되었다

이어 바로 옆에 있는 '강경성당'이다. 1945년 논산시 부창동 본당에서 분리되어 설립되었다. 시골의 작은 성당답게 무척 소박하고 아담하게 지어진 것이 멋스럽다. 학이 날개를 펴고 올랐다가 잠시 쉬어가기 위해 내려앉은 모양처럼 단아해 보이기도 한다.

신자가 많지 않은 듯 너무 조용하고 아늑한 곳이다. 강경 인근에는 일찍이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서해를 거쳐 첫 발을 딛은 곳으로, 베르모렐 신부가 설립한 유서 깊은 나바위 본당 등이 있는 곳이다.

강경성당
▲ 논산시 강경읍 강경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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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위 본당의 베르모렐 신부가 연루되어 외교문제로까지 확대된 '강경포 사건'이 원만히 해결되면서 교세가 더욱 확대되었고, 한국 교회의 순교자들 가운데는 이 지역 출신 신자들이 유독 많은 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간 곳은 '강경 중앙리 구 남일당한약방'이다. 지역 최고의 근대 한약방 건축물이다. 2002년 등록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었다. 1923년에 세운 2층 한식 건물로 일본 가옥의 영향이 가미된 나무 구조이다. '남쪽에서 제일 큰 한약방'이라는 뜻의  '남일당(南一堂)'이란 이름처럼 1920년대 충남과 호남 지방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였다.

앞에서 보면 '一'자 모양이고 옆에서 보면 'ㄱ'자 모양의 건물로, 1층에 2개의 방을 두었고 2층에는 3개의 방을 배치하였는데, 크기는 모두 5평 미만으로 좁은 편이다. 1973년 이후 한약방으로서의 기능을 잃고 창고로 방치되었으나 최근 수리하여 주인이 주말에 가끔 사용하고 있다.

남일당 한약방
▲ 논산시 강경읍 남일당 한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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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크지는 않은 건물이지만, 수리를 하여 깔끔하고 보기에 좋은 것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특히 이 건물은 1920년대의 강경시장 전경 사진에 등장하는 유일한 현존 건물이며, 근대 한옥의 다채로운 건축양식을 살펴볼 수 있어 근대문화재로서의 가치가 크다고 한다.

가을비가 오기 시작한다. 이제 서울로 돌아가야겠다. 지난 1박 2일 동안 순간이동을 하듯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수많은 근대문화유산을 보고 느끼고 둘러보았다. 특히 삼례문화예술촌과 히로쓰 가옥, 이영춘 가옥, 나바위 성당 등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무척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었다.

덧붙이는 글 | 2013년 9월 5일(토)~6일(일)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 감사드린다.



태그:#논산시 강경읍, #익산군, #삼례문화예술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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