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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일에 이탈리아 람페두사 해역에서 500여명의 난민들을 태운 배가 화재에 휩싸였다. 이탈리아 해양경찰청은 화재사고에 대해 무관심했고, 주위의 어민들이 간신히 이들을 구조했지만, 이로 인해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수는 350여명에 이른다. 이탈리아 정부는 람페두사에서 희생된 난민들에 대해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람페두사를 방문해 람페두사 참사는 극도의 이기심과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일어난 부끄러운 사건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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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유럽 여러 국가들에게 난민 문제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각국의 언론들은 왜 유럽에 난민들이 몰리는지 그리고 난민이 발생하는 시리아 내전 및 아프리카의 불안정한 정치경제적 배경이 무엇인지 심도 있게 다루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스-페터 프리드리히(Hans-Peter-Friedlich) 내무부 장관의 발언이 나오면서 독일 및 유럽지역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많은 난민을 받는 국가입니다."

이 말은 2012년 통계만을 봤을 때는 맞는 이야기다. 작년 독일에서 난민지위 신청 건수는 6만 4540명. 프랑스보다 1만 명이 많고, 영국과 비교해도 2.5배 규모로 많은 편이다. 실제 독일 공영방송 ARD에서 "독일이 난민을 더 받아야 합니까?"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답변이 더 많았다.

하지만 독일 난민전문가 및 난민운동가들은 프리드리히 내무부 장관 발언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한창이었던 1990년대 중반의 난민 신청 건수는 무려 15만 건에 달했기 때문에 지금 인원이 많다고 보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이 뿐만 아니라 인구 1000명 당 난민 수도 스웨덴 및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서도 훨씬 낮은 수준이다(스웨덴; 4.7명, 스위스: 3.4명, 독일 0.8명).

유럽은 다른 대륙에 비해 난민수용에 대해 오히려 인색하다는 견해가 많다. 난민들이 주로 수용된 곳은 전쟁국가 주변 이웃국가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필자와 잘 어울리는 케냐 친구는 독일은 케냐에 비해 오히려 난민문제에 대해 인색하다고 말할 정도다. 참고로 케냐의 경우 소말리아에서 넘어오는 난민들이 국내정치의 주된 이슈이기도 하다.

람페두사 사건 및 프리드리히 장관의 발언 이후, 베를린 및 독일 타지역에서 외국에서 온 난민들이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주요 시위장소는 브란덴부르크 문과 크로이츠베르크의 오라니엔 광장(Oranienplatz) 등이다. 우선 난민들의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향했다.

10일 간의 단식투쟁

난민들이 독일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는 모습.
 난민들이 독일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는 모습.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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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란덴부르크 문은 베를린의 역사적 상징이자 관광객들이 몰리는 장소다. 이곳 광장 바로 중앙에서 난민들이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농성하는 이들은 우산에 자신들의 마음을 적었다.

"우리는 보통사람입니다."
"람페두사, 인류 자체는 불법이 아닙니다."

단식농성으로 인한 사고사를 막기 위해 경찰 및 구급차도 대기하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물품에 대해서도 적어 놓았다. 큰 우산 및 양산, 침낭, 세면도구, 의사, 변호사, 고무장화 등이었다. 베를린 날씨가 좋지 않아, 비를 막을 수 있는 장비를 요구하는 요청이 다수였다. 그리고 프리드리히 내무장관 및 슈미트 이민·난민청장에게 보낸 서한도 있었다. 그들은 정치권의 무관심이 람페두사 사건의 원인이 되었다고 성토하며, 난민들에 대한 개선책을 요구했다.

필자는 농성장에서 에티오피아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어로 "살람무"라고 인사하자, 아내인 엘자 메스펜씨가 매우 반가워했다.

그는 10월 18일 현재 10일째 단식농성 중이고, 5일 동안 물도 안마시고 광장에 있었다고 했다. 30여명이 처음에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가 기자가 찾았던 때는 15명 정도가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가 독일에 난민으로 온 이유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조국을 벗어나 생계를 꾸리기 위함이라고 했다. 난민지위를 인정받으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묻자 그는 "에티오피아 전통요리와 에티오피아 전통 케이크를 파는 레스토랑을 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솔직히 단식농성 중에 먹는 것에 대한 얘기를 꺼내게 해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는 그것만 생각하면 좋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에게 독일 제빵사자격을 취득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보니, 그는 "기회가 있으면 3년 동안 교육을 받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대쪽에는 또 다른 에티오피아인이 있었다. 이름은 부르크 타델레씨. 그가 난민이 된 이유는 야당지지로 인한 정치적인 위협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에티오피아에서는 정부 정책에 지나치게 반대하면 수용소로 갈 수도 있고, 자신도 정부로부터 이러한 위협을 받았다"고 했다. 그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니, 단식은 정말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일부 농성자들은 병원에 후송까지 되었다고 했다. 그는 "두 번이나 의식을 잃어서 응급차에 실려 갈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들의 권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모여 있는 이들과 끝까지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은 조국을 떠나있지만, 에티오피아인들이 정의를 위해 일어서는 날이 오면, 조국으로 돌아가 시민들과 같이 투쟁하겠다"고 강조했다.

난민들이 내무장관인 한스-피터-프리드리히에게 보낸 서한
 난민들이 내무장관인 한스-피터-프리드리히에게 보낸 서한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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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만난 이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메흐디 카제미씨와 이란에서 온 레자이 무하마드씨였다. 이들은 독일어로 의사소통이 어려워 함께 있던 이란 학생이 통역을 도와주었다. 이들은 멀리 바이에른 주에서 와서 농성 중에 있었다. 왜 농성에 참여했는지를 묻자 "난민들을 위한 일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독일에 오면 가장 먼저 독일어를 배우고 싶었다고 했다. 독일어 코스를 마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급하게 조국을 떠나온 탓에 돈이 없다고 했다. 생계를 위해 막노동판에도 뛰어들었지만, 난민이라는 이유로 시간당 1유로 75센트만 지급받았고, 어떤 곳은 시간당 겨우 75센트만 지급하기도 했다고.

필자가 만난 이들은 공통적으로 난민 지위를 심사하는 기간이 너무 길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독일 이민·난민청의 비효율성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 것. 레자이씨에게 만약 난민이 되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묻자 "보통 독일인처럼 열심히 일을 하며, 세금 당당히 내는 시민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 응급차가 갑자기 출동했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인터뷰를 했던 레자이씨가 잠시 의식을 잃은 것. 결국 그는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인터뷰를 진행한 입장에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같이 농성하는 난민들이 걱정하지 말라며, 오히려 자신들의 현실을 한국에 알려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레자이씨가 건강을 되찾아 단식농성이 끝나기를 바라며 이곳을 떠났다.

난민보금자리에서 진행된 특별한 행사

"유럽의 거주의무 반대", "우리는 인간이 되기 위해 투쟁합니다." (거주의무(Residenzpflicht)란 난민들이 임시거주증을 발급받게 되면, 거주하는 독일의 특정 주에서만 머물러야 하는 조항.)
 "유럽의 거주의무 반대", "우리는 인간이 되기 위해 투쟁합니다." (거주의무(Residenzpflicht)란 난민들이 임시거주증을 발급받게 되면, 거주하는 독일의 특정 주에서만 머물러야 하는 조항.)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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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란덴부르크 단식농성장에서 나왔던 문제들은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지난 10월 31일 엘리스-살로몬 대학에서 주관하는 세미나에 참석했다. 이번 세미나는 난민에 관심을 가진 기자들에게 개방되었고, 장소도 실제 난민보금자리에서 진행됐다.

지난 취재에서 만난 난민전문가인 테다 보오데 교수(Prof. Dr. Theda Borde)는 난민들의 현장에서 세미나를 진행하겠다고 언급했었는데,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을 실천하고 있었다.

현장실습과 함께 난민 관련 강의가 엘리스-살로몬 학교에서 진행되고 있었고, 학생들은 수강 이후 과제를 제출하면 학점이 주어진다.

첫 번째 시간은 보금자리에서 거주하는 난민들의 경험담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이 수업은 동 대학의 니베타 발루치스탄 교수의 지도로 진행됐다. 첫번째 발표자는 파키스탄의 발루치스탄에서 온 난민. 그는 독립을 위해서 투쟁했다가 파키스탄 정부의 위협을 받게 되어서 독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세계 언론들이 파키스탄에 대해 다룬 정보는 알카에다와 관계가 전부이고, 정부의 발루치스탄 독립탄압 문제에 대해서는 외면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파키스탄 정부가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이유는 발루치스탄에 매장된 천연자원 때문"이라며,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두 번째로 발표자는 내전을 피해 온 세 명의 시리아인이었다. 시리아 내전은 워낙 언론을 통해 알려진 내용이라, 이들은 현재 독일에서의 삶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진행했다. 그 중 한명은 가족들과 함께 독일로 왔다면서 "아이들을 독일에서 어떻게 교육할지가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는 슈판다우에서 경찰이 자신을 범죄자로 오인해 해프닝도 벌어진 경험을 이야기 하기도 했다. 그는 독일생활이 매우 행복하다며, 자신의 꿈을 펼쳐 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난민들이 독일로 오게 된 배경을 잘 들어보면 외신에서 외면하는 국제정치적 현실이 있다. 특히 발루치스탄의 현재 상황은 정치학을 전공하는 필자도 거의 처음들은 사실이어서 국제적 시각을 더 넓힐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발표 도중 난민들을 위한 배려가 돋보였는데, 바로 아랍어 및 발루치어를 할 수 있는 학생들과 사회복지사들이 난민들을 위해 통역을 도와주었다는 점이다. 특히 난민들이 통역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통역을 해주는 세심함을 보여주였다.

뿐만 아니라, 통역담당의 경우 난민들이 필요한 물건들이 무엇인지도 파악을 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이번에 언급된 주된 물품들은 아랍어 및 러시아어 키보드였다. 실제 엘리스-살로몬 대학에서도 난민들을 위해 무료 컴퓨터실을 제공해 가족들과 이메일을 통한 연락과 인터넷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있다. 또한 일부 사회복지기관에서는 컴퓨터 강좌 프로그램도 난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또한 헬러스도르프의 시민학교(Volkhochschule)에서는 난민보금자리에서 난민을 대상으로 무료 독일어 교육을 진행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럽과 비교해 난민인구가 미미한 것이 사실이지만, 최근 UNHCR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과 일본의 난민수가 2010년 총 1630명, 2011년 2880명으로 증가했다. 그래서 난민인권센터(NANCEN)와 같은 난민NGO단체와 한국어 교육기관과 연합해 프로젝트를 진행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독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최근 동남아시아, 파키스탄과 중앙아시아의 난민이 최근 증가추세에 있다. 이로 인해 2013년 7월 1일 난민법이 시행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영종도에 난민지원센터가 건립되었다. 하지만, 영종하늘도시 입주민들이 난민들 입주를 반대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한국도 독일의 사례처럼 대학의 관련 학과에서 난민 및 해당 국가에 국제정치에 관심 있어 하는 학생들 및 주민들을 바탕으로 열린 세미나를 한다면 갈등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을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난민들에 대한 이해는 난민뿐만 아니라 실업자 및 빈곤층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시스템을 선진화 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또한 한국어 및 컴퓨터 교육, 직업훈련과 연결시켜 난민들이 후에 한국경제 및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할 수도 있다. 이탈리아 람페두사 참사는 이제 더 이상 저 멀리 유럽에서만 적용되는 사건이 아니다.


태그:#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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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독일에서 통신원 생활하고, 필리핀, 요르단에서 지내다 현재는 부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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