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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내가 다니는 학교 박물관에 들렀다. 작은 박물관이지만 삼국시대의 기와부터 조선시대의 백자까지 제법 다양하게 구성된 이곳의 유물들에는 한 가지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아무개 유적 출토. 유물이 유적에서 발견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걸 보고 있으면 왠지 그런 유명한 유적이 아닌 곳의 역사가 궁금해진다.

익히 알고 있는 유적이 없다고 해서 그곳에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아니라는 건 이해는 되지만 막상 역사라고 운을 떼고 나면 꼭 유적지에서 벌어진 일들로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가 발을 딛고 살고 있는 동네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 동네의 역사를 찾아 떠나보았다.

허준박물관 전경 찾아가기 위해서는 버스보다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9호선 가양역.
▲ 허준박물관 전경 찾아가기 위해서는 버스보다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9호선 가양역.
ⓒ 이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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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의 웅장함과 다소 대비되는 소박한 박물관 내부. 내가 방문한 곳은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한 허준박물관이다. 알고 보니 우리 동네는 조선 최고의 명의로 알려진 허준선생의 출생지이자 그가 평생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특히 평소에 종종 놀러가는 구암근린공원 바로 옆에는 허준선생이 동의보감을 집필한 곳으로 알려진 허가바위라는 바위동굴이 있다고 한다.

사실, 이런 걸 알게 될 때면 언제나 신기함보다도 평소에 참 많이 모르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살짝 양 볼이 부끄러워진다. 그나저나 운이 좋았던 것일까, 때마침 이곳에서는 상설전시 뿐만 아니라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 기념으로 개최중인 <동의보감과 약재의 향기>라는 특별전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옳거니, 속으로 내심 쾌재를 부르며 전시실로 향했다.

3층 전시실 로비 아쉽지만, 유물 보존을 위해 전시관 내부는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다. 전시관 옆에서는 사진 아래처럼 약재나 약재로 사용되는 곤충을 직접 만져 볼 수 있는 체험 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 3층 전시실 로비 아쉽지만, 유물 보존을 위해 전시관 내부는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다. 전시관 옆에서는 사진 아래처럼 약재나 약재로 사용되는 곤충을 직접 만져 볼 수 있는 체험 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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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3층에 위치한 여러 전시실 중에서 우선 동선상 첫번째에 해당하는 허준기념실로 걸음을 옮겼다. 한의학이나 허준선생에 관한 설명을 잠시 보고 나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 권의 책, 동의보감과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뭐랄까, 국립중앙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책을 동네에서 보고 있으니 기분이 사뭇 남다르다. 출간된 지 400년이나 된 책에 지역감정을 느끼는 건 아니지만 집 근처에서 이 책이 만들어졌다고 하니 다른 유물에 비해 친숙함이 좀 더 풀풀 묻어난다.

그 옆에는 목판 하나가 자리를 같이하고 있다. 바로 동의보감의 목판이다. 닳고 닳도록 인쇄한 흔적이 묻어나는 새카만 목판. 때론 천 마디 설명보다도 그 목판을 한번 보는 것이 동의보감이 가지는 의미 "조선 의학의 정수를 담은 귀중한 책"을 깨닫는데 도움이 된다.

주로 의서가 많이 전시되어 있는 이 전시실에서는 중간 중간 허준 외에 다른 의학자의 저술과 청나라 등 당시 중국에서 들여온 의서도 제법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의원들을 교육하는데 사용되는 의서나 어린아이를 치료하는 방법만을 다루는 책 등 이전에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다양한 분야의 의서가 당시 제작되고 있다는 사실은 한편으론 재미있고 한편으로는 놀랍다.

그리고 그중 백미는 67매 가량의 말 그림과 말의 질병을 기록한 책인 마경초집언해. 17세기에 수의학 전문 서적이라니, 어찌 보면 당연히 존재할 수 있는 서적이건만 그럼에도 조선시대에 동물을 치료하는 모습은 좀처럼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앞서 동의보감을 보기는 했지만, 그것을 보다 자세히 전시해 놓은 곳은 전시실 깊숙한 곳에 마련된 동의보감 섹션이다. 여기에서는 동의보감의 구성이나 내용 등을 컴퓨터를 활용해서 보다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원형으로 구성된 이 공간을 둘러보던 중 한쪽 벽면에 허준이 동의보감을 집필한 당시의 허가바위를 재현한 모형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 허준박물관에는 지금 이 허가바위 모형 외에도 허준의 생애 중 중요한 장면이나, 동의보감의 제작 과정 등을 재현한 모형이 상당히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물론 모형은 유물은 아니지만 그 덕분에 유물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려운 당시 삶의 모습을 보다 쉽게 구체화할 수 있다. 유물의 종류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지역 박물관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이런 모형의 활용은 제법 유용해 보인다.

약연 이렇게 약재를 가는 도구인 약연을 직접 다루어볼 수 있다. 다만 약재가 갈리는 걸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는 소정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 약연 이렇게 약재를 가는 도구인 약연을 직접 다루어볼 수 있다. 다만 약재가 갈리는 걸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는 소정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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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기념실 관람을 마치고 다음 전시실로 이동하는 중간 통로에는 약연이나 약절구 등 당시 의원에서 사용하던 도구를 통해 약재를 갈아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사극을 볼 때 자주 봤었던 도구들인지라 호기심에 집어보았는데, 어라? 아무리 연알을 굴리고 절구 공이를 찧어도 약재가 좀처럼 가루로 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새삼 당시 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하루 종일 약재를 갈아야 했다는 말이 실감난다.

앞서 약갈기 체험은 다음 전시실의 예고편이었던 듯하다. 다음 전시실은 약초 약재실로 동의보감에 주로 약초와 약재들 중 자주 사용되는 것을 모아 분류별로 전시하고 있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우리가 평소에 약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보리, 밀, 팥과 같은 곡식들도 동의보감에 약재로 지정되어 있었다는 것.

설명에 따르면 동의보감에서는 인간의 생활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곡식이 약물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 같은 환절기에 작은 감기만 걸려도 약을 찾곤 하던 나로서는 다시 한 번 곱씹어보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특별전<동의보감과 약재의 향기>에 전시된 동물 약재들 정말 많은 동물 약재가 전시되어 있어서, 관람하다 보면 이런 동물도 약으로 사용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 특별전<동의보감과 약재의 향기>에 전시된 동물 약재들 정말 많은 동물 약재가 전시되어 있어서, 관람하다 보면 이런 동물도 약으로 사용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 허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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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초 약재실에서 짧은 관람을 바치고 나면 그 바로 옆이 지금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의약기실이다. <동의보감과 약재의 향기>특별전은 동의보감 <탕액편>에 나오는 동물약재 170여점과 동의보감과 관련한 서적 등을 전시하는 특별전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수많은 동물 약재가 눈에 들어온다.

전시 중인 동물 약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녹용 같은 것들 뿐 아니라 각종 뱀과 지네, 해마 같은 그야말로 소설 속에서나 볼 법한 약재들도 상당 수 포함되어있다. 한의학의 약이라면 약재를 떠올려온 탓일까? 솔직히 이렇게 많은 동물이 약에 쓰일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었다. 그래서 이 약재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동의보감이 조선의학을 집대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물씬 느껴진다.

특별전<동의보감과 약재의 향기>에 전시된 동의보감 관련 서적들 중국어로 번역된 동의보감 외에도 일본어, 영어로 번역된 동의보감도 찾아볼 수 있다.
▲ 특별전<동의보감과 약재의 향기>에 전시된 동의보감 관련 서적들 중국어로 번역된 동의보감 외에도 일본어, 영어로 번역된 동의보감도 찾아볼 수 있다.
ⓒ 허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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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약재가 전시된 바로 맞은편에는 동의보감과 관련한 서적이 가득 전시되어 있어 재미있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비록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동의보감의 각종 판본에서 관련한 소설과 논문까지 그야말로 동의보감과 관련한 모든 출판물을 여기에 모아놓은 듯하다. 서적 중에는 지금 보물로 지정된 서적도 전시되어 있었지만 내 시선이 고정된 책은 청나라에 중국어로 번역되어 간행된 동의보감.

서양의학이 들어오기 전 아시아 의학의 중심지는 말할 필요도 없이 중국이었다. 동의보감의 '동의'가 중국에 비해 동쪽의 의학 즉 우리나라 의학을 가리킨다는 점을 보아도 당시 사람들이 중국의학을 기준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동의보감이 중국에 역으로 간행되었다라. 유물을 보면서 감동받는 몇 안 되는 순간이다.

허준박물관 4층에 마련된 옥상공원 관람을 마치고 나면 이곳에서 잠시 지친 몸을 달래자. 이 공원은 근처의 구암근린공원까지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전시 관람 이후의 코스로 이용해도 좋다.
▲ 허준박물관 4층에 마련된 옥상공원 관람을 마치고 나면 이곳에서 잠시 지친 몸을 달래자. 이 공원은 근처의 구암근린공원까지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전시 관람 이후의 코스로 이용해도 좋다.
ⓒ 이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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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을 마치고 박물관 밖으로 나가는 출구에 허준선생과 의녀의 모양을 인형이 보인다. 인형에 안내 책자를 넣으면 방문 기념 스탬프를 찍어준다기에 얼른 한 장 찍어보았다. 초등학생 시절 선생님께서 아주 가끔 찍어주시던 참 잘했어요 도장을 떠올리게 하는 스탬프.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동네 근처에 있는 박물관을 찾아 우리 동네의 역사를 느끼러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은 분명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고 싶을 만큼 멋진 일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관람료 : 성인 800원, 초ㆍ중ㆍ고생 및 군경 : 500원.
단 매월 둘째 넷째 주 토요일은 무료관람의 날이다.
특별전 전시기간은 11월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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