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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해 보이는 찰나!
▲ 제굴과 꽃차남 평온해 보이는 찰나!
ⓒ ATT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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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마지막 날, 나는 (만으로) 마흔 살이 됐다. 그날 아침, 꽃차남은 일어나자마자 '쎄게' 울어줬다. 큰애는 6번 갈비뼈에 금이 가 몸이 성한 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일깨워줬다. 남편은 새벽 1시에 와서 3시까지 음식을 하고, 오전 6시에 일어나 밥상을 차렸다.

그날 밤, 나는 난생 처음 영어학원에 갔다. 마흔이든, 예순이든, 새로 시작하는 것은 아름답다는 말에 이끌려 간 게 아니다. 밥벌이 아닌 일로, 그저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였다. 그때 큰애는 중학교 1학년, 신비하게도 '유체이탈'을 매우 잘했다. 큰애 몸은 학교와 수학학원에 있는데, 정신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을 많이 받기도 했다.

힘들 때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몰아붙이면 시간이 빨리 간다. 뒤늦게 꽃차남을 낳았을 때도 그랬다. 아기가 건강해서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뻤지만, 밥벌이를 하면서 첫돌까지 젖 먹이는 게 힘들었다. 그때 EBS 영문법 인터넷강의를 들었다. 6주 동안 주 5일 출석, 1시간 반씩 강의를 듣고서 시험을 치렀다. 장학금도 받았다. 몸은 고달팠는데 이상하게도 기운이 났다.

영어학원은 주 2회, 화요일 밤에는 텍사스에서 온 청년 데이나 선생님에게 문법을 배웠다. 못 알아들었다. 그래도 영어를 '라이브'로 듣는 게 재미있었다. 토요일 오후에는 박욱현 선생님한테 영어뉴스·팝송·영화를 배웠다. 물론, 알아들을 수 없었다. 모르면서 앉아있으니까 막막하고 부끄러웠다. 그런데, 숙제를 해 가는 성실성도 없었다.

무결석만이 내 목표였다. C형 간염 치료가 확 끝나지도 않고, 돈이 많이 드는 검사만 또 하라고 해서 병원 주차장에서 혼자 울었던 날도, 미용실 원장님이 내가 원하지 않는 스타일로 파마를 말아버려서 저녁밥도 먹을 수 없을 만큼 실의에 빠진 날도, 영어학원에는 갔다. 꽃차남이 "엄마, 나 낳기를 잘했지? 근데 왜 나를 안 봐 줘?" 하고 다리를 붙잡기도 했다.

"노안·난청 올 나이야!"라던 남편 뒤로하고...

'파이터' 형제
▲ 큰애 제굴과 꽃차남 '파이터' 형제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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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애에게 꽃차남을 맡기고, 일주일에 두 번씩 학원에 나갔다. 집에 오면 꽃차남 팬티에서 똥냄새가 날 때도 있었다. 나는 꽃차남이 똥을 누고 나면, 물로 씻기는데 큰애는 맨손으로 동생 '똥꼬' 씻어주는 일은 못하겠단다. 쓰윽, 휴지로 스치기만 하고 팬티를 입혀놨다. 나는 급하게 가훈을 정해서 꽃차남 보고 따라하라고 했다.

"1일 1똥, '모닝똥'을 싸자!"

꽃차남은 어쩔 수 없는 '1일 2똥' 주의자. 어느새 똥 묻은 팬티를 입고서도 환하게 웃는 아이에게 익숙해질 때쯤, 내가 지지했던 대통령 후보가 낙선했다. 나는 아무 일 없듯 밥벌이를 했다. 친구가 찾아왔을 때도 재미있게 놀았다. 그런데 별 거 아닌 일로 눈물이 쏟아졌다. 방학이라 심심해서 더 많이 싸우는 큰애와 꽃차남에게 성질만 부렸다.  

책 한 권을 챕터별로 분류해서, 한 달 안에 24번 읽고 듣기를 했다.
▲ 영화 시나리오 책 책 한 권을 챕터별로 분류해서, 한 달 안에 24번 읽고 듣기를 했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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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팅힐>이 생각났다. 줄리아 로버츠는 스캔들을 덮으러 휴 그랜트 집에 왔는데 거기서 또 스캔들이 터졌다. 펄펄 뛰는 줄리아 로버츠에게 휴 그랜트는 말한다. 진정하라고,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내일이면 다 잊힌다고. 그렇지만 줄리아 로버츠는 악담을 퍼붓고 가버린다. 둘은 그 난리를 치고도 해피엔딩을 맞는다. 좋네, 판타지.

당장 스마트폰에 <노팅힐> 영화를 집어넣었다. 그게 올해 1월 7일, 이어폰을 달고 살았던 청춘의 한 시절로 돌아갔다. 영화 시나리오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대사를 들었다. 그네들은 숨도 안 쉬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래도 때려치우지 않았다. 큰애와 사이도 좋아졌다. 잘 때도 이어폰을 끼고 누우니 꽃차남이 잠들 때 애먹여도 괜찮았다.

"배지영! 노안 오고, 난청 올 나이야. 이어폰 좀 그만 들어."

책 한 권을 네 단락으로 나누었다. 
한 단락을 일주일씩 읽고 듣기를 하면서 그 숫자를 기록했다.
▲ 듣기와 읽기 기록 책 한 권을 네 단락으로 나누었다. 한 단락을 일주일씩 읽고 듣기를 하면서 그 숫자를 기록했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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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말려도, 나는 시간 없다고 새벽이나 깊은 밤에도 영어를 들었다. 자다 벌떡 일어나서는, 입 근육이 발음을 기억하라고 소리 내 영어책을 읽었다. 미국영화를 보던 남편이 "배지영, 저거 알아들어?" 물어볼 때도 있었다. 나는 전혀 모르니까 잘난 척 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영화 <노팅힐>을, 50번 읽고 들었다는 사실이 뿌듯하기만 했다. 두 번째 영화는 <에린브로코비치>. 2주 만에 그만뒀다. 등장하는 인물마다 어찌나 말들이 그리도 많은지….

학원에 다닌 지도 6개월, 같이 공부하는 '횽아들'(군산 외대어학원 박욱현 선생님의 재능 기부로 시작한 군산시민연대의 성인영어모임)은 프로그램대로 학원 숙제를 잘 해서 청취력이 느는 것 같았다. 영화로 공부하는 나만, 글자를 안 보면 못 들었다.

다음 영화 <더 리더>는 내가 바라던 완벽한 영화였다. 혼자 걸을 때는 고요, 자전거를 탈 때는 설레는 미소, 말투마저 또박또박한 독일식 영어. 영화 초반에는 베드신까지 아주 많아서 못 알아듣는 장면이 없었다. 볼 때마다 먹먹한 울림도 있었다. 내 꿈에 영화 속 배우 데이빗 크로스가 나와서 좋아 죽을 뻔도 했다. 50번을 읽고 들었다.

입원 중에도 이어폰... 결국 일이 터졌다

영어로 글을 쓰게 되면, 영어 말하기도 잘하게 될 줄 알았다.
근데 나는 망했다. 외대어학원 박욱현 선생님이 첨삭해주셨다.
▲ 처음으로 쓴 영작 영어로 글을 쓰게 되면, 영어 말하기도 잘하게 될 줄 알았다. 근데 나는 망했다. 외대어학원 박욱현 선생님이 첨삭해주셨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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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들으면서는 또다시 터덕거렸다. 꾸역꾸역 24번을 읽고 들었을 때, 박욱현 선생님이 영작을 가르쳐줬다. 나는 말보다는 글을 영어로 옮기고 싶었다. 그래서 첫 글을 쓰고서는 자랑도 무척 했는데… 망했다. 진짜 망했다. 엉터리지만 툭툭 삐져나오려던 영어가 '이게 맞나?' 자기 검열하면서 닫혀버렸다.    

그리고 한여름, 휴가철의 절정에 나는 입원했다. 자궁에 돋아난 근종을 마취해서 떼어냈다. 수술 끝나고 8시간 동안 꼼짝 못하고 누워 있을 때도, 나는 이어폰으로 영어를 들었다. 내가 숱하게 소리 내서 읽었던 문장들만 들렸다. 글자를 손으로 짚으며 읽어본 적 없는, 들어본 적 없는 영어들은, 여전히 안드로메다의 '외계어'였다.     

수술하고, 마취 풀리고,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책상을 펴 놓고 공부했다.
그런데 퇴원하고 집에 와서 거의 한 달을 영어랑 서먹하게 지냈다.
▲ 병원에서도 영어책을...^^;; 수술하고, 마취 풀리고,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책상을 펴 놓고 공부했다. 그런데 퇴원하고 집에 와서 거의 한 달을 영어랑 서먹하게 지냈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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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하고 내내 더위를 탔다. 영어 공부하려는 마음도 팍 시들었다. 공부를 하다 보면, 아주 쉽고 재미있어지는 순간이 온다고 했다. 공부 분량과 상관없이 그 순간은 갑자기 닥쳐온단다. 그게 문리(文理)를 깨치는 것이라던데 내가 이렇게 영어를 시큰둥하게 대하고 있으면 어쩌나? 걔(문리)는 나한테 왔다가도 못 알아보고 가 버리겠지. 

다시 이어폰을 끼고서 정성껏 영어를 들었다. 소리 내서 영어책을 읽기도 했다. 9월 24일도 그랬다. "그거 좀 빼"라는 남편의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1시간쯤 이어폰으로 영어를 들었다. 자려고 침대에 누운 다음 이어폰을 끼려는 순간, 오토바이 시동 소리가 났다. 밖을 내다봤더니 특별한 건 없었다. 옆에 누운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무슨 소리 나지? 오토바이 소리."
"안 나는데…."

모두 잠들어버린 밤, 그 소리를 찾아 거실과 주방·발코니를 뒤지고 다녔다. 덜컥! 그 소리는 내 왼쪽 귀에서 나고 있었다. 밤새 잠을 잘 수 없었다. 아침 일찍 꽃차남을 유치원에 보내고, 남편과 함께 이비인후과에 갔다. 선생님이 나보고 하루에 이어폰을 얼마나 많이 듣느냐고 물었다. 남편이 끼어들어서 얄밉게도 '뻥'을 쳤다.

"하루에 서너 시간씩 들어요. 그렇게 듣지 말라고 해도, 말을 안 들어요."
"(쳇, 일하고 애 키우는 아줌마가 그렇게 많이 들을 수나 있어?) 한두 시간만 들어요."
"이어폰으로 너무 많이 들어서 그래요. 노인성 난청이 올 수도 있어요. 시작은 다 그래요. 없는 소리가 나기 시작합니다."

남편은 '내 그럴 줄 알았어'라며 자신의 예언능력을 뽐내지 않았다. 대참사를 겪고도 그만둘 것 같지 않은 아내 성격을 헤아렸다. 남편은 스마트폰에 연결할 수 있는 스피커를 사줬다. 생각만큼 소리가 크지 않은 게 마음에 걸렸는지, 자기 사무실 스피커까지 가져다가 식탁 한쪽에 설치해줬다. 이제 우리 식구들은 밥을 먹으면서도 '개소리' 같은 영어를 듣고 있다.      

얘들아, 너희 덕에 내가 공부를 할 수 있었구나

일주일만에 퇴원해서 집에 온 큰애 제굴님.
아이가 집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
▲ 일상, 굉장히 좋은 거네요. 일주일만에 퇴원해서 집에 온 큰애 제굴님. 아이가 집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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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부 1년이 되는 10월. 꽃차남은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앞니 두 개를 뺐다. 큰애는 활막염으로 갑자기 걷지도 못해서 입원했다. 일상은 엉망이 됐다. 나는 아이들이 건강했기 때문에 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원 다녀올 때 주차장에서부터 들리던, 두 아들의 육탄전 소리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화낼 일이 아니었다.

"엄마, 내일 꽃차남 누가 봐요? 선생님(베이비시터) 오세요?"

큰애는 금요일 저녁마다 물었다. 아빠는 바쁘고, 엄마가 기댈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는 걸 모른 척하지 않았다. 토요일 아침 일찍, 밥도 안 먹고 나가서 친구들이랑 놀았다. 내가 영어 학원 가는 시간인 오후 2시에 맞춰 들어왔다. 언젠가는 나도 문리를 깨쳐서, 학원에 안 가고도 영어를 잘하는 날이 올 게다. 그 영광은, 모조리 큰애 강제규군에게 바치고 싶다.

신비주의를 고수하고 싶다는 중2 청소년. 언젠가 나도 문리를 깨쳐서 영어를 잘 하게 되면, 그 모든 영광은 큰애한테 바치리라.
▲ 우리집 큰아들 강제규 신비주의를 고수하고 싶다는 중2 청소년. 언젠가 나도 문리를 깨쳐서 영어를 잘 하게 되면, 그 모든 영광은 큰애한테 바치리라.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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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영어공부, #영화로 영어공부, #1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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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 『범인은 바로 책이야』 『나는 진정한 열 살』 『내 꿈은 조퇴』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 『환상의 동네서점』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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