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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할머니 장터. 농사 짓는 할머니들이 직접 나와 생산물을 파는 곳이다. 전남 장성군이 노인 일자리 사업의 하나로 만들었다.
 시골 할머니 장터. 농사 짓는 할머니들이 직접 나와 생산물을 파는 곳이다. 전남 장성군이 노인 일자리 사업의 하나로 만들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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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펼쳐지는 장터가 아니다. 대낮에 펼쳐진다. 오후 내내 서지도 않는다. 세 시간만 반짝 선다. 장꾼들도 다르다. 장사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농사를 본업으로 하고 있는 아마추어 장꾼들이다. '백양사'로 널리 알려진 전남 장성의 '시골 할머니 장터' 이야기다.

지난 10일, 정오가 지나자 봇짐을 머리에 인 할머니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낸다. 장이 서려면 아직도 두어 시간이 남았다. 하지만 성질 급한 할머니가 먼저 나와 난장을 펼친다. 곧이어 도착한 다른 할머니도 검은 배낭을 풀어 헤친다. 대추, 밤, 가지 등 가을 농산물이 쏟아져 나온다.

오후 2시가 되자 장터가 할머니들로 다 메워졌다. 모두 빨강 모자에 노란 조끼를 입고 있다. 구수한 입담도 거침이 없다. 집안과 마을의 대소사가 화제 거리다. 주름살의 골 만큼이나 소박하고 구수하다. 귀동냥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장성의 시골 할머니 장터 풍경. 아직은 한산하지만 의미 깊은 장터다. 장성군이 노인 일자리 사업의 하나로 만들었다.
 장성의 시골 할머니 장터 풍경. 아직은 한산하지만 의미 깊은 장터다. 장성군이 노인 일자리 사업의 하나로 만들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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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할머니 장터의 할머니들. 전문 장꾼들이 아니라 농촌에서 농사 짓는 순수 할머니들이다.
 시골 할머니 장터의 할머니들. 전문 장꾼들이 아니라 농촌에서 농사 짓는 순수 할머니들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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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청껏 소리를 내지르는 호객 행위도 없다. 허기진 배를 채워줄 장터 국밥집도 없다. 하지만 부러 찾아도 만나기 어려운 장이다. 가슴 언저리를 애틋하게 하는 장터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 버리기 십상이다.

장성버스터미널 건너 도로변에 서는 '시골 할머니 장터' 풍경이다. 시골 할머니 장터는 장성군이 노인 일자리 사업의 하나로 만들었다. 지역기업인 고려시멘트의 도움을 받았다. 노인들의 소득을 높이고 지역경제에도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매 0, 3, 5, 8로 끝나는 날에 선다. 북이면 사거리장(1, 6일), 삼계면 사창장(2, 7일), 황룡면 황룡장(4, 9일)과 겹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장터엔 아무나 난장을 펼칠 수 없다. 할머니라고 예외가 아니다. 노인 일자리 사업 대상자에게만 허용된 공간이다. 직업 장사꾼은 더더욱 들어 올 수 없다. 다른 지역의 할머니장터와 다른 점이다.

시골할머니장터의 장꾼은 모두 22명. 차금자, 노순덕, 반은순, 박충효, 김상순, 황정남, 조영례, 성금산, 정영자, 백복남, 김영희, 변칠순, 정이순, 임옥, 장옥임, 김덕순, 전차례, 김순예, 조옥희, 서현례, 정영순 할머니 등이다. 장성군이 현지 실사를 통해 선정한 할머니들다.

갖고 온 농산물을 펼치고 있는 할머니들. 팔려고 가져온 농산물은 모두 직접 농사 짓거나 수확한 것들이다.
 갖고 온 농산물을 펼치고 있는 할머니들. 팔려고 가져온 농산물은 모두 직접 농사 짓거나 수확한 것들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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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할머니 장터 풍경. 아직 찾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인심은 어디보다 넉넉하다.
 시골 할머니 장터 풍경. 아직 찾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인심은 어디보다 넉넉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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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열두 번 서는 장터지만, 이 할머니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3시간만 열린다. 겨울철인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아예 장이 서지도 않는다.

장터만 돌아본다면 소요시간도 5분도 안 된다. 그만큼 작은 장터다. 하지만 갖출 건 다 갖추고 있다. 가지, 고추, 생강, 호박, 열무, 참깨, 참기름, 땅콩, 팥이 보인다. 은은한 향을 풍기는 당귀와 오가피도 있다. 참기름, 매실청도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할머니들이 손수 키우고 빚은 것들이다.

한 할머니가 펼쳐 놓은 물건이 3만 원 어치도 안 돼 보인다. 그래도 정감 어린 흥정들이 오간다. 푸성귀 1000원 어치를 사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이쑈! 더 가져가쇼"하며 얹어주는 덤이 더 많을 정도다. 훈훈한 인정이 묻어나는, 옛 장터 풍경 그대로다.

시골 할머니 장터 풍경. 물건의 값과 양을 놓고 흥정을 하는 모습이 정겹다.
 시골 할머니 장터 풍경. 물건의 값과 양을 놓고 흥정을 하는 모습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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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할머니 장터. 가격 흥정이 한창이다. 흥정이 끝나면 덤이 주어진다.
 시골 할머니 장터. 가격 흥정이 한창이다. 흥정이 끝나면 덤이 주어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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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해를 살라믄 이리 와야제. 이것들은 전부 다 할망구들이 직접 키운 것들이여. 뗘갖고 와서 포는 사람들이 없어. 많이 갖고 오지도 않어. 안 팔리믄 다시 갖고가야 헐 것 아녀." - 차금자 할머니

"우리 영감허고 산으로 밤 주수러 갔다가 벌 때문에 혼났어. 그렇게 미인(좋은 것)만 추려갖고 왔어. 그라고 여그서 한 더 추렸어. 물짠 놈은 우리가 먹어. 사가는 사람이나 파는 우리나 한 개도 허실이 없어야 맘이 안 아픈께." - 정연자 할머니

"이 오이 짱아찌는 내가 직접 담근 것인디. 안 짜고 맛나. 매실 엑기스에다 담았어. 오이 농사는 우리 영감이 농약도 안 치고 지었당께. 완전 오리지날만 갖고 왔어." - 노순덕 할머니

"올해 처음 수확한 놈인디, 수입산이 아니냐고 묻는 당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덜이 그런 얘기를 할 땐 열불이 나제." - 조영례 할머니

시골 할머니 장터 풍경. 한 할머니가 돈주머니를 살피고 있다.
 시골 할머니 장터 풍경. 한 할머니가 돈주머니를 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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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할머니 장터의 할머니들. 직업적인 장꾼이 아니다. 노인 일자리 사업의 하나로 장성군이 만든 장이다.
 시골 할머니 장터의 할머니들. 직업적인 장꾼이 아니다. 노인 일자리 사업의 하나로 장성군이 만든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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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도 싸다. 1000원, 2000원짜리 물건이 수두룩하다. 최저가에 가깝다. 비싸봐야 5000원이다. "5000원만 들고 오믄 반찬 서너 가지는 만들 수 있다"는 황정남 할머니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장터를 찾는 이용객들은 대부분 외지 관광객이다. 축령산 편백숲을 다녀오는 등산객들이 대부분이다.

"이 정도면 서울에선 6~7만 원 가는데, 여기선 3만 원 밖에 안하더라구요. 횡재한 기분입니다."

대추를 싹쓸이 한 등산객 김정희(서울) 씨의 말이다. 하지만 아직 이곳을 찾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홍보가 부족한 탓이다. 장터가 문을 닫는 3시간을 꼬박 지켜봤는데도 찾는 이들이 손에 꼽힐 정도다.

"첫술에 배가 부르것소. 이 만큼 찾아주는 것도 고마운 일이제. 입소문을 듣고 광주에서, 목포에서 찾아온께. 아마 곧 유명한 곳이 될 것이구만. 장성에 오믄 꼭 할머니장터를 들르쑈."

시장에서 유일한 남자이면서 시골 할머니 장터를 관리하고 있는 김종칠 반장의 얘기가 귓전을 맴돈다.

김종칠 반장. 시골 할머니 장터를 관리하고 있는, 장터의 유일한 할아버지다.
 김종칠 반장. 시골 할머니 장터를 관리하고 있는, 장터의 유일한 할아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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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시골할머니장터, #할머니장터, #노인일자리사업, #장성군, #김종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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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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