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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10월은 우울하다. 이유는 그간 이탈리아에서 일어났던 대형참사와 사고들 대부분이 10월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1962년 10월 8일 밤, 베네치아 인근 도시 롱가로네에서 인류 최악의 바이온트 댐사고로 희생자 5000여 명을 냈던 사고의(발굴 시체 1900여구) 악몽이 되살아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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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500명 난민 실은 배 전복 참사

에리트리아와 소말리아 난민 500여명을 태운 선박이 지중해 이탈리아 남부 람페두사섬 부근에서 침몰해 대참사가 벌어졌다. 사진은 이탈리아 남부 람페두사섬의 모습.
 에리트리아와 소말리아 난민 500여명을 태운 선박이 지중해 이탈리아 남부 람페두사섬 부근에서 침몰해 대참사가 벌어졌다. 사진은 이탈리아 남부 람페두사섬의 모습.
ⓒ 위키피디아 공동자료 저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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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현지시간) 오전, 이탈리아 전체가 또다시 참혹한 사고 소식을 접하고 충격에 빠졌다. 나폴리타노 대통령은 이날을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이날 새벽, 이탈리아 남부섬 람페두사(Lampedusa)에서 아프리카 난민 500여 명을 실은 배가 전복했기 때문이다. 

쥬지 니콜리니(Giusi Nicolini) 람페두사 시장의 발표에 따르면 500여 명의 아프리카 난민을 실은 20여 미터 크기의 배는 람페두사 해안 800미터 부근에 이르러 엔진 고장이 나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갑판 위에 불을 지폈다. 이것이 잘못돼 배 전체에 불이 옮겨붙었고, 배가 뒤집어지면서 500여 명 전원이 바다에 빠지는 사고가 일어난 것.

유엔난민기구(UNHCR) 발표에 따르면, 이들은 에리트레아와 소말리아인들로 리비아 미스트라에서 탑승한 것으로 추정된다.

생존자들과 구조작업에 나섰던 어부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을 실은 배는 이미 고장난 폐선 직전의 낡은 배였다. 엔진 고장이 나서 배가 움지이지 않자 지나가는 선박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모두 구조를 외면했고, 해양구조대조차도 출동하지 않았다. 이탈리아에 존재하는 피니보씨(Fini-Bossi)법에 따라 구조를 외면한 것. 피니보씨법은 배타적인 이민법으로 이탈리아 북부연합당과 보수여당이 제정했다.

다급해진 상황에서 난민들이 탄 배는 해양구조대의 주의를 끌기 위해 간판에 불을 지피는 방법을 썼고, 결국 화재로 이어져 500여 명 전원이 물에 빠져 아비규환이 만들어졌다. 500여 명이 물에 빠졌지만 선박들은 이들을 외면한 채 지나갔다. 심지어는 살려달라고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선박 위에서 핸드폰이나 비디오로 촬영한 것이 드러나 충격과 분노를 사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처음으로 이들을 구출하기 시작한 건 '통통배' 어선을 몰고 가던 람페두사의 어부, 비토 피오리노(Vito Fiorino)였다. 그는 다른 어부들과 함께 허우적거리는 난민을 한 번에 4명씩 구해 47명을 육지에 나르는 작업을 필사적으로 해냈다. 그가 오전 6시 30분에 해양구조대에 긴급구조를 요청했지만, 구조대가 도착한 건 오전 7시 30분이었다고 한다.

비토 피오리노의 증언에 의하면, 구조대는 긴급출동을 하지 않았으며 마치 일반 정찰중인 것처럼 천천히 다가왔다. 도착한 직후에는 난민구출 작업을 하는 비토 피오리노의 배에 피니보씨 이민법을 설명하면서 난민들로부터 떨어질 것을 명령했다고 한다.

구출 작업 중이던 이들 어부들과 뒤이어 출동한 해양구조팀 소속 의사들은 이런 명령을 내리는 해양경비대에 격하게 항의했고, 그 후에야 경비대들은 난민 구출작업에 나섰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5일자 나폴리 현지신문인 <라시칠리아>에 따르면 빅토리오 스카르파 해군제독은 인명구조를 외면하던 경비대들을 전원 조사할 것을 요구하며 이들을 검찰에 넘겼다고 한다. 현재 나폴리법원으로 해당 사건이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비대 측은 자신들이 이탈리아 정부의 외국인 실정법대로 행동했다고 항변하며, 9월 30일 있었던 비슷한 사고 발생 시에도 현행법에 따라 행동했다고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지난 9월 30일에도 에르트리아 난민 13명이 전원이 시칠리아 섬 인근에서 익사한 사고가 있었다).

참혹한 현장... "더 많은 관이 필요하다"

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람페두사섬 해역에서 500여 명의 아프리카 난민을 태운 배가 침몰한 가운데 바다에서 찾아낸 시신들이 격납고에 보관 되어있다. 침몰 원인은 화재로 추정되며 이 사고로 임산부와 어린이를 포함해 최소 103명이 숨졌고 82구의 시신만 수습됐으며 아직까지 최소 250명이 실종 상태라고 전했다.
▲ 살아서 도착하지 못하고.. 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람페두사섬 해역에서 500여 명의 아프리카 난민을 태운 배가 침몰한 가운데 바다에서 찾아낸 시신들이 격납고에 보관 되어있다. 침몰 원인은 화재로 추정되며 이 사고로 임산부와 어린이를 포함해 최소 103명이 숨졌고 82구의 시신만 수습됐으며 아직까지 최소 250명이 실종 상태라고 전했다.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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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선들에 의해 구출된 생존자는 159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헤엄을 칠 줄 알아 물속에서 버틴 남자들이 대부분이며, 그 외 350여 명은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첫날 시체 인양작업을 통해 모두 110여 구의 시체를 찾았다. 사망자 대부분은 임산부를 포함한 여성들과 어린아이들로 알려졌다. 피에트로 바르톨로 구조팀 의사의 설명에 따르면 생존자들은 극심한 정신적 충격에 빠져 있는 상태라고 한다. 그는 "지금 필요한 건 앰뷸런스가 아니라 관이다. 더 많은 관이 필요하다"며 현장의 참혹함을 전하기도 했다.  5일 엠마 보니노 외무성 장관은 수색 작업을 멈추기로 결정했다. 외무성장관의 발표에 따르면, 날씨가 더 추워지고 생존가능성이 희박해 수색작업을 멈추고 대신 헬기 수색작업만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람페두사 바닷가에 현장 기자들을 파견한 이탈리아 언론사 중 일부는 리포트를 자제한 채 말 없이 그저 현장 모습을 그대로 전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그만큼 참혹한 상황이라는 것.

현재 이탈리아 국회에서는 난민들 구조작업에 처음 나섰던 어부 비토 피오리노와 그의 동료 어부들과 의사들을 노벨평화상에 추천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그러나 5일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현재 이탈리아 피니보씨법에 따라 실정법을 어긴 혐의로 경찰에 연행된 상태라고 한다. 어부 비토 피오리노는 언론을 통해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낸 게 법 위반이라면 나는 기꺼이 몇 번이고 그런 죄인이 되겠다"며 법에 앞서 사람의 도리가 우선이라고 외쳤다.

참사 현장 찾은 교황 프란치스코

한편 이같은 처참한 사고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간 사람은 다름아닌 교황 프란치스코였다. 현장에 가서 생존 난민들과 사망자들과 아픔을 함께 하는 것이 그 어떤 공식적인 말이나 성명서보다 우선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지난 7월에도 람페두사 난민 수용소를 방문했는데, 당시 방문은 그가 교황 즉위 이후 바티칸에서 처음 행한 외부 공식방문 일정이었다. 다른 역대 교황들처럼 고상한 품격의 장소가 아닌 난민수용소를 첫 공식방문지로 택했기 때문에 그 파격적인 행보에 전세계가 깜짝 놀라기도 했다.

람페두사 난민수용소는 그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2012년 7월 17일 유럽의회에 의해서 제소되기도 했다. 방 하나에 여러가족들이 함께 살며, 침대도 없이 담요 1장씩만 지급되며 전기, 물, 식사 공급이 부족하고 그나마 그 식사도 1인당 하루 1끼만 배급되는 등 인간의 기본조건을 외면한 열악함이 제소 이유였다. 그러한 난민수용소를 첫 공식방문지로 택해 방문했던 교황은 "보트를 타고 여기까지 온 이들을 위해 누가 함께 울어줄 것인가"라며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세태를 비판하며 난민에게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했다.

그는 이번 참사사고 방문에서도 준비된 발표문을 제쳐두고 즉석에서 자신의 심정을 담은 연설을 했다.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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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게 말이 되냐,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나. 통탄할 노릇이다. 부끄러움 그 자체다. 우리는 모두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극도의 이기심과 물질만능주의로 치닫고있는 세상이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현 사회가 만들어낸 참혹함이다. 우리는 이제 회개해야 한다."

교황은 또한 이탈리아 레타 총리 및 모든 정치인들을 향해 '공존하는 사회구현'에 힘써 줄 것을 당부했다.

이탈리아 국회에서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묵념이 본회의 시작에 앞서 있었고, 나폴리타노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가장 가슴 아프고 부끄러운 일이 발생한 지금 이탈리아 전체가 애도의 뜻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사고 이후 이탈리아 학교 및 관공서 등은 공식행사 시작 전에 람페두사 희생자들을 위한 조의를 표하는 묵념이 진행됐다. 그러나 5일, 북부도시인 브레시아(Bescia)에서는 축구경기에 앞서 행해진 1분간의 묵념중에 항의하는 휘파람과 야유가 터져나왔다. 북부연합당 공식사이트에는 사고를 뜻하는 이런저런 단어들이 화려하고 밝은 색채로 장난스럽게 올라온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져 국민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이탈리아 보수여당인 북부연합당은 일명 '외국인 때려잡기 당'으로 악명이 높다. 그들은 이번 사건의 모든 책임을 지난 4월 임명된 콩고 출신의 세실 키안주 통합부 장관에게 돌리고 있다. 대책없이 난민을 수용함으로써 이런 끔찍한 참사가 아름다운 이탈리아땅에서 일어나게 했다는 것. (이들 북부연합당 상원의원들 가운데 일부는 세실 키안주 장관에세 "콩고 원숭이 너네 나라로 가버려...누가 이 여자에게 성폭행 좀 해라...난 국회에서 그녀를 볼때마다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는듯 하다"는 등의 인종차별 발언을 공식석상에서 내놓아 전세계적으로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세실 키안주 통합부 장관은 "람페두사의 아프리카 난민 수용소 및 그들의 이주문제는 더이상 이탈리아만의 문제가 아닌 유럽전체국가들의 문제"라며 EU에 난민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람페두사'는 아프리카의 북부 튀니지에서 115km떨어진 이탈리아 섬으로 아프리카 난민들이 유럽으로 이주하는 첫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아프리카 난민 처리 놓고 유럽국가들 골치

1999년부터 지금까지 람페두사를 거쳐 전 유럽에 흩어진 아프리카 난민들은 20만 명이고, 2만여 명은 람페두사 바다에서 사망했다. 난민들은 중간 브로커들에게 1인당 적게는 500유로(약 73만 원)에서 많게는 3500유로(약 510만 원)를 지불하고 난민보트에 오른다고 한다. 바다에 빠져 죽거나 정찰대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람페두사 수용소에 도착해 허가가 날 경우에도 이들은 평균 보통 5개월여간 수용소에서 입국신청 허가를 기다린다.

이주를 희망하는 나라에 입국을 신청하고 기다리는 것인데 간신히 허가를 받아 수용소를 떠날 때 이탈리아 정부는 이들에게 이주비용으로 500유로를 지불한다. 그러나 입국 희망국가에 가서도 취업비자 및 영주권 문제로 인해 이들은 또다시 불법 이민자가 되는 등 각종 규제로 인해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혹은 일부 국가는 "허용한 난민 숫자를 이미 초과했다"며 난민들을 다시 이탈리아로 돌려보내기도 한다.

대표적인 나라가 독일이다. 4일자 <코리에르> 보도에 따르면 "독일 외무성 장관은 자신들의 난민입국자 허용치가 이미 넘어섰다"면서 "이탈리아를 떠나 독일에 입국한 아프리카 난민들 130여 명을 다시 되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선처의 뜻으로 이들의 기차 비용은 독일정부가 부담한다고 생색을 내기도 했다(그러나 독일은 이 난민들이 입국 허가를 위해 3개월간 독일수용소에서 머물던 비용을 이탈리아 정부에 청구했다).

다행히 입국이 허용된 난민들이라도 이들을 기꺼이 고용하는 업주들을 찾기는 어렵다. 불법적으로 일을 하다가 발각되면 이들은 벌금과 함께 해당국가에서 추방돼 본국으로 보내진다. 조만간 프랑스 파리에서는 아프리카 난민들의 유럽이주 및 수용문제를 논의 하기 위한 유럽국가들간의 긴급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태그:#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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