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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시작된 한국어 수업 첫 시간. 열어놓은 문 사이로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안.녕.하.세.요"라며 약간은 어색한 발음으로 인사를 하며 학생들이 들어왔다. 지난해에 이어 10월부터 필자가 진행하는 한국어 수업에 새롭게 등록한 학생은 모두 10명이다.

그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

"왜 한국어를 배우려고 해요?"

각자가 말하는 이유는 다양하기도 하다. 저널리스트가 꿈인 학생은 제 2외국어로 평소 관심있던 한국어를 선택했다고도 하고, 오랫동안 합기도를 배우고 있는 학생도 있고, 한국 여자 친구 때문에 배운다고도 했다. 그 중에서도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K-POP과 한국 드라마 때문이다.

스페인 학생들의 핸드폰 바탕화면의 주인공들은 한국의 아이돌이 대부분이다.  (왼쪽부터 샤이니 온유, 인피니트 우현,  JYJ 재중, 샤이니 태민)
 스페인 학생들의 핸드폰 바탕화면의 주인공들은 한국의 아이돌이 대부분이다. (왼쪽부터 샤이니 온유, 인피니트 우현, JYJ 재중, 샤이니 태민)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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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학생들의 핸드폰 바탕화면의 주인공들은 한국의 아이돌이 대부분이다.
 스페인 학생들의 핸드폰 바탕화면의 주인공들은 한국의 아이돌이 대부분이다.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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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학생들의  K-POP과 한국드라마 사랑은 K-POP이라 쓰여진 티셔츠, 나란히 놓은 핸드폰 바탕화면에 보이는 낯익은 사진들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2년째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학생들 중에는 K-POP 댄스그룹이 2팀이나 있다. 지난해 스페인 코르도바와 안달루시아에서는 처음으로 'K-POP 댄스 경연 대회'가 열렸는데 두 팀 모두 그 대회에 참가했다. 주말이면 세비야 광장에 모여 춤 연습에 열중하는 이 학생들은 대부분 세비야 대학에서 '아시아 동양 문화'를 전공하는 학생들인데, 그들의 말을 빌리지면 '한국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한국 마니아들이다.

한국에 있을 때 말로만 듣던 한류가 이런 것이었구나를 이들을 통해 조금은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스페인 유력 주간지에 실린 한류 기사

스페인신문 <엘 파이스(EL PAIS)>의 주간지가 커버스토리로 소개한 한류기사.
 스페인신문 <엘 파이스(EL PAIS)>의 주간지가 커버스토리로 소개한 한류기사.
ⓒ EL PA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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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스페인신문 <엘 파이스(El PAIS)>에서 발행하는 주간지 표지는 한국 국기로 장식됐다. '세계를 사로잡을 아시아의 물결- 차세대 문화 침공, 한국'이라는 거창한 타이틀로 메인을 장식한 기사는 "최근 시작된 한국의 음악, 유행, 텔레비전 프로그램, 음식, 영화를 통한 비밀스럽고 고요한 침공에 우리는 영혼의 최면 상태에 빠져버린 것이 아닐까?"라는 다소 도발적인 문장으로 시작된다. 기사는 최근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불고 있는 한류의 영향력과 함께 스페인 내에 점차 확산되고 있는 한국 문화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물론 그렇다고 한류가 스페인의 전세대에 걸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한국 사람이다"라고 하면 "북한에서 왔냐 남한에서 왔냐?"고 묻는 것이 보편적이고, 삼성이 한국 메이커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한창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행할 때도 한 친구는 내게 "아침마다 '강남스타일' 춤을 추며 다이어트를 한다"고 하면서도 "이 노래가 아시아의 노래라는 걸 알았어도 한국 노래인지는 몰랐다"고 말해 나를 황당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확실히 필자가 이곳에 처음 오기 3년 전과 한국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스페인 대표 신문 주간지에 커버스토리가 실린 것은 그 변화 중 하나다. 이번 달에는 세비야 대학교 문화센터에서 한국영화주간이 기획돼 <괴물>, <마더>등의 한국 영화가 4일간 상영되기도 한다.

아시아 언어 전문학원이라는 타이틀로 중국어와 일본어 수업을 운영하다가 지난해에 처음 한국어 수업을 개설한 마르코 원장은 수업을 개설할 때만 해도 과연 학생들이 있을까 의심을 했단다. 학원에서 중국어를 배우는 몇 학생들이 한국어 수업 문의를 해 와 한번 실험적으로 개설을 해보자 했는데 1년 사이에 한국어 반이 3개가 생길만큼 학생들이 늘어난 것. 마르코 원장 본인도 놀랍다고 말할 정도다. 지난 여름에는 한 달간 집중 속성반을 개설했는데 모든 일정이 정지되는 40도의 불볕 더위 속에서도 7명의 학생들이 매일 학원을 찾아 한국어를 배웠다.

마르코 원장은 "중국어와 일본어와는 다르게 한국어는 관심있는 층이 굉장히 특화되어 있다. 대부분은 어린 학생들이고 거의 90%가 여학생들이다. 직업이나 필요에 의해서 배우는 학생들보다는 한국의 젊은 문화에 관심있는 층들이 언어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때문인 것 같다" 고 말하며 앞으로 언어 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행사도 기획해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선생님 이거 맞아요?"

의무가 아닌 관심과 애정으로 문화와 언어를 배워가는 이들의 시간과 노력들이 우리가 이야기하는 한류를 이끄는 원동력의 한 부분임은 틀림없다.

딸의 성화에 이끌려 마지못해 등록을 해주러 와서도 영 이해가 안 된다는 모습으로 앉아있던 18살 훌리아의 어머니도 아마 지금부터는 뉴스에서, 신문에서 '한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한번 더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한류의 주인공 "이제 제 이름을 한글로 쓸 수 있어요!"
▲ 한국어 수업을 받는 스페인 학생들 우리도 한류의 주인공 "이제 제 이름을 한글로 쓸 수 있어요!"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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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알파벳을 다 배운 학생들이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썼다. 아직 한국어의 모음 발음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이 자기 이름의 모음을 찾느라 애를 먹는다.

"선생님! 이거 맞아요?"

'안토니오, 알바, 마르타, 솔레, 알베르토, 훌리아....'

그렇게 하얀 종이에 쓰여진 10개의 이름. 또 다른 10명의 한류 주인공 이름이 아닐까?


태그:#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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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예술치료, 스페인 문화&언어, 글쓰기로 삶의 형태를 만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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