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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처럼 마을 주변엔 산이 둘러싸고 있다. 마을 중심에 마을회관 겸 경로당이 자리잡고 있다. 평범한 시골 정취가 느껴진다. 여기엔 경주 정씨들이 60%가 살아 정씨 집성촌이라고 불려 진다.
▲ 마을 전경 사진에서처럼 마을 주변엔 산이 둘러싸고 있다. 마을 중심에 마을회관 겸 경로당이 자리잡고 있다. 평범한 시골 정취가 느껴진다. 여기엔 경주 정씨들이 60%가 살아 정씨 집성촌이라고 불려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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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길에서 보면 마을이 보이지 않고, 안쪽에 마을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내동'. 말 그대로 안쪽 마을이다. 그래서 예부터 '안말'이라고 했다.

지난 24일 내동마을(경기도 안성 금광면 소재) 정택훈 이장을 만나 마을이야기를 들었다. 마을사람들이 촛불 켜놓고 소원을 빌던 용설바위는 마을 뒷산에서 수호신처럼 서있다. 그 바위에 올라서면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의 왼쪽도 산이고, 오른쪽도 산이다. 산이 마을을 포근히 감싸고 있다. 산이 감싸고 있으니 바깥에서 마을이 보이지 않고 '안에 있는 마을'이 된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치 어머니의 자궁처럼 포근하고 아늑한 마을"이라며 서로 웃었다.  

이 마을은 6.25 한국 전쟁 때도 별 피해가 없었다고 했다. 재밌는 건 그럼에도 마을 주민들이 산을 넘어 상중리로 피난을 갔다는 것. 안성시내에서 들려오는 폭격 소리가 겁이나 만일을 대비했다는 거다. 큰 싸움과 격동 없이 지내온 마을이었으니, 폭격 소리에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을까.

마을인구 60%가 정씨... 이름만 들어도 촌수를 안다  

두 딸을 둔 아버지로서 딸바보라는 별명을 가진 정택훈 이장이 딸들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다. 마을이 대부분 집안 어르신들이 많아 좋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다며 웃었다.
▲ 정택훈 이장 두 딸을 둔 아버지로서 딸바보라는 별명을 가진 정택훈 이장이 딸들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다. 마을이 대부분 집안 어르신들이 많아 좋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다며 웃었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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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인구가 55가구 300여 명인데, 그 중 60%가 정씨 일가라고 했다. 말하자면 정씨(경주) 집성촌인 셈이다. 이 마을은 경주 정씨 30촌 이내의 사람들이 대부분 모여 살던 곳이다.

아무리 집안 집성촌이라도 요즘은 외지인과 많이 섞이기 마련이고, 다양한 사람들이 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마을은 아직까지도 정씨 집안 다수가 흩어지지 않고 보존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마을은 천연기념물 같은 마을이 아닐까 싶다.

오늘의 주인공 정택훈 이장도 이 마을 주민이자 정씨 집안의 조카이자 삼촌이자 손자다. 이 마을에 사는 남성들의 이름만 잘 따져 봐도 조카뻘인지 삼촌뻘인지 할아버지뻘인지를 알 수 있다.

정택훈 이장은 '훈'자로 끝나는 항렬이다. 자신 밑에 '지'자 항렬, 그 밑에가 '호'자 항렬 이다. 자신 바로 위에 '동'자 항렬, 그 위에 '규'자 항렬, 그 위에 '용'자 항렬이라고 했다. 정리하자면  아래에서부터 '호→ 지→ 훈→ 동→ 규→용'으로 서열이 이루어진다. 

한 눈에 놓고 보니 '훈'자 항렬이 중간이다. 마을에서 한창 일할 나이다. 지난 번 이장도 '훈'자 항렬이었고, 이번 이장도 '훈'자 항렬이다. 38세의 나이로 이장에 선출된 후 이제 4년 차가 된 정택훈 이장. 이장 임기 2년 후 다시 재선출된 정 이장은 마을에서 어르신들을 잘 모시는 깍듯한 이장으로 인정받았다.

가족 같아 좋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한 마을

이런 사정이니 마을 사람들 중 누구 집에서 결혼이 있으면 마을 잔치인 동시에 집안 잔치가 되곤 한다. 초상을 치러도 마을 상이자 집안 상이 되고, 싸움이 나도 마을싸움이자 집안싸움이 되곤 한다. 가족 같아 서로 좋기도 하고, 가족 같아 서로 조심스럽기도 한 마을이다.

이런 마을에서 이장의 주요 역할이 뭘까. 마을 일을 하다보면 모두의 의견을 들어주기 어렵다. 연세가 많은 집안 어르신이 많으니 의사소통하기도 힘들다.

"어르신들끼리 한 번 싸우면 몇 년도 가요. 서로 삐치신 거 달래는 게 이장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이쥬. 하하하하."

집안 어르신들의 서운함을 달래는 일은 마을 주민간의 분쟁을 조율하는 일이기도 하다.

정 이장에게 앞으로의 마을 계획을 물으니 "마을 어르신들 잘 공경하고 마을 주민끼리 화합하는 마을이 되면 더 바랄 게 없다"며 웃었다.

명절이면 마을 회관 앞에서 윷놀이가 벌어진다.
▲ 윷놀이 명절이면 마을 회관 앞에서 윷놀이가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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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엔 마을 사람들이 모여 풍년기원 줄다리기를 한다. 이 역사는 300년 가량 되었을 거라고 정택훈 이장이 말했다. 이렇게 줄다리기가 끝나면 풍물패가 마을 가가호호 방문한다.
▲ 풍년기원 줄다리기 정월대보름엔 마을 사람들이 모여 풍년기원 줄다리기를 한다. 이 역사는 300년 가량 되었을 거라고 정택훈 이장이 말했다. 이렇게 줄다리기가 끝나면 풍물패가 마을 가가호호 방문한다.
ⓒ 정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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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이장은 마을이 어머니 자궁처럼 편안하니까 마을 사람들도 장수한다고 했다. 현재 73세의 할머니가 100세가 다된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다고 하니 할 말 다했다. 마을이 집안처럼 편안하고, 사람들도 편안하니 장수하는 게 당연하리라.

'정월대보름 풍년기원 줄다리기'는 마을의 전통행사다. '안말'에서도 '아름말(아랫마을)'과 웃말(윗마을)' 사람들로 나눠 줄다리기를 한다. 행사날은 마을 어르신 중 날을 보는 어르신이 길일을 선택한다. 정월대보름 당일이거나 혹은 전날이거나 뒷날로 조정되는 식이다.

마을 사람들 중 제일 나이가 많은 할머니가 보름달을 보고 마을을 위한 기도를 올리면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줄다리기를 신명나게 한판 하고 나면 승패에 상관없이 풍물패가 마을 전 가구를 돌아다닌다. 마을의 풍년과 가정의 안녕을 비는 잔치다.

내동은 마을의 위치도, 사람들의 관계와 인심도, 마치 집안에 있는 것처럼 편안한 마을인 듯했다. 괜히 '안말'이라고 한 게 아니었다. 근래 보기 드문, 씨족사회 형태와 전통이 살아있는 마을이었다.


태그:#농촌마을, #정택훈 이장, #이장, #안성, #금광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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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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