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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10월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열병식에 등장한 북한 중거리미사일(IRBM) '무수단'.
 지난 2010년 10월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열병식에 등장한 북한 중거리미사일(IRBM) '무수단'.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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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미국 백악관의 언급이 주목된다. 미국은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에도 여전히 북한에 비핵화 의지를 보이는 조치를 선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실제론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23일(미국 동부시각) 벤 로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의 발언은 '이란의 핵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맥락을 강조하면서 나왔다. 이날 핵문제를 논의하는 'P5+1'(UN안전보장이사회 5개국 + 독일)과 이란 사이의 협상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은 로건 부보좌관은  기자로부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란을 북한에 비교하고 있다'는 질문을 받았다.

이란과 북한을 비교하는 네타냐후 총리의 얘기는 '이란이 북한을 따라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날 이스라엘 언론들은 다음달 1일 UN총회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이란이 핵무기를 얻기 위해 북한의 책략을 따라하도록 놔둬선 안된다'는 내용의 연설을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올해 2월에도 "경제봉쇄만으로는 이란의 핵 계획을 멈출 수 없다. 강하고 확실한 군사적 위협과 병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란의 핵무장을 막을 기회를 놓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쉽게 얘기하면 '북한이 미국과의 양자회담, 6자회담 등으로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할듯 하다가 결국은 만들어냈듯 이란도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주장이다. 

"문턱 넘은" 북한은 이미 늦었지만 이란은 비핵화 가능하다?

그러니까 이날 로건 부보좌관에게 기자가 한 질문의 요지는 '이란을 믿을 수 있느냐'는 것. 이에 대해 로건 부보좌관은 "(네타냐후 총리의) 그 비교는 단순히 이들 두 국가가 국제 비확산 규범을 지키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평가절하하면서 "실제로는 그들(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핵무기를 획득했고 2006년 초에는 시험도 했다, 그러나 이란은 핵무기를 아직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과 북한의 차이점을 강조하면서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말한 것.

로건 부보좌관은 게다가 "이것이 바로 이란이 핵무기를 갖지 못하게 막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는 중요한 이유"라며 "북한처럼 이미 문턱을 넘은 국가의 비핵화를 추진해야 하는 것과 같은 상황에 놓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처럼 이미 문턱을 넘은 국가'라는 어휘에 주목하면, 이 발언은 '북한의 비핵화는 이미 늦었지만, 이란은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로건 부보좌관의 발언이 알려지자 정부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다'라는 뜻을 강조하고 나섰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24일 로건 부보좌관 발언에 대한 질문에 "기술적인 관점에서 이미 핵실험을 3차례 한 북한과 현재 핵실험을 하지는 않았지만 우라늄 농축 단계에 있는 이란과 기술적 핵무기를 개발하는 기술적 단계를 구분하기 위해서 하는 말로 추정된다"고 해석하면서 "기술 측면에서 북한이 탄도미사일 탑재 가능한 수준으로 핵무기 핵탄두를 소형화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고 단언했다.

'북한이 핵을 갖고 있다'는 사실과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는 정치적 의미는 전혀 별개라는 관점에서 보면 북한 핵에 대한 미국의 정책에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미국이 비확산 골목으로 샜다"..."북핵 사실상 인정해도 비핵화 목표 유지"

그러나 로건 부보좌관의 발언에서 이미 미국의 핵정책이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하게 하는 비핵화가 아니라 북한의 핵무기가 다른 나라로 옮겨지는 걸 막는 비확산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된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장관을 지낸 정세현 원광대 총장은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당국자의 실수로 나온 발언 같다"면서도 "미국의 대외적인 정책목표가 아닌 실제 목표가 북한의 핵보유를 사실상 인정하고 비핵화에서 비확산으로 이동한 게 엿보이는 발언"이라고 해석했다.

정 총장은 미국이 그동안 비핵화를 추구할 것처럼 해서 한국이 따라갔는데, 미국이 슬쩍 비확산 골목으로 빠져버린 것"이라며 "미국이 북한에 대해 비확산을 추구하게 되면 한국으로선 미국의 MD(미사일 방어체제) 도입 등 한·미동맹 강화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발언은 비록 실수로 나온 것 같지만, 북한 핵에 대한 미국의 인식변화가 반영돼 있다"며 "(북한의 3차 핵실험 뒤) 지난 6개월 동안 북한의 핵개발 상황이 바깥으로 알려진 것보다 큰 진전이 있었다는 걸 미국도 알고 있다는 게 드러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최 교수는 "미국이 북한을 실질적인 핵국가로 인식한다고 해도 북한에 대한 비핵화라는 목표는 확실하게 유지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로건 부보좌관 발언이 곧 미국의 북한 핵정책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 교수는 "현재 미국이 북한 핵문제를 풀 어떤 로드맵을 갖고 있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핵화(denuclearizaton)'와 '비확산(nonproliferation)'을 구분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준형 한동대 국제어문학부(국제정치) 교수는 "미국에서는 비핵화와 비확산이 명확히 분리되지 않는다"며 "실제 취하는 행동은 비확산이지만 미국은 여전히 비핵화를 목표로 압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에 대해선 핵보유를 사실상 인정하며 비확산정책을 취하고 있는데 대해 김 교수는 "미국이 핵무기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 나라에 대해선 비확산이 적용될 수 있겠지만 북한에 대해선 이게 가능하지 않다"며 "만약 북한에 대해서 비확산 정책으로 접근한다 해도 그건 각론일 뿐, 총론은 비핵화가 될 것"이라 내다봤다.


태그:#비핵화, #비확산, #백악관,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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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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