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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북구 대현동 동대구시장 입구. 명절을 며칠 앞두고 있지만 썰렁한 모습이다.
 대구시 북구 대현동 동대구시장 입구. 명절을 며칠 앞두고 있지만 썰렁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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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대목을 앞두고 있지만 매장에는 파리만 날릴 뿐입니다. 이 시장 안에 정육점이 무려 23개나 있어요. 하지만 5분 거리에 있는 농협 앞 고기차량에만 길게 줄이 서 있습니다. 이게 갑의 횡포 아닙니까? 속이 탑니다."

추석을 앞두고 있지만 썰렁하기만 한 골목시장 상인들은 우울하다. 인근 농협에서 농산물 직거래를 한다며 농민들이 와서 물건을 팔도록 하자 시장에 와야 할 손님들이 그곳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대구시 북구 대현동에 위치한 농협중앙회 경북본부는 매주 금요일마다 농산물직거래 장터를 개설하고 있다. 또한 명절을 앞두고는 2~3일간 계속해서 농산물장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인근에 있는 재래시장 상인들은 매출이 평소보다도 더 많이 떨어져 명절에도 한숨만 내쉬어야 할 형편이다. 농협에서 불과 300m 떨어진 동대구시장 상인들은 "농협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고 아우성을 쳤다.

동대구시장은 200여 명의 상인들이 과일과 야채, 옷가지 등을 팔고 있는 전형적인 재래시장이다. 시장과 주변에는 정육점이 23개 있고 대부분의 상인들은 채소 등을 사다가 마진을 남기고 파는 정도이다.

동대구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김아무개씨는 "금요일만 되면 매출이 평일보다도 더 떨어진다"며 "시청과 구청에 민원을 넣어보았지만 대책이 없다고 하더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농협 경북본부가 금요일마다 대형 트럭에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싣고 와 부위별로 판매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시장의 정육점은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농협 농산물직거래 장터 두고 시장 상인들과 갈등

대구시 북구 대현동 동대구시장. 명절이 코앞이지만 시장 안에는 손님이 없다.
 대구시 북구 대현동 동대구시장. 명절이 코앞이지만 시장 안에는 손님이 없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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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지난 14일 오후와 16일 오전 동대구 시장을 찾았지만 정육점에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농협 앞 인도에서 파는 두 대의 축산물 이동판매차량에는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장을 찾은 인근 주민 이아무개(56)씨는 "집이 가까워서 동대구시장을 자주 찾는 편이지만 농협 앞에 장이 서면 그곳으로 간다"며 "시장보다 훨씬 싸게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동대구시장의 한 상인은 "농협이 농산물 직거래를 한다지만 중간에서 이윤을 남기는 장사를 하고 있다"며 "농협이라는 거대한 갑 때문에 을인 우리 상인들은 세도 못 내고 먹고 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동대구시장이 생기면서부터 장사를 했다는 장세연(86)씨는 "여기서 물건을 팔아 아이들 키우고 먹고 살았는데 지금은 하루 종일 팔아도 만 원도 벌기 힘들다"며 "손님들이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농협으로 가지 우리 시장에서 물건을 사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건우(60) 동대구시장 상인연합회 부회장은 "시청에 민원을 넣었지만 인도가 농협 땅이기 때문에 단속할 근거가 없다고 한다"며 "농협은 경북의 특산물을 알리는 행사라고 하지만 사실상 노점상을 운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난했다.

동대구시장 안의 한 정육점에 손님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인근 농협중앙회 경북본부 앞 이동차량에는 물건을 사기 위해 길게는 40~50미터 정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동대구시장 안의 한 정육점에 손님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인근 농협중앙회 경북본부 앞 이동차량에는 물건을 사기 위해 길게는 40~50미터 정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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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중앙회 경북지역본부 앞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농산물 판매시장이 열리는 가운데 축산물 이동판매 차령에서 축산물을 팔고 있다. 인근 시장의 상인들은 거대 농협이 노점상을 운영해 자신들의 물건이 팔리지 않는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농협중앙회 경북지역본부 앞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농산물 판매시장이 열리는 가운데 축산물 이동판매 차령에서 축산물을 팔고 있다. 인근 시장의 상인들은 거대 농협이 노점상을 운영해 자신들의 물건이 팔리지 않는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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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농협 경북본부는 농산물 유통구조를 개선하고 직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경북의 각 시군에서 직거래시장을 마련하고 있다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농협 관계자는 "자릿세 등을 받지 않고 농사를 지은 분들이 직접 가져와서 팔고 가도록 한다"며 "매일 하는 장터가 아니기 때문에 매출이 크지도 않다"고 말했다. 이어 "물건을 팔아 이윤을 남기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며 "시장 상인들은 노점상이라 단속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소작농들이고 농협 조합원들이기 때문에 단속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농협에서 시장 상인들과 상생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지만 상인들이 이곳에서 같이 물건을 팔 수 있도록 허용할 수는 없다"며 "우리는 갑도 아니고 농민들을 보호하는 단체이다, 유통구조 개선을 위하고, 농민들이 손수 지은 농산물을 홍보하는 것으로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태그:#농산물 직거래, #농협, #동대구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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