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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몇 년 전부터 입양을 계획했다. 흔히 입양을 '가슴으로 낳은 사랑'이라 말한다. 그만큼 사전에 계획적이고 책임감이 있어야만 감내할 수 있는 존귀한 행위이기 때문이리라. 혹시라도 버림받는 아이들이 없도록 그들이 사랑받으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입양에 대해 선뜻 개방적이지 못하다.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 '머리 검은 짐승은 남의 공을 모른다'는 옛말에 담긴 만고불변의 선입견은 여전히 입양을 곱지 않은 시각으로 보도록 만든 게 사실이다.

여기에는 '내 배 아파 낳은 아이도 키우기 버거운데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의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기는 더 힘들 것'이라는 우려도 한몫 한다. 그런 이유로 우리 가족의 입양 실천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그때마다 심각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곤 했다.

15년 동안 꿈꿔왔던 '사랑 나눔' 결심했는데...

SBS <땡큐>에 나와 입양한 두 딸에 대해 이야기하는 배우 신애라.
 SBS <땡큐>에 나와 입양한 두 딸에 대해 이야기하는 배우 신애라.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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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아내와 두 아들과 여러 번의 가족 회의를 거친 끝에 드디어 결혼 후 15년 동안 꿈 꿔왔던 '사랑 나눔'을 실천에 옮기기로 결정했다. 입양은 '필연'보다는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인위적인 부모-자녀의 관계지만, 누가 뭐라 해도 사랑과 보호가 필요한 새 생명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큰 의미를 뒀다. 

'인격체+인격체의 만남, 무슨 일이 있어도 참고 사랑하자'는 가족 표어까지 만들었다. 우리 부부가 맞벌이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 입양 대상으로는 여자 아이이면서 돌이 가까워오는 조금 큰 아이를 원했다. 입양 사실도 아이에게 미리 알려서 커가면서 입양에 대한 사실을 감당해낼 수 있도록 돕기로 계획했다. 그렇게 꿈을 키웠고 서서히 그 꿈이 시작됐다.

전국의 입양 전문기관을 수소문한 끝에 올해 4월경 드디어 광주광역시의 한 입양기관과 연락이 닿았다. 그런데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아 보였던 입양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담을 해보니 입양은 우리가 생각했던 절차보다 훨씬 까다로웠고 준비 서류도 녹록치 않았다. 상담 후 곧 입양 기관에서 서류를 준비하라는 연락이 왔다.

"준비하실 서류입니다. 가족관계증명서 2부, 혼인관계증명서 2부, 주민등록등본 2부, 건강진단서(약물중독, 알코올 중독검사 내용 포함) 부모 각 1부, 은행 신용조회 서류 부모 각 1부, 재산관계 서류(등기부등본 또는 전세계약서, 은행잔고 증명서, 원천징수 영수증 또는 종합소득세 영수증 등), 재직증명서 또는 사업자등록증 사본, 최종학력증명서 부모 각 1부, 자기소개서, 양육계획서, 가족사진 2매를 준비해주세요.

서류를 제출하신 시점에서 6개월이 지나도록 입양진행이 안될 경우, 다시 서류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양육계획서의 경우 법원에 직접 제출할 사항이므로 구체적으로 써 주시기 바랍니다. 형식은 한 장이지만 쓰시면서 여러 장이 되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알고 보니 지난해 8월부터 입양 숙려제, 가정법원 허가제, 양부모 자격 강화 등을 담은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별법'이 대폭 개정되어 복잡한 서류가 많아진 것이었다. 또 입양대상자가 선택되더라도 입양을 하기 위해서는 법원에서 양부모의 능력을 심사하고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하는 등 입양 절차가 대폭 강화됐다.

하지만 우리가 평생을 함께 할 한 인격체의 권리를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심사숙고하여 결정한 검증 과정이라 생각하니 그깟 서류 준비는 일도 아니었다. '사랑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믿음으로 틈틈이 시간을 내어 하나하나 기쁜 마음으로 서류를 준비했다.

서류를 제출하고 약 한 달 후 애타게 기다리던 한 아기를  입양 기관에서 주선해줬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기가 너무 어렸다. 다음에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고 기관에서는 흔쾌히 승낙했다.

입양할 아이가 없다... 입양특례법이 문제?

입양아들을 다룬 영화 <여행자>의 한 장면.
 입양아들을 다룬 영화 <여행자>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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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후 4개월 동안 더 이상의 주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일단은 입양 기관으로 들어오는 아이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아기를 입양시키려면 먼저 생모 본인의 가족등록부에 올린 후 절차를 밟아야 하므로 입양 이외의 다른 방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단다.

입양 전문상담사를 통해 사정을 들어보니, 특히 지난해부터 입양이 법원의 허가제로 바뀌면서 기관으로 들어오는 아이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현행법상 입양은 기존과는 다른 매우 엄격한 절차를 거칠 수밖에 없었다. 생모가 호적에 올린 아이만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입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꼭 필요한 증빙서류가 가족관계등록부(호적). 즉, 이미 생모의 호적에 자녀로 출생신고가 되어 있어야 한다. 생모가 일단 아이를 자기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리고 출산 후 7일 이상의 숙려 기간이 지난 후 법원을 통해 입양 기관에 보낼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정식 입양기관으로 들어오는 아이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처음부터 이런 사정을 잘 알지 못하긴 했지만, 시간이 하염없이 흐르다보니 처음에 주선해 준 아이를 입양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이들의 입양을 막기 위해 엄격하게 자격을 심사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한 것은 적극 환영할 만하다. 오히려 이런 검증 서류는 더 강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문제는 미혼모의 경우에도 아이를 입양 보내려고 한다면 일단 본인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입양 절차가 끝난 직후 미혼모의 호적에는 자녀의 출생신고 사실이 삭제된다. 입양된 아이가 언제라도 친부모를 찾을 수 있고, 또 파양이 되었을 경우 다시 기관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막는다는 취지라고 하지만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미혼모들이 혹시라도 출생신고를 한 사실이 알려져 남은 인생을 '주홍글씨'로 낙인 찍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 입장을 바꿔놓고 미혼모 입장이라면 호적에 '아기를 낳았다'는 증거가 남는다는데 누가 선뜻 공개적으로 입양을 시키려고 들겠는가.

어차피 입양이 되고 나면 생모와의 가족관계와 출생기록이 삭제되는데, 굳이 미혼모에게까지 출생신고를 강요할 할 근거는 없어 보인다. 대신 생모의 인권을 우선적으로 감안해 입양전문기관에서 출생신고를 일시적으로 대행하여 관리하는 방안은 어떨까.

개정법 절차에 의하면 법원의 입양 허가가 나더라도 아이의 개명 신청 등 절차를 감안하면 아이가 양부모의 품에 안기기까지는 3~4개월 정도가 걸린다. 이러니 인터넷에는 미혼모들의 '비밀 입양'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얼마 전에는 경기 양주에서 입양 부모의 무관심으로 생후 1년도 안 된 아기가 아사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오히려 개정법으로 인해 미혼모들의 사생활이 노출돼 아동유기를 조장하는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벌써 5개월이 지나고, 곧 우리 가족이 입양을 위해 서류를 제출한 지 6개월이 지나 다시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 이 일은 어렵지 않다. 언제쯤이면 예쁘고 사랑스러운 우리 가족의 새 생명에게 '가슴으로 낳은 사랑'을 전할 수 있을까.


태그:#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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