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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여명 정도가 모여서 서로 손을 맞잡았다.
▲ 베를린 '카탈루냐의 길' 시위 160여명 정도가 모여서 서로 손을 맞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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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맞잡고 만든 400km 사람의 길

1989년 8월 23일, 발트 3국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시민들은 손을 맞잡고 사람의 길을 만들었다. 이날은 발트 3국에게 치욕적인 날이었다. 바로 독일 나치 정권과 소련 공산 정권의 독소불가침 조약으로 인해 소련이 발트 3국을 점령한 지 50주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만 명의 시민들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탈린-리가-빌뉴스를 관통하는 600km의 도로에서 손을 맞잡고 독립을 염원했다(발트의 길). 이들의 염원은 1991년 8월~9월에 소련에서 독립함으로써 이루어졌고, 결국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를 불러왔다.

24년 후 9월 11일 17시 14분, 이번에는 발트 3국의 정반대 지역인 카탈루냐 시민들이 손을 맞잡고 사람의 길을 만들었다. 이날 역시 카탈루냐인에 있어 역사적인 상처가 있는 날이다. 바로 1714년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때 스페인-프랑스 연합군으로 인해 바르셀로나가 점령당해 카탈루냐가 자치권을 상실한 지 299주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최소 160만 명의 시민들은 (카탈루냐 국영 TV3/24에서 공식 발표한 통계입니다)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카탈루냐 국경일(Diada Nacional de Catalunya)에 알카나르(Alcanar)-바르셀로나-프랑스와의 국경지역 엘 페르투스(El Pertús)를 관통하는 남북 400km의 도로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 독립을 염원했다.

발트의 길과 카탈루냐의 길(Via Catalana)의 차이점을 굳이 말하자면, 전자는 소비에트의 강압적 지배로 인해 5·18과 6월 항쟁처럼 결연한 표정으로 시위를 주도했다는 것이고, 후자는 자치 및 민주주의의 경험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미국산 쇠고기 반대시위 및 국정원 촛불 시위와 같이 유쾌했다는 것이다.

카탈루냐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스페인의 한 지방으로 생각하지만, 카탈루냐인에게는 결코 그렇지 않다. 우선 이들이 쓰는 모국어가 스페인어가 아닌 카탈루냐어다. 또한 카탈루냐와 스페인 중앙정부는 300년 동안 긴장관계에 있었다. 자치권이 뺏긴 이후 1936년부터 39년까지 이어진 스페인 내전에는 카탈루냐의 자치 및 독립을 위해 아나키스트파 및 공화파 진영에 가담하였으나, 왕당파인 프랑코에게 패하여 36년간 정치적 억압을 받으면서 지낸 역사가 있다. 내전에 가담했던 아나키스트파 및 공화파 카탈루냐인들은 프랑코 정권에 의해 처형되거나 고문 및 박해를 받았던 역사도 있었다. 현재까지도 프랑코 정권에 살해된 카탈루냐 민간인들에 대한 조사 및 발굴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참조기사: 카탈루냐, 왜 독립을 주장할까)

민주화 이후에는 1978년 헌법으로 인해 자치권을 가졌고, 이를 통해 지역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하지만 최근 경제위기로 인해 독립요구가 더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유럽금융위기에서 드러난 스페인 기업 및 은행들의 도덕적 해이와 경제위기 대처에 무능했던 중앙정부에 의해 독립요구가 훨씬 거세진 상황이다.

2011년까지만 해도 스페인의 연방이나 혹은 자치령으로 머물러야 한다는 의견이 강했지만, 2012년 중반부터 완전독립에 대한 의견이 더 강해지면서 최근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그해 초반까지만 해도 완전독립의견은 30%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올해 2/3분기 기준으로 독립의견은 44%, 연방은 21%, 자치권은 21%이다. 정치형태를 배제한 독립 자체에 대한 질문에서는 약 55%의 카탈루냐인이 이를 지지하였다.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가 필요하냐에 대한 설문에서는 70% 이상의 카탈루냐인이 이를 지지하고 있다.

파란색은 연방제, 노란색은 자치제, 초록색은 완전독립이다. 2012년 2/3분기를 전환점으로 완전독립에 대한 요구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 독립은 어떤 방향으로? 파란색은 연방제, 노란색은 자치제, 초록색은 완전독립이다. 2012년 2/3분기를 전환점으로 완전독립에 대한 요구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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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루냐의 유명 인사들도 독립을 지지한다는 선언을 했다. 우리나라에 알려진 유명인이라면 세계 3대 테너 가수인 호세 카레라스, FC 바이에른 뮌헨 축구팀 감독인 주제프 과르디올라 이 살라가 대표적이다. 이 밖에 카탈루냐 출신 저널리스트, 종교인, 연예인, 운동선수 및 지식인들도 독립지지를 표명하면서, 독립 물결은 더욱 확산되는 추세에 있다.

해외에서의 독립운동

해외에서도 카탈루냐 독립운동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뉴욕, 시드니, 런던, 파리, 베를린, 도쿄 등과 같은 세계 주요 117개 도시에서도 인간사슬로 이루어진 독립운동이 8월 말에서 9월 초 중에 있었다. 특히 중국은 8월 31일 만리장성에서 카탈루냐인이 손을 맞잡고 독립을 염원한 행사도 있었다. 서울에서도 지난 8일 오후 4시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행사가 있었다.

필자가 머물고 있었던 베를린에서도 장벽시위가 8월 25일에 있었다. 인원은 160~200명 정도의 규모였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베를린 중심부의 유명관광지인 정트아르멘마크트(Gendarmenmarkt)에 카탈로니아 국기를 들고 모였다.

이들은 광장 중앙에 있는 콘서트 홀 주변으로 서로 손을 맞잡아 원을 만들었다. 어설프게나마 배운 스페인어로 "왜 독립을 해야 합니까?"라고 물어보고 비디오로 촬영을 했다. 주로 나온 대답은 역사적으로 카탈루냐는 독립된 세력이었고, 현재 경제위기를 스페인 중앙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카탈루냐인 스스로 해쳐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카탈루냐 독립운동은 유고슬라비아 해체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이다. 이들은 민주적 절차 및 국민투표를 바탕으로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EU가입에 대해서도 적극적이다.
▲ 카탈루냐, 유럽의 새로운 국가! 카탈루냐 독립운동은 유고슬라비아 해체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이다. 이들은 민주적 절차 및 국민투표를 바탕으로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EU가입에 대해서도 적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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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지역 내에 있는지라, 카탈루냐에서 시위했던 것과 달리 더 강조한 내용도 있었다. 카탈루냐의 독립운동은 비록 스페인에서 독립하는 것이지만, 유고슬라비아 내전과는 성격이 완전히 달리 평화적이며, 민주적이고 국민투표라는 절차에 의해 진행된다는 것과 EU회원국으로 유지해서 EU의 올바른 발전 및 EU회원국 간에 협력에도 크게 기여하겠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에는 콘서트 홀 계단 위에 모두 올라가서 카탈루냐 국가를 불렀다.

지난번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국정원 선거조작 사건에 관련해서 시국선언을 했던 것과 비슷하게 독일 대형 언론들은 거의 없었다. 다만, 소수의 카탈루냐 및 독일의 프리랜서 언론인들이 있었다. 동양 사람은 그곳에서 내가 거의 유일했다. 카탈루냐 국가를 마치고 이들과 헤어지려고 했을 때, 나는 이들이 준 감사의 말에서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한국에서 저희에게 관심을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 말을 들은 순간, 일제 강점기 때 해외에서 고생했었던 우리 옛 독립운동가들이 떠올랐다. 비록 오래전 일이지만, 중국에서 미국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서 독립을 목이 터져라 외쳤을 때 우리 독립운동가의 기분은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베를린에서 이렇게 자유롭게 촬영할 수 있는 이유도 이들의 공으로 인한 것이다. 카탈루냐인의 염원이 잘 이루어져서 이들의 후손들에게 본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태그:#카탈루냐 독립운동, #카탈루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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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독일에서 통신원 생활하고, 필리핀, 요르단에서 지내다 현재는 부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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