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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국회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통과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4일 국회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통과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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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개된 이른바 '5·12 합정동 모임' 녹취록과 국회에 보고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체포동의요구서에는 올해 초 한반도 상황에 대한 이 의원의 정세 인식을 보여주는 발언 내용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녹취록 등에 따르면 이 의원은 지난 2월에 있었던 북한의 3차 핵실험과 3월의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 등 긴박하게 돌아간 한반도 정세를 '전쟁임박 상황'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그의 정세 인식은 북한 입장에 지나치게 경도되거나 때로는 사실 관계를 무시하고 논리적 비약으로 도출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무엇보다 총기와 사제폭탄을 언급하고 국가 기간시설 타격을 모의한 듯한 녹취록 내용이 우리 사회에 준 정서적 충격과는 별개로 군사적 측면에서는 속전속결로 끝나는 현대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망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북한, 미국 본토 위협세력" 이석기 말, 타당한가

녹취록에 따르면 이 의원은 지난 5월 10일과 12일 경기도 광주 곤지암수련원, 서울 합정동 종교시설에서 '3월 정세'에 대해 언급했다. 이 시기는 북한이 고강도의 무력도발 위협과 이에 대응한 한미 양국의 무력시위가 맞물리면서 '강대 강' 형태로 전개되던 시기였다. 이 의원이 회합에서 '전쟁 임박', '혁명의 결정적 시기'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상황 인식이 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

또 이 의원은 3월 상황에 대해 "2013년도에 한반도 정세는 우리가 그간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역사를 맞고 있고, 조선반도의 현 정세는 혁명과 반혁명을 가르는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그는 또 "조선반도는 미국의 세계질서 근본을 약화시키고 미 중심의 패권주의인 제국을 무너뜨리는 세계 혁명의 중심 무대"라고 주장했다.

실제 지난해 12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 광명성 3호 발사 이후로 올해 1월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 포기 선언, 2월 3차 핵 실험을 거쳐 3월 5일에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을 통한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까지 한반도 정세는 표면적으로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한 북한은 '제2의 조선전쟁' 등을 주장한 데 이어, '남북 불가침 합의 폐기, 판문점 연락채널 단절'조치를 단행했다. '남북관계 전시상황 돌입'을 운운하기도 했다.

국가정보원은 이후 이 의원이 당시 정세가 '전쟁 상황'이라는 인식을 조직원들과 공유하면서, 북한의 전쟁 상황 조성 시 이에 호응하는 사회주의 혁명은 남한에서 수행할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 지난 5월 8일경 지역책들에게 전체 조직원 소집령을 발령했다고 밝혔다. 이후 5월 10일과 12일 두 차례의 회합이 있었고, 국가정보원이 범죄사실로 적시한 문제의 발언들이 등장한다.

이 의원은 2월에 있었던 북한의 3차 핵실험을 "대단한 성공"이라고 평가하면서 "이번에 수소폭탄까지 성공했다고 본다, (핵개발을) 3차 실험에서 끝냈다는 거 대단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핵무기를 6㎏ 미만으로 경량화할 수 있는 나라가 전 세계에 3, 4개 밖에 안 되는데 이번에 이룬 게 엄청나다"는 발언도 했다. 이 의원은 또 "북한은 핵무기로 미국을 타격할 수 있기 때문에 핵보유 강국"이라며 "북한이 핵탄두를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다"는 미 국방정보국(DIA)의 보고서를 그 근거로 제시했다.

이 의원은 북한의 핵개발을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유일한 위협 세력으로 등장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할리우드 영화 <우주전쟁>을 예로 들며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것은 외계인이라고 생각했던 미국이 이젠 북한을 '우주적 외계인'으로 느끼고 있다는 발언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 같은 이 의원의 평가는 과장된 측면이 강하다는 지적이 많다.

"북한의 '말 폭탄', 그대로 믿어... 교조주의 폐단"

3차 핵실험 직후 김관진 국방장관은 국회에 출석해서 "북한이 소형화·경량화 핵기술을 확보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이르다"며 "(북한이 소형화·경량화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것은)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일 뿐"이라고 밝혔다. 군 고위관계자도 "북한이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을 정도로 핵탄두를 소형화하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핵 미사일을 보유했다는 주장은 북한 미사일 개발 과정에 따른 추정에 근거하고 있다"고 핵탄두의 미사일 장착 가능성을 일축했다.

2010년 영변 핵시설을 방문해 북한의 우라늄농축 시설을 최초로 확인한 지크프리드 해커 박사도 "핵무기에는 소형화와 경량화가 필요한데 특히 핵탄두의 경우 대기권 재진입의 압박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에 미 본토까지 도달하려면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 이 의원이 제기한 미 국방정보국의 보고서 자체도 "무기의 신뢰도가 낮을 것"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는 데다, 이 보고서 공개 직후 "북한이 핵 탑재 미사일을 배치할 능력을 입증하지 못했다"(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 "부정확한 보고서"(존 케리 국무장관)라는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그렇다면 북핵에 대한 일반적 평가와는 다른 이 의원의 시각은 어떻게 봐야 할까?

사진은 지난 2006년 10월 미국의 군사전문지 '글로벌 시큐리티'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북한의 1차 핵실험 가능 지역으로 주목했던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주변을 촬영한 지오아이 위성사진.
 사진은 지난 2006년 10월 미국의 군사전문지 '글로벌 시큐리티'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북한의 1차 핵실험 가능 지역으로 주목했던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주변을 촬영한 지오아이 위성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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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했다는 건 맞지만 미국 본토를 타격할 정도의 핵무기 능력을 보유한 건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라며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서 과장적으로 이야기한 걸 그대로 믿은 결과"라고 분석했다.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도 "이 의원이 (북한의 핵 능력에 대해서) 정확한 평가를 내릴 근거가 특별히 없을 것 같다"면서 "단순히 조직원들의 사기 고취를 위해서 그렇게 얘기했을 가능성도 많다"는 견해를 밝혔다.

녹취록에 따르면 이 의원은 북한의 정전협정 무효화 선언을 놓고도 "60년이라는 휴전 형태의 기형적 구조는 끝났다"며 이를 핵 능력을 가진 북한의 선전포고로 해석했지만, 이 역시도 과도한 억측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북한은 과거 1994년 1차 북핵 위기 직후에도 군사정전위원회 북측 대표단을 철수시키고, 이후에도 정전협정 파기 비망록 등을 발표해 왔다. 또한 키 리졸브 훈련 등 한미연합 군사 훈련 때마다 정전협정 무효화를 반복적으로 언급했다. 올해 3월 정전협정 무효화 선언 역시 3차 핵실험에 따른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 조치에 대한 북한의 반발 성격이 강하다.

김근식 교수는 "북한의 성명이나 공식입장에는 협상국면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과장된 면이 많기 때문에 북한의 공식입장이나 성명을 사실로 믿는 자체가 큰 문제"라며 "(지난 3월의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도) 다분히 한국과 미국을 겨냥해 협상 차원에서 블러핑해 활용하려는 것인데, (이 의원과 RO조직이) 이런 것을 구분 못했다는 것이 제일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군사평론가 김종대 <디펜스21 플러스> 편집장도 "지난 3월의 상황을 복기해 보면, 북한이 겉으로는 전쟁을 불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 기간 동안 평양에서 군중대회가 열리고 춤판이 벌어졌으며, 김정은 제1위원장은 목선을 타고 서해를 돌아다니는 동선이 다 북한 매체를 통해 노출되고 있었다, 전쟁 지도부의 동선을 노출시킨 것은 실제로 전쟁을 일으킬 의사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단지 '말(言) 폭탄'을 터트렸을 뿐인데 이석기 의원은 정말 전쟁이 일어난다고 받아들였다"면서 "이는 교조주의의 대표적 폐단을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류저장고 타격? 단기전인 현대전에 대한 이해 일천"

지난 2012년 4월 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김일성 주석 생일기념 열병식에서 참석한 김정은.
 지난 2012년 4월 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김일성 주석 생일기념 열병식에서 참석한 김정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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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합에서 총기와 사제폭탄을 확보해서 유사시 유류저장고와 전화국 등 국가기간 시설 공격을 암시하는 논의가 이루어졌다는 의혹과 관련해서 전문가들은 대체로 군사적 의미에서는 무의미한 시도라는 평가를 했다.

김종대 편집장은 "녹취록에 나타난 발언만을 놓고 보면 단기간에 끝나는 현대전에 대한 이해가 일천하다는 것이 드러난다"며 "앞으로 한반도에서 벌어질 전쟁 양상은 철탑이나 유류고, 전화국을 교란하는 수준의 전쟁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 편집장은 "녹취록에 언급된 전화국과 유류, 철도 시설은 국민생활 안정과 관계 있는 시설로 군사작전에 대한 직접적 영향이 아주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북한이 한 시간에 50만 발의 포탄을 쏟아부을 텐데 사제 폭탄을 만들어 한두 군데를 더 공격한다고 하는 것이 군사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편집장은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굉장히 급박하게 나온 우발적 발언으로, 치밀하지도 못하고 정교하지도 않다"고 평가했다.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는 구체적으로 "녹취록에 평택 유류고나 혜화 전화국을 언급한 부분들은 그날 회합에서 처음 나온 것 같다"면서도 "지도부 차원에서는 미리 구체적 이야기가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이 밖에도 이 의원은 '새누리-민주 양당체제'를 "미국 제국주의의 남측 분할통치 전략"이라고 평가했고, 지난해 총선 직후 통합진보당 분당 사태를 불러왔던 '비례대표 경선부정 사태'에 대해서는 "혁명과 반혁명 세력의 치열한 전쟁"이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태그:#이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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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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