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잔디를 깎고, 고추를 따서 말리고, 고랑의 김매기를 했다. 미처 못 딴 고추를 따서 말리는 일과 여물어가는 참깨 밭은 이웃에 사는 아주머니께 부탁을 드렸다. 그리고 떠난 여행이었다.

그러나 2주일 만에 돌아온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숙지원을 뒤덮은 묵을 풀들이었다. 고추는 탄저병이 번져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무엇보다 7년째 가꾸어온 야콘이 거의 시들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상당히 가물었는데, 이후 열흘간 계속된 가뭄에 그냥 넋을 놓아버린 것 같다.

아직 여독이 가시지 않았지만 오늘(27일) 오전 내내 죽은 야콘은 솎아내고 병든 고추는 뽑아냈다. 그리고 서둘러 김장 무와 배추 심을 밭을 만들었다. 야콘이 조금은 서운하지만 여행을 위한 기회비용이었다고 마음을 접는 수밖에.

일반적으로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 여행은 현지의 사물에 깊이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보는 것에도 한계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문자 그대로 편하게 '관광'이나 하자고 계획을 세웠다. 그렇지만 정작 현지에 도착한 후, 스치듯 지나치는 풍경을 보면서도 그 나라의 실정이 궁금하고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고 싶은 욕심까지 누를 수는 없었다.

더구나 과거 공산권이었던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에서는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은 물론 그곳 사람들의 생각까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역시 호기심은 그냥 호기심으로 끝나고 말았다. 가는 곳마다 현지 가이드에게 접근하여 궁금한 것을 물었지만 답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짧은 영어도 거의 통하지 않은 그곳 사람들에게 접근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그냥 보면서 혼자 생각하면서 느끼고 돌아온 여행이 되고 말았다.

지루한 비행기 내에서 잡은 에어쇼의 한 장면
▲ 독일 가는 여정 지루한 비행기 내에서 잡은 에어쇼의 한 장면
ⓒ 홍광석

관련사진보기


12시간의 비행. 태양과 함께 서쪽으로 달리는, 그래서 공간의 의미가 무색해지는 시간이었다. 몇 년 전 서유럽 여행 시에는 우리나라 비행기를 이용했는데 개인용 화면에 제공되는 영화, 음악 등 서비스가 많아 그런대로 시간을 보낼만 했지만 루프트한자라는 독일 여객기는 보고 즐길 서비스도 적었다. 더구나 아무리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나이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나이를 먹으면 해마다 다르다는 옛 사람들의 말을 생각하여 더 늙기 전에 장거리 여행을 해두자고, 그러면서 어느 정도 각오하고 출발했지만 몸을 뒤척이면서 보낸 불편한 시간이었다.

오후 2시 40분에 인천을 출발해서 12시간 비행 끝에 도착한 프랑크푸르트의 시계는 오후 7시를 넘기고 있었다. 시차만큼 길어진 하루. 그러나 덤으로 얻은 시간도 호텔로 직행하여 씻고 자는 것으로 첫날 일정은 끝나고 말았다.

이번 여행에서 굳이 독일과 스위스를 경유하는 장기 코스를 선택한 까닭은 비록 일부이지만 독일의 풍경을 한 번 더 보고 싶었고, 스위스의 동부 지역 풍경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독일은 1,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라이다. 전쟁으로 인해 독일인들이 겪은 고통과 비극도 컸겠지만, 그보다 이웃 국가들을 침공하여 도시를 파괴하고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가해자였음을 생각하면 결코 호감을 가질 수 없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우리는 2차 대전 당시 독일과 동맹국이었던 일본의 악랄한 지배를 받았던 경험이 있기에 과거 독일의 행동에 대해서도 당연히 분개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독일이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일이나 조용하게 분단을 극복하여 통일국가를 이룬 사실, 특히 일본과 달리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을 했다는 점에서 대단한 나라라는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동유럽 여행에서도 독일을 경유하는 여행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스위스의 풍경은 동부의 융프라우에서 느꼈던 감동만은 못했지만 크게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낮은 지붕, 산을 배경으로 한 올망졸망한 우리 마을의 풍경도 정겨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서구 중심의 음악, 미술, 건축에 대한 교육에 길들여진 잠재의식의 시선으로 본 결과일 수 있다. 어쩌면 은연중 내재된 서구화된 사고의 표현일 수 있다. 하지만 스위스의 산골짜기에 자리 잡은 마을이나 초지에 둘러싸인 이국적인 주택의 풍경은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았다.

      하이델베르크 성벽 길
▲ 하이델베르크 하이델베르크 성벽 길
ⓒ 홍광석

관련사진보기


여행 둘째 날인 8월 14일, 오전 독일의 대학도시인 하이델베르크. 몇 년 전에는 하이델베르크 성을 중심으로 네카강변의 풍경을 보는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주로 도시의 뒷골목을 살폈다. 물론 독일의 보통 사람들이 사는 가정집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오래된 도시이기에 길은 넓지 않지만 단정하고 깔끔한 집들의 겉모습을 통해 독일인들의 여유와 미적 안목을 느낄 수 있어 기억에 남는다.

하이델베르크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하여 스위스의 루체른이라는 곳까지 한 약 6시간의 버스 여행은 지루하지 않았다. 일행의 대부분이 잠 든 시간에도 고속도로 주변의 독일 농촌 풍경, 국경의 개념이 모호한 우리나라 시골 검문소 같은 독일과 스위스의 국경 풍경, 알프스산맥 자락의 풍경에서 눈을 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같은 민족이면서 외국 가는 것보다 힘든 남과 북의 현실, 경관을 해치는 고층 아파트가 우뚝 선 시골 마을, 비닐하우스가 줄지어선 농촌의 들녘 풍경을 떠올리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루체른 호수에 놓인 목조다리
▲ 카펠교 루체른 호수에 놓인 목조다리
ⓒ 홍광석

관련사진보기


루체른은 호수의 도시였다. 밤에 아내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다리라는 카펠교를 건너며 사람과 공존하는 호수의 백조들을 사진에 담았다. 호숫가에 줄지어선 노천카페에 붐비는 관광객들의 이야기 주제를 들을 수 없으니 그곳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우리는 벙어리 귀머거리 여행객일 수밖에 없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 필통, 한종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하이델베르크, #루체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개인의 잔잔한 기록도 역사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봄 길 밝히는 등불, 수선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