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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23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추석 이산가족 상봉을 논의하기 위한 적십자 실무회담 열리고 있다. 남측 수석대표 이덕행 대한적십자사 실행위원과 북측 수석대표 박용일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등이 참석하고 있다.
▲ 이산가족 상봉 적십자 실무회담 개최 23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추석 이산가족 상봉을 논의하기 위한 적십자 실무회담 열리고 있다. 남측 수석대표 이덕행 대한적십자사 실행위원과 북측 수석대표 박용일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등이 참석하고 있다.
ⓒ 통일부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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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남과 북이 매우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이 지난 2010년 10월 중단된 이후 3년만에 재개된다.

남북 양측은 23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이산가족 대면 및 화상 상봉행사 개최를 위한 협의를 진행한 결과 추석을 전후해 금강산에서 이산상봉 행사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거기다 금강산 관광사업재개 가능성까지 언급되고 있다. 개성공단 정상화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남과 북 공히 우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전격적으로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는 셈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파탄난 남북관계를 복원시킨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항상 전쟁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는 한반도 구성원으로서 남북문제는 곧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는 바, 남북관계의 개선은 어느 정권에게나 필수적인 과제이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대선 때 그래도 박근혜가 MB(이명박)보다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유 중의 하나도 남북문제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유화적인 태도 덕분이지 않았던가. 마냥 강공책을 써가며 북한의 붕괴를 기다리던 MB와 달리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통해 그래도 대화의 여지를 주었던 박근혜 후보에 대해 실낱같은 기대를 걸었던 게 사실이다. 언론사들이 취임6개월을 기해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도 박근혜 정부의 대북관계는 후한 평가를 받았다.

물론 남북관계가 급진전 된 것은 북한이 먼저 박근혜 정부에 유화의 손길을 내민 탓이 크다. 이를 두고 북한의 필요와 중국의 요구가 있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이와 보조를 맞추어 현 정부 역시 남북관계 개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전과는 다르게 남북 화해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비록 신뢰를 내세우는 박근혜 대통령이지만, 집권 이후 지금까지 경제민주화, 복지 확대 등 자기 지지세력에게 불리한 대선공약들은 하나둘씩 폐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남북문제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NLL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남북문제는 보수 세력들을 대동단결 시키는 데 있어서 가장 좋은 소재다. 자신들의 의견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들을 '종북좌파'로 낙인 찍고, 냉전 이데올로기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을 쉽게 수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현 정부가 왜 남북관계 개선에 나름대로 중점을 두는가 하는 점이다. 

7.4 공동성명의 숨겨진 배경

필자는 그 단서를 1972년에 있었던 7.4 남북공동성명에서 찾고 싶다. 당시 7.4 남북공동성명 역시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던 만큼 한반도 구성원들에게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 당시 남북관계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최악의 상황이었다. 1968년 1.21 사태와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 등이 벌어지면서 남과 북은 절대 화해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정부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7월 4일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을 앞세워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이날 5월 이후락 정보부장이 직접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났고, 남북한이 자주·평화·민족적 대단결을 통일의 3대 원칙으로 정했으며, 공식 대화기구로 남북조절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개성공담 정상화의 분수령이 될 7차 남북 실무회담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회담장인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전경.
 개성공담 정상화의 분수령이 될 7차 남북 실무회담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회담장인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전경.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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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박정희 정부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전격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발 벗고 나섰던 것일까? 이와 관련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는 것은 우선 외부적인 요인이었다. 당시 국제사회는1972년 2월 미중간 국교정상화로 대표되는 국제적 데탕트 분위기였고,  남과 북이 모두 미국과 중국의 압박으로 인해 관계 개선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부적인 요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내부적인 요인이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3선 개헌 이후 전태일의 분신 사건에 의한 노동운동, 영세 상인들의 과중한 세금에 항의한 집단행동, 언론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움직임, 사법부의 집단행동, 서울대를 비롯한 대학 교수들의 '자주화 선언'등 국민들의 끊임없는 저항으로 정치적인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를 타결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돌파구가 필요했고 7.4남북공동성명을 바로 그 결정적인 한 방으로 이용했다.

7.4남북공동성명에 대한 이런 불순한 의도는 이후 남북의 정치 여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박정희는 7월 4일 이후 통일에 대한 기대로 한껏 부풀어 있던 국민들의 뒤통수를 치며 10월 유신을 선포했고, 북한도 이에 질세라 12월 사회주의 헌법 채택을 하면서 남북 각기 독재체제를 공고히 했다. 결국 남북 당국에게 7.4남북공동성명은 통일의 첫걸음이 아니라 체제 유지의 수단이었던 셈이다.

그럼 다시 우리의 현실을 보자. 놀랍게도 지금의 상황은 41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남북관계는 MB정부 등장 이후 최악인 데 반해, 국제적 분위기는 북한을 중심으로 유화적이다. 중국은 계속해서 한반도 평화를 지지하고 있고, 일본은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북한은 궁극적으로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끊임없이 원하고 있다. 1972년의 데탕트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북한의 경우를 보자. 개성공단 폐쇄 직후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북한에게 개성은 더 이상 유일한 외화벌이 창구가 아니다. 차라리 그 인력을 중국으로 수출한다면 더 많은 돈을 벌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개성공단을 정상화하려는 것은 결국 개성공단이 갖는 상징성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남북관계 정상화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던 상황이었으며, 추후 대미관계 복원을 위해서라도 남북관계 복원은 필수적인 수순이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해야할 일

그럼 박근혜 정부는 왜 남북관계 개선에 북한과 보조를 맞추는 것일까? 그것은 결국 1972년과 마찬가지로 국내적인 이유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국정원 사태와 관련하여 촛불집회가 꺼지지 않고 있고, 서민층 증세 논란으로 국민들의 분노를 산 지금, 정부로서는 국민들의 관심을 끌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획기적이고 파격적인, 그래서 박근혜를 다시 보게 만드는 그 무엇. 남북관계 개선만큼 이와 같은 조건에 가장 적합한 정치적 이슈가 또 있을까.

물론 이와 같은 해석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너무 과소평가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남북문제에 대한 의지를 너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할 수도 있다.

15일 오후 박근혜 정권 규탄 국민대행진 참가자들이 서울 종로 보신각 앞 도로에서 기습 연좌 농성을 벌이자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있다.
▲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서울도심 첫 '물대포' 진압 15일 오후 박근혜 정권 규탄 국민대행진 참가자들이 서울 종로 보신각 앞 도로에서 기습 연좌 농성을 벌이자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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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문제와 관련된 현 정부의 태도를 신뢰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올바른 남북관계가 맺어지려면 당국만이 아니라 민간 역시 또 다른 주체로서 하나의 역할을 해야 되는데 현 정부는 그 민간이 움직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건인 민주주의 자체를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다. 14일 북한과 함께 개성공단 정상화를 외치며, 한편으로는 길거리에서 통일을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물대포를 쏘는 정부를 어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진정한 남북관계의 개선을 원한다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그것은 지금 당장 훼손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복원시키는 일이다. 권력기관들이 부끄러운지 모르고 시민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남북관계의 개선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남북문제에 개인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은 자칫하면 언제든지 정부에 의해 '종북좌빨'로 몰릴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7.4남북공동성명의 종착점은 10월 유신이었다. 부디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태그:#남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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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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