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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정치공작·대선개입 진상규명 시국회의 회원들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국정원 정치공작의 공범자로 전락한 KBS·MBC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석자들은 "공영방송인 KBS·MBC는 '정권의 시녀방송'으로 전락했다"며 TV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 '정권의 시녀방송' 부서진 TV 국정원 정치공작·대선개입 진상규명 시국회의 회원들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국정원 정치공작의 공범자로 전락한 KBS·MBC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석자들은 "공영방송인 KBS·MBC는 '정권의 시녀방송'으로 전락했다"며 TV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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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현관문을 열면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거실 한쪽 벽을 꽉 채운 텔레비전이다. 몇 해 전 큰 맘 먹고 산, 당시로서는 고화질의 최신 제품이다. 그것도 비좁은 아파트에 어울리지 않게 서랍장 크기 만한 42인치짜리다. 선명하고 큼지막한 화면으로 보는 드라마나 영화는 대형 화면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부럽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텔레비전은 그저 휑한 거실을 채워주는 '장식품'일 뿐이다. 리모컨이 사라진 지도 꽤나 오래됐지만, 굳이 찾거나 새 것을 사려고 하지도 않는다. 가족 누구도 거의 텔레비전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다. 적어도 뉴스나 다큐멘터리는 말할 것도 없고, 스포츠 중계와 방송사마다의 각종 기획 프로그램 등을 녹화까지 해가며 빠짐없이 시청했다.

가족끼리 저녁식사를 마치면 텔레비전 앞에 모여앉아 스포츠 중계를 보거나, 녹화해놓은 영화 같은 걸 함께 즐기는 게 일상이었다. 중독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렇듯 우리 집에서 텔레비전은 없어서는 안 될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마치 이혼한 부부나 절교한 친구마냥 우리 가족은 매몰차게 텔레비전을 끊어버렸다.

따지고 보니, 매일 밤 우리 가족이 빼놓지 않고 시청해온 뉴스가 '맛이 간' 이후다. 여느 신문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영방송 뉴스라면 믿을 수 있었다. 적어도 보수와 진보 신문의 이슈를 함께 다루고, 핵심 쟁점을 시청자가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등 공영방송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아예 정권의 홍보 방송임을 자임하며 보수 신문과 한통속이 되어 '조중동'의 머리기사를 음성으로 들려주는 것이 전부가 됐다.

정권에 의한 '낙하산' 사장의 임명에 항의하다 멀쩡한 기자와 앵커들이 쫓겨나고, 명품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제작해온 피디들이 하루아침에 해고되면서 공영방송은 제 '길'을 잃은 채, 사장과 직원의 위계만 남은 갑을 관계의 '평범한' 회사로 전락했다. 문화방송(MBC)이 'MB씨의 방송'으로, 한국방송(KBS)이 '개비에스'로 조롱받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다.

김무성과 권영세를 보고 싶은데 류현진과 손연재만 보여주는 방송

지난해 170일간 진행된 MBC 노조 파업이 끝난 뒤 사측이 '분위기 쇄신'을 이유로 PD수첩 작가 6명을 전원 해고시킨 가운데, 지난해 7월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앞에서 열린 PD수첩 작가 해고사태 규탄 및 대체 작가 거부 결의대회에서 해고된 이소영 작가가 서러움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지난해 170일간 진행된 MBC 노조 파업이 끝난 뒤 사측이 '분위기 쇄신'을 이유로 PD수첩 작가 6명을 전원 해고시킨 가운데, 지난해 7월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앞에서 열린 PD수첩 작가 해고사태 규탄 및 대체 작가 거부 결의대회에서 해고된 이소영 작가가 서러움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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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공영방송의 추락은 민영방송에 어부지리를 가져다 주었다. 여태껏 정치와 사회에 아무런 관심 없다는 듯 가벼운 연예 가십거리만 쏟아내, 시청자들로부터 영문 이니셜을 풍자해 '씨방새' 방송이라며 욕지거리를 들어야했던 민영의 서울방송(SBS)이 두 방송사보다 훨씬 더 공영방송답다는 엉뚱한 찬사를 받게 됐다. 어느덧 두 공영방송이 뿌려대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기사는 양이나 질에서 서울방송은 말할 것도 없고 조회 수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인터넷 언론 못지않게 됐다.

공영방송의 상징인 뉴스의 신뢰도는 불과 몇 해 만에 바닥으로 떨어져버렸다. 더 이상 새롭거나 놀랍지도 않지만, 이제는 뉴스 하면 누구에게나 으레 연상되는 단어가 바로 '편파보도'와 '왜곡보도'다. 낙하산 출신 사장들은 뉴스의 신뢰도가 왜 실추되었는지 별로 궁금해 하지도 않고,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는 것 같지도 않다.

거칠게 말해서, '주군'에 의해 하사받은 자리이기에 그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방송환경을 만드는 것이 '주종 관계의 도리'에 맞을 뿐더러 가장 중요한 임무인 까닭이다. 그러하기에 국정원을 개혁하자고 수만 명이 촛불을 들어도, 현대차에 대법원의 판결을 따르라고 300일 넘도록 철탑 위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농성을 해도 애써 눈을 감아버린다.

대신 생뚱맞게 대통령의 휴가 계획을 뉴스의 첫머리에 띄운다. 공영방송이라는 곳이, 대통령이 휴가 중 어떤 책을 읽을 것인지가 촛불 든 시민들과 철탑 위에서 농성 중인 노동자들의 절규보다 훨씬 더 뉴스 가치가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 사건을 '물 타기' 하기 위해 느닷없이 끌어온 NLL 포기 논쟁을 확산시킨 '1등 공신'도 사실상 공영방송의 뉴스였다.

교과서에서는 방송을 비롯한 언론기관을 '제4부'로 가르친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라는, 분립해 서로 견제하는 '3권'에다 그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네 번째 권력으로서, 언론의 존재 가치와 높은 위상을 설명한다. 물론, 교과서 속 '이상'이자 다른 나라의 얘기일 뿐, 요즘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턱도 없는 헛소리라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행정부 내 여러 부처 중의 하나이거나, 차라리 대통령 직속기관이라 해야 옳다.

요컨대, 우리나라 공영방송의 뉴스는 죽었다. 주변엔 양극화로 고통받는 이들의 신음 소리가 가득하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거론하는 성직자와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커져가는데도, 스포츠 뉴스나 연예 뉴스를 방불케 할 정도로 가볍고, 즐겁고, 들뜬 소식뿐이다. 철탑 위의 최병승과 천의봉을 보고 싶은데 이건희와 정몽구만 보여주고, 김무성과 권영세를 보고 싶은데 자꾸만 류현진과 손연재만 보여준다.

어느 방송에서는 자사의 뉴스를 '세상을 보는 창'이라 명명했지만, 거기에서 들려주는 소식은 내가 접하고 느끼는 일상과 내 이웃들의 신산한 삶들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것들뿐이었다. 알고 싶은 것을 들려주기는커녕 별 궁금하지도 않은 것을 알아야한다며 부추기는 꼴이다. 그 뉴스가 '정상'이라면, 나와 내 이웃들 모두가 심각한 염세주의자이거나,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채 살아가는 극히 예외적인 사람들이라는 얘기다.

뉴스 보는 대신 산책하는 우리 가족...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국정원 정치공작·대선개입 진상규명 시국회의 회원들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국정원 정치공작의 공범자로 전락한 KBS·MBC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 국정원 정치공작, 언론도 '공범' 국정원 정치공작·대선개입 진상규명 시국회의 회원들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국정원 정치공작의 공범자로 전락한 KBS·MBC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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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주변에선 '막장' 종편의 뉴스보다야 낫지 않느냐고 말하는 분들이 더러 있다. 일리 있는 지적이지만, 그분들 역시 어떻든 공영방송에 보내는 '마지막 순정'일 가능성이 크다. 이대로 가다간 장담하건대, 지금의 종편 뉴스가 공영방송 내일의 모습이 될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기자와 앵커가 '말 잘하는 배우'가 될 날이 머지 않았다고. '영혼 없는 자들'이라는 조롱은 더 이상 복지부동 공무원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참을 수 없는 뉴스의 가벼움'은 담배 끊듯 뉴스를 끊게 했다. 뉴스를 안 보게 되니 자연스럽게 텔레비전과도 멀어졌다. 굳이 알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여기저기 인터넷을 기웃거리고, 나름 심층 분석이 필요하다 싶은 건 조금 늦더라도 종이 신문이나 주간지 등에 의존한다. 굳이 텔레비전을 켜게 된다면, 이따금 중계해주는 축구 경기 보는 게 전부다.

가장 바빴던 가전제품 텔레비전이 '장식품'이 되고 나니, 되레 저녁식사 후 가족끼리 도란도란 모여앉아 얘기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 시간 소파에 기대 책이나 신문을 읽거나, 가까운 공원에 밤 마실 가듯 온 가족이 손잡고 산책을 나가기도 한다. 공영방송 뉴스가 망가진 덕(?)에 우리 가족이 더 가까워지고 화목해졌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듣자니까 '개비에스'에서 텔레비전 시청료를 두 배 가까이 올린다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말이 시청료이지 성격상 매월 납부하는 세금과 다르지 않다. 광고 의존도를 낮추고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는데,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다. 눈에 뻔히 보이듯, 시청료를 올려 받는 대신, 광고는 그들의 '절친'인 종편에 넘겨주겠다는 심산 아닌가.

개인적으론 편파보도와 왜곡보도를 일삼는 뉴스는 물론 '개비에스'의 프로그램은 몇 해 전부터 보지도 듣지도 않았으니, 가능하다면 그 동안 납부한 시청료를 돌려받고 싶은 심정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런데도 시청료를 올린다고? 기가 막힐 노릇이다.

덧붙이는 글 | '있다 없으니까' 공모 응모글입니다.



태그:#공영방송 뉴스, #편파보도, #왜곡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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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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