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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은 격리와 유폐가 아니다. 참된 힐링은 상처 있는 것들끼리의 위로와 공존이다. 1004개의 섬으로 이뤄진 전남 신안군에는 수려한 자연풍광과 노동하는 사람의 땀과 눈물이 잔파도처럼 함께 넘실대는 많은 섬길이 있다. <오마이뉴스>는 '천사의 섬, 신안군'에 보석처럼 나 있는 '힐링 섬길'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자 한다. 오늘은 그 두 번째로 비금도 힐링 섬길이다. [편집자말]
한때 신안군의 랜드마크 구실을 했던 비금도에 있는 신안 대우병원. 병원을 설립했던 대우그룹의 지원은 끊겼지만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한때 신안군의 랜드마크 구실을 했던 비금도에 있는 신안 대우병원. 병원을 설립했던 대우그룹의 지원은 끊겼지만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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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거리를 재는 기준은 해리. 1해리는 육지거리로 1852m다. 자동차를 비롯해 여러 가지 속도 빠른 교통수단이 즐비한 육지에서 1852m는 짧은 거리에 든다.

하지만 섬에선 1해리만 벗어나도 바람 세기가 다르고, 섬마다 풍속조차 다른 경우가 많다. 어느 섬에선 초장(草葬) 풍습이 여전한 반면 어느 섬에선 '망자가 환갑이 넘었으면 모두 호상(好喪)'이라며 곡 대신 노래를 부른다.

그러다 보니 '섬은 각각 독립된 우주'라는 말이 절로 생겨났다. 바다의 거리 1해리는 우주의 시간인 억겁과 함께 산다. 해리마다 켜켜이 응축된 억겁의 사연들. 섬은 바다의 사연을 먹고 살고, 바다는 섬의 눈물을 먹고 산다.

한때 신안의 랜드마크 '대우병원', 지금은...

비금도는 가장 가까운 육지인 목포에서 약 29해리(약 54km) 떨어져 있다. 섬의 모양이 새가 날아가는 모습과 닮았다 해서 비금도(飛禽島)다.

비금도엔 한때 신안의 랜드마크 같았던 곳이 있었다. 여객선 선착장 옆에 있던 '신안 대우병원'이 바로 그곳. 병원 건물이 오지낙도 섬으로 이뤄진 신안군이 자랑하는 유일한 근대식 랜드마크였던 것이다.

신안 대우병원은 1979년 3월 17일에 첫 문을 열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당시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이 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취지로 설립했다. 설립 초기 병상의 규모는 20병상. 하루 평균 130명의 낙도 주민들이 병원을 찾았다. 변변한 의료시설이 크게 부족했던 낙도 주민들에게 신안 대우병원은 가장 빨리 찾을 수 있는 병원 그 이상의 의미였다.

하지만 신안 대우병원은 점차 쇠락의 길을 가기 시작한다. 그룹 자체가 위기를 맞고 있던 대우는 낙도 병원에 대한 투자를 예전처럼 하지 않았다. 설립 초기 27명의 의료진이 낙도 주민을 치료했던 신안 대우병원. 하지만 악화되는 운영난에 1998년엔 스스로 격을 병원에서 의원으로 낮춰보기도 했지만 대우그룹이 지원하는 신안 대우병원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신안 대우병원이 문을 닫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1999년 인도주의 실천의사협의회가 위탁운영을 자처하고 나섰다. 2003년 한 개인병원이 뒤를 이어 진료를 이어갔지만 그해 5월 결국 문을 닫았다.

천만다행으로 신안 대우병원은 지금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한 의료법인이 지난 2006년 11월부터 하루 약 120명의 낙도 환자를 돌보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낙도 병원이라고 받는 지원은 없다"며 "매년 약 1억 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섬에서 가장 서러울 때가 아플 때다. 바람 불고 안개 끼면 병원에 가보지도 못하고 생목숨이 죽어나가는 곳이 섬이다. 그 설움 조금이라도 달래주고 있는 이가 있다면 그가 바로 '닥터 슈바이처'가 아닐까.

내월리 내촌마을 돌담의 한 풍경.
 내월리 내촌마을 돌담의 한 풍경.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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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월 우실 올라가는 잿길에서 바라본 내월리 내촌마을 전경.
 내월 우실 올라가는 잿길에서 바라본 내월리 내촌마을 전경.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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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께 도착한 내월리 내촌마을 경로당 앞에서 명씨를 만났다. "이제 환갑"이라는 명씨는 "내가 이 마을 할므니들 가운데 제일 젊어"하고 유쾌한 위세를 부린다. 내촌마을은 400년 전부터 쌓아진 돌담으로 유명하다. 2006년엔 약 3km에 달하는 내촌마을 돌담길이 등록문화재 283호로 지정되었다. 

"하누넘 해수욕장으로 넘어갈 것"이라 했더니 대뜸 "도로세 받아야겄어"한다. 왜냐는 질문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놈은 이 땡볕에 고추밭서 죽어라 일한디 멋지게 입고 놀러간께 성질나제"하며 호방하게 웃는다. 작년에 마른 고추 1근당 1만7000원에서 1만8000원을 받았다는 명씨는 "올해도 그 금(가격)이 가믄 좋제"하며 빨간 고추를 연신 딴다. 

내촌마을에서 하누넘해수욕장까지는 약 2.5km. 재로 올라가는 길에서 뒤돌아보는 마을 전경이 아담하고 예쁘다. 내촌마을에서 약 1km 걸으면 재에 이른다. 이곳에 '내월 우실'이 있다.

'우실'은 마을을 보호하는 울타리를 뜻한다. 내월 우실은 하누넘에서 불어오는 강한 갯바람으로부터 입을 농작물 피해를 막기 위해 쌓았다. 재 너머에서 부는 바람을 주민들은 '재냉기'라 부른다.

우실은 한국의 전통적인 마을 형성과정에서 '막이' 역할과 함께 마을 안과 밖을 경계 짓는 표식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또 우실 쌓기를 통해 하나의 운명 공동체임을 서로 확인했던 일종의 마을공동체의 의례이기도 했을 것이다.

몰아쳐오는 바람의 절정의 지점에 마을 안과 밖을 경계짓는 우실을 쌓았다는 것은 이곳이 섬임을 다시금 절감케 한다. 섬에선 바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기껏 높아봐야 4m 안팎인 돌담 우실이 바람을 막으면 얼마나 막을 수 있겠는가. 그저 바람도 한 숨 쉬어가라는 배려는 아니었을까.

하트 해수욕장 말고 '하누넘'이라 불러주오

내월 우실은 하누넘에서 넘어오는 갯바람으로부터 농작물 피해를 막기 위해 쌓았다.
 내월 우실은 하누넘에서 넘어오는 갯바람으로부터 농작물 피해를 막기 위해 쌓았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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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하트 해수욕장'으로 불리고 있는 하누넘 해수욕장.
 일명 '하트 해수욕장'으로 불리고 있는 하누넘 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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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월 우실을 지나자 저 아래로 이젠 '하트 해수욕장'이 되었다는 하누넘이 눈에 들어온다. 하트 모양을 닮긴 닮았다. 이곳에서 한 드라마가 촬영되어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는 설명이 입맛을 쓰게 만든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지명은 고유지명보다 무슨 무슨 드라마 촬영지로 소개되는 일이 잦아졌다. 유행 따라 사는 사람들의 발길이라도 잡아서 소득을 올리고 싶은 애타는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한 계절만 지나 버리면 기억조차 나지 않는 드라마 이름을 빗대 지도에 떡 하니 고유지명처럼 박아야 할까.

모래결 고운 하누넘 해수욕장 바다로 아이들이 튜브를 들고 뛰어 든다. 마침 바람도 살랑 불어온다. 저 바람, 내월 우실을 타고 재를 넘어 마을에 이를 것이다. 그땐 성질 사나운 가시바람이 아니라 순한 게르마늄 바람이 되어 고추며 벼에게 생기를 줄 것이고...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저 바람 속에 세상 귀한 것들이 다 들어 있다. 바다에서 담아온 에너지, 백사장에서 건져 올린 어느 어부의 눈물. 눈에 뵈는 것들의 허세를 물리치고 보이지 않는 바람의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그대의 안부를 묻는다.

"잘 계시는가, 아픈 데 없이 건강하게 행복하신가."

더위를 피해 하누넘을 찾은 아이들이 튜브를 들고 바다로 가고 있다.
 더위를 피해 하누넘을 찾은 아이들이 튜브를 들고 바다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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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을 하러 간 관광객들의 신발이 하누넘 백사장을 지키고 있다.
 수영을 하러 간 관광객들의 신발이 하누넘 백사장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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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신안군 힐링섬길, #비금도, #돌담, #대우, #김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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