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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지난 2012년 4월 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김일성 주석 생일기념 열병식에서 김정은 옆자리서 보좌하는 최룡해.
 사진은 지난 2012년 4월 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김일성 주석 생일기념 열병식에서 김정은 옆자리서 보좌하는 최룡해.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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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급격히 악화되던 한반도 정세는 5월 최룡해 특사의 방중 이후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변화는 이전의 북핵위기 상황들에서 나타났던 양상이 반복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즉, 북한이 벼랑끝 전술로 한반도 긴장을 극대화시키면 동맹 파트너인 중국은 직간접적인 설득과 압력을 통해 위기상황을 '뒷정리'하는 패턴이 또 한번 반복된 것이다. 북한의 1, 2차 핵실험 당시에도 중국은 각각 탕자쉬엔과 원자바오를 파견하고 대규모 경제지원을 약속함으로써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냈다.

사실, 북한의 3차 핵실험을 전후해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 가능성을 전망하는 의견들이 다수 제기되기도 하였다. 실제로 중국내 일부 언론은 북한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하였고, 중앙당교의 <학습시보> 부편집장은 "중국은 북한을 포기해야 한다"는 제목의 칼럼을 서방언론에 게재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북한에 부정적인 중국내 여론이 보다 명확히 드러나기도 하였다. 인터넷상에서는 북한 지도부를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표현까지 등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차 핵실험 이후 전개된 상황은 중국이 여전히 북한의 후견국임을 시사하였다. 물론, 3차 핵실험에 대한 중국의 반응이 이전보다 부정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중국의 관점에서 보면, 3차 핵실험의 '타이밍'이 적절치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북한의 1, 2차 핵실험이 미국의 대북금융제제라든지 2·13합의의 불이행이라는 문제와 맞물려 있었다는 점에서 중국으로서는 북한의 행태를 일정 정도 양해할 여지가 있었다.

그에 비해 3차 핵실험은 그 이유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북한에 대한 중국의 피로감이 보다 강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최룡해 특사의 방중 및 리위안차오 중국 부주석의 방북 등을 통해 북중 양국이 우호관계의 재확인했다는 사실은 중국의 북한에 대한 불만이 '프레임 속의 불만'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중국의 대북정책? 중미관계를 읽어라!

중국은 왜 북한을 포기하지 못하는가? 논리적으로 상황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결과가 반복된다는 것은 결국 그 원인이 행위자들의 특수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자들이 처한 구조적 환경에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중국의 대미 관계는 바로 그러한 구조적 환경이라 할 수 있다. 국제정치가 여전히 무정부적 상태라면, 국가들은 최고목표인 생존을 위해 국가간 세력관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중국으로서도 패권국 미국과의 관계설정은 북핵문제를 포함하는 대외관계 수립에 있어 거의 최우선의 고려대상인 것이다.

지난 6월 시진핑-오바마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제기한 '신형대국외교'는 이러한 중국의 고민이 투영된 정치적 개념이다. 사실, 신형대국외교 개념이 기반하고 있는 이른바 '구동존이(求同存異)' 원칙은 1970년대초 미중관계 개선 시기에 이미 주창되었던 논리다.

보다 현실적인 맥락에서, 신형대국외교 개념은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강대국들간 협조체제를 새롭게 묘사하는 레토릭에 불과할 수 있다. 즉, 1814년 빈체제, 1921년 워싱턴체제, 그리고 1945년 얄타체제와 유사하게 신형대국외교 개념은 1990년대 후반 출현하기 시작한 미중간 협조체제의 정치적 수사인 것이다.

보편적으로 강대국 간 협조체제는 상호 간 출혈 경쟁으로 인한 이익훼손을 방지하는 것을 그 핵심 목표로 한다. 경제학적 카르텔 구조와 그 논리가 동일한 것이다. 미국은 국제문제 관리를 중국에 '아웃소싱'함으로써 패권유지 비용을 절약하려 하고, 중국은 그 대가로 원만한 대미관계를 형성해 국가발전을 지속하려는 것이다. 세계자본주의체제의 확산에 따른 상호의존의 심화와 상호 핵억지력 보유 등으로 미중 간 담합구조는 이전의 강대국 협조체제보다 강화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르텔 구조에 내재한 구성원 간 불신은 소멸되지 않는다. 중국은 미국의 배반 가능성을 항상 경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아시아로의 회귀'를 구호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미국은 한미일 동맹체제를 강화하고, 베트남, 미얀마,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몽골 등 중국과 인접한 국가들에 대한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아울러 동아시아에서 미사일 방어체제를 구축하고, '전략적 유연성' 개념을 바탕으로 타이완 문제에 지속적으로 개입하려는 것 역시 중국 견제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북핵문제를 미국의 희망대로 '처리'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 미국의 중국 포위가 현실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지정학적 가치가 큰 북한을 미국이 요구하는 대로 압박하는 것은 전혀 영리하지 못한 것이다.

그보다 중국은 6자회담이라는 자신의 방식으로 북한을 관리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중국은 6자회담을 통해 북핵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인상을 미국에 보이고, 아울러 북핵문제가 통제불가능한 상황으로 급변하는 것 역시 차단하려고 한다. 더욱이, 중국은 6자회담을 매개로 한반도 문제로부터 자국이 소외되는 상황 역시 차단하려고 하고 있다.

'한반도 안정과 평화,' 대중정책의 키워드

박근혜 대통령이 6월 29일 오전 베이징 칭화대에서 '새로운 20년을 여는 한중 신뢰의 여정'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6월 29일 오전 베이징 칭화대에서 '새로운 20년을 여는 한중 신뢰의 여정'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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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한중정상회담에서 한국은 북핵문제에 대한 중국의 단호한 입장을 기대했다. 실제로 국내 일부 언론들은 북핵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이 '진일보'했다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은 여전히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안정과 평화라는 기존의 수사적 입장을 벗어나지 않았다.

중국이 한국의 기대대로 북한에 단호한 입장을 취할 것이란 희망은 중국이 미국의 기대대로 북한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전망과 다르지 않은 '자기예언적' 희망이라 할 수 있다. 중미관계의 근본적 변화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향후에도 중국이 한국의 기대대로 북한을 강하게 압박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중국이 일관되게 강조하는 '한반도비핵화' 및 '한반도 안정과 평화'는 그 타깃이 각각 북한과 미국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은 한반도비핵화라는 수사를 통해 북한을 제어하고, 반면 한반도 안정과 평화라는 수사를 통해 미국의 공세적 대북정책을 견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중미관계 및 중북관계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만 하는 중국의 딜레마를 드러낸다. 딜레마는 해결책이 없으며 단지 관리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결국 중국의 대북정책은 문제의 본원적 해결이 아니라 통제가능한 수준으로의 관리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중국의 적극적 의지를 담보해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중미간 경쟁구도가 중국의 선택지를 제한하는 핵심 요인이라면, 따라서 중국의 대미 안보위협감을 우선적으로 해소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것은 장기적으로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 주도의 동맹체제를 역내 국가들이 모두 참여하는 집단안보체제로 변화시키는 상황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한반도 안정, 한중관계 강화의 중요한 연결고리

문제는 역내 동맹체제를 자국의 '사유자산'으로 간주하고 있는 미국이 이에 동의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2009년 동북아 공동체를 주창한 하토야마 정권에 대한 미국의 불편한 심기를 상기해 본다면, 동북아 집단안보체제의 수립은 분명 지난한 과정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자명하다.

동북아 안보공동체의 수립이 장기적인 접근이라면, 단기적인 차원에서 한국은 한미동맹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불식시킬 필요성이 있다. 중국과의 긴밀한 의사소통을 통해 한국이 중국견제의 선봉대가 아님을 인식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시기 한중관계 경색의 핵심적인 이유가 한국의 '노골적인' 친미노선에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반도 안정과 평화'는 한중관계를 강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연결고리라 할 수 있다. 사실, 중국에게 한반도 안정과 평화는 한반도 비핵화보다도 중요한 목표라 할 수 있다. 중국에게 한반도 핵지대화는 그것이 통제가능하기만 하다면 용인될 수도 있다. 중국은 냉전기 주한미군의 핵무기 보유를 암묵적으로 용인한 전력이 있으며, 현재에도 우방국인 파키스탄의 핵보유를 용인하고 있기도 하다.

반면, 한반도 분쟁은 중국에게 '악몽'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북한과 동맹관계로 엮여 있는 중국은 한반도 분쟁 발발시 어떠한 형태로든 연루될 수밖에 없으며, 상황에 따라 미국과의 군사충돌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제2의 한국전쟁인 것이다. 중국이 박근혜 정권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주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이 진정으로 북핵문제에 대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희망한다면, 한국의 관점이 아니라 중국의 관점에서 북핵문제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관념적인 진영논리는 사실에 대한 정확한 독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로 인해 왜곡된 정책 대안이 제시되며 결국 문제해결에 실패한다. 그러나 그 실패의 원인을 사실 분석의 오류가 아니라 관련 행위자들에 대한 불만으로 해소해버린다. 이러한 편집증적 행태를 대중국 정책에서 반복할 이유는 없다. 현실에 기반한 대중국 정책을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동덕여대 연구교수입니다.
*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립니다.



태그:#중국 대북정책,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와 안정, #중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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