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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점포로 와!"

퇴근하기 전,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신길역에서 전철 갈아탈 때 전화해. 우리가 그때쯤 맞춰서 나갈 테니."

뜬금없는 전화는 아니었다. 아내는 아이 셋을 혼자 집에서 키우며 내가 퇴근할 때를 맞춰 가끔 마중 나오곤 했는데, 그건 남편을 위한 배려인 동시에 하루 종일 밖에 나가자고 칭얼대던 아이들을 달래기 위한 고육지책이기도 했다. 굳이 말하자면 아마도 후자의 이유가 더 크리라.

그녀의 애마
▲ 자전거 타고 싶어 그녀의 애마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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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자전거 한 번 태우고 나면 아내는 녹초가 된다
▲ 세남매 이렇게 자전거 한 번 태우고 나면 아내는 녹초가 된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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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역에 도착하여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준비해서 집에서부터 실실 걸어 나오면 얼추 거리가 맞겠거니. 그러나 웬걸 아내는 역 앞이 아니라 동네 자전거 점포로 오라고 했다. 까꿍이가 요 며칠 전부터 자전거 사달라고 노래를 불렀는데, 그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것이었다.

아내의 이야기에 군말 없이 알겠다고, 그리로 가겠다고 전화를 끊었지만 사실 속내는 조금 복잡했다. 자전거가 한두 푼 하는 물건도 아닌 터라, 며칠 전부터 아내가 까꿍이 자전거 이야기를 하면 겉으로는 그냥 설렁설렁 넘기며 알았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언제쯤 무엇을 알아보고 살까나 궁리해 오던 중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남편 속도 모르고 이렇게 전격적으로 자전거를 구매하겠다고 하다니.

물론 그렇다고 내가 고민해서 다른 결정을 내릴 것도 아니었다. 내가 자전거에 대해 전문가가 아닌 이상 아내가 아는 만큼이 내가 아는 만큼이었고, 따라서 결국 나는 아내의 말을 따를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난 A/S 등을 위해 동네서 자전거를 사겠다는 아내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던가.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나와 상의 없이 오늘 불쑥 자전거를 산다는 말에 속 좁은 영감마냥 섭섭할 뿐이었다. 아내가 그만큼 나보다 더 많이 까꿍이의 자전거 타령을 들은 탓이려니.

까꿍이, 자전거를 타다

자전거 보다 헬멧에 관심이 많은 아이
▲ 자전거 헬멧에 넘어간 둘째 자전거 보다 헬멧에 관심이 많은 아이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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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역에서 내려 아내가 알려준 자전거 점포로 갔다. 이미 까꿍이는 자전거에 올라 시승 중이었다. 이야기인즉 까꿍이는 본디 뽀로로 자전거를 골랐는데 아내가 설득에 설득을 해서 겨우 지금의 무난한 자전거를 타게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 인간적으로 우리 집에 뽀로로가 몇 마리인가.

자전거를 사면서 예상했던 가장 큰 문제는 누나의 자전거를 보고 난리를 피울 둘째 산들이였다. 안 그래도 누나가 하는 건 모든지 똑같이 따라 해야 직성이 풀리고, 셋째 복댕이가 나온 뒤로는 시기와 질투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는데 과연 이 녀석이 누나의 자전거를 보고 가만히 있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였다.

발그레 상기된 까꿍이
▲ 오호라 젊음이 좋구나 발그레 상기된 까꿍이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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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행히 아내는 그 문제마저도 해결해 놓았다. 아니다 다를까. 둘째는 첫째에게 새 자전거가 안겨지자 역시 자신도 새 자전거를 사야겠노라며 떼를 쓰기 시작했는데, 아내가 녀석에게 대신 헬멧과 팔꿈치/무릎 보호대를 쥐어주면서 자전거를 포기하도록 설득해 낸 것이었다. 만족스럽게 헬멧을 쓰고 아빠에게 자신의 보호대를 자랑하는 산들이. 휘유~ 어쨌든 까꿍이 자전거를 사면서 넘어야 하는 가장 큰 고비는 무사히 지나갔다.

자신의 자전거를 타게 된 까꿍이는 매우 좋아라 했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꽤 오랫동안 자전거 노래를 불렀으니 그 기쁜 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 녀석은 멈추지 않고 종알종알 자신의 자전거 자랑을 늘어놓았으며, 아내와 내게 끊임없이 고맙다고 인사했다. 고작 자전거 가지고 이렇게 감사의 인사를 받아도 되는지 송구할 정도였다.

자, 드디어 자전거를 타고 출발하는 까꿍이. 점포가 대로변에 있는 터라 우선은 뒤를 잡아 줬지만 횡단보도와 굴다리를 건너고 아파트 단지에 도착해서는 기꺼이 손을 놓았다. 보조바퀴를 단 네발 자전거라 잘 안 넘어지리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자전거를 타면서 넘어지는 것 또한 당연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자전거를 잘 탈 수 있겠는가. 넘어지면서 배우는 것이 당연하지.

독립의 시작

이걸 울어 말어?
▲ 넘어진 까꿍이 이걸 울어 말어?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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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손을 떠난 까꿍이의 자전거는 역시나 불안했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마치 술 취한 이가 운전하는 냥 '갈 지'자로 앞으로 나아가더니 결국 보도블록 턱에 막혀 쓰러지고 말았다. 옆으로 내동댕이쳐지는 까꿍이.

그러나 아내와 나는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만 볼 뿐, 달려가서 까꿍이를 부축하지 않았다. 대신 넘어진 아이에게 2차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까 주위를 살피며, 녀석이 혼자 툭툭 털고 일어서기를 기다렸다. 그것이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믿었으며 아이가 스스로 이 상황을 극복하기를 바랐다.

다행히 넘어진 까꿍이는 길바닥에서 아주 잠깐 상황파악을 하더니, 울지 않고 툭툭 털고 일어섰다. 부모가 다가오지 않을 것임을 눈치 챈 것인지 보호대가 있으니 괜찮다고 연신 중얼거렸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안장에 올라 힘차게 페달을 돌렸다. 물론 아직까지 서툰 탓에 자전거는 앞으로 잘 나아가지 않았지만, 울지 않고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녀석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마치 녀석이 내딛는 독립의 첫 발을 구경한 느낌이었다.

독립의 첫 단계
▲ 고독한 라이더 독립의 첫 단계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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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면 모르던 언니도 사귈 수 있다
▲ 자전거 타는 언니 자전거를 타면 모르던 언니도 사귈 수 있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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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밀어주던 자전거에 익숙해 했었는데...
▲ 이랬던 넘들이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밀어주던 자전거에 익숙해 했었는데...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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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6살 때던가, 보조바퀴를 떼고 처음으로 두 발 자전거를 탔을 때의 느낌이 떠올랐다. 떨리는 마음으로 두 발 자전거에 올라 힘차게 페달을 밟았는데,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고 쭈~욱 앞으로 나갔을 때의 그 쾌감. 이후 난 내 자전거를 독수리 5호라 부르며 동네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두 발 자전거를 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으며, 좀 더 커서는 자전거를 두 손 놓고 타는 나를 바라보는 놀라운 시선을 즐기고자 했다. 이제 까꿍이도 곧 내가 경험했던 쾌감들을 느끼게 되겠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녀석이 대견스럽다는 차원을 넘어 부럽기까지 했다. 이제 막 인생의 출발선에 서서 세상 모든 바를 편견 없이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키워 나갈 수 있는, 그리고 소중하게 간직할 만한 추억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그 젊음이 부러웠다.

과연 난 까꿍이가 느낄 수 있는 일상의 소소함이 주는 기쁨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학창시절 때는 왜 그리 많은 이들이 청춘을 예찬하는지 몰랐는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그들의 심정을 어슴푸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이후 까꿍이는 나만 보면 자전거를 타자고 졸랐다. 녀석이 보기에도 아이 셋을 키우느라 진땀을 흘리는 엄마와는 낮에 자전거 타기가 어려워 보였는지, 내가 퇴근을 했는데도 해가 떨어지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자전거를 타러 나가자고 야단이었다.

거기에다 누나가 성화를 부리자 덩달아 되지도 않는 말을 하며 소리를 지르는 둘째까지. 결국 난 옷을 갈아입고 녀석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리고 둘째의 자전거를 밀어주며 까꿍이가 혼자 씩씩하게 자전거 타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렇게 자식들은 부모로부터 독립해 가는 것이구나.

많이 컸다, 우리 까꿍이. 아빠는 이렇게 널 늘 응원하며 뒤에서 묵묵히 바라만 보도록 노력할 거란다. 네 삶의 주인공은 바로 너거든. 독립의 첫걸음을 축하한다!

이렇게 헬멧도 썼잖아요
▲ 자전거 타요 아빠! 이렇게 헬멧도 썼잖아요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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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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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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