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조화로움> 표지
 <조화로움> 표지
ⓒ 불광출판사

관련사진보기

'배가 부르면 말 타고 싶고,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는 말이 있습니다. 욕심에는 끝이 없다는 걸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 말을 자세히 뜯어보면 욕심에도 단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배가 부르고 말을 탈 정도는 돼야 종을 부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배가 허기진 상태에서는 말을 탈 생각은 물론 종을 부릴 생각은 엄두도 내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심리학자 에이브러험 매슬로우가 제시했다는 '욕구단계론'에 부합합니다.

우리가 손쉽게 사용하거나 누리고 있는 수많은 것들이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엄청난 것일 수 있습니다. 자동차·스마트폰·TV·다양한 음식·해외여행·기능성 의류·최첨단 의류장비 등이 모두 그렇겠지요. 휴대전화만 해도 조선시대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제품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요즘의 삶이 예전의 삶보다 더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건의 편리성은 '시간의 단축'도 낳았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해도 20리쯤 떨어진 읍내에 서던 5일장에 한 번 다녀오려면 하루 정도가 걸렸습니다. 소를 끌고 우시장에 걸어라도 간다고 하면 밤이 돼서야 돌아오곤 했습니다. 인편에 솟값을 잘 받았다는 소식이라도 들려오면 아버지는 혹시라도 사올지 모를 뭔가를 기다리느라 동구 밖에서 하루 종일을 서성이시곤 했습니다. 그래도 초조해하시진 않았습니다. 버스는 또 어떤가요. 하루에 세 번밖에 다니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예전에는 지루해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버스를 놓쳐도 다음 버스를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길이 좋아지고, 차 때문에 이동 시간이 짧아졌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호 대기 중이던 앞차가 조금이라도 늦게 출발하면 경음기를 울리며 재촉하곤 합니다.

물질적으로는 많이 넉넉해졌고, 시간적으로도 많이 여유로워진 게 분명하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는 전혀 조금도 넉넉해 지지 않았고 여유로워지지 않았습니다. 뭔가에 쫓기듯 불안해하며 좌충우돌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인간의 광기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처방한 <조화로움>

스티브 테일러 쓰고, 윤서인이 옮긴 책 <조화로움>(불광출판사)에서는 이러한 모든 문제의 근본들이 '휴머니아'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합니다. 책에는 태어날 때부터 내재돼 있어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이 정신장애, 인간의 광기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분별할 수 있도록 다각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우리 마음에 실제로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정신장애를 앓고 있다. 이 장애가 개인으로, 그리고 집단으로서 우리 인간이 저지르는 문제의 근원이다. 지금 우리는 제정신이 아니다. 다들 조금씩 미쳐 있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그 광기가 내재되어 있어서 우리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이 정신장애를 나는 '인간의 광기'(human madness)라는 의미에서 '휴머니아'(humania)라고 부른다. 때로 '에고 광기'(ego-madness)라고 부르기도 한다."(본문 7쪽)

"부와 지위에 대한 욕망은 집단적으로 표출될 때 훨씬 더 위험하고 파괴적이다. 인간 집단이 자신들의 부와 군력과 특권을 키우기 위해 다함께 행동에 나설 때 그러하다. 이 집단행동은 전쟁, 사회적 불균형, 억압, 남성의 지배 등 휴머니아가 초래한 주요 사회 병리 현상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본문 109쪽)

지하철을 타고 있는 사람들이 너나없이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만지작거리는 이유, 식사를 하면서도 식사에 집중하지 못하고 TV를 힐끔거리는 이유, 집권세력들의 작태가 점점 더 교묘해지거나 당파적으로 치우치는 근본적 이유들이 어디에서 기인하고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며 어떻게 귀결되는가를 정확하게 진단하거나 직시할 수 있는 가늠자가 될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불안한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

적절한 치료의 전제는 정확한 진단과 처방입니다. 책 1부에서 소개하고 있는 내용들이 정확한 진단을 위한 문진, 체온과 혈압 측정, 혈액 검사, 청진기, 엑스레이 기기나 MRI와 같은 장비들을 운용하는데 필요한 매뉴얼이나 임상학적 사전지식과 같은 내용이라면 2부의 내용은 진단결과를 치료하거나 치유하는 데 필요한 여덟 가지 단계를 처방처럼 제시하는 내용입니다.

"수천 년 동안 이 세상에 고통을 주었으니 이제라도 우리 모두 이곳을 치유하려고 애써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 세상은 우리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이타심을 필요로 한다. 그 긴 세월 내내 전쟁과 억압, 불균형을 통해 휴머니아가 이 세상을 잔인하게 파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을 덜어 주어야 할 집단적 의무가 있다. 그리고 타인의 고통을 덜어 주는 과정에서 자기 내면의 고통도 치유할 수 있다."(본문 227쪽)

마음 공간을 머물기 위한 단계로 '내부로 주의 돌리기' '트라우마 치료하기' '생각에서 물러나기' '부정적인 사고방식 바꾸기' 등 4단계를 조건으로 제시합니다. 이어 조화로운 마음을 키우기 위한 4단계로 '봉사하기' '의식적으로 주의 기울이기' '규칙적으로 명상하기' '고요와 고독과 침묵의 시간 갖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신경가소성을 들어 인간이 뇌를 지배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가슴 근육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하지만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 근육을 마음대로 실룩거리며 건강미를 뽐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들의 뇌도 근육처럼 훈련에 따라 얼마든지 활성화 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마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마음이라고 하지만 휴머니아는 심리상태이기 때문에 신경가소성과 매우 유사한 심리가소성을 이용해 얼마든지 개조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의 나를 불행하게 하는 건 이유도 실체도 알지 못하는 불안, 태어날 때부터 내재돼 있어서 지금껏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정신장애, 휴머니아일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쉬지 않고 조잘거리는 사람의 입만 수다스러운 게 아니라 침묵하지 못하고 있는 인간의 뇌도 수다스럽습니다. 욕심·조바심·오작동·부조화 등으로 수다스러운 생각은 마음조차 시끌벅적, 좌불안석하게 만들고 이런 불안은 결국 좌충우돌하는 충동이 돼 행복으로 음미해야 할 인생을 변질시키는 훼방꾼이 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 책의 일독은 마음대로 가슴근육을 실룩거릴 수 있는 보디빌더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던 마음을 마음대로 실룩 거릴 수 있는 건강한 마음으로 만들어 주고, 제대로 음미할 수 없었던 행복을 아무런 간섭 없이 오롯이 음미할 수 있는 인생 미각을 건강하게 회복시켜 줄 계기가 될 것입니다.  

영국 리버플 존 무어스 대학에서 자아초월 심리학을 연구하고 있는 스티브 테일러가 쓴 이 책을 통해 지금껏 내재하고는 있었지만 인식하지 못했던 내면적 광기를 스스로 진단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진단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장애로 내재하고 있는 불안을 조화로움으로 잠재울 수 있는 치유법도 스스로 터득할 수 있는 지혜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조화로움>┃지은이 스티브 테일러┃옮긴이 윤서인┃펴낸곳 불광출판사┃2013.07.19┃1만 4000원



조화로움 - 불안과 충동을 다스리는 여덟 가지 방법

스티브 테일러 지음, 윤서인 옮김, 불광출판사(2013)


태그:#조화로움, #윤서인, #불광출판사, #휴머니아, #심리가소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