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릅니다. 더위를 이기기 위해 갖은 방법이 동원됩니다. 한 달 후 전기요금 폭탄을 맞더라도 에어컨을 '빵빵'하게 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요금폭탄입니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는, 에어컨은 모셔두는 것이지 켜는 것이 아닙니다.

또 다른 방법은 찬물로 등목이나 샤워를 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등목을 하는 분들이 적지만, 옛날에는 우물물로 등목을 하면 삼복 더위도 "미안합니다. 물러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역시 문제는 콘크리트 문화 속에는 우물이 없다는 점입니다. 결국 수돗물로 샤워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샤워도 잠시뿐입니다. 더위를 이기려면 잘 먹어야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여름을 초복, 중복, 말복으로 나누어 '삼복더위'라고 했습니다. 요즘은 덜하지만 옛날에는 복날마다 개고기를 먹었습니다. 지금은 개고기보다는 삼계탕을 많이 먹습니다. 한마디로 '이열치열'입니다. 더위는 뜨거운 것으로 이긴다는 말입니다.

워낙 더운 집에 살기 때문에 웬만한 더위는 더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우리 집 여름 보양식은 개고기도, 삼계탕도 아니라 장엇국과 물국수입니다. 장엇국은 얼마 전 먹었습니다. 문제는 돈이 많이 든다는 것입니다(무려 3만 원 정도). 그런데 물국수는 적게 듭니다.

호박나물은 국수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호박나물은 국수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시원한 물국수 먹고 싶다."
"또 물국수예요?"
"장엇국은 먹었고, 이제 물국수 차례잖아요."
"이 더위에 육수 끓이는 것도 힘들어요."
"한번에 많이 끓여놓으면 되잖아요."
"그게 말이 쉽지, 많이 끓이면 어디다 보관해요."
"참 김치냉장고 있잖아요."


지난 화요일(30일) 물국수 타령을 했습니다. 아내는 정말 대단합니다. 한 번쯤 짜증을 낼 만도 하지만, 결국 육수를 끓이고 국수를 삶습니다. 이런 아내를 볼 때마다 장가는 잘 갔다고 생각합니다. 고마울 따름입니다.

물국수에는 볶은 묵은지가 맛을 냅니다.
 물국수에는 볶은 묵은지가 맛을 냅니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오늘은 정구지(부추)가 없으니까. 그냥 드세요."
"물국수에 정구지가 없으면 안 되는데."

"그럼 어떻게 해요. 이 더위에 정구지 사러 다녀 올래요?"
"아니."

"호박나물과 묵은지 볶아 넣어 드세요."
"그것만으로도 고마워요."


시원한 국수 한그릇. 더위가 저 만치 물러갑니다.
 시원한 국수 한그릇. 더위가 저 만치 물러갑니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강심장도 이런 강심장이 없습니다. 땀 뻘뻘 흘리며 육수 끓이는 아내에게 부추 없다고 타박합니다. 결국 부추 없이 물국수를 먹기로 했습니다. 시원한 육수에 얼음까지 넣었습니다. 그릇을 들고 마시니, 삼복 더위가 저 멀리 도망갔습니다.

"야 정말 맛있다. 당신은 육수를 어떻게 끓이는데 이렇게 맛있어요?"
"그냥 멸치와 무, 통마늘만 넣었어요."
"육수 끓이는 데 무와 통마늘을 넣어요?"
"그냥 그렇게 해요. 다른 뜻 없어요."

"답이 걸작이네요. 아무튼 마늘이 들어가 그런지 더 맛있는 것 같아요."

무더위에 지친 아이들. 물국수 한그릇에 정신을 조금 차렸습니다
 무더위에 지친 아이들. 물국수 한그릇에 정신을 조금 차렸습니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그릇이 작아 그런지 아이들은 금방 비웠습니다. 엄마에게 큰 그릇을 달라고 합니다. 자기가 더 큰 그릇에 먹을 것이라고 둘째와 막둥이는 다투기까지 했습니다.

막둥이 : "누나 내가 더 큰 그릇에 먹을 거다."
둘째 : "너는 항상 내가 먹을 때마다 딴죽을 거니. 내가 더 큰 그릇에 먹으면 안 되나?"
막둥이 : "엄마 누나가 큰 그릇에 먹어요?"

엄마 : "나중에 한 그릇 더 먹으면 되잖아."
막둥이 : "알았어요. 누나보다 더 많이 먹어도 되죠?"
엄마 : "먹을 만큼 먹으렴."


참 어이가 없습니다. 물국수 그릇 크기 가지고 다투는 것은 처음입니다. 아내 땀방울 덕분에 우리 가족은 무더운 더위를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물국수 한 그릇으로 삼복 더위가 물러납니다.


태그:#물국수, #삼복더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