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박원순-오연호 대담집 <정치의 즐거움>
 박원순-오연호 대담집 <정치의 즐거움>
ⓒ 오마이북

관련사진보기

박원순이 예측하는 국내 정치 동향과 그가 생각하는 안철수와 박근혜가 궁금한가? 그러면 얼른 다른 자료를 찾아보길 권한다. 그런 내용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달리 보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한국 정치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책이라고.

<정치의 즐거움>. 이율배반적인 제목이다. 국민들에게 '정치'는 대개 부정적 언어로 받아들여진다. 허구한 날 계속되는 여야 간 다툼, 꼬투리 잡기, 막말 탓에 국민들은 '이것이 과연 정치인가'라는 회의를 품는다.

정치로 국민의 눈물을 닦아줘야 하는데, 오히려 정치 때문에 국민이 눈물을 흘릴 지경이다. 그런 정치가 어떻게 즐겁다는 걸까.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신 있게 말한다. 정치가 즐겁다고. 정치를 통해 시민들에게 행복을 주는 게 자신의 바람이라고. 2011년 취임 이후, 박 시장은 자신의 바람을 조금씩, 하지만 뚜렷하게 이루고 있다. 그 바닥에는 박 시장이 우직하게 강조하는 자신의 야심이 있다. 서울시를 세계 최고 도시로 만들겠다! 여기에는 세상을 바꾸는 즐거움, 서울시민을 향한 믿음과 배려, 시대의 화두를 읽는 통찰력이 있다.

박원순, 왜 이렇게 작은 일에 집중할까

"서울시장인 지금은 시민의 삶을 행복하게 바꾸는 재미가 바로 저의 원동력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저의 재미이기도 하지만 시민들의 재미이기도 하다고 감히 말씀을 드립니다. 저에게 바람이 있다면 정치를 통해 시민들에게 재미와 즐거움, 행복을 드리는 것입니다. 경쟁과 상처, 실망과 분노가 아니라 정치 때문에 시민들이 웃고 즐거우셨으면 합니다." - 책에서.

사실 국민은 정치에 관심이 많다. 정치 뉴스가 나오면 욕을 하면서도 귀를 기울이고,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본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젓는다. 관심을 가져도 바뀌지 않을 거라 체념하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연일 구태정치를 척결하자고 다짐해도 소용이 없다. 최근 흐름도 비슷하다. NLL 공방 등 정치 혐오를 부르는 일이 이어졌다.

국민들은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고 있다. 민생을 위해 힘쓰고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려 노력하는 정치를 바란다. 하지만 국민이 보기에 지금까지 이를 제대로 실천하는 정치인들은 드물었다. 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박원순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정보공개, 보도블록, 마을공동체, 대안적 일자리 창출.... 책을 보면 박 시장이 강조하는 일이 참으로 독특하게 느껴진다. 전임 이명박·오세훈 시장이 대규모 토건 사업 및 디자인 사업으로 업적을 남기려 했다면, 박 시장은 방향을 바꿔 보다 정밀하고 세부적인 부분에 집중한다.

위에 열거한 박 시장의 관심사들은 언뜻 보면 별 것 아닌 작은 일로 보인다. 그러나 박 시장은 정보공개, 보도블록 같은 '작은 것'에서 모든 게 시작한다고 역설한다.

"그동안 시장도 구청장도 공무원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거죠. 작은 것을 중히 여기는 문화가 없었고, 시민의 이익을 가장 최우선으로 두는 자세도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작은 일을 제대로 하는 문화'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리가 집중해서 작은 일부터 하나하나 고치면 다른 행정 영역에도 이런 문화가 파급될 것이라고 봅니다." - 책에서.

박 시장 부임 이후 여러 면에서 서울시는 변화를 겪었다. 우선 '누드 프로젝트'를 통해 서울시의 정보를 시민들에게 거의 전부 공개하기로 했다. 그 결과 서울시의 정보공개청구 대비 정보공개율은 2013년 들어 거의 100%에 가까워졌다.

또한 '보도블록 혁신 10계명'을 만들어 부실한 보도블록 공사와 관리 체계를 타파했다. 박 시장은 "보도블록 문제가 우리 행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쇼윈도이자 모든 서울 시민, 아니 대한민국 국민의 스트레스 진원지란 결론에 이르렀다"며 보도블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마을공동체 육성과 사회적 일자리 창출도 박 시장 이후 나타난 변화다. 마을공동체에 대해 박 시장은 "서울이나 우리나라 여러 도시들이 겪고 있는 문제의 핵심이 공동체의 붕괴에 있다"고 말한다. 마을공동체를 육성해 주민이 서로 도우며 살고, 지속적으로 소통해야 삶의 질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또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육성을 통한 다양한 일자리의 창출은 '박원순식 일자리 정책'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단순히 대기업 성장을 통한 일자리 증가만이 아닌, 다양한 틈새시장 공략으로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게 박 시장의 생각이다. 

이런 사업들이 청계천 복원, 버스전용차로 개편, 디자인 서울 사업 등 전임 시장들의 대표 업적(?)에 비해 크게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작은 것부터 서울시를 조금씩 바꿔 나가겠다는 박원순의 정책에서는, 전임 시장들에게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시민을 위한 진정성이 느껴진다.

어떤 정치가 세상을 바꿀까

"국민들은 권력을 누가 잡느냐의 문제보다 자신들의 삶이 진짜로 나아지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정치는 여기에 답을 줄 수 있어야 해요. 시민의 삶을 구체적으로 바꾸는 생활정치가 필요한 이유죠. 그래서 보도블록 10계명을 만들고, 노숙자 리스트를 만들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을 전환한 것 아니겠어요? 민주당 시장이냐 새누리당 시장이냐가 아니라 서울시민의 삶을 바꾸고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 책에서.

최근 오마이북이 내놓은 <정치의 즐거움>에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주말을 이용해 서른 시간 나눈 대담이 담겨 있다
 최근 오마이북이 내놓은 <정치의 즐거움>에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주말을 이용해 서른 시간 나눈 대담이 담겨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물론 박원순의 신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오랜 시민사회 활동을 통한 '내공 쌓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박원순이 존재한다. 박 시장은 시민사회 활동가 시절에 대해 힘들었지만 자신에게 커다란 자산이 됐던 시기라고 자평한다.

"새로운 일,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 가치 있는 일이니까 재미를 느끼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집중하는 겁니다. 남이 만들어놓은 곳에 자기 한 몸 보태는 일이면,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저는 참여연대 이후 지금까지 남이 만들어놓은 조직에서 일해본 적이 없었어요. 없던 조직을 새로 만들어 일을 벌였죠. 늘 창립자였고 설립자였어요." - 책에서.

그래서일까. '서울시'라는 이미 만들어진 조직에서 일하면서도, 그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보다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서울시를 만들고 있다. 공무원 사회의 장점을 적절히 받아들이면서, 창조적인 일을 실천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이런 유형의 정치인은 드물었다.

박원순이 서울시장이 된 과정을 살펴보면 의외성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정치에 뜻이 없었던 박 시장이 출마를 결심한 것, 안철수와의 단일화로 갑자기 큰 지명도를 얻은 것도 예상 외다.

단일화를 한 뒤에도 여러 험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민주당 내 경선, 나경원 새누리당 후보와도 마지막 대결도 해야 했다. 쪽배 박원순이 항공모함같은 거대 정당 후보들과 연이어 1대1 맞장을 뜬 셈이다. 그 진검승부에서 박원순은 승리를 거뒀다.

쪽배가 항공모함을 이긴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시민들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쪽배든 항공모함이든 물 위에서 움직인다. 물이 요동치면 쪽배든 항공모함이든 기우뚱거린다. 박원순이 모는 쪽배는 거친 파도를 잘 헤쳐 나가면서 살아남은 반면, 항공모함은 물이 요동치는 이유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다가 침몰했다.

시장이 된 이후에도, 박원순은 시민의 갈망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움직이고 있다. 박 시장의 움직임을 지지하는 시민이 늘었다. 그러니까 박원순도 즐겁고, 서울 시민도 즐겁다. 이들을 즐겁게 한 건 다름아닌 정치다.

"'수가재자 역가복주'란 말이 있습니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또 뒤집어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에요. 저는 아직 정치에 대해 잘 모르지만, 시민들의 염원과 소망을 충실하게 따르면 순항할 수 있고, 만약 거스르면 아무리 큰 조직이라도 하찮은 먼지처럼 가라앉겠죠. 정당이 아무리 크고 당원이 많다 한들 그게 뭐 그리 대수롭고 큰 힘이겠어요. 시민의 꿈과 소망 위에 서 있는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합니다." - 책에서.

박원순이 즐거운 진짜 이유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단점으로 '한탕주의'와 '무사안일주의'가 꼽힌다. 한탕주의는 임기 내에 대규모 사업을 진행해 유권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려는 것이고, 무사안일주의는 큰 문제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태도다. 이는 구태정치의 시발점이자, 국민이 정치를 혐오하는 이유다.

박원순은 이를 배제한다. 자신이 세운 야심, 국민이 제기하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설령 우리 시대에 빛을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지켜야 할 원칙은 지키면서 자신의 신념을 사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름 한 자 없이 사라지더라도 시대의 양심이 요구하는 그 길을 가야 하는 거죠. 운이 나빠서 큰 역할을 못하거나 업적이 알려지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이런 생각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일을 묵묵히 하다 보면 즐겁지 않을까요?"- 책에서.

박 시장은 책의 머리말을 통해서 "오연호가 묻고 박원순이 답했지만, 사실은 제가 묻고 천만 서울 시민 여러분이 답해주신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박 시장의 말을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서울시민과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 이는 생각보다 거창하진 않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것이다.

토크빌은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살짝 억울하기도 하다. 국가 기관의 선거 개입과 이를 잘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권, 그리고 축소된 표현의 자유와 멈추지 않는 색깔 공방 등. 한국 정부와 정치권의 퇴행은 모두 국민의 잘못에서 비롯된 일일까?

억울함과 자괴감이 <정치의 즐거움>을 읽은 뒤 다소 치유됐다. 한국 사회에도 꽤 괜찮은, 높은 의식을 가진 정치인이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www.naver.com/chakrell)에도 중복게재될 예정입니다.



정치의 즐거움 - 오연호가 묻고 박원순이 답하다

박원순.오연호 지음, 오마이북(2013)


태그:#박원순, #정치의 즐거움, #서울시, #정치인, #오연호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