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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식물 이름을 꽤 많이 아는 분들에게 과의 특징을 물어본 적이 있는데 거의 알지 못했다. 이런 분들에게 과의 특징을 이야기해주면 너무나  신기해하면서 이런 책을 하나 내줬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덧붙였다. 따라서 이 책은 중요한 특징을 몇 가지 알면 과를 동정할 수 있도록 시도한 책이다. 저자가 알기로 이렇게 만든 책이 꼭 있을 법한데 국문은 물론 일어나 영어로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필자가 정년퇴임한 이후, 한 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이 졸저가 식물을 공부하는 학생들뿐 아니라, 식물을 연구하는 비식물분류학자들에게, 식물을 가르치고 설명하는 해설가들에게, 식물이 좋아서 산을 찾는 분들에게 한국 식물의 과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서 더욱더 식물을 좋아하게 되었으면 좋겠고, 또한 이 책이 도감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안내서가 되길 바란다. - <한국의 식물 가족들> '저자의 말'에서

성균관대학교 출판부에서 최근 출간한 <한국의 식물 가족들>(이상태 씀)은 출간자체가 꽤 의미 있는 책이다. 저자의 말에 언급한 것처럼 우리보다 식물 연구가 활발한 일본에서는 물론 미국이나 우리나라에서도 나온 바 없는 내용의 책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식물 가족들>
 <한국의 식물 가족들>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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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태생인지라 어떤 풀과 나무들이 언제 꽃이 피고 언제쯤 어떤 열매들을 맺는지 대략이나마 꿸 수 있을 정도로 참 많은 풀과 나무들을 보며 자랐다.

그럼에도 냉이꽃이나 민들레, 제비꽃 등처럼 아주 많이 알려진 식물들의 이름만 알뿐, 이름까지 아는 식물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아마도 어른들도 잘못 알고 있어서 그리 알려줬기 때문에 잘못 알고 있는 것들도 좀 많았다.

낯익은 풀과 나무들을 산행 중 보게 되면서, 그리고 관심을 갖는 만큼 알아지게 되면서 식물도감이나 관련 책들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지난 4년 여간 정말 많은 식물 관련 책들을 접했고 그리고 정말 많은 식물들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식물들의 이름과 생태를 알면 알수록, 관련 책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일종의 갈증과 함께 아쉬움 씁쓸함 이런 것들은 커져만 갔다. 책은 많지만 그에 비해 특별한 내용의 책들이 그다지 많지 않아 그만그만한 식물들을 만나고 또 만나야 하는 그런 아쉬움이랄까.

특히 새로 출간된 책이라는데 이전에 읽은 책과 약간 다를 뿐 크게 차이가 없는 책이나, 그럴싸한 사진에 아마도 이 책 저 책을 참고삼아 정리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강한 그런 책을 접할 때면 남다른 책에 대한 바람이나 이런 감정들은 더욱 간절해지기만 했다.

여하간 그간 이런 책들 사이에서 가장 목말랐던 것 중 하나는 왜 그 나무(혹은 야생화)가 '-과(예:물푸레나무과, 십자화과 등)'인지, '-과'들의 특징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책이 거의 없다는 것, 때문에 하루빨리 출간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어떤 나무든 속해있기 마련인 '-과'의 특징을 알면 식물에 대해 훨씬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나리는 물푸레나무과에 속한다. 물푸레나무도, 팥꽃나무와 쥐똥나무, 이팝나무 등도 개나리와 같은 물푸레나무과 식물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전체적인 모습은 물론 꽃모양도 그다지 닮지 않았다. 말하자면 한 집안인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물푸레나무과로 묶은 이유가 있을 것, 그 이유를 알면 식물들의 특징을 아는데 훨씬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이유를 알려주는 책이 없으니 아쉬울 밖에.

'물푸레나무과 개나리'. 씁쓸한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풀꽃 중 가장 먼저 접한 '-과'는 '십자화과'란 용어였다. 봄이면 가장 먼저 피는 냉이꽃이나 꽃다지, 우리가 먹는 배추나 무, 갓 등의 꽃잎이 모두 4장, 이 4장의 꽃잎들이 마치 十자처럼 달렸기 때문에 십자화과라고 한다.

2010년 봄, 우연히 야생화기행에 몇 차례 참여하며 야생화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도 여럿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야생화를 제법 안다는 사람이 자신 있게 십자화과 식물들을 열거했다. 그리고 그에 개나리까지 포함시켰다. "개나리의 꽃잎이 4장이고 十모양이니 십자화과"라는 설명까지 친절하게 곁들이면서 말이다.

야생화지식이 그다지 없는 사람들은 그 사람의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그렇다면 그런갑다 수긍했겠지만, 그래도 조금 알 만한 사람들은 어이없어했다. 그러나 목소리 큰 그 사람은 개나리는 십자화과라며 우겼다. 결국은 자존심 문제가 걸린 신경전으로 번졌고, 그 사람은 결국 사람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말았다. 그야말로 식물들의 이름만 알 뿐 '-과'를 제대로 모르는 것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무꽃. 무꽃은 냉이꽃,꽃다지 등과 함께 대표적인 십자화과 식물이다. 십자화과 식물은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사강웅예(6개 수술 중 4개가 발달한)라는 것이다.
 무꽃. 무꽃은 냉이꽃,꽃다지 등과 함께 대표적인 십자화과 식물이다. 십자화과 식물은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사강웅예(6개 수술 중 4개가 발달한)라는 것이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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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강수술이란 수술이 6개인데, 그중 안쪽 4개가 길고 바깥쪽 2개는 짧은 것으로, 이를 가진 것은 바로 십자화과다. 꽃잎 4장이 열십(十)자 모양 배열되어 십자화과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열십자 꽃을 가진 식물 중에 십자화과가 아닌 식물도 많다. 예를 들어, 용담과의 두메용담, 물푸레나무과의 개나리, 마전과의 벼룩아재비는 꽃잎이 꽃잎 4장이 열십자 모양을 하고 있지만 통꽃(합판화)이라 십자화과와 다르고, 바늘꽃과의 달맞이꽃은 열십자의 갈래꽃이기는 하나 씨방(자방)이 하위라 다르다. 그렇다면 십자화과는? 다른 특징을 열거할 필요없이, 꽃잎 4장이 열십자로 배열되어 있으면서 수술이 사강수술이다. 따라서 사강수술은 십자화과에서밖에 찾을 수 없으니, 사강수술만 알면 바로 십자화과이다(사상수술을 보고 십자화과인 것을 모르면 낫놓고 ㄱ(기역자)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 <한국의 식물 가족들>에서

그런데 정말 아쉬운 것은 개나리가 물푸레나무과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 대부분 왜 개나리가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지, 물푸레나무과의 특징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한다는, 도감에 그리 적혀있으니 특징도 모른 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어떤 꽃인지 물어보는 순간 척척 알려주는 몇 사람에게 궁금한 마음에 그간 궁금했던 몇몇 식물들의 '-과'에 대해 물어봤을 때 그 특징을 아주 조금이라도 설명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이처럼 꽃이나 나무 이름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식물 각각이 속한 '-과'의 특징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한 것처럼 그간 정말 많은 식물도감들이나 관련 책들이 많이 출간되었지만 이처럼 '-과'를 주제로 한 책은 이제까지 나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지라 이 책의 출간 의미다 남다를 수밖에 없겠다.

<한국의 식물 가족들>은 전체적으로 각 '-과'만의 특징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한편 각 '-과'에 속한 '-속'이나 '-종'들을 계단식으로 배열하는 방식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식물을 좋아하거나 공부하는 사람들이 한 식물이 속한 '-과'나 '-속', '-종'을 효율적으로 인식하고 필요할 때 쉽게 참고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간의 이런저런 식물도감들에서 느꼈던 아쉬움 중 하나는 지나친 한자용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뜻인지 짐작할 수도 이해도 쉽지 않은 한자용어는 물론 비전문가인 내가 보기에도 우리말로 풀어써도 괜찮을 것 같은데 구태여 고집한 한자용어에 대한 그런 아쉬움 말이다.

민테=전연, 톱니테=거치연, 나사모양=나선, 잎자루=엽병, 잎끝=엽두, 여윈과=수과, 살찐과=장과, 송편과=골돌과, 곧은꽃차례=총상화서, 갈래꽃차례=기산화서, 테씨자리=변연태좌, 들창열림=판개, 부리꼬리=거, 모여나기=총생, 갈래꽃=이판화, 통꽃=합판화, 고리모양=환상, 자웅동주=암수한몸, 바퀴혈=폭상…. - <한국의 식물 가족들>에서

위는 저자가 시도한 식물용어 한글화 일부를 옮긴 것이다. 책은 내용에 앞서 식물분류 용어 모두(아마도)를 11쪽으로 소개한다. 괄호 속 '전연'이나 '거치연', '총상화서', '기산화서' 등은 이제까지의 식물도감이나 관련 책들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한자용어이고, 앞세운 '민테'나 '곧은꽃차례', '갈래꽃차례' '나사모양' 등은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도한 식물 분류 용어의 한글화에 따른 용어들이다.

이 책의 출간이 의미 있는 이유 또 하나는 이와 같은 '식물 분류 용어의 한글화 본격적인 시도'이다. 식물 분류 학자로 평생을 강단에 섰던 저자가 시도한 식물 용어 한글화에 의한 용어만으로 어떤 모양의 꽃인지 꽃의 특징이 훨씬 쉽게 이해됨은 물론이다.

풀과 나무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바라건대, 이 책의 식물 용어 한글화 시도가 식물분류학뿐 아니라 식물 관련 책들이 한글 용어를 쓰도록 선도하는 책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수술은 꽃실과 꽃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꽃밥의 꽃밥부리 안에서 꽃가루가 만들어진다. 꽃가루는 식물의 수생식기로 한개의 꽃가루 안에는 2개의 정자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꽃가루는 곤충이나 여러 가지 매개체에 의해 암술에 전달되고, 그 속의 정자는 난자와 수정하게 된다. 암술은 밑에서 위로 가며 씨방, 암술대, 암술머리의 세부분으로 되어 있다. 꽃가루기 암술머리에 전달되면 꽃가루에서 꽃가루관이 나와 정자를 싣고 암술대를 타고 내려가 씨방 속의 밑씨 속으로 들어간다.(…)암술은 수정 후에 성숙해서 열매가 된다. 열매는 씨방벽이 열매의 껍질 즉 과피를 만들고 밑씨는 씨(종자)를 만든다. 따라서 열매는 씨방이 있는 속씨식물만 만든다. 겉씨식물은 씨방이 없기 때문에 열매가 없다. 예를 들어 은행과 살구가 비슷해 보이지만 은행은 씨고 살구는 열매다. - <한국의 식물 가족들>에서

모든 '-과' 설명은 이처럼 관련 공부를 전문적으로 하지 않은 사람들은 쉽게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궁금해 했을 관련 지식들과 함께 정리했다. 게다가 함께 속한 '-과' 식물들의 사진까지 풍성하게 곁들이고 있다. 이 또한 이 책의 장점들이다.

솔직히 이 책에서 이 부분을 읽기 전까지 가을마다 노랗게 익는 은행들이 씨앗이 아닌 열매라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아마도 오래전에 학교에서 은행나무가 겉씨식물이란 걸, 겉씨식물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는 것도 배웠을 것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우린 왜 은행을 씨앗보다는 열매로 먼저 생각하는 걸까?

책을 읽다가 잘못 쓰이고 있는 '은행 열매'란 용어를 계기로 몇 사람에게 '열매와 씨앗'에 대해 물어보니 살구나 감, 사과 등처럼 큰 것 열매, 그렇지 못한 것은 '씨앗'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씨앗이나 열매나 같은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게다가 은행 열매든 씨앗이든 구분할 필요가 있나?고 따지듯 반문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식물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는 일반인들에게 열매든 씨앗이든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을이면 노랗게 익는 은행이 씨앗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과 알고 있는 것의 차이는 클 것이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이나 가까운 장래 식물관련 전공자가 될 청소년들에게 제대로의 지식이나 바람직한 용어사용은 매우 중요할 것 같다.

아마도 진즉에 이처럼 각 식물이 속한 집안이랄 수 있는 '-과'나 '-속', '-종'의 특징들을 제대로, 그리고 명확하게 설명하거나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들이 나왔더라면 훨씬 많은 식물학자들이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처럼 자연과학이 홀대 당한다는 한숨도 은행 열매'처럼 우리 사회에서 당연한 듯 쓰이는 오류들이 훨씬 적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우리의 식물학도 훨씬 발전하지 않았을까?

참고로 저자는 그간 대학에서 식물분류학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써왔다. 그간 쓴 몇 권의 책중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책으로는 식물들의 치열한 생존과 번식을 위한 진화를 다룬 <식물의 역사>(지오북 펴냄)가 있다. 그리고 저자에 의해 그 존재와 실체가 밝혀진 식물들은 긴산개나리, 털산개나리, 태백개별꽃, 섬모시대, 외대잔대, 그늘모시대, 붉노랑상사화, 중느릅나무, 왕골무꽃, 곤연지골무꽃, 비바리골무꽃 이렇게 11종이라고 한다.

덧붙이는 글 | <한국의 식물 가족들>|이상태 (지은이)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13-06-21 |25,000원



한국의 식물 가족들

이상태 지음, 성균관대학교출판부(2013)


태그:#식물분류학, #물푸레나무과, #십자화과, #식물학, #이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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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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