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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박사’ 서울대 공과대학 건설환경공학부 한무영 교수를 15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빗물박사’ 서울대 공과대학 건설환경공학부 한무영 교수를 15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 온케이웨더 박선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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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는 사랑에 빠진 한 남자가 비를 맞으며 노래한다.

"I'm singing in the rain. What a glorious feeling i'm happy again.(나는 비를 맞으며 노래하네. 이 얼마나 멋진 느낌인가 난 정말 행복해)"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알만한 명곡이다.

불과 20~30년 전까지만 해도 빗물이 더럽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빗물은 하늘에서 수증기가 응결한 것으로 생성 순간에는 순수한 물방울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방울이 하강하면서 오염된 대기 중의 부유물을 용해해 여러 가지 성분을 포함하는 것이 알려지면서 '산성비'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산성비라는 부정적 인식이 일반적이다.

2013 에너지 글로브 어워드 시장식이 15일 서울대 공과대학 소회의실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국가상을 수상한 서울대 한무영 빗물연구센터장(오른쪽 두 번째)과 박우량 신안군수(왼쪽 두 번째)가 기념촬영을 했다.
 2013 에너지 글로브 어워드 시장식이 15일 서울대 공과대학 소회의실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국가상을 수상한 서울대 한무영 빗물연구센터장(오른쪽 두 번째)과 박우량 신안군수(왼쪽 두 번째)가 기념촬영을 했다.
ⓒ 박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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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이 빗물이 우리나라의 물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며 10년간 한 목소리를 내온 사람이 있다. 바로 한무영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설환경공학부 교수(57·서울대 빗물연구센터 소장)가 그 주인공이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수(水)처리 전문가였던 한 교수는 2000년 가뭄대책을 연구하다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빗물'에서 찾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집중호우가 쏟아지던 15일(월)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연구실에서 그를 만나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라는 빗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빗물에 대한 잘못된 인식부터 바꿔야"

한무영 교수
 한무영 교수
ⓒ 박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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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영 교수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죄가 없다"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빗물이 그저 오염된 산성비라는 인식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빗물은 그저 오염된 산성비가 아니란 얘기다. 그는 "실제 실험 결과 콜라나 오렌지 주스보다 빗물의 산성도가 낮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를 맞으면 머리카락이 빠진다''빗물을 먹으면 안 된다'는 식의 부정적인 인식이 많지만 모두 틀렸다"며 "빗물도 음용수 수질 기준으로 끌어올리면 되고, 비의 산성도가 알려진 것보다 낮아서 비를 맞아서 머리카락이 빠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한 교수에 따르면 빗물은 자연계 물 순환과정에서 가장 짧은 과정을 거친 것이기 때문에 깨끗하며, 1년 동안의 경제적 가치는 약 9097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빗물을 활용해 물이 부족한 지역의 고충을 해결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1월에는 대표적 '물 부족 국가'인 남태평양 솔로몬 제도의 학교와 빈민촌에 '빗물 탱크'를 설치했고, 같은 해 6월에는 총 7가구가 사는 전남 신안군 기도(箕島)의 식수 문제도 해결해 줬다.

특히 전남 신안군 신의면에 있는 작은 섬 기도는 오랜 세월 동안 물 부족 문제로 고생했다.

한무영 교수가 옥상녹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무영 교수가 옥상녹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박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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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와 신안군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5월 MOU를 체결하고 심각한 식수 및 생활용수 문제를 겪고 있던 섬 기도에 빗물이용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기도(箕島)는 전남 신안군 신의면 상태서리에 있는 작은 섬이다. 신안군에 있는 1004개의 섬 중 하나로 이곳에는 현재 7가구 2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산안군 하의도 옆에 있다.

군은 도서지역 식수원 개발사업의 범주에 들지 않아 해수담수화, 해저상수관 등의 대책을 적용할 수 없던 섬 기도를 시범지역으로 선정하고 빗물이용 시설을 설치했다.

서울대 빗물연구센터는 지붕에 떨어지는 빗물을 4000ℓ짜리 빗물 저장조에 보관해 침전처리 되게 했다. 이 물은 별도의 처리 없이 세수·세탁·설거지 등 생활용수로 사용하게 했고, 먹는 물 만큼은 자외선 소독이나 살균 소독을 했다.

서울대와 신안군은 지난해 10월 세계 환경대회인 '에너지 글로브 어워드'에 '빗물이용시설을 이용한 작은 섬 기도에서 물 자급률 100% 달성'이란 제목으로 프로젝트를 출품했다. 이 결과 '2013 에너지 글로브 어워드' 국가상으로 선정됐고 관련 시상식이 지난 15일 서울대 공과대학에서 열렸다.

시상식에서 한 교수는 "전남 신안군에 위치한 섬 기도는 오랜 세월 물 부족 문제로 고생해 한때는 섬 주민들은 식수조차도 육지에서 조달 받았을 정도였다"며 "하지만 지난해 6월 서울대에서 빗물이용 시설을 설치해 준 덕분에 이제는 물 자립이 가능해 졌다"고 말했다.

그는 "빗물은 얼마든지 자원이 될 수 있다. 소독처리를 통해 마실 수도 있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조경수·청소 등에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 1년 강우량이 1300㎜에 달하는 데 대부분이 버려지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아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 아닌, 물 관리 부족 국가"

가뭄과 홍수는 매년 반복되는 자연재해다. 우리나라는 홍수와 가뭄 조절을 위해 댐을 유일한 방안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한 지역에 집중호우가 반복되면 수위가 점점 올라가 홍수가 나고, 비가 장기간 내리지 않으면 가뭄이 생기고 만다.

그만큼 빗물 관리를 잘해야 한다. 한 교수는 "빗물에 답이 있는데 하늘이 준 선물인 빗물이 그냥 버려지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가 아니라 '물 관리 부족 국가'인 것 같다"고 말했다.

빗물을 슬기롭게 활용한 지혜는 우리 역사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제주도의 경우 투수성이 좋은 현무암이 많다. 하천이 건조할 때가 대부분이라서 물이 항상 귀했다. 특히 한라산 중 산간 지역의 경우 물을 구하기는 더욱 힘들었다.

그래서 비가 올 때면 지붕이나 나뭇가지로 흘러내리는 빗물을 받아뒀다. 들녘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짚으로 댕기머리처럼 촘을 땋아 나무에 묶고 그 밑에 항을 놓아 빗물을 모아 식수 등으로 사용했던 것. 이를 '촘항'이라고 하는데 제주 산간지방에서는 이를 '새촘'이라고도 한다.

서울대 35동 옥상에는 텃밭이 있다. 텃밭에는 상추·깻잎·방울토마토 등이 심어져 있고 한편에는 꽃과 나무가 있는 정원도 있다
 서울대 35동 옥상에는 텃밭이 있다. 텃밭에는 상추·깻잎·방울토마토 등이 심어져 있고 한편에는 꽃과 나무가 있는 정원도 있다
ⓒ 박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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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는 물을 물 쓰듯 쓰는 경우가 드물다. 특히 제주도에서 물을 퍼오는 일에는 부잣집가난한 집의 구별이 없었다고 한다.

조선 22대왕 정조는 즉위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빗물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1778년 정조 2년에 제정된 '제언절목(堤堰節目)'에는 수 천년 동안 축적된 선조들의 물 관리 비법이 나타나 있다.

제언절목에 따르면 '물 관리'는 지방관리의 의무였는데 이를 소홀히 할 때는 가차 없이 문책했다. 빗물관리 시설의 기록 또한 충실히 해야 했다. 이를 통해 빗물관리에 신중을 기했고 온 백성이 참여토록 했다.

비가 너무 안 오면 가뭄이 들고, 너무 많이 오면 홍수가 나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 한 교수는 "우리나라 빗물관리는 한 곳에 물을 가두는 집중형으로 돼 있지만 이를 분산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유는 한 곳에 너무 많은 물을 가두려하다보니 비용이 많이 들고 한번 넘치면 재앙수준의 자연재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곳곳에 분산시키면 멀리서 물을 끌어 올 필요 없이 자급자족할 수 있어 경제적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서울대 35동 옥상 텃밭은 왜 오목할까?

그 예가 서울대 35동(건설환경공학부) 건물 옥상에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이 건물의 옥상 2016m² 중 840m²를 녹지로 바꿨다. 기존의 건물에서도 빗물 활용은 가능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름철이면 이 건물 옥상의 콘크리트 바닥 온도는 50~55℃까지 올라간다. 그러나 옥상 녹지화 이후 꽃밭 위의 온도는 24~25℃ 수준에 머문다.

한 교수는 "옥상 녹지화를 하기 전에는 55℃에 이르던 옥상 기온이 녹지화 후에는 맑은 날에도 24~25℃ 가량을 보이고 있다"며 "옥상정원 조성 후 이전에 비해 건물 내부의 기온도 내려가 냉방에너지 절감 효과도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옥상정원을 만들면서 바닥에는 방수용 우레탄·아스팔트·방수용 시트를 차례로 입히고 홈이 많은 배수판을 설치했다. 비가 오면 배수판에 빗물을 저장하고, 비가 오지 않을 때 이 빗물은 마른 흙에 공급했다.

그는 "840㎡에 달하는 이 텃밭·꽃밭·정원은 하루 40㎜의 빗물을 머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름철에 건물이 시원하면 전력수요도 줄일 수 있다. 옥상녹화에 따라 그냥 방치되던 빗물 유출량이 줄어들었고 건물의 온도상승 억제 효과도 얻었다. 녹색 식물이 많아지면서 주변의 대기오염도 완화됐다고 한다.

옥상녹지화에서 중요한 것은 땅을 고를 때 오목하게 조성해야 한다는 것. 옥상정원의 흙을 평평하게 하거나 볼록하게 하면 빗물이 고이지 못하고 흘러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목하게 하면 물이 어느 정도 고여 있어서 해가 뜬 후에도 상수도 물을 주지 않아도 된다.

옥상정원은 구역을 나눠 '꽃밭'과 나무를 심은 '정원', 방울토마토·상추·가지 등의 채소를 기르는 '텃밭'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조성된 텃밭은 교수·학생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에게 분양해 지역사회와 교류도 넓혀가고 있다.

한무영 교수는 "빗물을 지금까지는 버리는 대상으로만 여겼고, 심한 경우 홍수를 일으키는 대상으로 알고 있었지만 생각을 바꿔야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강우가 불규칙하고 산지가 많은 자연조건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성공한 빗물관리 시설 및 기술은 세계에서도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며 "더 많은 지역에서 빗물을 모아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하에 침투시켜 지하수를 보충 하는 등의 방법으로 빗물을 관리하면 홍수나 가뭄도 해결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무영 교수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토목공학과 학사·석사 ▶미국 텍사스 오스틴 주립대학 공학박사 (환경공학 전공)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빗물연구센터 소장 ▶소방방재청 정책심의 의원 ▶빗물학회 회장 ▶대한 환경공학회부회장 ▶(사)빗물모아 지구사랑 대표 ▶IWA PIA 세계상 수상(2012.9) ▶국가녹색기술대상 환경부장관상 수상(2010.2) <저서>▶한무영 교수가 들려주는 빗물의 비밀(2010)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2009) 등

덧붙이는 글 | 박선주(parkseon@onkweather.com) 기자는 온케이웨더 기자입니다. 이 뉴스는 날씨 전문 뉴스매체 <온케이웨더(www.onkweather.com)>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한무영 교수, #빗물, #빗물박사, #서울대 35동 옥상정원, #빗물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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