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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속을 뚫고 옛날 대관령 숲체험원을 거닐다

산수국 군락
 산수국 군락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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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부터 내리던 비가 아침에도 여전하다. 다행히 빗방울이 굵지는 않다. 지난 13일 계획된 대관령 국민 숲길 트레킹에 나섰다. 7시에 출발한 버스는 영동고속도로를 지나 횡성휴게소에 잠시 정차한다. 나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비가 오는데 우산을 쓰고 내렸다 타기가 번거롭기 때문이다. 다시 출발한 차는 9시 15분쯤 옛날 대관령 휴게소에 도착한다. 우리는 신재생 에너지 전시관에 들어가 숲길 산행을 준비한다. 배낭을 메고 그 위에 우비를 입고 또 우산을 쓴다.

나와서 단체사진을 찍는 데 빗방물이 세차다. 숲길 트레킹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먼저 대관령 유아 숲체험원으로 간다. 이곳은 아이들 교육용으로 만든 인공 꽃밭이다. 그곳에는 여름 꽃들이 한창이다. 산수국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산수국은 대개 7월에서 9월까지 개화하는 꽃으로 연푸른빛을 띠고 있다. 그런데 이 꽃은 가운데 부분이 진짜 꽃이고 가장자리 부분이 가짜 꽃이다. 가운데 동글동글하게 생긴 것이 양성화로 수정을 통해 씨를 맺으며, 가장자리 4개의 꽃받침으로 이루어진 것이 중성화로 벌과 나비를 유인하는 역할을 한다.

산옥잠화 군락
 산옥잠화 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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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국 옆으로는 산옥잠화 군락이 조성되어 있다. 아직 만개하지 않은 봉오리들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빗방울을 달고 있는 그 모습이 더 청초해 보인다. 연보라빛을 띠고 있는데, 꽃이 피면 더 아름다울 것 같다. 옥잠화는 이름도 좋다. 영어로는 plantain lily이니 백합과가 된다. 한자로는 玉簪花니 옥비녀꽃이 된다. 옥비녀는 경사스런 때 꽂았다니 하니, 역시 좋은 작명이다.

이들을 지나니 물레나물과 술패랭이가 빗속에 고전하고 있다. 산수국과 산옥잠화에 비해 꽃잎이 얇고 지탱하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물레나물은 나은 편이다. 술패랭이는 꽃잎들이 붙어 더 볼품이 없다. 술패랭이라는 이름은 패랭이꽃에 비해 술이 가늘고 더 많기 때문에 붙은 것 같다. 이들을 지나니 아이들이 모여 놀이를 할 수 있는 숲유치원 공간이 나온다. 여기서 우리는 방향을 돌려나오며 나머지 야생화를 관찰한다.

국민 숲길에 조성된 야생화 단지

창포
 창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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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본 또 다른 야생화로는 창포꽃이 있다. 창포는 붓꽃의 일종으로 진보라색을 띠고 있다. 창포는 붓꽃이 비해 습한 곳에 자라는데, 이곳은 인공으로 재배를 해서 그런지 산속에 피었다. 창포는 대개 6~7월에 꽃을 피운다. 과거 단오절에는 여인들이 창포 뿌리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는 풍습이 있었다. 그것은 창포 뿌리에 향내 나는 물질이 있어 좋은 향기가 나기 때문이다. 창포는 또한 옛날부터 한약재로 사용되기도 했다.

숲길에서는 동자꽃도 자주 보인다. 주황색의 꽃잎이 다섯 개 있고 그 안에 열 개의 수술과 다섯 개의 암술이 있다. 그 중 수술이 비를 맞아 힘을 잃었다. 동자꽃은 그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인해 동자승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한 겨울 마을로 내려간 노스님을 기다리다 얼어 죽은 동자승이 이듬해 봄 동자꽃으로 피어났다는 것이다. 꽃에는 이처럼 애절한 스토리텔링이 있다. 애인을 기다리다 죽은 곳에서 피어난 백일홍 처녀도 있고, 아폴로의 사랑을 받다 죽어 꽃이 된 미소년 히아신스도 있다.

하늘나리
 하늘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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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조금 벗어나자 참좁쌀풀과 하늘 말나리도 보인다. 참좁쌀풀은 꽃잎의 끝이 뾰족하지 않고 둥근 희귀종이라고 한다. 나리는 요즘 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데, 나리, 말나리, 하늘나리, 땅나리 등 종류가 다양하다. 나리꽃은 산행하는 사람들에게 더위를 잊게 해주는 정말 아름다운 꽃이다. 숲길을 트레킹하다 우리는 횡계3리 마을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그곳 꽃밭에서도 원예종인 날개 하늘나리를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야생 나리에 비해 꽃잎이 훨씬 크고 색깔도 매력적이다.       

456번 지방도를 건너 횡계 3리로

대관령 숲길
 대관령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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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숲길은 평창과 강릉을 잇는 456번 지방도를 따라 이쪽과 저쪽에 펼쳐져 있다. 우리는 먼저 456번 지방도 동남쪽 구간을 탐사했다. 이곳에서 많은 야생화를 만날 수 있었다. 길은 능경봉 쪽으로 이어지는데, 우리는 그 길을 택하지 않고 다시 456번 지방도를 건너 국민의 숲길 쪽으로 향한다. 456번 지방도는 옛날 영동 고속도로였으나 이제는 한적한 시골길이 되고 말았다. 현재 이 길은 경강로라고도 불린다. 서울과 강릉을 잇는 길이라는 뜻이다.

국민의 숲길은 국가대표선수들이 여름에 체력훈련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리기다 소나무, 잣나무, 가문비 나무 등 침엽수림이 인공으로 조성되었다. 그래선지 상대적으로 야생화는 적은 편이다. 나무의 키가 커서 햇볕이 차단되고, 잎이 떨어져 대지를 덮기 때문에 생물다양성이 줄어들었다. 그 대신 이곳에서는 소나무 특유의 향이 나 기분을 상쾌하게 해 준다. 마침 빗방울도 조금은 잦아들어 트레킹 여건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가사두교 너머로 있는 횡계3리
 가사두교 너머로 있는 횡계3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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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잠시 숲길을 벗어나 횡계3리 마을로 접어든다. 그런데 이 동네 이름이 가시머리 또는 가사두 마을이다. 가사, 가시, 거기다 머리라니, 무슨 뜻일까? 누구에게 물어봐도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한다. 답답한 마음으로 남경식당으로 들어간다. 우리가 점심을 먹기로 한 식당이다. 나는 주인에게 조금 전에 건너온 가사두교라는 다리의 명칭에 대해 물어본다. 그도 역시 모른다. 나는 식당에서 꿩만두국을 시켜 먹는다. 비가 와선지 막국수보다 만둣국 먹는 사람이 더 많다.

이곳 횡계3리에는 또한 고령지농업 연구센터가 있다. 우리가 잘 아는 고랭지 작물의 품종 개량과 재배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용어의 문제가 나타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고랭지(高冷地)라고 있는데, 이곳에는 분명히 고령지(高嶺地: Highland)라고 적혀 있다. 마을 이름이든지 기관의 이름이든지 그 어원을 정확히 이해하고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우리에게 경제와 문화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언어문제도 신경을 써야겠다.

배추밭
 배추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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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다시 재궁골 쪽으로 난 숲길로 향한다. 가는 길에 고랭지 작물들을 볼 수 있다. 감자, 배추, 당근이 많다. 일반적으로 감자는 장마가 시작되기 전인 6월에 수확을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감자가 이제야 꽃을 피웠다. 그렇다면 가을에 수확하는 가을감자인 모양이다. 배추는 비가 많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잘 자라고 있다. 이게 바로 여름 배추인 모양이다. 당근은 심은 지 얼마 안 되는지 잎이 연두색이다. 이들 작물을 보며 가시머리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최근에 지어진 펜션과 하우스들이 보인다.

이것은 외지 사람들이 별장 개념으로 또는 펜션용으로 지은 집들이다. 그래선지 가까운 곳에 작은 골프장도 만들어놓았다. 이곳의 경치가 좋아 우리 회원들이 기념사진을 찍는다. 골프장과 마을 숲길이 잘 어울린다. 이제부터 우리는 재궁골을 향한 등산로로 접어든다. 길 왼쪽으로는 시냇물이 힘차게 흐른다. 여기서부터는 산길이 조금은 가팔라진다. 그러나 등산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양떼 목장을 지나 다시 대관령 휴게소로

양떼목장과 횡계
 양떼목장과 횡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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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길을 2~3㎞쯤 올랐을까? 길이 바우길 1구간과 만난다. 여기서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선자령이 나온다. 그러나 우리는 반대로 대관령 휴게소 쪽으로 내려간다. 이 길은 대관령 양떼목장 방향으로 이어진다. 내려가면서 서서히 날씨가 좋아진다. 비는 거의 그쳤고 구름도 조금씩 걷히기 시작한다. 양떼목장에서 노는 양은 볼 수 없지만 초지는 정말 잘 가꿔져 있다. 양떼목장 너머로는 횡계의 고원 마을과 풍차가 여유로워 보인다.

우리는 양떼목장 밖으로 쳐진 철조망을 따라 길을 내려간다. 이 길은 대관령 옛길과 일치한다. 1년 6개월 전 눈이 잔뜩 쌓인 겨울에 이 길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2시 20분에 우리는 대관령 휴게소에 닿는다. 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차량과 관광객이 많이 보인다. 평창을 운행하는 시내버스도 보인다. 지난 5월부터는 강릉으로 가는 시내버스도 주말에 2회 운행한다고 한다. 한동안 사람의 발길이 끊겼던 대관령휴게소는 도보관광의 유행과 함께 대관령옛길과 바우길의 출발점이 되었다. 걷기길, 그것은 2000년대 들어 나타난 새로운 트렌드다.


태그:#대관령 숲길, #대관령 휴게소, #대관령 숲체험원, #횡계3리, #양떼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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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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