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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교육지원청이 지난 6월 24일 보낸 공문
 거창교육지원청이 지난 6월 24일 보낸 공문
ⓒ 송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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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4일 경남 거창군 면 지역 5개 초등학교가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습니다. 선생님들은 당황했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마음도 솟았습니다. 이 일의 발단은 6월 24일 거창교육지원청이 5개 학교로 보낸 '2014~2016년 적정 규모 학교 육성 추진 변경 계획 알림'이라는 공문 때문이었습니다.

경상남도교육청의 지침에 따라 만들어진 이 공문은 시행문을 빼고도 10쪽에 이르는 짧지 않은 분량입니다. 주요 내용을 보면 '적정 규모 학교 육성 기준'에 따라서 거창군 가북초, 남하초는 2014년에 분교장으로 개편하고, 주상초, 신원초, 고제초는 2015년에 분교장으로 개편한다는 내용입니다.

덧붙여 공문에는 지난해 '기숙형 중학교' 통합에 반대하여 제외되었던 신원분교장, 고제분교장, 웅양중학교를 기숙형 중학교로 통합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정말 깨알같이 꼼꼼하게 만들어진 공문입니다.

거창 지역 폐교의 역사

가북초등학교는 거창군 가북면에 있는 유일한 초등학교다.
 가북초등학교는 거창군 가북면에 있는 유일한 초등학교다.
ⓒ 가북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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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지역 폐교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난 1995년 경기도 가평의 두밀분교처럼 많은 사람의 바람에도 폐교되는 학교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거창도 예외는 아닙니다. 거창교육지원청 누리집 한편에는 거창에서 폐교된 학교들에 대한 정보가 친절하게 나와 있습니다.

1983년부터 시작된 폐교는 '자연 폐교'를 제외하고는 잠시 주춤하다가, 두밀분교 문제가 불거진 1990년대에 들어서 아주 활발하게 이루어집니다. 1998년 대통령 지시 사항으로 '과소규모 학교 통·폐합 지침 시달' 이후로의 일입니다. 거창교육지원청 자료에는 거창군에서 35개(현재 건물이 남아 있는 학교들을 이야기함)의 학교가 폐교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몇몇 폐교된 학교들은 학교 터도 남아있지 않아, 자료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산수초, 율원초, 중촌초, 농산초 등 이제는 건물만 겨우 덩그러니 남아 있거나 흔적만 있는 학교들입니다. 한때는 아이들이 수없이 뛰어놀며 꿈을 키워가던 곳입니다. 많은 학교가 폐교되었지만 아직도 폐교된 학교의 동문회가 이루어지는 곳도 많습니다. 산수초, 율원초, 대현초, 중유초 등이 합쳐진 신원초등학교는 옛날 그 학교별로 동문회가 열리고 있다고 합니다.

농촌 지역에서 학교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 곳인지를 알게 해주는 증거입니다. 그렇게 1면에 1학교만 남겨져 지금의 가북초, 웅양초, 남상초, 남하초, 주상초, 가조초, 신원초, 북상초, 위천초, 마리초, 월천초, 고제초가 되었습니다.

귀농 천국 거창군과 작은 학교

분교장 개편과 폐교를 반대하는 현수막
 분교장 개편과 폐교를 반대하는 현수막
ⓒ 송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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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90년대에 '소규모 학교 통폐합'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던 분교장 개편이나 통폐합은 한때 주춤했습니다. 적지 않은 곳에서 작은 학교를 살리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경기도 광주의 남한산초등학교로 대표되는 작은 학교 살리기의 사례는 1990년대 말부터 온 나라로 퍼져갔습니다.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는 선생님들에게도 농촌에서 살고 싶은 부모님에게도 희망이 생긴 것입니다. 그렇게 여기저기서 작은 학교 살리기를 위해 많은 선생님과 부모님이 발 벗고 나섰습니다. 지금은 '작은 학교 연대'라는 이름 아래 함께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작은 학교 행복한 아이들>이란 책을 낸 것은 물론 여러 매체에 소개되면서 공교육의 또 다른 대안이 되었습니다. 작은 학교에 가려고 일부러 도시를 떠나는 가정이 늘면서 어떤 학교는 전학을 제한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작은 학교는 살아나는 듯이 보였습니다.

거창군은 자타가 공인하는 귀농 천국입니다. 고제면, 웅양면, 북상면 등을 중심으로 젊은 귀농인들이 들어온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거창군에서도 귀농을 적극 유치하기 위해서 다양한 정책으로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인구 6만여 명의 거창군이 청정 지역을 유지하면서도 인구를 늘려나갈 방법은 그뿐이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있는 귀농인이나 아이를 낳을 귀농인들에게 가장 큰 고민은 아이들 교육입니다. 사는 곳에 작은 학교라도 있다면 안심하고 귀농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비록 학교 버스를 타고 면까지 가야 하지만 '우리 학교'가 있다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물론 부모님에게 정말 마음 놓을 일입니다. 작지만 아름다운 학교. 귀농 천국 거창에 꼭 필요한 곳입니다.

적정 규모 학교 육성? 무엇이 적정일까?

지난해 거창교육지원청은 면에 있는 중학교를 하나로 합쳐서 '기숙형 중학교'로 만드는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논란 끝에 마리중학교와 위천중학교 두 곳이 기숙형 중학교로 통합하기로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반대하고 학교 유지의 필요성을 말했으나 이른바 '학습권'을 내세우고 실제로는 '효율성'을 지향한 논리에 무너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올해는 '변경 계획'을 통해 면에 있는 초등학교를 분교장으로 개편하고 가능하면 폐교를 유도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적정 규모'이며, 어떤 것이 '적정 규모 학교 육성'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교육부에서, 그리고 도교육청에서 마음대로 정한 기준이 적정 규모란 것일까요?

사실 학교 현장에서 볼 때 교육청이 벌이는 여러 가지 사업 중 많은 부분이 비민주적으로 진행됩니다. 형식적 절차는 많이 보완되었다지만, 학교 단위에서 진행되는 교육청 사업엔 현장의 의견이 애초 끼어들기 어렵습니다. 그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고 이번 '적정 규모 학교 육성 추진 변경 계획'에서만 생각해 봅니다.

교육지원청의 공문이 온 뒤 전교조 거창지회를 중심으로 계획에 반대하는 펼침막을 곳곳에 붙였습니다. 지난해 중학교를 통폐합시켰던 사례처럼 올해는 초등학교를 그렇게 할 것이 확실하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7월 11일 거창지회장을 비롯한 선생님들과 교육지원청 교육장님, 장학사님, 담당 주무관님이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는 누가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어이없는 것들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교육지원청은 '공문이 잘못 나갔다, 내부 계획용인데 담당자의 실수로 잘못 나갔다'고 했습니다. 10여 년 이상을 학교에서 근무했지만, 공문의 오탈자나 첨부 파일 문제가 아닌, 공문 자체가 잘못 나갔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학교가 분교장으로 개편되고 폐교되는 중요한 계획을 교육지원청 내부에서만 추진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계획을 먼저 세우고 그 계획에 맞춰서 가려는 전형적인 행정 방식입니다. 이른바 밀실 행정이지요.

교육장님을 믿고 이 일에서 손을 뗄 수 없는 이유

거창교육지원 교육장과 선생님들의 대화. 펼침막이 걸리자 교육청에서 대화를 요청했다
 거창교육지원 교육장과 선생님들의 대화. 펼침막이 걸리자 교육청에서 대화를 요청했다
ⓒ 최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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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교육지원청 교육장님은 참 솔직하셨습니다. 공문에 대한 잘못이나 책임은 모두 본인에게 있고, 어떤 것이라도 감수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솔직하신지 공문에 나와 있는 일부 내용은 제대로 파악조차 못 하고 계셨습니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렇습니다.

"계획은 계획일 뿐이고 교육장이 추진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나는 그것을 추진할 뜻이 없다."

그러니 곳곳에 걸린 펼침막을 떼고 이번 일을 마무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은 공문으로 하겠다고 하셨던 내용이니 안 하겠다는 것도 공문으로 답변을 주셔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당연하지요. 그리고 이미 해당 학교 부모님께서 그 공문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니 학부모들이 안심할 수 있는 수준에서의 공문 내용이 필요하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 자리는 그렇게 일단 마무리되었습니다.

다음 날. 거창교육지원청은 "적정 규모 학교 육성 추진 계획 알림"이라는 조금 다른 공문을 다시 내려보냅니다. 그리고 상황은 좀 더 새롭게 진행됩니다. 그 이야기는 2편에서 드리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번 일은 '적정 규모 학교 육성 추진'이라는 도교육청의 정책과의 줄다리기가 될 것입니다. 일이 마무리 될 때까지 연재하겠습니다.

송준섭 기자는 거창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통폐합, #작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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